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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4-25회
큰재-웅이산-용문산-무좌골산-작점고개-사기점고개-들기산-금산-추풍령
20230107
1.굽이도는 산줄기의 아름다움과 고통
계묘년 새해를 맞아 2번째 산행에 나섰다. 이번 산행은 백두대간 추풍령에서 출발하여 경북과 충북의 경계,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인 산줄기를 산행하여 큰재에 이르는, 19km가 넘는 거리의 산행이다. 이 구간은 오래 전에 산행한 적이 있고, 최근 2020년 3월에 산행하였었다. 그런데 아침에 산악회버스에서 역방향으로 진행하여 추풍령에서 끝맺는다고 한다. 길손은 백두대간 남진 산행을 반긴다. 잘 되었군.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이니, 백두대간 산행은 남진 산행이 순리에 따르는 산행이라고 늘 생각한다. 그러나 산악회 사정이나 구간 특성, 상황적 경우에 따라 북진을 우선할 수도 있다. 상황이 바뀌었지만, 이번 산행이 순리에 따르는 산행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몸도 가벼워진다.
1월의 하늘은 미세먼지로 부옇다. 경북 상주시 공성면 우하리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이 있는 큰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자살하거나 아니면 神에게 의지한다. 그런데 자살하지도 않고 神에게 의지하지도 않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알베르 카뮈는 그것을 不條理라고 했고, 그 부조리한 삶을 실존적 삶이라고 했다. 자살과 神 사이의 경계선을 살아가는 삶이 부조리한 것이요 실존적 삶이다. 길손은 삶의 의미를 찾아 산행에 나서는 것일까? 종교 세계에 나아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투철한 삶의 목표도 없이 살아가면서 산행이나 트레킹에 왜 이토록 집착하는가? 이 길이 삶의 의미가 될까? 심장과 무릎과 손가락에 이상이 생겨 이제 산행을 그만두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삶이 부조리하듯 산행 또한 부조리한 실존이라고 허풍을 떨며 발악하듯 산행을 떠난다.
이름을 불러 주세요, 팽나무·신나무·물박달나무·생강나무 등 이름표를 붙인 나무들이 줄지어선 숲길로 들어서니 산행의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날씨는 음침하다. 오르막의 눈길이 미끄럽다. 아이젠을 차지 않고 고집을 부리면 웅이산으로 오른다. 웅이산을 올려보며 또 큰재를 내려보며 걸었다. 가장 힘들다고 한 곳은 683m 삼각점봉 오를 때와 그곳에서 안부로 내려섰다가 정상에 오를 때가 가장 어려웠다. 큰재에서 산을 오르며 웅이산을 올려보면 왼쪽으로 귀처럼 쫑긋 붙어 보이는 형상이 보인다. 그래서 곰의 귀, 웅이산이라고 한 것일까? 예전에 국수봉으로 불렸던 웅이산 정상표석 뒷면에는, 그 유래를 밝히며, 2012년 5월 18일 국가지명위원회에서 웅이산으로 확정했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큰재를 가로지르는 도로명이 웅산로. 그렇다면 곰산, 熊山이라고 이름하였어도 괜찮을 듯하다.
제한 시간 7시간을 지켜 오후 5시 30분 이전에 추풍령에 도달하기 위해 내달린다. 웅이산 내리막길에서 결국 아이젠을 착용하였다. 작점고개까지 2시 30분 도착을 목표로 계속 내달리는 일밖에 없다. 그렇지만 오르막길 오르는 데 시간이 걸려 허걱댔다. 용문산에서 산악회 일행들과 만나 안도하였다. 그러나 안심할 때가 아니다. 산행 시간을 고려하여 작점고개에서 단축하는 일행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긴장을 풀지 않고 다시 출발해야 한다. 점심을 먹을 시간도 없이 무좌골산에 이르러서야 제한시간의 강박에서 벗어났다. 도착 시각보다 20분이나 늦은 시각을 예상하던 트랭글이 드디어 30분을 앞당겨 5시 20분 도착 예정을 알린다. 그렇다면 작점고개에 내려가서 점심을 간단히 먹고 출발할 수 있겠군. 작점고개의 정자는 예전대로 있겠지.
