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섬 '초도'에서 날라온 꽃편지
어느 노부부의 무인도살이, 둘 만의 낙원 이야기
A flower letter from the remote island <Chodo>
An old couple's uninhabited island life, the story of a paradise just for the two
5-6월 작약이 피는 계절이 되면 난 먼데 섬 ‘초도’에서 보내온 꽃편지를 생각한다.
2020년 2월 중순, 섬여행 동호인들과 ‘초도’라는 통영의 먼섬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 섬은 노부부 둘 만 사는 사실상 무인도 섬이다.
초도는 통영 삼덕항에서 1시간 쯤 욕지도를 간 후 그곳에서 다시 낚싯배를 빌려 20분 정도 더 가야 만나는 외딴 섬이다. 풀이 많아 이름도 초도인 이 섬은 외초도와 내초도로 이루어져 있다. 내초도는 노부부 만 사는 유인도, 외초도는 무인도이다.
내가 방문한 계절이 2월이다 보니 당시 섬은 꽃도 별로 없고 삭막한 편이었다. 그러나 섬 주인인 노부부는 5-6월이 되면 작약이 만발하여 초도가 꽃동산이 된다고 자랑한다. 육지로 돌아온 후 난 할아버지에게 전화하여 작약이 피면 꽃사진 좀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정말 사진들을 보내왔다. 섬에서 날라온 아름다운 꽃편지였다.
초도는 한 때 100여 명이나 되는 주민들이 살았고, 주민들이 모두 떠날 무렵인 1994년 경만 해도 14가구가 살던 유인도였다. 그러나 교통이 불편하고 생활여건이 어려워 모두 섬을 떠나고 약 10년 동안 무인도로 방치되어 있었다. 이런 무인도에 두 부부가 들어온 건 20여 년 전.
처음 들어올 때 만 해도 길도 없고 전기도 없고 풀만 무성한 버려진 땅이었다. 오래된 마을회관과 경비초소를 고쳐 집으로 쓰고, 곳곳에 흩어져 있는 돌과 나무들을 옮겨 길도 만들고 문짝도 고쳤다고 한다. 이처럼 외딴 섬을 일궈 이제는 지상낙원처럼 알콩달콩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는 노부부는 김대규(85), 조종임(70) 씨 내외.
낚싯배가 내초도에 접근하자 멀리 섬 비탈에 집 몇채가 보이고 사람이 움직이는 게 시야에 잡힌다. 반갑다. 그들도 고도를 찾아온 방문객이 반가운지 손을 흔들어 우리를 맞이한다. 배를 선착장에 대자 오래전 유인도였던 흔적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작은 시멘트 계단이 보이고 바위 사이를 지나 낡은 집까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좁은 길도 시야에 들어온다.
비탈길 중간에는 ‘초도마을’이라는 표지석과 함께 ‘김대규, 조종임, 행복의 섬’이라고 쓰여진 작은 비석석도 세워져 있다. 이 섬 주민의 문패인 셈이다.
노부부는 인사를 나누자마자 초도 삶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해준다. 선착장 인근에 우물이 있고 집으로 호스가 연결돼 있다. 초도에서는 오래 전 마을이 있을 당시부터 민물이 나오는 우물이 있었다고 하며 그 우물을 지금까지도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지자체의 도움으로 태양광판을 설치해 전기를 쓰고,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욕지도나 통영에 나가 식료품을 구입해온다.
초도 입도 당시 염소 6마리를 데리고 들어왔는데 지금은 그 수가 80여 마리에 이른다. 부부와 함께 이 섬에 들어온 염소들이 그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이자 육지와의 소통꺼리다. 염소들은 노부부 이외 가장 많은 가족이면서 초도의 주민인 셈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바지 엉덩이가 누덕누덕 기워져 있다. 조종임 할머니는 “ 바닷가 바위가 거칠고 날카로워 바지 엉덩이 쪽이 쉽게 찢어져요. 육지에서처럼 새 옷을 사입기도 어렵고 제가 직접 바느질로 바지를 몇 번씩 고쳐 입지요. 섬에는 우리 부부 밖에 없으니 창피할 것도 없어요. 초도 만의 할머니표 패션이죠”라며 웃는다. “섬에서는 버리는 게 하나도 없어요. 밧줄이나 판자, 나무, 심지어 쓰레기통도 파도에 떠내려온 걸 주워 쓰지요. 매년 연례행사처럼 오는 태풍 때는 줏어모은 밧줄 및 나무가 창문이나 기둥을 고정시키고 막는 데 유용하게 쓰이지요. 처음엔 태풍이 온다고 하면 엄청 겁이 났는데 이제는 별로 무섭지않아요”.
