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하는 소녀
이 영 순
떡갈나무 숲속에 물이 흐르듯
반세기 넘은 학생들이
기억 저편에 서서
피아노의 음률에 맞춰
목청을 돋운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뒤집힌 음절을 곡조에 맞춰 되 뇌이며
가끔씩 헛기침까지 더하여
하모니를 이룬다
백발을 일렁이는 주름진 학생들
제멋에 겨워 흔들고 웃으며
청춘을 불사른다
배운 즉시 잊어먹고
돌아서면 까막 귀데
그래도 흥에 겨운 건망증 소녀들
만년의 행복한 복지관 학생들
지하철 풍경
이 영 순
추이도 더위도 없는 땅 속의 집
칸칸이 늘어진 여울진 인생들
길게 고개를 떨구고 있다.
눈을 감고 눈을 뜨고
중얼이며 떠들고
스마트폰에 빠져들어 게임에 열중이다
늘어선 일곱 좌석
앉은 모습 동일한데
서로가 동상이몽 마음은 천만갈래
밀리고 밀려든 인파 속에
떠밀고 떠밀린 밀물과 썰물
오가는 정 멀리한
눈동자가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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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관 인생
- 인생 행로 -
이 영 순
노년이 흥겹다
관절과 허리의 통증으로
자유스럽지 못하나
한글 반, 노래 교실
춤추며 바삐 사는 인생
서울역, 지하철,
파고다 공원 뜰에 누워
도박과 낮잠이룬 초췌한 허송생활
생각과 행동의 차이가
하늘과 땅을 가른
기괴한 인생항로
하늘이 주는 주어진 조건
활용도에 따라
싹 띄운 꿈의 천당
썩어버린 고목의 지옥(몸통)
뉘라서 행하는 자
슬기와 영광누리고
버리고 잃은 자
살아있음이 한심하다 (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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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전환점
이 영 순
인생이란 삶의 다양성 속에 변환의 시기를 맞는 순간을 흔히들 인생의 전환점이란 말로 대변한다. 인생이란 누구나 겪는 삶의 한 과정일 것이다.
철없이 뛰어놀던 어린 시절 부터 청소년, 중년, 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또는 철부지 소녀에서부터 인생의 결정적인 변화의 초점인 결혼생활, 그리고 자녀들의 뒷바라지에서 노년의 을씨년스런 모습까지, 아니면 다양한 삶의 직업적인 양상까지 누구나 다양한 경험을 통하여 그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돌이켜 보면 단정한 교복에 단발머리 미소녀가 20대의 중반에 들어서자 원색 찬란한 의상과 하이힐을 신고 길게 늘어진 머리칼에 친구들과 어울려 무교동의 쎄시봉 음악 감상실을 찾든 시절이 있었다. 그 뿐인가 윤복희의 미니스커트에 매료되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입었다기 보다는 걸쳤다는 말이 맞는 초미니스커트 차림, 그것도 모자라 명동의 학사주점을 찾아 먹을지도 모르는 술잔을 앞에 두고 갖가지 멋으로 폼 잡던 시절이며, 바바리코트의 깃을 올리고 팔장끼며 산비탈로 이어진 무악재 고개를 넘어 홍제동 화장터를 끼고 돌면서 통금에 걸릴새라 가슴조이며 데이트 하던 젊은 날의 추억들이 새삼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 가장 황홀한 순간순간들 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인생의 절정기라 하는 가슴 떨리는 결혼생활이 이루어졌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동침이며, 깨만 쏟아질 것 같은 황홀감은 잠시였다. 시집살이란 낯설고 어색하며 조심과 불편함으로만 이어진 전혀 다른 환경에의 적응도, 서로 다른 성격의 차이를 극복해 가려는 긴장과 초조, 참으로 많은 시련의 극복이었다.
인생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어 뒤늦은 취미생활로 택한 한국고전무용의 도전이 또 다른 삶의 행복인줄 몰랐다.
굳어버린 감성과 율동이 리듬을 타기엔 늦은 나이였으나 피와 땀의 결실이 맺어준 희망의 빛이 쏟아지는 순간이었다.
세계 17개국의 민속페스티벌에서 당당히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으니 말이다. 참으로 자랑스럽고 기막힌 행운이었다.
대만, 필리핀, 싱가폴, 이태리의 밀라노 무대까지를 섭렵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했겠는가.
이어서 세계 각국을 돌아보며 느끼는 또 다른 보람은 지금도 눈에 선한 모습들이다. 대만에서의 팡파르, 필리핀에서의 싸이카 호위와 백화점 쇼핑, 유럽에서의 뻐꾸기 창문에 걸려있는 각양각색의 꽃들, 밀라노 패션가의 화려함과 거대한 건축물의 웅장함과 섬세함들. 그리고 그들의 삶의 모습들에서 또 다른 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매사에 긍정적이며 여유와 유쾌함을 그리고 자유분방하면서도 정연한 질서유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들이었다.
배움과 관찰, 느낌과 깨달음의 진리를 깨우치는 순간 또 다른 삶의 질을 향하여 도전하고픈 마음이 요동을 친다.
그리하여 바꾸어진 자신의 모습에서 보람과 희망을 찾고 있다.
얼마 전 내겐 ‘미소의 여왕’이란 애칭이 붙여졌다. 무대 위에서의 당당한 자신감과 화려한 미소가 나를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애칭이란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욕심을 버린 삶, 감사와 감사를 거듭한 삶, 배움에 굶주리며 도전과 도전으로 희망을 엮는 삶, 미소와 친절로 다가가는 삶, 사랑과 봉사로 배품의 삶을 영위한 자신이 오늘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이러한 자신을 돌아보면서 마지막 기회일지 모르는 새운 도전의 길에 들어섰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문학이란 길이다. 우연히 접한 정찬우 교수의 문학수업에서 매료된 강의에 자신을 걸어본 것이다.
더 새롭게 더 당당한 모습으로 또 다른 삶에 여유로운 도전을 하고 잇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