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16일로 예정됐던 미 의회도서관의 주제어 변경 회의를 가장 먼저 포착했던 사람은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동아시아도서관 한국학 책임자인 김하나씨. 북미 동아시아도서관협회 한국분과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14일 워싱턴 주미대사관과 조지 워싱턴대학 동아시아어문학과장인 김영기 교수에게 이 사실을 긴급히 알렸다. 주미대사관에는 의회도서관이 16일 주제어편집회의를 열어 독도를 '리앙쿠르 암석'으로 바꾸려 한다는 사실을 전하며 신속한 외교적 대응노력을 주문했다.
이와함께 워싱턴에서 오랫동안 한국문화 알리기에 노력해온 김 교수에게도 민간차원의 대응을 부탁했다. 앞서 북미·호주·뉴질랜드·프랑스에 있는 한인 사서 연락망을 통해 이 문제를 협의한 뒤 북미동아시아도서관협회 한국분과위원회 이름의 공문을 의회도서관에 보내 "이 문제는 한·일간의 영토분쟁을 가속화시킬 것"이라며 강력한 반대입장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16일(한국시간) 오전 문화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오늘 미 의회도서관이 우리 요청을 받아들여 앞으로 미국 지명위원회나 국제지명관계위원회에서 이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주제어변경을 보류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의회도서관의 조치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또 언제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부터 대응을 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의회도서관의 주제어 변경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독도(주제어 번호 151)가 리앙쿠르 암석이라는 주제어로 바뀌는 것보다 상위 주제어가 '한국의 섬'이 아니라 일본해의 섬들(주제어 번호 550)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라며 "이렇게 될 경우 독도가 일본해에 포함돼 있는 일본 군도로 여겨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이 문제를 처음 포착한 것은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학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사서정보. 매주 한차례 히데유키 모리모토라는 일본계 사서가 보내는 정보인데 지난주 보낸 e메일에서 "직접적인 도서정보는 아니지만 사안의 중대성 때문에 알려준다"며 의회도서관의 주제어변경회의 일정과 내용을 전해줬다. 매주 오는 e메일이어서 놓치기 쉬웠지만 김씨의 눈에 띈 것이 행운이었다.
워싱턴에서 김 위원장의 연락을 받아 한국 언론과 교민사회에 문제의 심각성을 전파한 김 교수는 이날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의회도서관측은 미국 지리원(NGA)과 미국 지명위원회(BGN)가 이미 독도 명칭을 '리앙쿠르 바위'로 변경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며 "하지만 이 과정에는 일본측의 조용하고 오랜 노력이 숨어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인용 끝)
이런 조그마한 사실이 독도를 지키고 독도를 구합니다.
지도 상의 표기는 너무나 중요한 일이지만, 정부 차원에서 놓친 일을 민간이 나서서 구했다는 사실,
우리 역사는 이러한 것을 기록해야 하며, 위 두 분의 여성은 우리 땅 독도의 역사에 자랑스럽게 기록될 것입니다.
According to Korean news agency Yonhap, Korea has developed the core technology for radar-evading stealth fighters. Korea is preparing for a test flight of a fighter equipped with the latest technology. The Agency for Defense Development (ADD) successfully conducted a test flight of a miniature fighter equipped with the technology late last year. The ADD is preparing for a test flight of an F-4 fighter equipped with the technology, the agency said. South Korea has a plan to begin purchasing up to 60 stealth fighter jets, like F-22s or F-35s, in 2012 for deployment until 2019.
이런 상황이면 우리가 집니다. 잘 아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막상 물어보면 아무 것도 모르는 현실....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리 <독도는 우리 땅>을 아무리 외쳐봐야 누군가 조금 논리적으로
"독도는 일본 땅이야, 근거도 있어, 자, 봐...."하며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할 말이 없어지게 됩니다.
우리 측 논리와 역사적 사료가 아무리 정확하고 확실해도 모르면 집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독도의 진실>을 쓰게 되었는데, 이걸 학술적으로 풀면 아무도 읽지 않습니다. 어렵고 지루하다는 겁니다.
쉽게 쓰고, 재미있게 써야 독자들이 읽습니다.
학술적이고 역사적인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독도의 진실>의 일부 문체는 소설 형식이나 대화체 형식을 빌어 쓰기도 합니다.
