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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금산사람들(출향) 원문보기 글쓴이: 그림일기(길영수)
(금산에서 유명한 것)
1.금산인삼
하늘의 뜻과 땅의 기운, 사람의 정성이 하나로 어우러진 지극함의 산물, 금산인삼
인삼은 그 이름부터가 그러하듯이 생김새가 사람의 모습을 닮았고, 한방에서 으뜸 약재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소중한 인삼이 금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1,500년전 금산군 남이면 성곡리 개안 부락에 강씨성을 가진 선비가 있었는데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성이 지극한 선비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께서 병들어 자리에 눕게되어 세상에 좋다는 약을 구해서 어머니께 드렸으나 효과는 보지못하고 병은 날로 악화되던 중 금산의 명산인 진악산 관음굴에서 정성을 들여 모친의 쾌유를 빌면서 백일기도 중 꿈속에서 산신령이 나타나 "진악산 관음봉 암벽에 가면 빨간 열매가 3개 달린 풀이 있으니 그 뿌리를 달여드려라.그러면 네 소원이 이루어 질 것이다" 하고는 사라져 꿈속에서 본 암벽을 찾아 가보니 과연 그런 풀이 있어 뿌리를 캐어 어머니께 달여드렸더니 어머니의 병은 완쾌되었고 그 씨앗을 남이면 성곡리 개안 부락에 심어 재배하기 시작, 그 뿌리가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인삼이라 불리어져 재배되었다고 합니다.
강씨 총각이 인삼을 처음 심었던 곳이 금산군 남이면 성곡리 946번지의 밭으로 지금도 가면 알아볼 수 있도록 비석이 세워져 있다. 예전에는 매년 인삼의 새싹이 돋아 오를 무렵 이곳에서 제물을 차리고 치성을 드렸다.
성곡리 개안에 있는 인삼의 처음재배가 시작한 곳을 [개삼터]라 하며 1983년 건립한 개삼각은 진악산 산신령을 모신곳으로 강선비의 고택을 복원 하였으며 향토문화 제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마을이름을 개안이라고 하게 된 것도 "인삼의 눈을 트게 한다"는 뜻이다.
그 밭머리에는 [개삼터]라는 비석을 세웠는데, 나중에 건물을 지어 [개삼각]이라 하고 매년 벌이는 금산인삼축제를 이곳에서 시작하여 그 뜻을 기리고 있다.
2.칠백의총
종 목 사적 제105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충남 금산군 금성면 의총리 52-1
시 대 조선시대
임진왜란(1592) 때 왜군과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700명의 병사들을 위한 무덤과 사당이다.
조헌(1544∼1592)은 의병장으로, 문과에 급제한 후 호조좌랑, 예조좌랑, 감찰을 거쳐 보은현감으로 나갔으나, 여러 번 재등용되었는데 사직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1,700여 명의 의병을 일으켜 영규대사와 합세하여 청주를 탈환하였다. 이어 금산에서 왜군을 막기 위해 남은 군사 700명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장렬히 싸우다 전사하였다. 시호는 문열이다.
그들이 전사한 후 조헌 선생의 제자인 박정량과 전승업이 시체를 거두어 무덤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칠백의총이다. 조선 선조 36년(1603)에 ‘중봉조헌선생일군순의비’가 세워지고, 인조 25년(1647)에 종용사를 세워 700의사의 위패를 모셨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의총을 허물고 순의비를 폭파했으나, 금산군 사람들이 비석 조각을 감추어 보존하였다. 1963년, 국가에서는 묘역을 확장하고 1970년에 기념관·순의탑을 새로 지었다.
3.금산향교
종 목 충청남도 기념물 제121호
지 정 일 1997.12.23
소 재 지 충남 금산군 금산면 상리 4
시 대 조선시대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금산향교를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처음에는 지금의 금산읍 하옥리 백학동에 있었다. 그 뒤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린 것을 조선 숙종 10년(1684)에 지금 있는 자리에 다시 지었다.
제사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고, 교육 공간으로 강당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가 있다. 대성전 안쪽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과 우리나라의 성현들을 모시고 있다. 이 밖에 건물로 요사채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4.진산향교
종 목 충청남도 기념물 제122호
지 정 일 1997.12.23
소 재 지 충남 금산군 진산면 교촌리 355
시 대 조선시대
진산향교는 영조 51년(1775)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원래 진산면 읍내리 현 진산중학교에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고 그 뒤 지금 있는 자리에 새로 세웠다.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전교실이 있다. 대성전 안에는 공자를 비롯한 4성(聖)과 2현(賢) 그리고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갑오개혁 이후 교육 기능은 사라지고 지금은 봄·가을에 제사지내는 기능만 남아 있다.