할아버지가 갑자기 자기가 이 섬의 ‘도지사’라고 말한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초도에서 제일 높은 분이니 ‘도(道)지사’가 아니라 ‘도(島)지사’가 맞다. 할머니도 맞받아 “도지사가 20년 독재를 하고 있습니다. 유권자 관리를 안해요. 그래서 올해엔 내가 도지사가 될까 해요”라고 말한다. 두 분의 유머가 재미있다.
노부부는 방문객들을 이곳저곳 안내한다. 두 분이 사는 (옛)마을회관 건물 옆에는 새로 지은 건물도 보인다. 노부부는 낚싯꾼들이나 섬여행자들을 위한 민박집도 운영하고 있다. (옛)마을회관에는 노부부의 가족사진과 함께 할아버지의 국가유공자증서도 걸려 있다. 2011년에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증서이다.
김대규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군 간부(중사)로 근무하다 예편했다. 방 한편에는 노래방기기도 보인다. 전에 낚시하러 온 손님이 선물한 것이라 한다. 손님들이 오면 사용하기도 하지만 노부부가 심심할 때 노래방기기로 노래부르기도 한다. 두명 만 사는 섬이니 아무리 크게 떠들고 노래 불러도 신경 쓸 일이 없어 좋다고 말한다.
집 뒤 비탈언덕이 꽤 넓다. 염소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면서 풀을 뜯고 있다. 이 밭은 5-6월경이 되면 작약이 만발하여 황홀한 꽃동산을 이룬다고 한다. 밭 가운데에는 우람한 뽕나무 한 그루도 보인다. 염소들은 섬 전체가 놀이터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저녁 때가 되면 스스로 집으로 돌아온다. 대장염소가 앞에서 이끌면 다른 염소 및 새끼들이 따라온다.
두분 모두 섬생활에 크게 만족해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선착장 앞 문패석에도 ‘김대규, 조종임-행복의 섬’이라 쓴 것 같다. 이 문패석은 한의사 김오곤의 ‘갈 때까지 가보자’ 취재차 왔을 때 만들어준 것이라 한다. 노부부는 틈만 나면 바로 앞 갯바위에서 낚시를 즐긴다. 두 분 모두 낚시를 좋아한다. 섬에 들어온 이유이기도 하다.
비탈밭 우측으로 학교터가 보이고 노부부 집 근처에는 교회터도 보인다. 한 때 초도는 ‘돈섬’이라고 부를 정도로 부자섬이었다고 한다. 고기가 잘 잡혀서였다. 당시에는 주민들이 100명 넘게 살았으니 초등학교 분교도 당연히 필요했다.
폐교된지 오래되어 이제는 흉물스런 건물 만 남아 있다. 운동장 둘레의 동백나무숲이 연륜을 말해주는 듯 울창하게 늘어서 있다.
교회 건물 역시 제법 넓다. 내부에는 아직도 십자가가 기울어진 채 성전을 지키고 있다. 교회 앞에는 후박나무숲이 우람하다.
주민들이 많았을 때는 산 너머에도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학교가 있던 이곳마을에 7가구, 산 너머마을에도 7가구 정도가 살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초도에는 오래 전 주민들이 다니던 옛길이 아직도 남아 있다. 해안 둘레길과 산 능선길이 있는데 각각 걸어서 2시간 정도 걸리는 산책길이다. 이번 방문시에는 일정관계상 섬 트레킹은 하지못해 아쉽다. 다음 기회에 꼭 초도옛길 트레킹도 해보고싶다.
조종임 할머니는 필자 일행을 떠나보내면서 “초도를 잊지말아주세요”라고 소리친다. 두 분 노부부만 살다보니 사람이 그리운 모양이다.
초도의 귀염둥이 개 ‘초돌이’도 꼬리를 흔들면서 우리 일행을 배웅한다. (글,사진/임윤식, 단 작약사진들은 김대규 할아버지가 보내온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