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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승 시인 |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로 시작되는 시 ‘가을의 기도’로 널리 알려진 김현승 시인의 시에 주로 나오는 ‘고독’에 대해 시인 자신의 입장을 알려주는 글이 월간 ‘크리스챤 창조문예’ 10월호에 실렸다.
서미원 창조문예 객원기자는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라는 제목의 기고를 통해 김현승 시인의 고향인 광주에서 김 시인의 발자취를 찾는 한편, 김현승 시인의 주요 시들에 나타나는 주요 사상을 ‘양심’, ‘고독’이라는 인간적 사고와 ‘참회’, ’신에 대한 찬미’로 대표되는 종교적 사고로 분석했다.
서 씨는 “가을이 되면 많은 이들이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라고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를 암송하며 고독을 노래하지만, 과연 김현승의 고독에 대해서 얼마나 인식하고 있을까?”라며 시인의 시가 제대로 읽히지 않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김현승 시인은 ‘견고한 고독(1968)’과 ‘절대고독(1970)’의 시집을 내면서 고독과 견고성을 탐구했다. 그는 고독에 대해 “그것은 한 마디로 신을 잃은 고독이다. 내가 지금까지 의지해 왔던 거대한 믿음이 무너졌을 때에 허공에서 느끼는 고독이다. 그러므로 나의 고독은 기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고독이면서도 키에르케고르 등의 고독과도 다르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을 고독한 존재로 규정하였지만, 이 고독을 벗어나기 위하여 팔을 벌리고 그리스도를 붙잡으려 하였다. 그러므로 키에르케고르의 고독은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고독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나의 고독은 구원에 이르는 고독이 아니라 구원을 잃어버리는, 구원을 포기하는 고독이다. 수단으로서의 고독이 아니라 나의 고독은 순수한 고독 자체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의 고독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진정한 고독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혈압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었던 1973년 이후 김현승 시인이 지은 ‘부활절에’ 등의 시를 살펴보면 하나님께로 철저히 돌아갔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이후 “이러한 중에 나는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의 어느 겨울에 갑자기 쓰러지고 말았다. 나의 느낌으로 죽었던 것이다. 그러나 며칠 만인가, 얼마 만에 나는 다시 의식을 회복하고 살아나게 되었다. 죽은 가운데서 누가 나를 살렸을까? 나는 확신한다! 그분은 나의 하나님이시다. 나의 부모와 나의 형제들, 나의 온 집안이 모두 믿고 지금도 믿고 있는 우리의 신인 하나님이 나에게 회개의 마지막 기회를 주시려고 이 어리석은 나를 살려 놓으신 것이다”라고 그의 체험에 대해 밝혔다.
한편, 크리스챤 창조문예는 우수한 기독교 순수문학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10년 전 창간된 월간잡지로 지난해 사단법인 한국잡지협회에서 기독교 잡지로는 유일하게 우수잡지로 선정됐으며 이번 10월호로 117호째를 맞았다. 10월호에는 김현승 시인 연구 이외에도 시, 영시번역, 수필, 문화시평, 평론, 소설 등의 창작 문학작품들이 수록돼 있다.
김현승 시모음
가을의 기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절대고독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했던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
그 끝에서 나는 하품을 하고
비로소 나의 오랜 잠을 깬다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영원의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나는 무엇인가 내게로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뜻한 체온을 느낀다
이 체온으로 내게서 끝나는 영원의 먼 끝을
나는 혼자서 내 가슴에 품어 준다.
나는 내 눈으로 이제는 그것들을 바라본다.
그 끝에서 나의 언어들을 바람에 날려 보내며,
꿈으로 고이 안을 받친 내 언어의 날개들을
이제는 티끌처럼 날려 보낸다.
나는 내게서 끝나는
무한의 눈물겨운 끝을
내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더 나아갈 수 없는 그 끝에서
드디어 입을 다문다 - 나의 시는.
행복의 얼굴
내게 행복이 온다면
나는 그에게 감사하고,
내게 불행이 와도
나는 또 그에게 감사한다.