일본의 1억 2천만 인구는 만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일본의 어거지 논리였던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공감대가 퍼져나가면서 세계에서 퍼진 일본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암암리에 작업을 합니다. 일본인이라는 의무감 하나로 스스로 알아서 합니다.
최근 미국 수도 워싱턴의 의회도서관에서 '독도'의 검색주제어가 '리앙쿠르 암석(Liancourt Rocks)'으로
소리 소문없이 바뀔 뻔한 사건도 세계에 퍼진 일본인들의 작품입니다.
다행히 우리 민간인 여성 두 분이 이걸 막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무서운 현실을 자각시켜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정부 대 일본정부가 하는 일도 많지만, 이제는 국제화 시대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과 민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개인이 외국에 나가면 우리 각 개인은 대한민국 민간인 외교관이 되는 것입니다.
민간인 외교관으로서의 우리..... 우리가 모두 <독도의 진실>을 알고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 가능할 때, 독도는 진정한 <우리 땅>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신라장군 이사부(異斯夫)>에 대하여 쓰겠습니다.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읽게 하기 위하여 대화체 형식과 소설체 형식을 빌겠습니다.)
아슬라주 阿瑟羅州 (지금의 강릉) 주백에게 지증왕이 물었다.
- 우릉도于陵島에 우산국(于山國)이 있다고 들었다. 물산物産은 풍족한데 조공을 바치지 않으니 오랑캐가 아니냐.
저걸 복속시켜야 우리 후방이 편해진다.
사실 울릉도, 독도 지역은 어족자원이 상상 외로 풍부하여 대나무 하나만 빠트려 놓아도
다음날 전복이 새카맣게 붙어 올라오는 천혜의 어산漁産 자원의 보고寶庫였습니다.
주백이 답하여 가로되,
- 우산국은 나라國라 하기보다는 고대부족읍락(古代部族邑落)인데
거기에 육지에서 살기 힘들거나 수탈에 쫒겨 넘어간 백성들이 가세하여 무시못할 세력을 이룬 것 같습니다..
지증왕이 되물었다.
- 그런데 복속치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
- 원래 '섬 것'이라는 것이 미개하여 왕화王化의 은덕을 입지 못한 관계로 조세나 조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군사가 치러가면 산 꼭대기로 피신했다가 방심하면 삼삼오오 내려와 괴롭히고
오히려 물자를 약탈해 들어가는 천한 족속이옵니다.
- 알았다. 이사부를 들게 하라.
지증왕은 이사부 장군을 불러 명했다.
- 저걸 쳐라. 원래가 미개하다 하니 계략을 써서 치되,
우리 군사나 저들을 심히 상하게 하지 말고 저들을 순화시켜 왕화王化를 입게 하라.
전쟁이라는 것이 적을 치고 목을 따서 겁을 줘야 복속되는 것인데 저 사나운 족속을 심히 다그치지 말라니,
아무리 왕화王化도 좋지만 참으로 힘든 주문이었습니다. 며칠의 고민 끝에 이사부 장군은 부관에게 명했다.
- 군사를 쓰지 말고 저걸 쳐라 하니, 사나운 짐승을 풀어 놓을 수 밖에 없다.
너, 얼마 전에 서역에서 들여 온 사자를 본 적이 있느냐?
당시 신라는 세계 전역과 교역을 하는 나라였습니다.
각종 서역의 물자와 사자, 낙타 같은 동물까지 거래되거나 진상되고 있었습니다.
-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나운 짐승을 어찌....
- 천금千金을 주고라도 사야 한다. 우리 군사나 저들을 상하지 않게 하라는 주군의 명을 지키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울릉도에는 호랑이나 사자는 고사하고 뱀도 한 마리 없는 평화로운 섬이라는 것에 이사부는 착안했습니다.
그러나 서역에서 들여 온 사자는 신라의 기후와 생존조건에 순응치 못하고 죽어 버린 후 였습니다.
부관은 죽은 사자의 시신이라도 사서 끌고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 죽은 것 아니냐.
- 기후와 먹이가 달라 죽은 것이온데 장군의 명이 지엄하여 이거라도 끌고 온 것입니다.
- 하는 수 없지. 잘 했다. 저것을 앞 세운다. 그리고 저걸 본 뜬 나무 조각을 만들도록 하라.
아침 어스름, 우산국 사람들은 바다에서 물 안개를 헤치고 새카맣게 몰려 오는 신라 병선을 발견했습니다.
