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곰탕과 콩나물
- 은유시인 -
내 식성은 그야말로 신토불이이다. 다시 말해 국산품답게 토종음식만 즐겨 먹는다는 말이다. 내가 즐겨 먹는 음식은 삼계탕과 육개장 곰탕 대구탕 복국 낙지볶음 곱창전골 돼지고기두루치기 밀면 순대국밥 돼지국밥 돌솥밥 등등이며, 좋아하는 반찬은 고등어구이 고사리나물 시금치나물 도라지나물 계란발린두부튀김 쇠고기장조림 멸치볶음 계란프라이 명란젓 등이고, 그 외에 김치찌개 된장찌개 미역국 감잣국 콩나물국 시금치국 아욱국 등을 좋아한다.
특히 얼큰한 국물이 있는 탕 종류를 즐긴다. 아마 이런 메뉴는 비단 나뿐만 아니라 토종 한국인이라면 다들 좋아할 것이다. 요즘 10대나 20대 초의 젊은 애들은 햄버거나 피자에 맛을 들여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뷔페나 양식 중국식 이태리식 프랑스식 포르투갈식 등은 돈 줄 테니 먹어 달라 해도 전혀 달갑지 않다.
난 이렇듯 순 한식을 즐기면서도 가리는 음식이 많은 편이다. 장어구이나 보신탕 추어탕 개구리요리 등은 먹지 않는다. 그 이유는 보기에 혐오스럽다거나 특유의 냄새가 역겨운 것이다. 어렸을 적엔 파 양파 고추 마늘 부추 등도 싫어하여, 음식물에 잘게 썰려 있어도 일일이 골라내거나 그럴 형편이 안 되면 아예 먹으려 하지도 않았다.
고기가 귀했던 그 시절에도 돼지고기에 비계가 붙어있으면 그 비계를 일일이 떼어내고 순 살코기만 먹을 정도였다. 그래서 어른들로부터 미움깨나 받았었다. 지금도 부산에 20여년 살았음에도 해삼 멍게 해파리 괴불 등은 그 징그러운 모습 때문에 싫어할뿐더러 누구의 권유에 의해 억지로 입에 넣을라치면 씹지 않고 우물우물하다간 얼른 꿀꺽 삼켜버릴 뿐이다.
처음 한국에 뷔페란 것이 상륙했을 땐 신기해서 여러 번 먹어 본 적은 있다. 그리고 당시엔 손님 접대로 뷔페란 게 인기가 있을 때였다. 커다란 쟁반마다 각종 음식들을 그득 쌓아놓고 작은 접시에 덜어서 먹는 것이 그럴듯하게 보여 입맛이 당기는 듯 했으나 몇 번 들락거리다 보니 이내 식상해버리는 것이다.
사업을 하다보면 여러 모임에 참석하게 되고, 참석자가 많을 경우 그 편리함 때문에 뷔페에서 모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뷔페음식은 우선 보기에는 정갈하고 먹음직스럽다. 그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것에 속아 접시에 담다 보면 이내 접시가 그득 찬다. 그러나 식탁으로 돌아와 먹어보면 보이는 것과는 달리 맛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여 먹지도 버리지도 못하여 쩔쩔 맬 때가 많다. 남들은 두 접시다 세 접시다 분주히 오가며 먹어대지만, 난 한 접시 가지고도 진땀깨나 쏟는 것이다. 음식물을 남겨서 버리는 것은 큰 죄라 여기기 때문이다. 식탁위에 놓여있는 음식이라면 한 점 먹어보고 입맛이 동하면 더 먹을 수도 있을 텐데…….
음식문화가 가장 발달한 나라로는 서양의 경우 프랑스요, 동양의 경우 중국을 들 수 있겠다. 이들 두 나라의 음식이 전 세계에 가장 많이 알려져 있으며, 음식의 종류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고 한다. 물론 국제화시대가 되면서 각 나라마다 고유의 음식을 전승 개발하여 세계인의 입맛에 맞추려는 추세이고 해서 근래에 들어와서는 프랑스나 중국만이 으뜸이라 평하기 어려운 점도 있을 것이다.
