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정원기의 국악 아카데미 원문보기 글쓴이: 세요고
|
김종수
정읍농악의 소고에 있어 마지막 예인으로 호남우도농악의 산 증인 .
지정번호 : 전북도지정 무형문화재 제 7-2호
보유종별 : 정읍농악(소고)
지정일자 :
소 재 지 : 정읍시
생년월일 :
1953 년 :
1955 년 : 전국농악경연대회 대통령상
1961 년 :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정읍농악단) 국무총리상
1966 년 :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정읍농악단) 대통령상
1977 년 : 전국농악경연대회(정읍애향농악단) 대상
1985 년 :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대통령상
1986 년 : 전국청소년종합예술제(호남중학교) 최우수상
1992 년 : 전주대사습놀이 장원
1994 년 : 정읍시립농악단 소고
1995 년 :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최우수상
1995 년 : 대전문화원연합회 전국농악경연대회 장원
1996 년 : 전주대사습놀이 학생 전국대회 장원
1999 년 : 전국농악경연대회 최우수상
2000 년 : 정읍시립농악단 지도강사
2001 년 : 전국농악경연대회“김종수농악단”으로 참가 대상
2001 년 : 아동복리증진 및 새천년 새전북인운동 공적표창
2001 년 : 정읍샘골농악 단장
2003 년 : 정읍농악 보존회 회장
2004 년 : 정읍우도농악전수회관 강사
정읍지역의 농악은 이 지역민 특유의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성숙되고 다듬어져 오다가, 1920년
대에 정읍에서 크게 융성한 신흥종교인 보천교에서 농악을 이 종교의 종교음악으로 채용하여
전국의 탁월한 농악예능 보유자들을 불러모아 우리나라 농악의 장점들을 종합했다.
또한 8,15해방 이후 남한의 새 정부에서 농악을 장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다시 그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면서 전국의 농악을 주도한 것이 바로 정읍농악이다.
정읍농악은 호남우도농악의 모태인 만큼 호남우도농악의 특징과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특히 리듬이 다채롭고 구성지며 놀음놀이에서 윗놀음보다는 밑놀이에 치중하며, 장고가락이
매우 발달하는 등 개인놀이 또한 매우 조화롭게 발달돼 있다. 이 가운데 고깔소고놀이는 타
농악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하고 구성진 몸짓과 발놀음이 매우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전북도지정 무형문화재 제7-2호인
는 정읍지역 본래의 전통인 호남 우도농악의 고깔소고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호남좌도농악의
채상소고의 예능적 장점까지를 종합한 점이 가장 큰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호남우도
농악의 고깔소고의 장점인 밑놀음과 좌도농악의 윗놀음의 좋은 점들을 골고루 종합하여 조화
시킨점이 정읍농악 소고 예능의 중요한 특징이 된다.
1941년 정읍시 덕천면 달천리 용곡 산27번지에서 태어난
농악의 소고잽이 중 가장 우두머리다.
명인들과 동고동락하며 농악인생을 살아온 지 올해로 55년이 넘어선다.
따라서
하여 고깔버꾸로서의 기량을 다진 바 있는데, 이때의 고깔버꾸는 사촌매형인 장고의 명인
물론 당시의 명 버꾸잽이는
받지는 않고 같이 굿을 이룰 때 뒷버꾸를 치면서 판에서 배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에는 정읍우도농악에 채상이 아직 없었던 때로서 고깔버꾸의 춤사위가 관객들의 환호를
받던 시절인데 전주의 굿쟁이들과 어울리며 채상놀음을 접하게 되었고 곧바로 정오동.한판옥
선생의 채상놀음을 본 따
그로부터
줄굿을 이루고 다니는데 굿판에서 기량을 터득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국 각지를
떠돌며 집에 있는 것보다 오히려 배도 곯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것이 당시 정읍우도농악단의
뛰어난 기량 때문에 프로의 대접을 받은 것이라고 봐야 적절하다.
그러던 중 서울 유수의 예그린 악단에 입단하여 활동하게 되었고, 경희대학교에 소고춤 강사로
나가기도 했다. 그로부터 여러 곳에서 소고춤을 가르쳤으며, 1970년대 들어서는 우도굿 보존
명목으로 방송국 녹화도 하였으며, 당시 공연장면이 대한뉴스에 방영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61년과 1966년 제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와 제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해
국무총리상과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전통예능계에서
그리고 1985년 제26회 전국민속예능경연대회에 전라북도 대표로 참가해 또다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고깔소고의 대부가 됐다.
있으며, 판굿가락에 따른 몸짓과 발짓 등의 춤사위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고 박자와 가락에
따른 동작을 세분화하여 동작 하나하나를 정확하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체계화하여 지도
능력 또한 탁월하다는 평을 받는다. 그래서 전북문화재전문위원들은
예술세계를 정읍우도농악 특히 고깔소고 분야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유일한
예인으로 평가하고 주목해 왔다.
소고놀이는 거울보기.두루거리.연풍대.나비상 놀음.앉은 옆뛰기.일사.외사.양사.사사 등이다.
먼저 면두리로 불리는 거울보기는 버꾸를 얼굴앞에 대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버꾸 손잡이로
치거나 우측으로 채를 내미는데
기, 뒤짐 버꾸로 총칭되는 두루거리는 검도나 태권도에서 돌려차기의 동작이 무용화된 것으로
허공에서 몸을 한 바퀴 도는 재주이다. 이와 함께 연풍대는 2박자에 한 바퀴를 뛰지 않고
발만 돌려서 회전하는 재주인데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나비상 놀음은 채상 띠를 좌.우.상.하로 돌려서 옆 뛰며 외상모를 돌리는 재주로 앞
또는 뒤로도 뛴다. 그리고 쪼그려 옆뛰기로 사용되는 앉은 옆뛰기는 쪼그려 앉아서 옆뛰며 외
상모를 돌리는 재주와 앞 또는 뒤로도 뛰는 것이다. 소고잽이들의 최고의 기예능인 일명 번개
상인 ‘일사’는 소고잽이의 상모돌리기에서 최고 절정에 다다를 때 고개를 약간씩 좌우로
돌리고 머리에 신경을 쓰며 양쪽으로 한번씩 돌아가는 동작으로 가장 힘들고 어려운 동작의
하나이다.
이밖에 그가 보유하고 있는 외상모인 외사는
씩 또는 네 번씩 돌리는 바른 가락의 재주다. 또 사사는 양사에서 가락이 빨라지면 사용하는
것으로 두박에 두 번씩 좌우로 돌리는 재주이다. 이렇게
완벽하게 보유하고 있는 명인이다.
이러한 기예능을 보유하고 있는
1966년 전주농업고 농악부 지도자를 역임해 당시 전주농업고 농악부를 전국 최고로 세우게
된다. 그는 또 전주여고와 대흥초등학교, 신태인종합고교 등지에서도 지도자로 나서 탁월한
기량을 통해 명지도자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그리고 전주대사습놀이,임방울국악제,지평선축제,
전국국악경연대회등 수많은 전국대회에 위촉되어 농악부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기도 하였다.
특히 1995년부터 정읍농악보존회와 정읍시립농악단 지도자로 나서서 정읍우도농악의 그 출중한
가락과 사위를 재현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현재 정읍농악단의 유일한 고깔소고의 명인으로 기량을 인정받고 있는
유종권으로 이어지는 정읍농악의 정통성 있는 전승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 정읍국악사 글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