각 병선에는 함거같은 커다란 짐승의 우리가 실렸는데, 그 안에는 날카로운 이빨을 세운 사자가 보였습니다.
- 아니, 저게 뭐냐.
- 저런 짐승도 있나.
개중에는 아침 안개 사이로 사자의 이빨을 살핀 시력 좋은 사람도 있었고 대처에 나가 사자라는 짐승을 본 사람도 있습니다.
- 이빨 봐라. 엄청난데..... 이빨 하나가 창 날만 하다.
- 저 정도 큰 입이면 사람 머리는 한 입에 삼킬 수도 있겠다.
- 저게 사람을 잡아먹고 사는 '사자'라는 짐승이다.
두려움, 공포만큼 전염성이 강한 심리도 없습니다. 우산국 병사들이 서서히 공포에 젖어 들고 있을 때,
병선 한 척이 앞으로 나오더니, 덩치 큰 장수 하나가 내렸습니다.
- 여기 수장은 나오라. 저 사나운 사자를 여기 풀어 놓으랴?
이사부 장군의 목소리는 공포로 찌들어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우산국 사람들과 새벽 안개를 뚫고
쩌렁쩌렁 울려 퍼졌습니다. 우산국은 복속되었습니다.
이 순간부터 울릉도는 가시거리에 있는 독도와 더불어 신라의 왕화를 입어 우리나라 영토가 되었습니다.
......
위에서 가시거리란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라는 뜻입니다.
실지로 우리나라 정사(正史)인 ’세종실록지리지’와 ’고려사지리지’에 수록된 우산(于山)무릉(武陵) 현 울릉도 에서
’맑은날 울릉도에서 우리의 바다 조선해와 독도가 보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걸 가지고 일본은 다시 시비를 걸어 옵니다.
일본의 외무성 관리였던 가와까미 겐조(川上建三)는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고
1966년대 해군에서 가시거리를 측정하는 공식을 사용하여 독도는 한국 땅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공식을 해군에서는 가시수평선이라고 하는데 좀 귀찮지만(?) 공식을 한번 써 보면, D=2.09*(H^0.5+h^0.5) 입니다.
D=시달거리(視達距離, 단위 해리),(1해리=1852m), H=물체의 해면상 높이(m), h=눈높이(m) 인데
가와까미 겐조는 시각(눈)의 기준점을 선박에서 쓰는 해발 4미터로 잡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합니다.
가와까미 겐조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한국측의 이한기 교수는 겐조가 얻어낸 30.3해리의 시정거리를 산출하는데
사용한 눈 높이 4m는 선상 갑판의 높이 2.5m에 키 1.5m인 사람이 서서 관찰하는 것을 기준으로 한 것임을 지적하고,
독도의 해발고도가 174m 이며, 울릉도와 독도의 거리가 47.4 해리이므로, 이 값을 이용할 경우 키가 1.7m 이상인 사람이
해발 100m 이상의 높이에서 독도를 쳐다 본다면, 얼마든지 쳐다 볼 수 있다고 반박하였습니다.
참고로 울릉도 성인봉은 해발 984m 이며, 울릉도에는 100m 이상 되는 곳이 수두룩 합니다.
그러자 가와까미 겐조는 울릉도는 숲이 울창하여 해발 200미터 이상은 올라가기 힘들다고 반박합니다.
성인봉까지도 얼마든지 올라가는데.... 가와까미 겐조는 헛다리를 짚은 것입니다.
이에 울릉군청 직원이 열(?) 받았습니다.
울릉군청 문화관광과 김철환 님이 울릉도에서 독도 사진 촬영에 성공한 것입니다.
김철환 님은 맑은 날이면 울릉도에서 92㎞ 떨어진 독도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날은 1년중 30~40일 정도며
해발 100m 이상 동쪽고지에서는 어디서나 육안조망이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아래 사진은 울릉도 북면 천부리 석포마을(해발 360m)에서
(니콘 FM 2 랜즈500mm, 노출 11, 속도 30/1초)으로 독도를 촬영하여 공개한 것입니다.
<울릉도에서 바라 본 독도 ; 촬영 : 울릉군청 문화관광과 김철환 님>
이 문제를 다시 연구한 학자들이 있습니다.
한일 근대사의 실증적 연구에 앞장 선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 원장은 "일본은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보인다고 한다. 진실은 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 하나의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6개월여에 걸쳐 작업을 했습니다.