5.이치대첩지
종 목 충청남도 기념물 제154호
지 정 일 2000.09.20
소 재 지 충남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 산79-34외 1필지
시 대 조선시대
이치대첩은 대둔산 중허리를 넘어 전북완주군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며 전략상 중요한 곳이다.
임진년 7월 경상도와 충청도를 휩쓴 왜적이 군량미의 현지보급을 꾀하여 이 배티재를 넘어 호남평야로 진출하려고 적장 고바야가와가 거느린 2만 병력을 이끌고 이 재를 넘으려 했다.
이보다 앞서 권율장군은 동복현감 황진과 1,500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이재를 지켜 왜적의 호남진출을 막으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왜적은 수의 우세함과 승승장구한 힘을 믿고 단숨에 이 재를 넘으려고 덤벼드는 것을 장군은 전 병력을 독려하여 결사전을 벌려서 적을 섬멸하여 대첩을 올리니 왜적이 다시는 호남에 진출할 엄두도 못내게 되었다.
이치대첩은 행주대첩, 진주대첩보다 앞서는 임진왜란 최초의 육전승전지로 국가사적지로 지정 추진중이며 그에 앞서 충청남도 기념물 154호로 지정, 성역화 사업을 통하여 새롭게 단장할 전망이다.
6.청풍사
종 목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호
지 정 일 1984.05.17
소 재 지 충남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 246
시 대 조선시대
고려 후기 충절공 야은 길재 선생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사당이다. 길재 선생은 고려말∼조선초의 학자로, 개경에 가서 이색·정몽주·권근 등 여러 선생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몇 차례 과거에 합격하였으나 나가지 않고 같은 마을에 살던 조선 태조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후의 태종)과 두터운 친분을 맺었다. 훗날 태종이 그를 불렀으나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하여 거절하였으며, 이색·정몽주와 함께 고려 삼은으로 일컫는다.
조선 영조 33년(1757)에 지방 유림과 금산군수 민백홍이 세운 것으로 사당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청풍사의 앞쪽에는 백세청풍비와 지주중류비가 있는데 이는 야은 길재의 충절을 보여주는 것이다.
7.금산 충렬사
종 목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7호
지 정 일 1984.05.17
소 재 지 충남 금산군 금성면 상가리 100
시 대 조선시대
해주 오씨의 사당으로 완월당 오응정(1548∼1597)과 그의 장자 욱, 둘째 아들 직과 손자 방언 등 3세에 걸친 4충신을 모신 곳이다.
오응정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조선 선조 7년(1574) 무과에 급제하였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에는 전라도 순천을 수비하였으며, 같은 해에 왜적이 남원을 침입하자 남원성싸움에 참여했다가 전사하였다.
충렬사는 해마다 지방의 학자들이 추향제를 지내고 있다.
8.용강서원
종 목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호
지 정 일 1984.05.17
소 재 지 충남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27
시 대 조선시대
우암 송시열·동춘 송준길·미호 김원행·시남 유계·역천 송명흠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조선 숙종(재위 1674∼1720) 때 세운 이 서원은 성현을 제사하고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8년(1871)에 폐쇄되었다가, 유림이 헐린 재목을 모아 강당을 복원하였다.
건물로는 5칸 규모의 강당이 있는데, 가운데 마루를 두고 양쪽은 좁은 공간으로 꾸몄다. 강당은 여러 행사와 유림의 화합 및 학문을 논하는 장소로 사용해 왔는데, 현재 학생들에게 한학을 가르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서원의 확장을 막는다는 구실로 폐쇄되었지만, 광복 후 지방 유림의 정성으로 다시 복원하어 금산지방에 남아 있는 유일한 서원이다.
9.조헌사당(표충사)
종 목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0호
지 정 일 1984.05.17
소 재 지 충남 금산군 복수면 곡남리 210
시 대 조선시대
문열공 조헌 선생을 모신 사당으로 조선 인조 때에 세운 것이다.
조헌 선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의병장이며 유학자이다. 조선 명종 20년(1565)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1567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선조 1년(1568) 처음으로 관직에 올라 교수를 역임하였고 선조 5년(1572)에는 교서관에 속하였다. 선조 15년(1582)에는 모함을 받아 파직되었다가 다시 복직되었다. 그러나 왕의 진노를 사서 관직에서 물러난 뒤 제자 양성과 학문을 닦는데 전념하였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등 1,600여명을 모아 청주성을 수복하였으나 전라도로 진격하던 중 왜군을 만나 모두 전사하였다.