작점고개의 여러 설치물을 살피고 능치쉼터 정자 옆 작은 바윗돌에서 점심을 먹는다. 숨가쁘게 걸어온 산길이 왜 그리 달아나기만 하느냐고 묻는다. 곰 熊과 용 龍 글자가 산봉에 붙여진 웅이산과 용문산, 그리고 의미가 잡히지 않는 무좌골산, 이런 이름이 붙은 산봉이 있는 백두대간 큰재-작점고개 구간에서 산봉 이름의 의미를 생각했다. 우리 설화에 많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동물이 곰, 호랑이, 용일 것이다. 단군신화에서 곰은 금기를 버텨내서 인간이 되고 호랑이는 실패한다. 곰은 끈기, 호랑이는 용기, 용은 상서로움을 상징한다. 곰의 귀를 뜻하는 熊耳山은 예전에 국수봉(掬水峰), 물을 움키는 산이라는 뜻이니 낙동강과 금강의 수계와 연관되어 보인다. 또 용은 물과 관련된 상상의 동물이니 국수봉과 관련된다. 그런데 곰의 귀라니? 이곳에 기우제를 지내는 熊神堂이 있어서 곰산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그렇다면 역시 물과 관련된다. 웅이산, 국수봉, 용문산은 모두 물의 의미를 함축하며 낙동강과 금강의 수계를 품는 지리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이런 생각이 든다. 국수봉, 웅이산, 용문산 세 이름은 모두 금강과 낙동강의 수계를 이루는 이곳에서 물과 관련된 산봉의 이름으로 볼 수 있다. 만약 하나의 이름으로 이 산줄기를 대표하는 이름을 찾자면 용문산으로 보는 게 좋을 듯하다. 용문산 산줄기의 능선은 분명 용의 등처럼 꿈틀거리며, 굽이치는 둥줄기 아래 계곡은 용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산줄기 전체를 아우르는 큰 범위의 이름으로 용문산이라고 부르는 게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다. 무식하면 용감한 법, 산세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점심을 순식간에 끝내고 작점고개 생태축으로 올라섰다. 아직도 9km가 넘게 남아 있다. 점심을 먹고 나니 시간에 다시 쫓긴다. 그렇지만 최고의 전망지 작점고개 남쪽 언덕에서의 조망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작점고개 위 육교형 생태통로 남쪽 언덕에서 북쪽을 바라보았다. 오~ 웅이산으로부터 벋어내리는 백두대간 산줄기를 보며 가슴이 벅찼다. 능선은 용의 꿈틀거리는 등인 듯, 굽이치는 등의 굴곡 아래는 용이 출입하는 문인 듯, 완만한 듯 장엄한 산줄기에 환호하며 잠시 무아지경에서 황홀하였다. 저 능선을 걸어서 예까지 왔구나. 산행의 묘미란 걸어온 풍경을 되짚어보는 조망이 아닐까? 가야할 앞길을 조망하는 설렘과 함께. 인생길에서도 벅차게 살아온 삶의 행로를 돌아보는 성찰이 있어야 하듯이. 또 살아갈 앞날의 다짐과 함께. 산행과 삶의 아름다움은 걸어가는 일에 충실하되 걸어온 길의 성찰과 걸어갈 길의 설렘과 의지에 있을 것이다. 예전 이곳에서 전망할 때의 마음처럼 가슴이 고동쳤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뛴다. 아름다운 산행, 아름다운 삶을 누리고 싶다.
작점고개에서 임도로 나와 육묘장 갈림목에서부터 사기막고개와 난함산 갈림목에 이르는 임도까지는 지루하고 팍팍하다. 또한 사기막고개로부터 들기산에 이르는 산줄기는 서진하다가 북진, 다시 서진하며 뱅뱅 돌아가는 능선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몹시 힘겹고 따분하다. 그 지루하고 따분함을 씻어주는 산줄기는 난함산 산줄기, 백두대간에서 비켜서 있는 동쪽 산줄기이다. 서진하던 산줄기가 북진하기 위해 용솟음하는 산봉 능선에서 동쪽으로 활짝 열려 난함산 산줄기의 장쾌함을 조망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며 따분함을 씻어 내렸다. 그리고 서진하다가 완전히 북쪽으로 꺾어 들기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는 걸어온 웅이산-용문산-무좌골산-작점고개 북쪽 능선을 나뭇가지 사이로 살펴보는 즐거움이 따른다. 그 전망은 조바심치게 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아야 하기에 그렇다. 돌기산을 거쳐 금산에 이르기까지 그 조바심은 계속된다.