그 결과 다시, 독도를 촬영했습니다. 사진과 함께 기사를 인용합니다. (한겨레 |기사입력 2008.07.21 09:51)
문제는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이 육안 관찰과 동일한 가이다. 또 디지털 사진의 경우 조작이 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다. 우선 실제로 울릉도에서 찍은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장소에선 나뭇잎을 앞배경으로 놓고 찍었으며, 디지털 조작이 불가능하고 표준 감도인 100의 슬라이드 필름을 사용했다. 망원의 문제에 대해선 사진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번에 사용한 일반기자들이 흔히 찍는 70~200mm 렌즈의 경우 육안으로 보이지만 사진으로는 담지 못하는 경우는 있어도, 사진으로 보이는데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사진은 인간의 눈을 따라갈만한 해상력을 갖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이들 사진은 육안으로 볼 수 있다는 증거로 충분하다. 연구원쪽은 또 울릉도 주민들이 오래전부터 거주해온 지역을 사진 촬영장소로 택해서 특별한 곳에서 매우 제한된 특정한 시기에만 독도를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강태호남북관계 전문기자 kankan1@hani.co.kr
<독도의 진실>이 책으로 출판될 것 같습니다. 8.15 광복절에 맞추려면 최대한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인세 수입이나 다른 조건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단 한 분이라도 더 많은 분이 독도의 진실을 바로 알고, 독도를 지키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이 글을 쓰는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그저께는 전체를 정리하느라 좀 바빠 계속해서 <독도의 진실>을 쓰지 못했는데 그 동안 <독도의 진실-18> 등에서 우려했던 일이 실지로 발생하고 있는 듯한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 마디로 국내에 잠복해 있던 '일본의 반격'이 시작된 것입니다.
2006년 고이즈미가 일본 의회에서 특별 승인받아 집행한 자금의 위력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국민의 표를 먹고 사는 일부 정치권이야 원래가 표리부동(?)하여 언제라도 말만 바꾸면 되니까 좀 덜하겠지만, 관계와 학계의 반격이 보통 수준이 아닐 것입니다.
우선 독도 영토수호 문제에 누구도 딴지를 걸지 않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160톤급 '독도 관리선'의 톤수를 늘린다는 것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독도 영토수호와 큰 관련없는 이런 배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됩니다. 160톤이든 16톤이든 1600톤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다를 떠 다니는 선박 한 척으로는 독도 영토 수호에 아무런 영향도 미지치 않습니다.
독도에 내국인의 자유 왕래가 가능해지고, 해양관광호텔이 들어서게 되면 독도를 왕래하는 선박은 소형, 대형 가릴 것 없이 늘어 날 것이고 그 때쯤이면 이른바 '독도 관리선'이 과연 뭐 때문에 필요한지 의문이 들 것입니다. 한 마디로 화려한 립서비스라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각종 대책들의 말미에 독도 서도에 콘크리트 계단을 정비한다는 기사가 있는데 여기서부터 반대하는 논지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예 : 조선일보 2008.07.21 A4면 기사) 여기에 "이 계획들은 일본의 대응 수위에 따라 추진 속도를 조절한다는 방침"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정부당국자의 말을 인용하여....
어느 '정부 당국자'가 이런 정신 나간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진짜로 "일본의 대응 수위에 따라 추진 속도를 조절한다는 방침"이라고 발언했다면 이건 기절초풍 할 일입니다. 이번 조치를 시행하겠다는 이야기입니까, 안 하겠다는 이야기입니까.... "일본의 대응 수위가 높아지면" <안 하겠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차라리 일본 당국자에게 "자, 지금부터 대응 수위를 높여 달라. 그러면 없던 일로 뭉개버릴테니...." 하고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외교에서 이런 속 보이는 발언을 한 정부 당국자는 즉시 해고해야 합니다.
그 뒤를 이어"해양호텔은 현실성이 떨이진다.", "구조물 설치는 일본이 가장 민감해 하는 부분인 만큼 상당 수준의 외교적 마찰이 예상되는데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준비가 되어 있느냐.", "이번 조치는 당연한 조치이지만...."으로 시작해 놓고는 "한편으로는 일본 내 극우파의 발언권을 강화시키는 효과도 있어 일본의 대응 수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학자까지 있습니다.
필자가 이미 이틀 전에 미리 이런 반격이 있을 것이라고 예견해 놓았지만, 이 정도는 시작에 불과할 것입니다.