10.남이자연휴양림
소 재 지 충남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 산 166번지
남이자연휴양림은 레저와 가족단위 체류형관광의 적합지이며, 활엽수종의 천연림이 울창하여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 그리고 기암절벽과 폭포등이 어우러져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인근에 조상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백제시대 성터인 문화재로 지정된 "백령성지"가 있고 6.25때 치열했던 격전의 상흔을 간직한 "육백고지전승탑"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지난 역사를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한다.
이로 인해 자연경관과 역사적 현장을 함께 찾을 수 있다. 또한 휴양림을 감싸고 있는 선야봉(729m)에 오르는 등산로를 갖추고 있으며, 산정에서는 대둔산의 기암절벽도 한눈에 볼 수 있다.
11.대둔산도립공원
소 재 지 충남 금산군 진산면 , 논산시 벌곡면, 전북 완주군
대둔산은 동국여지승람에 씌어있는 바와 같이 진산(珍山)의 진산(鎭山)이며 금산 땅이니 금산의 산이라 할수 있다. 속리산 법주사 하듯, 대둔산을 주산으로 하는 옛절 태고사도 금산 땅에 있다. 비록 대둔산 전체에서 금산이 차지하는 지역의 비중이 작지만 분명 대둔산의 뿌리는 만해 한용운이 “태고사를 보지 않고는 천하의 명승지를 말하지 말라”고 했다는 태고사 자리가 대둔산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옛날에는 대둔산 하면 금산의 산으로 인식되어 왔는데 완주군 쪽을 크게 개발하고 사람들을 끌어 들이면서 전북 또는 완주의 대둔산으로 인식되어 버렸다. 금산의 대둔산으로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금산ㆍ완주의 대둔산’이라는 공동명의의 산으로 인식을 바꾸어 놓았으면 한다. 두개의 도립공원으로 되어 있는 산이다. 군 행정구역으로 볼 때 전북쪽은 완주군 하나의 군구역으로 되어 있으나 , 충남쪽은 금산군과 논산군 두 군의 구역으로 되어 있다.
대둔산은 기암괴봉들이 많고 그 바위 봉우리들이 수려하며 깨끗하다. 크지 않으나, 장한 맛도 있고 아기자기한 맛도 있다. 한 쪽은 숲도 울창하며 계곡도 아름답다. 가을에 단풍이 기암괴봉과 어우러질때는 황홀하기까지 하다. 또 임진왜란의 전적지이기도 하고, 천하의 대지에 자리잡고 있는 태고사 절 앞의 암벽에 새겨진 ‘석문(石門)’이란 글은 우암 송시열이 쓴 글자로 알려져 있으며 갖가지 전설도 서려 있다. 경관이 수려하고 여러가지로 훌륭한 대둔산은 금산, 논산, 완주 세군이 차지하고 있는 각 지역마다 각각 특색이 있어 재미있다.
금산은 임진왜란 전적지와 천하명당인 태고사가 있고, 논산지역은 숲이 좋고 계곡과 개울이 좋으며 완주지역은 기암괴봉이 수풀처럼 서 있고 여러가지 편의시설이 있다. 산길도 진산면 향정에서 오르거나 배티재에서 산비탈을 엇비슷이 가로질러 오르다 태고사에 들른 뒤 낙조대에 오르는 길이 좋다. 논산쪽은 수락리에서 승전탑을 거쳐 수락계곡의 화랑, 금강, 비선 폭포를 보며 196계단을 타고 고스락('정상'을 뜻하는 순우리말)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좋고, 완주쪽은 집단 시설지구에서 올라 구름다리 금강다리를 건너는 재미가 좋다. 안심사에서 깔딱재를 넘어 오르는 길도 있다. 원효대사가 사흘을 둘러 보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격찬한 대둔산은 정녕 아름다운 산이다.
12.적벽강
소 재 지 충남 금산군 부리면 수통리
금강은 전북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 뜬봉에서 발원하여 유유히 북쪽으로 흐르다가 창남에 들어서서 동남쪽에 물굽이를 틀어 서쪽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에 들어선다. 여기서부터 층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산 사이를 뚫고 금강이 흘러 수통리에 이르면 그 앞의 넓은 시야로 좌측으로 기암을 이루는 절벽이 있으니 이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을 적벽이라 부르고 그 아래에 흐르는 금강을 "적벽강"이라 한다.
