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강증산과 나”를 왜 읽어야 하는가?
인간은 몸을 통해서 세상으로부터 다섯 가지 감각정보(五感: 시·청·후·미·촉)를 획득합니다. 그리고 이성(理性)을 움직여서 감각정보를 분류→판단→종합해서, 창의적으로 지식을 생산해냅니다. 인간의 이성이 정보와 지식을 다루는 능력은 탁월합니다. 달에 사람을 보내고, 화성에 로봇을 보내며, 태양계 행성을 탐사합니다. 축구장보다 더 큰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우고, 그 큰 배가 대양을 가르며 사람과 물자를 이동시키도록 합니다. 깊은 바다 속에도 잠수함을 보내 탐사활동을 벌입니다. 종합병원 수술실에 잘 훈련된 의사들은 기적 같은 수술을 매일 성공시키고 있습니다. 농부들은 농학, 생명공학, 화학, 기계공학, 경영학 지식을 융합해서 농업생산량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켰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의 정보를 즉시 찾아내고 전 세계로 정보를 보낼 수 있습니다. 운거를 타고 지구 곳곳을 날아다닙니다. 인간의 이성은 최고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고 할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이 최고 수준으로 작동하는 것에는 신도세계의 이유가 있습니다. 즉, 이마두 신부님께서 천국의 문명을 지구에 뿌리 내리기 위해 뛰어난 하늘나라 신명님들을 설득해서 인간들에게 알음귀를 열어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마두 신부님께서는 인간이성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려주어도 지구에 영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고,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으셨습니다. 어떤 노력을 다 해보아도, 폭력의 유전이 끊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인간은 하늘나라의 무서움을 망각하고 신명을 박대하며 잔악함은 날로 더해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마두 신부님께서 하늘나라 천중들을 이끌고 강증산 상제님께 가서 인류를 건져내고 삼계우주를 건져주십사 하고 탄원을 하셨던 것입니다.
증산신앙인들을 잘 알고 있다시피, 지금은 우주질서의 틀이 바뀌고 있는 때입니다. 지구에 살고 있는 71억 인류는 선천 상극의 분열·성장시대가 끝나고, 후천 상생 성숙의 새 시대가 태동하는 개벽운수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 개벽”의 때를 맞이했습니다. 인류가 후천 5만년 신선세계를 만나게 되므로 운수는 좋건만, 절체절명의 급살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알고 보면 무서운 때입니다. 급살병에 목 넘기기가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급살병은 ‘신명(神明)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감하여 마음에 먹줄을 잡혀 사정(邪正)을 감정하여 번개불에 달리면서’ 독기와 살기를 대청소하여 후천 우주를 낳기 위한 신명들의 신판(神判)입니다.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최후의 심판입니다. 급살병 심판에는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돈, 권력, 명예, 외모도 따지지 않습니다. 증산신앙을 했는지도 관계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심판대 위에 올라서야 합니다. 인류가 도구를 이용해서 인간 몸의 감각기관을 확장시키고, 집단지성을 조직하여 한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상의 정보와 지식을 탐험하고 있지만 이것으로는 최후의 심판을 극복할 길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똑똑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한 사람이 급살병의 심판을 넘어 신천지 조화세계로 입장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한 사람이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어떻게 거듭나야 하는가? 마음에 찌든 상극의 독기와 살기를 완전히 씻어 없애고 상생의 새 인간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하늘도 새 하늘이고, 땅도 새 땅이고, 인간도 새 인간이어야 하는 이치입니다. 그러면 상생의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인간으로 오신 두 분 하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두 분 하나님이 바로 강증산 상제님과 고판례 수부님이십니다. 그리고 상제님과 수부님과 한마음이 되어서 나도 하나님과 한 뜻이 되어서 말하고 행동하는 상생의 인간, 진리의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상제님, 수부님의 ‘진리의 어진 벗’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증산 신앙인들이 “강증산과 나” -부제: 진리의 어진 벗-를 왜 읽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증산신앙 100년 과정에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일심(一心) 때문입니다. 