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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배마을에 눈이 내린다 / 눈은 내리고 또 쌓이고 / 천지는 온통 하얀 나라// 하얀 나라 문배마을 // 산이 하얗고 / 나무들이 하얗다 / 집들이 하얗고 / 사람마저 하얗다 // 하얀 마을 문배마을에 / 달빛이 하얗게 내려앉는다 / 별빛도 하얗게 내려앉는다.’
새해에는 눈 덮인 문배 마을을 찾아가 보자. 도청 소재지 춘천에 이토록 이채로운 마을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검봉산 구곡폭포 머리맡에 펼쳐져 있는 작은 분지 문배 마을에 눈이 내리고 쌓인 날,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밟으러 가자! 서산대사의 선시(禪詩) 답설야중(踏雪野中)을 생각하며 눈밭을 걸어보자!
‘눈 오는 벌판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 / 발걸음 함부로 하지 말지어라 / 오늘 내가 남긴 이 발자국 / 드디어 뒷사람의 길이 되느니’
사람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 누구나 자기만의 역사를 연출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얀 공간에 자기만의 인생을 그리게 된다. 그 인생, 그 역사의 크고 작음이야 어디 대수이겠는가. 그 인생, 그 역사가 뒷사람들의 길이 될 때는 그 길이 참되고 착하고 아름답고 건강한 길이 되어야만 하겠다. 어질고 슬기롭고 용맹스러운 길이 되어야 하고 성(聖)스러운 길이 되어야만 하겠다.
눈 덮인 문배 마을, 하얀 나라 눈밭을 밟으러 가자. 이왕이면 하얀 달빛이 눈밭 위로 내려앉는 날 밤, 정다운 사람과 손을 잡고 눈밭 위를 걸어가 보자!
▲ 강촌의 옛이름을 상호로 삼은 '물갯말' 정재욱-박근숙 주인부부.
경춘선 강촌역은 젊음과 낭만의 대명사다. 청량리역에서 강촌 가는 열차를 타보면 차안에서부터 젊음과 낭만이 가득 넘쳐나기 시작한다. 구곡폭포와 검봉으로 들어가는 들머리 강촌은 자전거와 민박과 MT의 천국이다. 간이역 강촌역에 내리면 기차역 건물 기둥 벽면을 장식한 온갖 낙서들이 분위기를 돋운다. 마을로 들어서면 길가 가게 앞에는 수많은 자전거들이 손님들을 반긴다.
이곳 강촌에는 자전거 코스가 다섯 가닥 개발되어 있다. 그 중 하나가 52km, 국내 유일의 퍼펙트 MTB(산악자전거)코스다. 산 따라 강 따라 달리는 이 코스는 난이도가 다양한 순환코스다. 포장된 도로가 있는가 하면 울퉁불퉁 비포장길도 있다. 특히 486m 봉화산에서 골인지점까지의 7km 내리막길은 이 코스의 클라이막스다. MTB 자전거는 현지에서 빌리는 것이 편하겠다(캠퍼스 자전거 033-261-0109).
이런 분위기의 마을 곳곳에는 멋과 맛을 함께 제공해 주는 먹거리집들이 즐비하다. 해 저문 저녁이면 마을 전체가 휘황찬란해진다. 한 집을 골라서 들어가 본다. 옥호가 ‘물갯말(033-262-6523)’이다. 이 특이한 이름은 강촌의 옛 지명이다. 매운탕을 잘하는 집으로 크게 소문이 나 있다.
겨울철에는 빙어회(10,000원)와 빙어튀김(5,000원)으로 술 한 잔 하기에 딱 좋은 집이다. 식당으로서 갖춰야 할 것은 빠짐없이 다 갖추었다. 맛 좋고 값도 싸다. 위생만점인 청결한 집인데 종사자들의 친절이 넘쳐나 대도시 번화가의 이름 높은 집들의 수준을 능가한다.
춘천시에서 모범음식업소로 지정해 놓았다. 물갯말 원토박이인 집주인 정재욱(鄭載旭·40)씨와 부인 박근숙(朴根淑·36)씨 내외의 경영방침도 반듯하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자원화하는 데 모범을 보이는 업소로 선정되고, YWCA와 한 언론사가 추천한 ‘환경사랑 음식점’이기도 하다.