금산 정상에서 이 모든 조바심은 사라진다. 북쪽으로 활짝 열려 있으며 동과 서는 살짝 열려 있다. 그렇지만 채석으로 한 쪽 사면이 완전히 잘려나간 금산은 애처롭다. 잘려나간 백두대간 고개를 복원한다고 하여 생태축을 조성하고 있다. 그러면 한 쪽 면이 잘려나가 천 길 낭떠러지가 된 금산의 복원은 가능할까? 금산은 잘려나간 몸뚱이를 고통스럽게 지탱하여 산객에게 멋진 선물을 내려준다. 추풍령을 내려보는 최고의 전망지 금산은 북동쪽의 산줄기를 한 눈에 들어오게 한다. 무좌골산, 작점고개, 난함산 산줄기, 들기산, 또 서쪽의 눌의산, 장군봉, 가성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이 모두를 전망하는 최고의 조망지이다. 금산에서 벅찬 감동을 누리고 헐레벌떡 추풍령으로 내려간다.
2.산행 과정
전체 산행거리 : 19.38km
전체 소요시간 : 6시간 38분
큰재는 충청북도 영동군에서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으로 넘어가는 2차선 68번 지방도로 아스팔트 도로가 백두대간의 주능선을 가로지르는 고갯길로 해발고도는 300m이다. 큰재는 지리산으로부터 속리산과 주흘산을 거쳐 태백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의 주능선에 해당한다. 이 일대 웅이산, 회룡재 등은 백두대간 길 중에서 지세가 가장 낮고 능선의 힘이 약한 중화지구대 구간으로 해상고도의 편차가 작다. 고갯마루는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큰재는 원래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가 있었으나 폐교되었으며 지금은 '백두대간생태교육장'이 세워져 있다. 큰재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백두대간생태교육장 내부'를 지나야 한다.
큰재는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다. 백두대간 총길이 약 1400km, 상주시 백두대간 현황구간 청화산-웅이산, 거리 69.5km
웅이산 정상까지 3km, 1시간 30분이라고 적혀 있다. 웅이산에 도착한 시각이 11:45, 길손은 1시간 15분이 걸렸다.
큰재를 관통하는 웅산로를 가로질러 신곡1리 남실마을 가는 남실길에서 왼쪽 웅이산 방향 산길로 진입한다.
상주시 공성면 우하리 웅산로 큰재의 백두대간생태교육장은 폐교된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를 리모델링하여 2011년 4월 26일 개장하였다고 한다.
큰재-작점고개 9km, 약4시간이라 적혀 있다. 작점고개에 13:59에 도착하였으니, 길손은 3시간 30분이 걸렸다.
국수봉이라 불렸으나 웅이산으로 개명되었다. 중국의 웅이산에서와 같이 시초(蓍草, 톱풀)가 난다고 하여 웅이산(熊耳山)이라 이름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하지만 확실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곳에서부터 두번째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삼각점이 있는 683m봉까지 계속 이어지며 오르막길 오르기가 힘겹다.
나무계단을 오르고 나면 암릉지대가 있다.
큰재에서 중앙 오른쪽 숲으로 들어와 백두대간 산줄기를 이어왔다.
어느 산객이 민영봉이라 작명하여 민영봉이라 불리고 있다.
683봉에서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길을 오른다.
683봉 안부에서 올라온 산봉에서 웅이산을 바라보며 능선길을 내려섰다가 다시 비탈길을 오른다.
웅이산 오르는 비탈길에서 뒤돌아보면 683봉이 우뚝 솟아 있다. 웅이산 구간에서는 683봉과 웅이산 오르기가 힘겹다.
[상주=신세계보건복지통신]상주시 공성면은 2015년 5월 21일, 백두대간의 상주시 관문인 웅이산(일명 국수봉) 정상에 표석을 설치했다. 이 산은 상주시 공성면과 김천시 어모면, 영동군 추풍령면의 경계에 위치한 해발 795m의 주봉으로 그간 지역민들이 ‘곰살뫼’, ‘용문산’, ‘국수봉’ 등으로 불렀으나 산에 대해 고시된 지명이 없는 가운데 2012년 5월 국가지명위원회에서 ‘웅이산(熊耳山)'으로 확정하고 고시했다. 이번에 세운 표석은 약 2t 규모로, 가로 100cmX세로 50cm X높이 50cm 화강암으로 된 좌대와 가로, 세로 약 90cm 규모의 오석(烏石)에 ‘白頭大幹 熊耳산 795m, 상주시 공성면’을 새겼다.
