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
전유철(소설가 ․ 평택잔다리족구회장)
-제1부. 족구이야기
-제2장. 족구클럽을 만들며 ①
족구공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 세상에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다. ‘족구를 하는 사람과 족구를 하지 않는 사람.’
성구도 어느덧 그 사람들 속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편입되어 있었다. 족구는 마약 같은 것이다. 환각의 세계에서 결코 벗어나기 쉽지 않은 족구의 세상. 그런 의미에서 족구는 마약인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온 성구는 곧장 샤워를 하였다. 머리까지 시원스레 감고 나니 이보다 더 개운할 수 없었다. 저녁밥을 먹고 성구는 서둘러 컴퓨터를 켰다. 족구클럽을 만들자면 회칙도 만들어야 하고, 족구규칙 등도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이었다. 부팅 되고 있는 모니터에 ‘새로운 시작’이라는 자막이 떠올랐다. 윈도XP의 버전에서 떠오르는 그 시그널이 성구에게는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마치 족구클럽 창단을 앞둔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처럼 느껴져서 성구는 그 문구가 사라질 때까지 힘주어 쳐다보았다.
‘윈도의 XP가 experience의 약자로 새로운 체험, 새로운 시작이라는 뜻이렷다! 우리의 족구도 이제 새로운 시작이 되겠지... .’
부팅이 끝나자 성구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띄워 한 포털 사이트의 검색창에 ‘족구’라고 입력하고 가운데 손가락으로 엔터를 경쾌하게 쳤다. 통합검색을 하자, 메뉴별로 '족구' 단어가 들어간 사이트가 죽 떠오른다. 카테고리, 지식iN, 사전, 뉴스, 블로그, 카페, 동영상 등의 메뉴에서 해당 검색어가 강물 속에서 유영하는 물고기 떼처럼 싱싱하게 살아 움직인다.
‘와, 이렇게 많을 줄이야.’
성구는 마음속으로 탄성을 지른다. 족구용품 사이트에도 전문쇼핑몰에도 하이퍼링크 주소들이 클릭을 대기하고 있다. 마치 ‘저희 사이트로 들어오세요.’ 라고 유혹하듯이 검지를 내밀고 있는 손 모양들이 앙증맞게 보인다.
성구는 먼저 백과사전 메뉴에 나와 있는 족구의 정의를 먼저 알아보고 싶어 그곳에 마우스 포인터를 놓고 재빨리 클릭 하였다.
“족구 - 네트를 사이에 두고 두 팀이 머리와 발을 사용해 상대 팀으로 넘겨 승부를 겨루는 한국 고유의 구기 종목. 한국에서 생긴 유일한 구기(球技) 종목으로, 삼국시대부터 짚이나 마른 풀로 공을 만들어 중간에 벽을 쌓고 공을 차서 넘기는 경기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역사가 아주 오래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당시부터 족구라는 이름으로 불린 것은 아니고, 현대적인 형태를 갖춘 스포츠로서 족구의 명칭이 생긴 것은 1966년의 일이다.”
삼국시대부터 족구를 하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오래된 종목인가?
‘그럼, 고구려의 을지문덕, 연개소문, 양만춘. 백제의 계백, 흑치상지, 아좌태자. 신라의 김유신, 원효, 장보고 등도 그 시대의 족구를 즐겼단 말인가? 전쟁터로 출정하면서 또는 승리를 자축하는 향연장에서 혹은 행군 중 잠시 휴식시간에 공터를 닦아 한판 족구를 하였겠지. 적의 성문 앞에 대치하면서 족구게임의 여유를 보이며 심리전을 하였을지도 모르고, 백제의 고란사에서도 신라의 불국사에서도 원효대사, 의상대사 등의 스님들이 까까머리로 족구를 하였을지도 모르고, 신라의 장보고는 아마 배 위에서 족구를 즐겼는지도 모를 일이지......짚으로 만든 공이 바다에 빠지면 수군(水軍)들은 다이빙을 하여 공을 건져 올리느라 진땀을 흘렸겠고...... ’
성구는 생각할수록 재미가 있어 흐흐, 웃음이 나왔다.
‘고구려의 왕자 호동은 낙랑공주 앞에서 넘어차기 공격을 하였을지도 모르고, 서동과 선화공주도 족구 이야기로 사랑을 꽃피웠을지도 모르지. 대조영과 걸사비우, 흑수돌, 검모장 등의 장군들도 긴 창을 지줏대 삼아 넝쿨줄기로 네트를 만들고 갑옷을 입은 채 족구를 즐겼을지도 모르지. 당나라로 투항한 연남생은 족구를 적에게 보급하여 안동도호부에서 설인귀 일당과 족구를 즐겼을지도 모르고......’
“하하하!”
터져 나오는 성구의 웃음소리에 아내와 아들 녀석이 방 안을 기웃거린다.
“아빠 무슨 일이세요?”
“어, 별일 아니야. 지금 족구 역사를 배우고 있는 중이거든.”
“족구도 역사가 있어요?”
어, 그렇단다. 성구는 한 마디 던지며 다시 모니터에 눈길을 돌린다. 이번에는 족구관련 사이트를 검색해 본다. ‘네이버’에서 카페를 검색하다가 ‘다음카페’에서 검색하던 성구의 입이 벌어진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는 ‘네이버’ 보다 훨씬 많은 카페들이 있었던 것이다.