식당 벽면에 걸려 있는 아름다운 그림들은 교단에서 2세들의 교육을 맡고 있는 업주의 누님이 그린 그림이다. 120명이 함께 이용할 수 있고 넓은 주차장이 확보되어 있다. 강촌역에서 500m 거리, 놀이시설 강촌랜드 바로 옆집이다.
주변에는 민박집들이 늘어서 있는데 강촌랜드 옆집은 민박집 느티나무마을(033-261-0051)이다. 민박집이라고는 하지만 도시의 모텔급 수준이다.
▲ 북어해장국으로 유명한 강촌바보온달의 장성자씨.
‘강촌바보온달’
취재길 하루를 춘천에서 잤다. 오봉산 취재길에서 만났던 소양강 처녀 정효은양과 명동 닭갈비 골목에 들렀다. ‘구미닭갈비’ 식탁에 마주 앉은 소양강 처녀가 좋은 소식 하나 들려주겠다며 꺼낸 이야기가 자신의 혼사 문제였다. 월간山 2002년 11월호 오봉산 취재길을 안내하고 난 직후에 멋진 총각을 만나게 됐고 혼담이 급진전했다고 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취재길로 두번째 만난 그 날이 혼사날짜를 잡은 날이라고 했다. 월간山은 자신에게 행운을 안겨 준 잡지라며 평생 독자가 되겠단다. 축배를 들었다. 그러고는 술잔이 이어졌다. 두번째 들린 집이 칵테일바였다. 빨간 스로진잔 위에 빨간 체리 하나를 띄우고 소양강 처녀의 전도를 빌었다.
과음은 숙취를 불러오고 숙취는 해장국을 찾게 마련이다. 강촌으로 가는 아침, 춘천시청에다가 물어봤다. 강촌에서 해장국 잘하는 집이 어디냐고. 담당부서에서는 어느 집을 편파적으로 꼬집어서 알려 줄 수 없는 입장이란다. 결국은 2002년도 모범음식점으로 지정했다는 ‘강촌바보온달(033-262-2333)’로 찾아가게 됐다.
북어해장국을 권한다는 집이었다. 따끈한 북어해장국을 차려내는 주인 장성자(59) 할머니가 “북어국이 시원할 것”이라고 했다. 엉겁결에 뜨거운 국을 맛있게 먹으면서 “북어국 참 시원하다”고 대답했다. 옥호 탓일까. 온달이 바보가 아니라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뜨거운 국물을 먹으며 시원하다니. ‘바보온달’로 널리 알려져 있는 옥호를 ‘엄마손’으로 바꾸어 달기로 했단다.
▲ 구곡폭포의 명소로 자리잡은 '검봉산칡국수' 상차림.
구비구비 아홉 구비를 돌아 돌아 들어간다고 했던가. 검봉에 있는 폭포이름이 아홉 구비 구곡폭포다. 강촌역에서 4.5km 거리, 관리사무소(매표소)에서 폭포까지는 900m 거리. 여름에는 50m의 웅장한 물줄기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겨울에는 하얀 빙벽이 산꾼들을 끌어들인다. 매표소에서 폭포까지 가는 등산로 중 700m 주위가 공원으로 잘 조성되어 있다. 울창한 산림으로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길은 바닥에 깔린 돌로 지압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게 해 놓았다.
오래 전부터 검봉을 가면 칡국수를 먹고 와야만 하는 줄로 알아 왔다. 워낙 유명한 칡국수집이 있기 때문이다. 그 집이 바로 ‘검봉산칡국수집(033-261-2986)’이다. 개점하고 4반세기의 연륜을 쌓아온 집이다. 지금은 창업주 이상호(李相浩·68)씨의 두 며느리와 두 딸이 함께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주변에는 수많은 칡국수집들이 영업 중이지만 이 지역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꼭 이 집만을 고집스럽게 찾는다.
검봉과 봉화산에서 직접 캔 칡만 쓰던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삼척지방에서 캔 칡을 갖다 쓰지만, 창업주의 칡 선택은 지나치리만큼 철저하다. 산록에 자생하는 콩과의 낙엽 활엽 식물인 칡의 뿌리 갈근(葛根)은 녹말이 많아 식용한다. 한방에서는 위장을 튼튼히 하는 건위제로 쓰기도 한다. 그래서 이 집에서 만드는 칡 음식은 맛만이 아니라 식이요법으로 먹기 위해 찾는 손님들도 많다고 한다.