정상표석 뒷면에는 '웅이산(熊耳山) 표석을 세우며' 글이 새겨져 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그 고장에 우뚝 솟은 산을 신성하게 여기며 살았다. 우리 고장 역시 이산을 으뜸으로 이겨 ‘곰살뫼’ 또는 ‘용문산(龍門山)’, 국수봉(掬水峰, 菊水峰)이라고 부르며 사랑했다. 이 산은 백두에서 지리까지 뻗어 가는 한반도의 중심에 선 산이다. 이곳 사람들은 이 산의 정기로 태어났고 이 산기슭에 묻혔다. 2012년 5월 18일 국가지명위원회에서는 熊耳山으로 확 정하였다. 이에 표석을 세워 길이 남기고자 하는 바이다. 2015.5
백두대간!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백두산을 떠올리게 되고, 커다란 기운과 위용을 느끼며,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게 된다. 백두대간이라는말을 처음 들으면서 다소 생소하게 여기는 사람조차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예로부터 우리민족의 정신세계 내면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백두산에 대한 똑똑하면서도 공동적인 정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백두대간이란 '백두에서 비롯된 큰 산줄기'라는뜻이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기까지 물줄기에 의해 한 번도 잘리지 않고 연속되어 국토의 등뼈를 이루고 있는 산줄기를 가리키는 고유명사이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을 신성시하여, 많고 많은 산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는 산으로 여기는 데서 형성되기 시작한 지리적 개념이요, 이 땅을 대표하는 산줄기 이름이다. 백두대간은 국토를 남북으로 내닫는 대동맥이며, 동해로 흐르는 물과 서해로 흐르는 물을 갈라주는 대분수령이다. 14개 정간, 정맥의 모태이며, 낙동강의 발원지이며, 한반도 산지 분류체계의 상징이며 한민족의 인문·사회·문화·역사의 기반이며, 자연환경과 생태계의 중심축을 이루는 대표 산줄기이다.
국수봉(掬水峰)! (해발 795m : 도상)
국수봉에 서면 상주의 너른 평야와 백학산, 서산, 기양산, 갑장산, 묘함산, 황악산, 민주지산 등 주변의 산들이 전개되고 날씨가 좋은 날이면 백두대간 상주-문경-기천 구간과 소백산까지도 조망된다. 국수봉은 웅산, 용문산, 용산 또는 공산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정상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이고 아울러 낙동강, 금강의 분수령이므로 국수라 한 듯하고 웅신당(일명 웅문당)이라는 곳이 있어 천제와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중국의 웅이산과 같이 시초(蓍草, 톱풀)가 난다고 하여 웅이산이라고 하며, 상주의 젖줄인 남천(이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웅이산(국수봉)은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김천시 어모면, 충청북도 영동군 추풍령면 사이에 있는산이다. 백두대간 산줄기는 갈현, 용문산을 지나 웅이신을 거쳐 큰재, 회룡재로 이어진다. 이 일대 백두대간 산줄기 높이는 500~700m로 대체로 낮은 산지를 이룬다. 웅이산이란 지명은 중국의 웅이산과 같이 시초(蓍草, 톱풀)가 나서 불리는 이름이라고도 한다. 산꼭대기에 웅신당(熊神堂, 일명 熊門堂)이라는 대(臺)가 있어서 가물 때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지리지와 고지도에는 학문산과 용문산으로 각각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같은 산을 마을에 따라 달리 불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한국지명총람>에는 학무산과 다른 이름 곰산, 웅이산(熊耳山), 용문산(龍門山)이 기록되어 있다
백두대간은 우리 민족 고유의 지리인식 체계이며,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의 중심 산줄기로서, 총 길이는 약1400m에 이릅니다. 지질구조에 기반한 산맥체계와는 달리 지표 분수계(分水界)를 중심으로 산의 흐름을 파악하고 인간의 생활권 형성에 미친 영향을 고려한,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산지인식 체계입니다.
