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바다 얼굴
임 혜 철
“설렘 없는 만남이 무의미하듯 설렘 없는 하루는 무의미하지 않을까. 나의 새벽은 설렘으로 열린다…… 삶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기쁘다.”
- 이현복님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 –
안개가 차창으로 부딪쳐 온다.
안개비는 바람을 맞고 차창을 뚫고 소녀의 얼굴에 와 부딪친다.
…… 새벽에 내린 풀안개가 저녁에 안개비로 변하여 바람에 실려온다……
바람은 가느다란 빗물을 타고 소녀의 마음속으로 들어오려고 마음문을 두드린다.
땅끝마을로 가는 스케줄은 예정에는 없던 깜짝 이벤트이다.
맑은 하늘이었는데, 땅끝으로 가는 길은 구름을 부르는 길이다.
구름기둥이 비를 뿌려 마음을 씻어주는 하늘시작으로 가는 길이다.
구름 너머엔 태양에 대양의 품으로 안기는 바알간 로맨스가 펼쳐질텐데…
일몰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보다 소녀에게는 큰바위얼굴을 볼 수 있다는 그리움이 더욱 컷다. 장시간 버스를 타고 온 피로감이 감긴 소녀의 가슴을 안개비가 두드려대자 소녀의 마음을 비로서 설레이기 시작한다.
소녀의 새벽은 설렘으로 열린 환희였다.
셋만이 아는 기도실은 새벽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동화속의 과자로된 집들이 빨간벽돌로 남쪽하늘 아래에 제방처럼 둘러서있고 배경은 온통 초원의 빛으로 둘러싸여 있다.
동녘창속으로는 태양이 기지개를 켜는 풍경이며 햇볕이 눈을 부시는 곳에 동방의 고요한 평화의 나라가 있다. 새벽에 새벽의 나라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소녀의 마음은 설렘과 소망으로 떨림이다. 파르르 떨리는 공명에 소녀의 미간에서 파아란 파랑새소리가 노래로 난다.
그 분의 아픔이 치료되기를 기도하는 소녀의 새벽기도에 사랑의 마음은 그곳으로 달려가서 그분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하늘문이 열리는 날 그분의 병은 깨끗이 나아있으리라.
기도실 벽에는 고흐의 그림 세 장이 작은 세 예쁜 액자에 걸려있다. 별하나는, 별들이 달빛처럼 빛나는 황금빛의 ‘Starry Night(별이 빛나는 밤)’… 별둘은, 나무가 달나라를 지나 별나라에까지 자라난 ‘Road with Cypress and star(별과 싸이프러스나무의 길)’… 별셋은, 별들이 정원에 내려와 별향기를 피워내는 ‘Memory of the Garden at Etten(에텐 동산의 추억)…
먼저 깨어난 햇살이 고흐의 그림을 깨울 때면 어김없이 푸른초원은 한 소년을 둥그렇게 환영한다. 소년은 초원에서 지구(축구공)을 안고 아침햇살을 맞으며 물구나무기도를 한다. 아마도 사랑의 지구촌을 만들어 달라구 기도하는 듯하다.
다른 시간에 서 있는 먼 초원의 나라에 와서 언제 피곤할 지 모르는 소녀지만 어떤 알지 못할, 표현 못할 그런 설렘과, 아픔을 낫게 한다는 다가오는소망의 설렘에 먼저 잠을 깨어 햇살의 단잠을 깨운다. 오늘 새벽도 소녀는 설렘의 하루를 가슴에 새처럼 품고 기도실을 나왔다 미련하나 남겨두고…
신비한 안개비를 보슬보슬 뚫고서 버스는 땅끝마을로 내려선다. 비바람에 다들 버스주변에서 대서양의 기운만 마시며 서성댄다. 그 때 소년의 음성이 햇살처럼 들린다.