2006년 4월 27일, 노무현 대통령까지 임석한 가운데 독도와 신한일어업협정에 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 박OO라는 학자가 참석합니다. 이 사람은 우리나라 학자 중 유일하게 UN 해양법재판소의 재판관이 된 사람이었는데, 이 중요한 회의에서 그는 신한일어업협정과 독도는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소위 학계의 권위자라는 사람이 이런 소리를 내질러 버리면 대통령도 넘어가게 됩니다. 실지로 그 회의는 열지 않은 것만도 못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 박OO 재판관은 우리나라 신한일어업협정 체결 당시 외교부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사람인 것 같은데, 자.... 냉정히 따져 봅시다. 이 박모 재판관은 일본 서남대 교수를 겸직 중인 것으로 뒤늦게 밝혀 지기도 했는데, 한.일 양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협정 체결에 쟁쟁한 국내의 해양법, 국제법 전문 학자들을 배제시키고 구태여 일본과 개인적인 이해 관계가 얽혀 있는 사람을 외교부 자문으로 선정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누가 선정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면 분명한 관계와 학계의 유착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필자는 이런 희한한 우연이 앞으로도 숱하게 발생할 것을 감히 예견합니다. 그것도 독도와 공동어로수역 문제에 집중해서 발생할 것입니다.
또한 감히 장담하지만, 아무런 대책도 제시하지 않으면서면서 그냥 "떠들면 안된다. 국제 분쟁 지역화 된다.", "조용히 아가리(입) 닥치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논리도 엄청나게 퍼져 나올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일본과 신종 친일매국 세력이 퍼트린 대표적인 유언비어임에도 말입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독도 관리선 같은 이야기는 집어 치웁시다. 한 마디로 독도에 방파제를 설치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는 모두 헛소리나 다름 없습니다. 방파제가 없어 배를 못 대는데, 무슨 정주마을이고, 무슨 호텔이며, 무슨 독도 사랑 체험장입니까. 1년에 고작 3~40일만 접안 가능한 곳에 저런 시설들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사람이 배에서 내리지도 못하는데 저런 시설 지으면 뭐합니까. 소중한 국가 돈, 바다에 내 버릴 일 있습니까?
지금 독도에는 1997년 11월, 172억원을 들여 만든 선착장이 하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접안시설이 망망대해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니 풍랑이 조금만 일어도 접안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당연히 선착장을 보호할 방파제는 필수조건인데 일본의 방해와 항의로 방파제를 짓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도 방파제를 짓겠다고 했을 때, 일본의 항의와 방해가 얼마나 심했습니까. 그 때도 결국 말 잔치로 끝났지요.
이런 섬에 들어가 살라구요? 1년에 적어도 300일은 접안이 가능해야 사람이 살 수 있는데, 지금 상태로라면 일반 국민은 들어 가 살지 말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입니다. 갑자기 맹장염이라도 걸리면 그대로 죽어야 합니다. 1년에 고작 3~40일, 바다가 잔잔한 날이 아니면 나올 수도 없고, 들어 갈 수도 없는 섬으로 방치하고 있는 셈입니다.
방파제 짓는 것이 뭐가 힘든 일이냐구요? 그러나 이게 가장 힘든 일입니다.
지금 독도 서도西島에 계단이 무너져내려도 그 동안 보수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구요? 돈이 없어서요? 고작 6억 5천만 원이 없어서요? 이 문제를 솔직히 말씀하시는 정치인, 관료 나으리가 하나도 없는 것은 왜 그럴까요?
독도에 배가 안심하고 접안 할 수 있는 방파제를 설치해야 한다는 것은 지금 나온 이야기도 아니고, 벌써 오래 전부터 나온 이야깁니다. 그런데 방파제 이야기만 나오면 일본이 파르르르 떠는 것입니다. 완천히 알레르기 반응이죠. 일본이 파르르 떠는 이유는 단 하나 입니다.
독도에 안정적인 방파제가 만들어지면 한국인들의 내왕이 증가할 것이고, 당연히 정주 인구도 늘어 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일본의 독도 침탈 계획에 엄청난 장애가 되기 때문입니다.