일심(一心)은 강증산 상제님과 고판례 수부님과 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천지부모님과 한 마음이 되어서 천지부모님과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 하는 것이 일심(一心)입니다. “일심(一心) 갖기가 죽기보다 어렵다.” “일심(一心)을 가지면 항마가 저절로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일심을 가져야 하는데, 과연 우리가 그 일심을 가져서 강증산 상제님과 고판례 수부님과 한 마음이 되었는지 반성을 해야 하는 때야 왔습니다. 100년의 방황이었으면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나의 마음이 상제님․수부님 마음이고, 상제님․수부님 마음이 나의 마음이 되고 있는지? 내가 지금 상제님과 수부님과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하는 그 길에 서 있는지? 판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왔습니다. 성경신(誠敬信)이 아무리 지극해도, 상제님․수부님의 마음과 통해서 이심전심이 되지 않으면 10년 공부가 도로아미타불입니다. 그동안 집을 아무리 크게 짓고, 사람을 아무리 많이 끌어 모았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내 인생을 다 바쳤다고 해도 상제님, 수부님과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일심을 갖는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해서 일심을 가질 것인가? 일심을 가져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자기가 스스로 깨달아야, 비로소 올바른 신앙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공의 길입니다. 일심을 가지겠다고 백번을 외치고, 일심을 가져라도 백만번을 강조해도 내가 일심을 갖지 못하면 그것은 일심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일심 갖기가 정말 어려운 신앙과제인 것입니다. 하느님과 한 마음이 되는 것에 대해서 증산 신앙 100년동안 우리가 얼마나 고민하고 노력했는지? 이제 반성을 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일심을 가졌는지? 판단하는 때가 온 것입니다. 상제님, 수부님과 한 마음을 갖지 못하면 잘못된 길로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신명님들이 호락호락하게 진리의 주도권을 인간에게 넘겨주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증산신앙 100년을 돌이켜 보면 너무나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돈에, 권력에, 색욕에, 도통병에, 개벽병에 온갖 일탈행동으로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다가 사회적 지탄을 받는 상황에 까지 이르는 사례를 우리는 너무나도 많이 목도해 오고 있습니다.
일심이라는 신앙의 기초토대가 탄탄해야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릴 수 있습니다. 일심이라는 토대가 약하면 아무리 기둥이 멋지고 지붕이 훌륭해도 결국 붕괴되고 맙니다. 당장은 훌륭해 보이고 멋져보여도 붕괴됩니다. 증산신앙 100년의 세월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크고 탄탄한 길이 무엇인가? 바로 강증산 상제님과 고판례 수부님과 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강증산 상제님과 고판례 수부님과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 길을 우리가 다함께 찾아 가자는 것입니다. 일심의 길을 가자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이 그 길을 찾고, 두 사람의 마음이 그 길을 찾고, 그렇게 모여서 우리 증산신앙인들이 상제님․수부님께서 열어주신 일심세계에서 모두 만나자는 것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강증산과 나”를 읽으시는 모든 분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을 한번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상제님․수부님과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하는 길을, 즉 일심(一心)의 길을 스스로 찾아내는 신앙의 큰 축복을 입춘(立春)을 앞두고 크게 기원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긍극적으로는 내가 나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나에게 집중하여 마음에 촛점을 맞춰, 양심의 거울에 비춰가면서 심중의 직통길을 찾아가다보면, 천지부모님과 맞닿은 천심자리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 천심의 마음을 타고 시천맥과 태을맥이 흐릅니다.
위대한 진리의 스승이신 선지자 선통자는 궁극적인 목적과 목적에 이르는 길, 방법을 알려줍니다. 실제로 실천하여 그 길을 가는 것은 각자의 몫이고 책임입니다. 우선은 큰 방향을 설정히과 방향에 이르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반성하고 일심으로 매진해야 겟습니다 항상 세로운 접견의 방식이 좋습니다
기술에 극한에 이를수록 그 한마음이 중요성이 더욱 커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마음길을 잘 배우고 익혀 체화하는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