검봉 산행이나 구곡폭포 빙벽등반을 마치고 멀지 않는 검봉산칡국수집에서 칡국수(4,000원) 한 그릇과 칡부침(3,000원) 한 쟁반에 막걸리 한 사발 마셔 보는 것도 별난 추억거리가 되겠다. 구곡폭포 매표소에서 400m 거리. 주차에는 전연 불편함이 없다. 길 건너편에 있는 ‘검봉산민박(033-261-2985)’도 한 집이어서 이 집에 세워 두어도 된다.
매표소 앞 주차장에는 차 한 잔 마시고 요기를 할 수 있는 ‘대나무집(033-262-0456)’이 있고 현지 특산품을 구입할 수 있는 춘천특산물판매장(대표 박영자·033-261-6663)도 있다.
하얀 마음 문배 마을 사람들
문배 마을을 처음 가게 된 것은 음식평론가 향촌(鄕村) 여사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월간山 골수 독자인 향촌 여사는 매달 ‘산따라 맛따라’를 정독하고 매서운 비판을 보내 준다. 필자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분이다. 이번 취재길에는 영남알프스 배내산장의 김성달-황점생 부부가 동행했다. 산촌미락회 도봉산 모임에 참석코자 미리 올라온 부부가 하루를 함께 보냈으면 좋겠다고 제의했고, 우리는 그들의 차로 눈 내린 문배 마을로 갔다.
문배 마을은 구곡폭포의 정수리 부분쯤 되는 곳에 있는 2만여 평의 분지다. 검봉 산행길에 옛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작은 마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잔잔한 감동이다. 문배 마을은 고향을 잃어버리고 사는 도시사람들에게 고향을 생각토록 한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대중가요 중에서 고향을 주제로 한 노래의 노랫말 속에 들어가 있는 낱말들을 떠올리게 한다.
겨울이라 무정천리 눈이 오는 것일까. 그래도 봄이 오면 유정천리 꽃은 또 피어나겠지. 꽃이 피고 새가 우는 고향산천. 님 생각 고향 생각 꿈의 조각들. 고향을 잃은 길손. 물래방아 도는 내력. 망향의 정서에 젖어 사는 도시인들에게 이런 낱말들을 떠올리게 하는 마을이 바로 문배 마을이다.
▲ 문배 마을 민가는 대부분 민박이나 음식을 팔고 있다. 이씨네의 이준식 할아버지(위).한씨네의 이상옥 여사(아래)
문배 마을에는 집집마다 집 앞에다 자신의 성씨를 밝힌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 매우 특이하다. ‘이씨네집’, ‘한씨네’, ‘장씨네’, ‘신가네’, ‘김가네’다. 나머지 집들은 ‘문배집’, ‘촌집’, ‘큰집’으로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 어느 집에서나 산채비빔밥과 닭백숙을 먹을 수 있지만, 민박을 치는 집은 큰집(033-261-6492) 한 집뿐이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한씨네(033-261-3766)’에서 점심 한 끼를 먹었다. 안주인 이상옥(李相玉·60)씨가 차려낸 음식상이 어쩌면 그렇게도 정갈할 수 있을까? 이렇게 외진 산속에서 이렇게 정갈한 음식상을 받아 보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맛이야 기본이겠지만, 사람들은 이 집의 청결상황에는 혀를 내두른다고 한다. 집 안팎이 모두 흙바닥인데도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다.
춘천시는 문배 마을에 2002년 6월 관광객의 휴식과 구곡폭포에 폭포수를 공급하기 위해 2천 평 넓이의 생태연못을 만들어 놓았다. 이 연못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구곡폭포가 된다. 문배 마을의 새로운 명소가 되고 있다. 문배 마을은 지금의 상태를 잘 보존하면서 시골 고향마을의 정취를 보다 더 물씬 느낄 수 있는 마을로 가꾸어 나가면 아주 훌륭한 관광자원, 관광명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얀 눈이 내렸던 날 하얀 마을에서 하얀 밤을 새우고 하얀 마음씨의 이씨를 만나고 온 것이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새해에는 보다 더 하얗게 살아야겠다.
(박재곤 산촌미락회 고문·60대산회 회원)
첫댓글 춘천..강촌. 아주 오래전 학창시절에 M,T..L,T 가 본 이후로 혼자서도 가끔 가는 곳...가고 싶네요...경춘선 타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