독도에 방파제가 만들어져야 호텔도 지을 수 있습니다. 손님없는 호텔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독도 해양 관광호텔이 지어지면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무시로 방문할 것입니다. 독도 해양 관광호텔은 독도를 배경으로 열심히 홍보할 것이고, 외국에 나가 있는 우리 대사관, 영사관, 관광공사, 무역진흥공사, 우리 관광회사의 해외지점에 독도 해양 관광호텔 팜플릿만 배치해도 그 홍보 효과가 어떨 것 같습니까. 우리 땅....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인식은 자연스럽게 국제적으로 용인받게 됩니다. 왜 일본이 방파제 이야기만 나오면 파르르 알러지 반응을 나타내는지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구조물 설치는 일본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이라서 안된다? 무슨 이런 망발이 있습니까. (이 사람, 한국 사람 맞습니까?) 우리 땅에 우리 건물, 구조물 짓는다는데, 누가 이런 한 여름 장마에 귀신 씨나락 까 먹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까.
우리 내부에서 이런 논리가 나오면 일본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봐라, 한국 사람들도 우리 일본 땅에서 구조물 만드는 것에 대해서 반대가 심하지 않느냐...." 할 것 아닙니까? 제발 이런 정신 나간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일본 내 극우파의 발언권을 강화시킬 것이다...는 논리에 대해서 한 마디 하겠습니다. 일본의 우경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하고, 하라고 해서 할 위인들이 아닙니다.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면 됩니다. 상대할 가치 없는 일에 상대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우리 일만 하면 됩니다.
그러다가 진짜 분쟁 지역이 되는 것은 아니냐, 전쟁이라도 터지는 것은 아니냐....고 걱정하실 분이 계시겠군요.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지만, 그럴 일은 전혀 없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 내부만 안정되면 절대로 국제 분쟁지역화 되지도 않을 것이고,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일본은 상대가 약할 때 치고, 상대가 강하면 고개를 숙이는 민족입니다.
우리는 ↓ 이런 분들의 후예입니다. 이분들이 바로 1953년부터 독도 방파제를 만들자고 주장한 바로 그 분들입니다.
홍순칠. 6.25 참전 용사. 육군 특무상사 출신.
제대 후, 민간인 신분으로 독도 의용수비대 대장을 자임.
1966년 청와대.
박정희 대통령은 홍손칠 독도 의용수비대 대장에게 공로훈장을 수여하고, 대원들에게는 방위훈장을 수여했다.
............................
6.25 전쟁.... 독도는 비어 있었다.
군인도 경찰도 독도에는 한 명도 없었다.
일본 어부들이 무시로 출입하면서 어로 행위를 하고, 독도에 일본령이라는 글자까지 새겼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가 세운 독도 어민 위령패도 파 내어 없애버렸다.
울릉도 주민들은 생존의 터전이자 황금어장인 독도를 일본에 내어 줄 수 없었다. 당시 정부는 독도가 한국 땅이라은 것만 공표했지, 그 험한 독도를 방위할 엄두도 내지 못하던 때였다. 울릉도 주민 스스로 어장을 지키기 위하여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조국이 위기에 빠질 때, 국민이 스스로 나서서 나라를 지켜 온 우리의 역사는 되풀이 되었다.
홍순칠이 등장한 것은 이 때였다. 그는 스스로 독도 의용수비대를 조직하고 사람들을 모았다. 독도 사수를 위해 피 끓는 젊은이들이 모여 들었다. 건강부터 체크했다.
- 맹장 수술은 했나.
- 바빠서 못했소.
- 그럼 당장 병원에 가서 맹장부터 짜르고 온나. 독도에서 맹장염 걸리면 치료할 방법이 없다. 그대로 죽는다.
유원식, 정원도, 김병열, 양봉준, 이규현, 이필영, 김영호, 서기종 등 6.25참전 경험이 있는 총 45명의 청년들이 홍순칠 휘하로 모여 들었다. 그들은 독도에 가기 전에 맹장 수술부터 받았다. 3명을 제외한 전원이 6.25 참전 용사라는 것은 기록에 나오는 사실史實이다.
- 돈 좀 보태 주시오.
- 뭐하는데 쓰시게?
- 보트도 사야 되고, 박격포, 직사포, 기관총, M1 소총, 실탄도 사야 됩니다.
- 니, 6.25도 끝났는데, 전쟁치러 가나.
- 독도를 지켜야 됩니다. 왜놈들이 독도에서 회를 치고 있소. 독도는 우리 땅이오.
- 군인, 경찰은 뭐하고?