가장 진기하고 값비싼 음식으로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내 짧은 견식으로는 중국 관동요리가 알아준다 하였고, 프랑스 풀코스(풀코스도 나름이겠지만)요리도 제법 비싼 음식이라 들었다. 물론 각국의 수반들이나 재벌, 중동 왕족들이 자가용 제트기를 타고 다니면서 즐기는 식도락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겠지만……. 제비집요리, 타조간요리, 곰발바닥요리, 상어지느러미요리, 원숭이골요리 등등 일인분에 10만원에서 100만원단위가 넘는 고급요리들도 숱할 테고, 이태리산 와인 한잔에 100만원을 웃도는 것도 있다고 들었다.
음식이란 진기하고 값이 비싸다하여 모든 이의 입에 한결같이 최상의 맛을 제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진기한 재료와 비싼 가격 때문에 필히 일류요리사의 온갖 정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요리라 하여 내 입맛에 맞을 리는 없다. 사람의 입맛이란 환경에 의해 길들여지고 각자의 취향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게 마련이다. 코쟁이들의 입맛을 놀래키어 ‘원더풀!’이라 탄성을 자아내는 음식이라 하여 내 입맛마저 놀래키리라 생각지 않는다.
몇 년 전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은 점심 먹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점심 약속이 없는 날은 인근의 식당에서 곰탕을 즐겨 시켜 먹었다고 했다. 한국 재벌 서열 3~4위를 다툴 만큼 엄청나게 돈이 많은 사람이 한 끼에 몇 십 만 원짜리가 아닌, 고작 3천 원짜리 곰탕을 시켜 먹었다고 하여 장안의 화제가 되었으며, 이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아무리 돈이 많은 재벌이라 하여도 최고급차나 최고급저택이나 최고급의상 등 다른 것들은 최고급을 지향하면서도 유독 식성만큼은 최고급으로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일견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엊그젠가 이번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려는 정몽준 씨마저도 티브이 토론에서 콩나물을 즐겨 먹는다고 했다. 이는 유권자의 표를 의식하여 서민적인 면모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 외에 실제 그럴 수도 있는 것이 그의 부친 정주영 씨는 소싯적에 강원도 산골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부리던 황소 한 마리를 훔쳐 야반도주한 사람이고 따라서 그의 촌놈 식성이 어디 갔겠는가.
애비가 허구한 날 콩나물, 된장찌개, 칼국수를 즐겨 먹었다면 그 자식 또한 성인에 이를 때까지 애비와 함께 한 식탁에서 줄곧 먹게 되니 결국 식성도 애비와 같아 질 수밖에……. 그래서 정몽준 씨의 ‘콩나물이 좋아요’란 말은 거짓 아닌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난 밥맛을 잃었거나 속이 메슥거리고 허전하게 느껴질 땐 몇 군데 즐겨 찾는 단골 음식점이 있다.
가장 자주 찾는 집은 동광동 사십 계단 밑에 위치한 ‘전주식당’으로 10여년 단골로 다니던 돌솥밥 집이다. 다소 허름하고 비좁은 집인데 얼마 전 돈 좀 벌었던지 깨끗이 단장을 했으며, 그 집엔 돌솥밥 외에 돌솥비빔밥과 두어 가지 다른 메뉴도 있으나 난 오로지 돌솥밥만 찾았고 주인도 내가 들어서면 으레 ‘돌솥하나!’라고 주방을 향해 외쳐댔다.
돌로 만든 작은 돌솥의 밥을 커다란 사발로 옮겨 담고, 빈 돌솥에 물을 부으면 물이 바글바글 끓는다. 사발의 밥에 계란 하나 깨쳐 넣고 몇 가지나물과 버무려 썩썩 비벼 구운 생선과 함께 먹으면 별미인데, 밥을 다 먹을 즈음 돌솥의 누룽지가 우려져 고소하고 먹기 좋은 소돌치가 되어있게 마련. 바로 그 돌솥의 소돌치가 또한 입가심을 겸한 별미로 뱃속도 든든하고 아주 입맛이 개운해 지는 것이다.