청운봉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해발 734.2m 산봉은 용문사 갈림목이며 기양지맥 분기봉이다.
용문산 1.1km 지점, 남쪽은 경북 김천시 능치리 용문산기도원 방향이고, 북쪽은 충북 영동군 웅북리 중웅마을 방향이다.
용문산기도원 갈림목에서 비탈길을 오른 산봉이다.
용문산 정상은 헬기장이다.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능치리와 충청북도 영동군 추풍령면 웅북리에 걸쳐있는 백두대간의 마루금에 있는 산이다. 북쪽의 웅이산(국수봉)에서 용문산을 거쳐 무좌골산에 이르며, 작점고개에서 금산을 거쳐 추풍령 고개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산줄기 높이는 500-700m로 대체로 낮은 산지를 이룬다. 지명의 유래는 1800년 무렵 박송(朴松)이란 유생이 산세를 보고 중국의 용문산(龍門山)과 닮았다 하여 이름을 붙였다 한다. 용문산 동쪽에 있는 용문산마을은 1940년경 나운몽 목사가 애향숙(愛鄕塾)이라는기도원으로 출발하여 현재는 지역 최대의 신앙촌을 이루고 있다.
갈현 고개를 가로질러 비탈길을 오른 능선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면 나뭇가지 사이로 용문산이 보인다.
앞쪽 송림을 거쳐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작점고개에 이른다.
작점고개 도로로 내려가 설치물을 살피고 점심을 먹기로 한다.
작점고개는 경북 김천시 어모면 능치리와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작점리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다.
경상북도 김천시 조형물, 백두대간 작점고개 표석, 백두대간 생태축 준공기념 표석, 작점고개 설명안내판, 김천시 백두대간 안내지도 등이 설치되어 있다.
작점고개 동쪽 김천시 어모면 능치리(能値里) 지역으로, 경북도립김천노인전문병원이 왼쪽 위에 있다. 중앙 뒤에 송신탑이 솟아있는 해발 733.4m의 난함산(卵含山)은 백두대간에서 500m쯤 비켜나 있으며 정상에는 KT통신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작점고개 서쪽은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작점리 지역이다. 이 도로를 따라가면 추풍령에 이른다.
중앙에 있는 '작점고개 백두대간 생태축 준공표지석' 기록을 옮겨 놓는다.
김천과 영동을 잇는 2차선 도로로 단절된 백두대간 생태축을 복원하여 산림생태계의 건전성을 증진시키기 위해 산림청, 경상북도와 함께 김천시에서 추진한 사업입니다.
사업명 : 어모면 작점고개 백두대간 생태축 복원사업, 공사기간 : 2017년 1월 ~ 2019년 12월 (3년)
사업량 : 육교형 생태통로 (W40XL23), 복원공사 등, 시공사 : (주)성화종합건설, 지 원 : 산림청, 경상북도 발주처 : 김천시
작점고개(340m)는 경북 김천시 어모면과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을 잇는 2차선 도로상의 해발 340m의 도계의 고갯마루이다. 백두대간 국수봉-용문산-난함산-금산-추풍령이 지나며, 이곳 능치는 용문산과 난함산 중간의 잘룩(안부, 재)이다. 능치(能値), 곰재, 곰티, 능치재, 성황뎅이고개, 여덟마지기고개라는 별칭도 있다. 작점고개는 김천시에 대부분 자리잡고 있으나 대간종주 자료에 작점고개라 적혀 있는 것은 초창기 대간 종주 취재팀들이 고개 너머 서쪽(영동군) 마을인 작점리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새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참새 '작(雀)'자와 유기점포가 많아 가게 '점(店)'자를 따서 작점이라 마을 이름이 지어졌다고 하며 200여 년 전 전국에서 제일가는 유기 생산 공장이 작점리 전 지역과 김천시 봉산면 태화동 일대까지 공장이 분포되어 있어 유기점포 판매상인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능치쉼터 정자 왼쪽 뒤에 있는 바윗돌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 20분 정도 소요되었다.
앙증스런 작점고개 이 표석이 마음에 든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 않기를.
작점고개-추풍령 8.7km, 약 3시간 30분이라고 적혀 있다. 추풍령 도착 시각이 17:06, 길손은 2시간 48분이 걸렸다.