- 그 사람들 정신없소. 빨갱이하고 싸워야 될 것 아니오. 독도는 우리가 지키고.....
배를 소유한 선주들은 독도의 중요성을 잘 안다.
독도에서 어로활동을 하는 경북 지방 어민들과 울릉도의 선주들은 왜놈들에게 황금어장을 빼앗길 수는 없었다.
한 푼, 두 푼.... 독립운동 자금처럼 돈이 모였다.
그래도 부족한 것이 돈.... 대원들이 각자 무기를 준비했다. 미군부대에서 빼기도 하고, 정부와 군부대에 설명하고 돈 주고 사기도 했다.
45명의 인원을 두 개의 2개 전투분대와 보급대, 수송대, 후반지원대 등으로 편성하고 2분대가 한 달씩 교대로 근무하기로 했다. 0.5t 보트 한 척, 박격포, 직사포, 경기관총 각 1정, M1 소총 20정과 실탄 2만 4천발로 무장했다고 당시 기록은 전한다. 단, 이 무기들이 처음부터 완비된 것은 아니었다.
6.25만해도 지긋지긋한데 또 다신 전쟁터로 떠나는 사람들.... 비장감이 들수 밖에 없었고, 일제 치하에서 그 잔혹함을 경험한 사람들의 대일對日 공포증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홍순칠은 심리전에도 능했다. 우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긴장감을 풀어주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줄 필요도 있었다. 장수는 여유를 보일 줄 알아야 하는 법.
- 니 뭐 믿고 이래 설치노.
- 이래봐도 내 끗발이 갑오(9)요. 최고의 끗발이지.
실지로 홍순칠의 군번을 끗빨로 따지면 갑오, 숫자로 9가 된다.
그는 6.25 전쟁에서도 전상을 입었을 뿐, 살아 남았다. 요즘 말로 상이용사였다. 그는 늘 농담처럼 말했다.
- 내 번호가 갑오여. 절대 죽지 않지. 6.25 때, 총알, 폭탄이 소나기처럼 쏟아져도 난 살았어.
- 나만 따라 다녀. 절대 죽지 않아.
때로는 농담 한 마디가 분위기를 바꾸는 법. 오로지 자신만을 의지하여 독도에 갈 독도 의용수비대원에게 대장 홍순칠은 웃으면서 용기를 불어 넣을 줄도 알았다. 그의 군번 끗발이 갑오(9)라는 것과 그가 이런 농담을 가끔 했다는 것도 기록에 나온다. 그들은 1953년 6월 독도에 상륙하여 독도 수호 임무에 임하기 시작했다.
애로사항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당장 마실 물이 부족했다.
파도가 조금만 높아도 독도 상륙은 쉽지 않았다. 지원하러 온 쪽배가 일렁이는 파도와 싸우다 돌아갔다. 동지들은 눈으로만 인사하고 돌아갔다. 며칠 후면 다시 오겠지. 빗물을 받아 마시면서 버텼다. 비가 오지 않으면 그대로 목을 태웠다.
식량이 떨어지면 미역이나 해초를 뜯어 먹었다. 땔감도 비에 젖어 쓸 수가 없었다. 파도가 심하여 해초도 뜯어 먹을 수 없는 날은 그대로 굶으며 오들 오들 떨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여름이면 깔따구라는 곤충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옷을 뚫고 그대로 물어 뜯었다. 깔따구의 영향력은 뼈속까지 파고 들었다.
뼈가 쑤씨고 벌겋게 부어 오르면서 며칠이고 사람을 괴롭힌다.
1953년 6월 25일. 미군 표식을 단 일본기가 독도 상공을 순회했다.
- 비행기다. 미군기를 달았다.
- 미군이 여기에 올 리 없었다. 일본기다. 속지마라. 전투준비! 고사포!, 고사포!.....
홍순칠은 속지 않았다. 이런 걸 보면 그는 대단한 판단력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울릉도에서 실어 온 통나무에 검은 칠을 한 가짜 대포로 비행기를 겨냥하고는 조준을 하기 위하여 이리저리 돌려댔다. 일부 대원은 M1 소총을 들어 아무런 망설임 없이 쏘았다. 총구에서 실탄이 발사되고 연기가 피어 올랐다.
위장 미군기인 일본기는 의용수비대가 위장용으로 가져다 놓은 대포가 진짜 고사포인 줄 알고 물러 갔다. 만세 소리가 독도에서 터져나와 동해로 울려 퍼졌다.