다음으로 자주 가는 곳이 역시 사십 계단 밑 전주식당 맞은편에 위치한 10여년 단골 ‘대궁삼계탕’이다. 10여 년 전엔 대궁삼계탕 말고도 주위에 ‘궁전삼계탕’과 ‘개성삼계탕’이 있었으나 대궁삼계탕에 밀렸음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둘 다 없어졌다. 그 대궁삼계탕은 보수동 구 법원 앞에 있는 대궁삼계탕과 주인이 자매지간이다. 항상 홀을 지키는 주인은 나와 비슷한 연배로 어찌 보면 나랑 늙어가는 속도가 같아 보이는 여자이다. 그 집은 삼계탕의 맛도 좋지만 미리 내놓는 닭똥집이 인삼주의 안주로는 여간 별미가 아닌 것이다.
그 집 삼계탕은 남김없이 다 비웠을 경우 그 포만감으로 일어서는데 힘이 들 정도로 내겐 양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약간씩은 남겨 놓는데, 대개 그 집을 찾는 아가씨들은 한결같이 그릇 속까지 깨끗하게 비우는 것으로 봐선 아가씨들이 짐짓 뱃속이 작은 척 먹거리를 사양하는 것이 아무래도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것이 또한 그 집에서이다.
그리고 가끔씩 가는 집으론 국제시장 안에 위치한 ‘개미집’이란 낙지볶음 전문식당이다. 개미집은 근처에 2호점을 같이 운영할 정도로 성공한 집이며 낙지볶음 외에 ‘수중전골’도 함께 하고 있다. 낙지볶음이 프라이팬 속에서 펄펄 끓어오르면 밥을 털어 넣고 쓱쓱 비벼 먹는다. 입안이 활활 달아오르면서도 꿀맛처럼 목구멍으로 저절로 넘어가는 밥맛이란……. 먹는 양이 적은 나도 개미집에선 으레 밥을 두 그릇씩 비우게 된다.
그 외에도 서대신동 돼지고기 삼겹살 전문의 ‘정원집’과 국제시장의 보수동 쪽에 위치한 돼지국밥 전문의 ‘밀양국밥’ 중앙동 ‘동해물회’ 등등……. 생각만 해도 절로 입맛을 돋우는 집들인 것이다.
비싸다고 해서 무조건 맛있는 음식은 아니다. 그렇다고 비싼 음식에 유달리 영양가가 많다거나 특효약 성분이 더 들어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음식이든 맛있게 먹으면 그 음식에 들어있는 영양가만으로도 충분히 넘치고 남는다.
몇 년 전 식구들을 데리고 대청동 서라벌호텔 양식당에 들어가서 ‘티본스테이크’먹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해 진다. 집사람과 중학교 다니던 아들놈, 초등학교 다니던 딸년 이렇게 넷이 물경 합산금액이 20여만 원이 넘게 티본스테이크를 하나씩 시켜놓곤 절반도 못 먹고 나왔으니까……. 양이 많아서가 아니라 정장한 두 젊은 친구들이 흰 수건을 팔에 걸치고 옆에서 시중드는 것도 껄끄러웠지만, 뻘건 핏물이 배어나오는 넓적한 고기를 썰어 입에 털어 넣는 것도 영 내키지 않는 짓거리였던 것이다.
또 해운대 파라다이스비치호텔 중국식당에서 별미라고 먹은 6만 원짜리 ‘상어지느러미요리’맛도 실상 별로인 것이 차라리 깨죽만도 못한 것으로 기억된다.
늘 먹어왔던, 그래서 우리의 입맛이 길들여진 신토불이음식이 우리에겐 좋은 것이다. 김우중의 곰탕과 정몽준의 콩나물이 그래서 좋은 것이다.
- 끝 -
(200자 원고지 25매 분량)
2002/11/23/1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