적벽은 바위산이 붉은 색이란 데서 유래된 것으로 30m가 넘는 장엄한 절벽에는 강물 아래로 굴이 뚫어져 있으며 이 산에는 기화요처가 자리잡고 있어서 더욱 신기한 산으로 알려져 있다. 가을에는 불붙는 듯한 단풍이 강물에 투영되어 절경을 이루며 창파에 저녁노을 질 무렵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적벽절경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겨보는 것도 일품이다.
적벽 아래 흐르는 금강은 마치 호수와 같이 잔잔히 흐르며 모래사장이 길게 깔려 있어 더욱 운치를 돋군다. 일설로는 중국 양자강 상류에 있는 천의절경 적벽강과 흡사하다하여 적벽, 적벽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봄철에 해가 뜨면 춘화가, 여름에는 푸른 소나무 잎이 가을에는 단풍이 겨울에는 설화가 강물에 비쳐 비단에 수놓은 푸른 물결과 함께 절정을 이루는 적벽강에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 배를 띄워 강물을 헤치는 것도 절경이다.
13.십이폭포
소 재 지 충남 금산군 남이면 구석리
금산군 남이면 구석리에서 동남쪽으로 2km 시냇물 따라 골짜기로 들어 가면 무성한 숲과 층암 절벽 사이를 누비며 내려 쏟아지는 크고 작은 12개의 폭포가 있다. 이곳이 유명한 12폭포로 그 이름도 폭포의 수를 따라 지은 것이다. 가장 큰 폭포는 높이가 20m나 된다. 물이 맑아서 은하수가 거꾸로 쏟아지는 듯한 웅장한 모습과 산골짜기에 울려퍼지는 우렁찬 물소리와 옥같이 부서지는 물방울은 절경을 이룬다. 가히 조물주의 위대한 창조품이라 말할 수 있다.
이곳은 옛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 바위마다 많은 글자들이 새겨진 글귀 등은 자연풍과 어울려 그 품위를 더해주고 있다. 봄철의 화전놀이, 여름철의 피서, 가을철의 단풍놀이로 찾아드는 이들이 끊일 사이 없다. 계곡에 얽힌 전설은 자연의 신비스러움 더해준다. 주위의 지형과 산세로 보아 옛절이 있음직한데 애석하게도 확인할 바 없고 다만 남쪽 산밑에 큰 주춧돌이 흩어져 있으나 고증할 길이 없다.
14.신안사
소 재 지 충남 금산군 제원면 신안리 52번지
금산군 제원면 신안리 동북쪽에 있는 해발 677m의 신음산 국사봉에서 내려온 지맥의 산록에 있는 신안사는 신라 26대 진평왕 5년에 무염선사가 창건했다. 신안사라는 이름은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이 충북 영동군 양산면에 있는 영국사에서 수학(修學)할 때 이 절에 가끔 들러 유숙하였는데 '주위 환경이 맑고 아름다워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하여 신안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신안사에는 대광전, 진향각, 극락전, 요묵당 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대광전(유형문화재 제 4호)과 극락전(제117호)만이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불상은 10기가 봉안되어 있었으나 병화로 소실되어 태고사 등으로 5기를 이봉하고 현재 5기만이 봉안되어 있는데, 단정하고 우아한 모습은 참배자에게 불심을 일으키게 하는 조선 미술의 걸작품이다. 이 절이 흥할 때에는 반승 3,000여명이 수학하였다 하며 불경, 불기 등 여러가지 비품이 많았는데 6.25 전란을 겪으면서 모두 소실되어 찾을 길이 없다. 다만 절 앞을 흘러내리는 계곡의 아름다움은 변함이 없다.
15.보석사
소 재 지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금산읍에서 약 6km 떨어진 진악산 (732m) 남동쪽 기슭에 위치한 보석사는 신라 헌강왕 12년(866년)에 조구대사가 창건한 역사깊은 절이다. 교종의 대본산이며 한국불교 31본산의 하나로 지난 날 전라북도 불교의 이사중추기관이었고 현재는 충남 교구 산하로 되었다.
보석사라는 이름은 절 앞산 중허리의 암석에서 금을 캐내어 불상을 주조하였다는 데서 이름지어졌다. 사찰에 들면, 울창한 숲과 암석이 맑은 시냇물과 어우러져 있어서, 속세를 떠난 듯하다. 절 안에는 대웅전, 기허당, 의선각, 산신각 등의 건물과 부속암자가 있으며, 인근에는 절경의 12폭포가 있다.
특히 높이 40m, 둘레가 10.4m나 되는 1,100년 수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65호)가 있어 좋은 휴식처를 제공해 주며, 200~300미터 정도의 전나무길이 나 있어 호젓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첫댓글 방문 말뚝 엄써용?
활성화가 되야 되는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