일본기가 미군기로 위장하고 독도를 침범한 것은 1953년 6월 25일부터 28일까지 3차례. 독도 의용수비대가 활동 개시 한 바로 그 달이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했다.
- 교전국도 아닌데 정찰기에 총질을 하고 고사포를 겨냥할 수 있소?
한국 정부는 저것들이 왜 저러지? 남의 땅에 와서....하고는 코웃음도 치지 않았다. '그런데 왜놈들이 거긴 왜 갔지?' 정도였다.
첫댓글감사합니다 그리고 수고가 대단하십니다. 감탄할정도로 역시 회장님 다우신 노력과 수집 존경 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쉬운점이 많습니다. 일본은 독도 관련한 예산을 890억인가 얼마를 책정하여 세계적으로 홍보하고 로비하는데 쓰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무작정 그냥 우리것이라고 고집만 부려서 될일이 아닌데 세계적인 로비활동과 광고 ,그리고 자료들을 배포하고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100년후 150년후가 된다면 전 세계인들은 일본의 로비활동에의해 일본땅을 한국이 점유하고 있다라고 믿게 될것이 분명한데 이에대한 대책을 국가차원에서 추진하지않으면 우리의 후손들은 독도를 잃고 말것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마
힘내세요! 근혜님,큰 파도를 이겨 훌륭한 선장이 되실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운명! 근혜님께 달려있습니다.그동안 막연히 변화를 추구했던 많은 20대~30대가 이제는 구체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안정속에 한발씩 발전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이춘상보좌관의 영전에 삼가 조의를 보냅니다.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대표방송인 대한인터넷방송과 함께 대한민국의 역사 발전에 밀알이 되신 것입니다. http://cafe.daum.net/koreawebcast
첫댓글 감사합니다 그리고 수고가 대단하십니다. 감탄할정도로 역시 회장님 다우신 노력과 수집 존경 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쉬운점이 많습니다.
일본은 독도 관련한 예산을 890억인가 얼마를 책정하여 세계적으로 홍보하고 로비하는데 쓰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무작정 그냥 우리것이라고 고집만 부려서 될일이 아닌데 세계적인 로비활동과 광고 ,그리고 자료들을 배포하고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100년후 150년후가 된다면 전 세계인들은 일본의 로비활동에의해 일본땅을 한국이 점유하고 있다라고 믿게 될것이 분명한데 이에대한 대책을 국가차원에서 추진하지않으면 우리의 후손들은 독도를 잃고 말것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마
우째 그리 소상히 알은감..
세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박근혜 대통령을 만드세
살기좋운 내나라 우리 힘으로 가꾸세
박근혜님 대통령이 되었네 되었네
너도나도 힘모아 내나라를 가꾸세
행복하는 내나라 우리힘으로 만드세
여려분께서 노래하면 그대로 이루어 집니다.
노래를 전국 방방곡곡 전파시킬수 있는
대한인터넷방송은 늘 여려분과 함께 합니다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대표방송인
대한인터넷방송을 기억 해주는 것보다
여려분과 늘 함께 디지탈 세상을 열어 갑니다
http://cafe.daum.net/koreawebcast [학]
힘내세요! 근혜님,큰 파도를 이겨 훌륭한 선장이 되실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운명! 근혜님께 달려있습니다.그동안 막연히 변화를 추구했던 많은 20대~30대가 이제는 구체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안정속에 한발씩 발전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이춘상보좌관의 영전에 삼가 조의를 보냅니다.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대표방송인 대한인터넷방송과 함께 대한민국의 역사 발전에 밀알이 되신 것입니다. http://cafe.daum.net/koreawebcast
님들~ 즐거운 성탄절되십시오~
성탄은 하느님의 소박함과 가난의 축제입니다
가장 초라한 곳에서의 아기예수님의 탄생은
인류의 역사가 완전히 새롭게
시작되었음을 알려준것입니다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내며~
우리도 이번 성탄을 맞아 또 다시~
이 아름다운 세상에 거듭납시다
님들의 가정마다 축복이 가득하시고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가.....
우리모두의 가슴속에 사랑이 피어나시길 바라며
성탄을 축하를 드립니다
님들! .... 메리 크리스마스!
제가 인용좀 하겠습니다 출처는 박사모로 하고요 내용이너무좋아서
수고 대단하십니다..
수고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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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