왼쪽 맨 뒤에 송신탑이 솟은 곳이 난함산이라 가늠한다. 대간 능선은 이 앞봉을 넘어서 난함산 임도로 내려간다.
작점고개 생태축 남쪽 능선에서 북쪽을 조망하면 백두대간 웅이산(오른쪽), 청운봉(웅이산 안부 왼쪽), 용문산(중앙 왼쪽 솟은 봉), 무좌골산(맨 왼쪽)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 전망의 최고 조망지이다.
작점고개 산줄기를 남동쪽으로 내려오면 난함산 임도에 이른다. 작점고개에서 올라오는 쪽으로 바라보니, 경북도립김천노인전문병원이 오른쪽에 보인다. 뒤돌아서서 난함산 방향으로 임도를 따라 오른다.
왼쪽 뒤에 난함산이 보인다.
오른쪽은 육묘장 가는 길, 난함산 가는 왼쪽 길로 이어간다.
중앙에 송신탑이 솟아 있는 산봉이 난함산일 것이라 추정한다. 송신탑은 KT통신시설이라고 한다.
대간마루금은 왼쪽 산줄기로 이어지는데, 마루금을 타지 않고 사기점고개 갈림목까지 계속 임도를 따라간다.
백두대간은 왼쪽 산줄기가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곧바로 가면 난함산, 오른쪽으로 꺾어 사기점고개 방향으로 이어간다.
난함산은 백두대간에 속하지 않는다. 난함산 임도와 헤어져 백두대간 마루금으로 들어선다.
사기점고개 가는 능선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중앙에 송신탑이 있는 난함산이 가늠된다.
자칫하면 직진하기 쉽다. 왼쪽으로 꺾어 임도를 따라간다.
임도에서 표지가 있는 오른쪽으로 꺾어 이어간다.
왼쪽으로 꺾어 언덕으로 올라간다. 직진하여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사기점저수지에 이른다.
사기점고개에서부터 난함산 산줄기는 나뭇가지들 때문에 열리지 않다가 이 지점에서 활짝 열려 산줄기를 시원하게 살핀다.
난함산(卵含山)은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은기리와 봉산면 상금리의 경계에 있으며, 김천시 어모면 은기리 봉황마을에서 서쪽으로 약 2.1㎞, 봉산면 상금리 사기점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약 1.8㎞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정상부 높이 약 733.4m의 봉우리이다. 난함산은 속리산에서 추풍령으로 내려오는 백두대간 마루금으로부터 약 550m 떨어져 있다. 김천시 어모면과 영동군 추풍령면 사이의 행정 경계인 백두대간 마루금은 북에서 남으로 이어지다가 난함산 부근에서 서쪽으로 방향이 바뀌게 된다. 난함산(卵含山)이라는 명칭은 알을 품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이 산봉에서 오른쪽 북쪽 방향으로 틀어서 이어간다.
북쪽으로 틀어가는 능선에서 남쪽의 들기산을 가늠한다.
들기산 가는 능선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방금 걸어온 무좌골산(맨 왼쪽 나무 뒤)과 그 산줄기 아래 작점고개와 그 오른쪽 뒤 경북도립김천노인전문병원 건물이 보인다.
무좌골산 정상 직전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면, 추풍령저수지, 동모산과 각금봉, 중앙 뒤에 동무골산이 가늠된다.
북쪽 조망이 열려 있는데 참나무 가지들 때문에 활짝 조망되지 않는다.
중앙 뒤에 나뭇가지 사이로 뾰족하게 솟은 금산이 보인다.
바위 앞이 고래의 입 모양 같다. 오른쪽의 노간주나무는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고래바위를 벗하여 자라고 있다.
이번 구간 산행의 대미를 장식할 금산이 눈 앞에 보인다.
추풍령-괘방령 구간에서 올랐던 눌의산이 친근한 모습으로 보인다.
작점고개에서 사기점고개까지는 평탄하였다. 사기점고개에서부터 들기산 오기까지 뱅글뱅글 지루하고 힘겨웠다.