‘족구 카페가 이렇게 많단 말인가?’
전국에서 개설된 수없이 많은 족구카페를 보고 성구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다.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 인천, 경기도, 강원도 등의 지역마다 카페가 개설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그냥 동네족구 수준으로 운동을 해 왔는데, 이렇게 체계적으로 족구동호회가 만들어져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카페가 만들어진지 벌써 몇 년 전의 것들도 있고, 일이 년 전에 만들어진 카페도 많았다. 다른 세상을 보는 듯했다.
성구는 그 중 비교적 회원수가 많은 카페 한 곳을 찾아가 회원가입 버튼을 눌렀다. 간단한 가입 절차가 끝나자, 그곳 여러 게시판을 열람할 수 있게 되었다. 회원들이 간단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한줄메모장’, 족구규칙 등을 볼 수 있는 ‘족구이야기’, 족구방송을 볼 수 있는 ‘최강부 경기동영상’, ‘1부 경기동영상’, ‘일반부 경기동영상’ 등의 메뉴도 있고 ‘개인기술동영상’ 등도 보였다. 또 다른 족구의 세계가 성구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터였다. 족구는 운동장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웹상에서도 싱싱하게 살아있는 거였다.
‘상대편을 이기려면 이론과 기술을 겸비해야겠지. 이론의 바탕이 없으면 기술 습득도 어려울테고...’
지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성구는 우선 ‘최강부 경기동영상’에 들어가 한 경기를 보기 위해 마우스 왼쪽 단추를 누른다. sbs스포츠에서 방송한 최강부 경기 동영상이 윈도 미디어플레이어를 통해 재생되고 있었다. 성구는 미디어플레이어 창 위에서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눌러 화면을 최대한 크게 해놓고 화면을 응시하였다. 족구방송을 난생 처음 접하고 있는 거였다.
잠시 후, 경기가 시작되는 화면이 펼쳐지자 성구의 입이 다시 한번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곳에는 화려한 공격과 환상적인 수비가 존재하는 세계였다. 띄움과 공격과 수비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는 경기였다. 나중에 자세히 알게 된 것이지만, 발안축, 발뒷축, 발등, 발날 등으로 공격하는 형태가 한 마디로 환상적이었다. 공격수가 넘어차기를 하는 모습도 성구는 지금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공격한 공이 바운드되어 튀어 오르는 비거리가 상당하였다. 해설위원은 15~18미터 정도는 된다고 흥분된 어조로 설명하였다. 어느 때는 그 공을 쫓아 받아내는 수비수를 보고 있으면, 공격과 수비가 서로 상응하여 발전하였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매 득점마다 창과 방패의 경기를 보는 듯했다.
족구방송해설위원의 설명을 들으며 성구는 몇 년 사이에 족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비약적으로 많아졌고, 그에 따라 기술도 프로 정도의 실력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국에 족구를 즐기는 동호인들이 오백만이 넘을 거라고 하였다. 지금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 육백만 칠백만으로 증가할 것에 분명했다.
‘그럼, 나도 그 중에 하나...?’
성구는 설핏 미소를 지어본다. 전국1부 선수들의 경기라는 최강전은 일 년 동안 리그전으로 진행하여 예선전을 갖고, 본선에 오른 팀별로 다시 리그전을 가져 최강팀을 가리는 경기였다.
성구는 경기 방송을 다 본 후, 족구관련 단체기관을 검색하였다.
‘국민생활체육 전국족구연합회’와 족구를 영어로 ‘킥볼’이라고 부르는 ‘대한족구연맹’의 두 단체가 있었다. 전국족구연합회에서는 4인제 3바운드 3터치를 규칙으로 하였고, 대한족구연맹에서는 방송의 박진감을 위해서 5인제 2바운드 3터치를 규칙으로 삼고 있었다. 전자는 생활체육인 육성을 도모하고, 후자는 엘리트 선수 육성을 꾀하는 단체였다.
두 단체의 경기규칙이 다르다보니 상호간에 불협화음이 발생되고 있음을 성구는 알게 되었다. 홈페이지의 댓글 등에서 서로의 단체가 알력으로 얼룩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국족구연합회에서는 대한족구연맹의 5인제 경기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 전국규모의 대회에서는 4인제 경기로 진행되고 있는 실정인 점도 알게 되었다.
‘삼국시대부터 해온 족구인데, 아직도 규칙이 통일되지 않았네. 삼국통일도 되었었는데...’
성구는 그들에게 냉소를 보내본다. 족구를 킥볼(kickball)로 명명하며 족구의 세계화를 꾀하고 있는 명분도 성구의 판단에는 설득력이 부족해 보였다. 그들 두 단체의 싸움은 보수파와 개혁파의 알력에 다름 아니었다.
밤늦도록 족구관련 자료들을 검색하던 성구는 아내가 잠들어 있는 침대에 누워 잠시 생각에 잠겼다. 족구클럽 회칙도 만들어야 하고, 회원도 모집해야 하고, 팀명도 선정해야 하고, 공과 네트 등의 족구용품도 구입해야 하고...... 그런 생각에 빠지며 성구는 흐뭇한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마치 만족한 섹스를 끝내고 죽음 같은 잠에 빠져드는 것처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