2017 춘천마라톤 참가기
1.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신경림의 “갈대”라는 멋진 시입니다. 갈대가 울고 있습니다. 그런데 울면서 흔들이면서도 왜 그러한지 갈대는 잘 모르는 모양입니다. 때로 내가 갈대라는 것을 그리고 울면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내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울지 않기 위하여 흔들리지 않으려 그리고 울고 싶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하여 전설의 고장 춘천으로 갑니다.
2. 지난 10. 15. 경주동마 이후 체중을 2kg가량 감량하여 어느때보다도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술도 밥도 최대한 자제하며 조신하게 큰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년도 부상으로 대회참가를 하지 못하고 TV시청으로 마음을 달래었었으나 다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을 줍니다. 새벽 2시50분! 조금 일찍 도착했음에도 버스의 좋은 자리는 선점이 되어 가장 뒷자리에 몸을 의탁합니다. 요란한 엔진소리와 불편한 의자로 인하여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부지런해야 합니다. 05:00시, 단양휴게소 차가운 벤치에서 처가 정성껏 준비한 떡갈비 주먹밥 2개로 아침을 먹습니다. 처량해 보이고 한편으로 정말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잠결에 눈을 떠보니 이미 공지천에 차량이 정차를 하고 비몽사몽간에 하차하여 준비된 화장실로 직행합니다. 언제나처럼 인산인해입니다. 요란한 사회자의 안내방송과 전마협의 홍보방송, 주차요원의 분주함과 버스의 경적소리 등으로 시골장터같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큰 메이저대회다운 웅장함과 활기 그리고 열정이 느껴집니다. 일전에 구입한 나이키 신발에 고3 딸아이 수능대박이라는 글을 새겨넣었습니다. 오늘 달리면서 내 간절한 마음을 실어보내기로 합니다.
3. 09:03분 B조에서 출발합니다. 오늘은 조금 욕심을 내 보려합니다. 3시간 10분대에 골인을 생각합니다. 1km를 평균 4:30초 전후로 뛸 계획을 하고 이러한 속도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도 테스트해 볼 작정입니다. 다소 무모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나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해 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이며 보스톤을 생각하면 세게 들이대 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입니다. 춘마는 초반과 27km 오르막을 잘 버티면 된다는 생각으로 출발을 합니다. 출발부터 미세한 오르막이 있으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긴장하지 않고 차라리 지나친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아서 좋을 것이라는 긍정마인드로 양발을 교대로 내 딛습니다. 5km를 22:25초에 통과하고 이대로 15km미터까지 동일한 속도로 진행을 합니다. 7킬로의 급격한 내리막과 8킬로지점 의암댐 상단을 지나 이어지는 의암댐 주위의 가을 풍경과 맑은 물이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켜줍니다. 그럼에도 몸은 이상하게도 무거워지는 느낌이고 특히 발뒷꿈치 아킬레스의 미세한 통증이 마음을 심란하게 만듭니다. 오버페이스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4. 16킬로를 지나 17킬로부터 약간씩 밀리기 시작합니다. 호흡이 약간씩 빨라지고 하체와 팔의 움직임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밀어주어야 하는 상황이 옵니다. 그러나 달림에는 큰 지장이 없습니다. 20킬로까지는 4분 40초대는 유지하고 하프를 1:37:07초에 통과를 합니다. 힘이 부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심란합니다. 포항에서 함께 온 많은 분들 이수룡님은 하프지점에서, 박인환님은 22킬로에서, 손철호님은 25킬로지점에서, 3시간20분 페매는 27킬로지점에서 추월해 갑니다.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원래 잘 뛰는 분이니 그냥 보내어 줄 수 밖에 없습니다. 대신 양보하여 어떠하던 4분대에서 최대한 멀리까지 가려고 작정을 합니다. 햇볕이 나고 기온이 조금씩 올라갑니다. 전신이 땀과 물로 범벅이 됩니다. 새로 산 신발은 천으로 되어 있어 물을 머금고 지 무게를 내한테 돌려줍니다. 아킬레스 보호용 양말도 물에 젖으니 그 무게를 느낄 수 있습니다. 피로가 조금 일찍 한꺼번에 몰려옵니다. 그러나 이 시기를 극복하면 다시 회복되리라는 것을 알기에 꿋꿋히 참고 달립니다. 24킬로를 지나 25킬로에서 5분초반으로 밀립니다.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에너지젤을 먹고 힘을 냅니다. 27킬로부터 펼쳐지는 춘천댐으로 가는 오르막을 최대한 보폭을 짧게하고 걷거나 쉬지 않기를 외치면서 올라갑니다. 다행히 약하나마 뒷바람이 불어주어 수월합니다. 