한 번은 밖에서 오고
한 번은 안에서 오는 행복이다.
우리의 행복의 문은
밖에서도 열리지만
안에서도 열리게 되어 있다.
내가 행복할 때
나는 오늘의 햇빛을 따스히 사랑하고
내가 불행할 때
나는 내일의 별들을 사랑한다.
이와 같이 내 생명의 숨결은
밖에서도 들이쉬고
안에서도 내어쉬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내 생명의 바다는
밀물이 되기도 하고
썰물이 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끊임없이 출렁거린다.
눈 물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불 완 전
더욱 분명을 듣기 위하여
우리는 눈을 감아야 하고,
더욱 또렷이 보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의 숨을 죽인다
밤을 위하여
낮은 저 바다에서 설탕과 같이 밀물에 녹고,
아침을 맞기 위하여
밤은 그 아름다운 보석들을
아낌없이 바다에 던진다
죽은 사자의 가슴에다
사막의 벌떼는 단 꿈을 치고,
가장 약한 해골은
승리의 허리춤에서 패자의 이름을 빛낸다
모든 빛과 어둠은
모든 사랑과 미움은
그리고 친척과 원수까지도,
조각과 조각들은 서로이 부딪치며
커다란 하나의 음악이 되어,
우리의 불완전을 오히려 아름답게
노래하여 준다.
창
창을 사랑한다는 것은,
태양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눈부시지 않아 좋다
창을 잃으면
창공으로 나아가는 해협을 잃고,
명랑은 우리에게
오늘의 뉴우스다.
창을 닦는 시간은
또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시간,
별들은 십이월의 머나먼 타국이라고......
창을 맑고 깨끗이 지킴으로
눈들을 착하게 뜨는 버릇을 기르고,
맑은 눈은 우리들
내일을 기다리는
빛나는 마음이게......
플라타너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이제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오늘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플라타너스
나는 너를 지켜 오직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 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아버지의 마음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 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
가을
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
꽃잎을 이겨
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
별을 생각으로 깍고 다듬어
가을은
내 마음의 보석(寶石)을 만든다.
눈동자 먼 봄이라면,
입술을 다문 가을.
봄은 언어 가운데서
네 노래를 고르더니,
가을은 네 노래를 헤치고
내 언어의 뼈마디를
이 고요한 밤에 고른다.
견고한 고독
모든 신들의 거대한 정의 앞엔 이 가느다란 창끝으로 거슬리고 생각하던 사람들 굶주려 돌아오면 이 마른 떡을 하룻밤 네 살과 같이 떼어 주며 결정된 빛의 눈물, 그 이슬과 사랑에도 녹슬지 않는 견고한 칼날-발 딛지 않는 피와 살 뜨거운 햇빛 오랜 시간의 회유도 더 휘지 않는 마를 대로 마른 목관 악기의 가을 그 높은 언덕에 떨어지는, 굳은 열매 쌉쓸한 자양 에 스며드는 에 스며드는 네 생명의 마지막 남은 맛!
파도
아, 여기 누가
술 위에 술을 부었나.
이빨로 깨무는
흰 거품 부글부글 넘치는
춤추는 땅 바다의 글라스여.
아, 여기 누가
가슴을 뿌렸나.
언어는 선박처럼 출렁이면서
생각에 꿈틀거리는 배암의 잔등으로부터
영원히 잠들 수 없는,
아, 여기 누가 가슴을 뿌렸나.
아, 여기 누가
성(性)보다 깨끗한 짐승들을 몰고 오나.
저무는 도시와,
병든 땅엔
머언 수평선을 그어 두고
오오오오 기쁨에 사나운 짐승들을
누가 이리로 몰고 오나.
아, 여기 누가
죽음 위에 우리의 꽃들을 피게 하나.
얼음과 불꽃 사이
영원과 깜짝할 사이
죽음의 깊은 이랑과 이랑을 따라
물에 젖은 라이락의 향기
저 파도의 꽃떨기를 7월의 한 때
누가 피게 하나.
첫댓글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김현승 시인에 대하여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더많이 알게되어 감사합니다...
저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