“땅 끝 마을까지 왔는데, 비를 맞더라도 땅끝에 서겠어! 비를 맞고 죽더라도 하늘시작을 보고야 말겠어…”
달려가는 소년의 발소리가 소녀의 가슴을 흔들어댄다…아… 설렘으로 가득 찬 마음이 드디어 열려 지려나 보다. 소녀는 일행들을 뒤로하고 경보선수가 되어 바다로 달려간다…
소녀는 국어선생이었다. 늘 중학 소녀들을 10년동안 소녀처럼 만나면서 그녀는 나이가 들어도 소녀로 남아있는 소녀가 되고 말았다. 간혹 글을 써오면서의 소녀의 소망은 큰바위얼굴에 묻혀 큰바다의 가슴에 안기는 것이었다. “아…나의 하늘북을 울려줄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만 하여도…나의 이 소망을 알아줄 엔젤하트가 나의 이 가슴에 감춰진 오션하트를 발견해준다면…하늘문이 열려서 축복이 쏟아지는 날 엔젤하트를 만나는 천지창조의 이브(전날밤)엔 나는 정녕 사라지리라 저 큰바다얼굴속으로…”
소녀는 종종종 거의 다 내려왔는데, 빗물인지 눈물인지는 모르지만 얼굴을 훔치며 돌아서오는 소년은 반쯤 취한 모습이다. 저기 차에서 기다리는 동행들의 현실에 꿈이 반쯤 깨인 모습이다. 다시 내려가자며 소녀는 소년의 마음의 손을 잡고 이끌고 내려온다…
“아…발 밑은 절벽이다…저 밑에 떨어진다면 그냥 죽음이다. 안개비 땜에 수평선은 보이지않고 신비한 수평안개만이 수평벽을 형성한다. 수평선을 가르진 못하고 수평뭉개안개구름벽을 넘어서 신비한 나라로 들어선다. 발 밑에는 거대한 대서양의 파도가 철썩 부서진다. 저 신대륙에서 대서양을 건너 여까지 온 파도는 땅시작에 부딪쳐 꿈속으로 들어간다. 대양의 바다소리에 놀란 소녀의 마음은 이미 절벽을 떨어지고 있다. 두 팔을 벌리고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다 가슴으로 안는다. 순간 그동안 두드려져오던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고 만다. 아…. 이제 가슴속에 파묻친 오랜 보물이 드디어 빛을 보려는 듯하다…
소녀는 소년에게로 달려간다. 수줍은 가슴은 손이 되어 소년의 손을 잡아준다. 기념촬영하자구… 오션하트가 찍어주는 네모상자에 마음을 담자구…. 큰바다얼굴이 찍어주는 대양의 빛에 영혼을 뺏기자구… 소년은 높은 바위위로 올라간다…소녀는 다시 절벽으로 다가간다.
아…바로 바다 오른편에 큰바위얼굴이 보인다…돌섬인데 마치 사람의 얼굴처럼 생긴것이다. 대양을 향한 그리움일까… 푸른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듯한 저 큰바위얼굴은 그러나 바다를 보지않고 그의 시선은 수평구름벽을 넘어 푸른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아…큰하늘얼굴은 바다 넘어 반짝이는 에덴동산을 그리워하나보다… 오늘처럼 신기루의 안개비바람이 치는 날이면 큰하늘얼굴은 그 곳으로 들어가 생명과일을 주워먹나보다… 큰바다얼굴… 큰하늘얼굴… 큰바위얼굴… 엔젤하트… 오션하트… 타이타닉호가 남긴 오션하트는 침몰된 내 가슴속에서 반짝이는구나… 소녀의 눈동자는 별이되어 반짝이기 시작했다… 아 안개비바람구름 너머로 태양이 지는구나… 숨겨진 태양빛이 소녀의 눈동자에 비치어 소녀는 이제 별이 되는 구나… 오션스타…”
--- .큰.. 바… 다…. 얼….. 굴……
이미 소녀는 알았다네
소녀가 어떻게 별이 되는지를…
소녀는 이미 알았다네
어떻게 소녀가 바다와 말을 하는지를…
그 분의 은총으로 바다가 열리는 날
소녀의 가슴은 빗장을 스스로 벗을 수 있었다네…
그 분의 사랑으로 그 분의 안개비가 내리는 날
소녀의 마음은 영롱한 별빛이 되어 무지개 너머로 피어올랐다네…
초생달접시 위에 그녀의 사랑을 담고
보름별쟁반 속에 소녀의 보물을 담고
바다의 정신은 사랑의 정신을 담고 파도로 변하여 푸른 사랑을 마음껏 쏟아내노매라
땅끝애 서면 바다언덕을 올라 하늘시작에 난다
하늘 바람에 부딪친 큰바위얼굴은 큰바다얼굴이 되고
푸른 바람에 깨어난 엔젤 하트는 오션하트가 된다
큰바다얼굴은 바다도 바다들이는 큰하늘얼굴이 된다
어느새 안개비바람은 신바람으로 변하여 소녀의 마음에서 향기로 빠져나온다…
순간 소녀는 소년에게로 달려간다.
소년의 품안으로 달려간다…
계속 얼굴을 훔치는 소년의 마음은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로 조금 가있고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들 시선에 묶여있다.
소녀의 손만이 소년의 가슴에 스치며 지나간다…
삼십뿐쯤 흐른 것 같다. 소년은 기다리는 사람들의 질타에 미리 초조해 있다.
소녀는 보이지 않는다… 갈매기가 되어 소년은 소녀를 부른다…
소녀는 멀리서 갈매기소리가 특이하게 들린다며 마음을 갸우뚱거리며 절벽을 떨어진다…
아쉬움이 있는 사랑은 애절한 그리움을 한움큼 붙들어 타고서 구름날개위에서 끝없는 심연을 날아내려가는 것이다…
아….
끝없는 절벽 아래에서로부터 갈매기가 구름을 타고 큰바다바위섬위로 날아올라온다…
돌아가는 버스안은 침묵이다…
뻥긋하면 감추인 보화가 드러날 것 같다…
엄숙한 장엄의 표정에 사람들은 아무 말도 묻지 못한다…
누군가 혼잣말을 한다
‘단체사진 찍었는데 거기까지 가서 사진 한 장도 못찍도 참 아쉽겠다…’
소녀의 화살에 버스는 쏜살같이 어둠을 뚫고 큰바다하늘을 날은다…
“사진 하나 찍으려고 그 까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