춘천댐 상단에서 크게 들숨과 날숨을 교대하여 크게 호흡을 하고 다시 오르막을 올라 마의 30킬로에 도착합니다. 2:23:17초입니다. 오늘 목표치에는 도달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 몸이 내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마음은 벌써 골인지점에 가 있으나 몸은 아직 30킬로에서 근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5. 30km 이후 기록을 의식하지 않으니 마음이 오히려 편안합니다. 그냥 쉬지 않고 멈추지 않고 남은 길을 가고자 합니다. 아마도 대략 5분에서 5분30초까지의 시간으로 달리는 것 같습니다. 뛰고자 하는 에너지가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대견합니다. 쥐가 나 고통스럽게 누워있는 자, 나누어 주는 초코파이와 바나나가 전부 제것인양 인도에서 잔치를 벌이는 자, 자봉하는 여고생과 담소를 나무면서 물로 샤워를 하는 자, 버스승강장에 고개 숙여 외로이 앉아 생각에 잠긴 자, 이 모든이들도 자신의 우주가 넓다는 사실과 다시 비행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소양 2교를 건너갑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이제 다왔다는 경험칙에 의하여 갑자기 힘이 납니다. 이후 편도 4차로에는 달리는 주자와 응원객 그리고 급수봉사자가 뒤엉켜 즐거운 비명이 난무합니다. 이런 잔치가 없습니다. 나를 알아주는 이 하나도 없어도 덩달이 신이 납니다. 군중속의 고독이 아니라 군중이 내 고독을 씻어 줍니다. 왜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왜 이러한 달리기를 해야 하는지 춘마의 40킬로 이후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6. 골인지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방전되었던 몸에 에너지가 충전됩니다. 갑자기 몸에 있던 통증이 집을 나갔는가 봅니다. 어떠하던 다 왔다는 안도감으로 더 힘차게 골인을 합니다. 물을 5병씩이나 챙겨 온몸에 퍼붓고 입속으로 들이킵니다. 운동장 구석진 곳에 그대로 들어누워 하늘을 응시합니다. 참 높고 맑으며 햇살에 눈이 부십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념무상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섭니다. 종아리와 무릎통증도 두손으로 마사지를 하자 사그라듭니다. 24번째 그리고 올해 7번째 풀코스 마라톤, 잘 뛰었습니다. 3:28:27 !!!
뒤이어 오늘 최고기록을 세우고 내 턱밑까지 올라온 통달 이정희님이 골인하고, 생애 첫풀을 준수한 기록으로 뛴 우리 호근이, 젊은 피 봉규가 연이어 들어옵니다. 모두 개선장군입니다. 포항시청의 이연진이 여자엘리트 우승을 하고 감독상을 받은 장전수님과 함께 기쁨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마팟의 대빵이신 김태형은 뜨거운 열정에도 심각한 부상으로 5km에서 중도포기를 하였다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7. 세상에 그저 얻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최소한 그러한 생각으로 살아왔다 자부합니다. 2-30대는 미래 청사진을 이루기 위하여 참으로 열심히 살았던 것으로 회억됩니다. 그 이후 정체된 시기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삶의 활력을 조금씩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돌파구는 없는가? 옛말에 학이 역수행주 부진즉퇴(學如 逆水行舟 不進則退)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운다는 것은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서 나아가기 않으면 바로 후퇴한다는 말입니다. 마라톤도 이와 같습니다. 꾸준히 조금씩 노력을 하지 않으면 바로 몸이 망가지고 퇴보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모든 인생사가 그러할 것입니다.
2번째 가을 대잔치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고통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부단히 노력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숙제를 춘마에서 부여받았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울면서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믿음도 덤으로 얻고 하루를 마무리 합니다. 벌써 다음주 중앙일보 마라톤이 기다려집니다. 지금 제가 정상일까요? 비정상일까요?
마라톤은 “逆水行舟”입니다.
2017. 10. 30. 월
내 사무실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휘갈깁니다.
첫댓글 글을 보고 또 보고...이러다 글공부 되겠네 ㅎ... 춘천 3번가서 두번은 실패하고 한번은 제대로 뛴것 같네 내년엔 좀 더 나아졌으면 좋겠수 ㅎ 항상 지금처럼 그렇게 옆에서 못난 하수를 지켜주시면 감사하겠네요 잘보고 갑니다 고수님
그대와 함께라서 참 행복합니다.
개인 최고기록을 달성하신 형님에게 무한한 찬사를 보냅니다.
최변 역쉬 살아 있어요 잘 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