금산(金山)은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과 경북 김천시 봉산면 경계에 있는 산이다.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금산 북쪽 비탈면은 절개된 상태로 천 길 낭떠러지가 되어 있다. 금산은 일제 때부터 채석장으로 개발되었으나 해방 후 중단되었다가, 철도용 궤도자갈 생산업체 '삼동흥산'이 1968년부터 금산에 채석장을 내고, 처음에는 경부선 철도용 자갈 공급, 그 다음에는 고속철도용 자갈 공급을 위해 금산 정상을 중심으로 영동군 쪽 절반을 폭약으로 날려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은 채석이 중단되었다.
금산 정상 표지판과 산악회 표지기들이 즐비하다. 금산 정상에 올라 잠시 조망한다.
추풍령저수지, 그 옆으로 작점고개에서 내려오는 작점로가 보인다. 앞에서부터 마암산, 왼쪽의 동모산과 각금봉이 조망된다.맨 뒤 중앙에 살짝 보이는 산봉이 용문산이라 가늠한다.
중앙 왼쪽 가느다란 나뭇가지 뒤에 무좌골산, 그 오른쪽 아래에 작점고개, 맨 오른쪽에 들기산이 조망된다.
맨 왼쪽에 가성산, 그 오른쪽에 장군봉, 중앙에 눌의산이 보인다. 지난번 추풍령-괘방령 구간에서 산행하여 친근하다.
사기점고개에서부터 들기산에 오기까지 힘겨웠던 모습이 그려진다. 들기산에서부터는 금산이 눈 앞에 보여 안도하였다.
백두대간은 우리 민족 고유의 지리인식세계이며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의 중심산줄기로서, 총 길이는 약 1400km에 이른다. 백두대간은 그 가치가 매우 다양하고 중요하므로 백두대간의 개념과 가치를 유지·증진시켜 미래의 문화유산으로 후손에게 물려줄 자산이다.
금산(해발 384m), 현 위치는 백두대간의 추풍령-금산-작점고개-국수봉-큰재 구간 중 금산 구간에 해당한다.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며,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과 경북 김천시 봉산면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추풍령-큰재 구간 : 길이 약 19.6km, 소요시간 7시간 30분
추풍령-큰재 산행 시간은 7시간 30분은 주어져야 한다. 산악회에서 주어진 7시간이 벅차서 길손은 쉴틈도 없이 내달렸다.
국도4번 영남대로 오른쪽 농로를 따라 추풍령교차로 입구로 내려간다.
추풍령으로 내려가는 도중 국도4번 영남대로 서쪽에 솟은 왼쪽의 가성산, 그 오른쪽의 장군봉, 중앙의 눌의산을 조망한다.
추풍령은 충청북도 영동군 추풍령면과 경상북도김천시 봉산면의 경계에 있는 해발고도 221m의 고개이다. 추풍령은 예로부터 영남지방과 중부지방을 잇는 핵심지역이었으나 영남대로로 일컬어지는 문경새재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경부선 철도로 인해 문경새재와 죽령, 이화령의 모든 물류가 모이게 되었으며, 이후 낮은 고도와 완만한 경사로 인해 경부고속국도와 국도 등이 모두 통과하는 교통의 요지라 할 수있다.
조선시대에 이곳을 지나는 유생들 중 일부는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낙방한다 하여 괘방령으로 넘는 경우가 있었다.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계 역할을 하고 있는 중요한 지역이나 완만한 지형적인 특성상 각종 도로의 휴게소 등으로 인해 1km 이상의 마루금이 단절된 지역으로 마루금과 실제 종주노선이 상이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백두대간은 우리 민족 고유의 지리인식 체계이며,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의 중심 산줄기로서 총 길이는 약1400km에 이릅니다. 지질구조에 기반한 산맥체계와는 달리 분수계(分水界)를 중심으로 산의 흐름을 파악하고, 인간의 생활권 형성에 미친 영향을 고려한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산지인식 체계입니다.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추풍령리 이랑탑공원 앞에 금산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힘겨웠던 큰재-추풍령 구간의 백두대간 산행을, 제한 시간 안에 끝마친다.
포도와 감, 복숭아? 그림이 그려진 나무장승들이 익살스럽게 웃음짓는다.
'국악의 우리소리'랑, '감'이랑, '포도'랑, '함께'를 뜻한다는 이랑탑 안내표석
[대중가요와 영화로 더욱 유명해진 추풍령] 추풍령과 관련된 대표적인 문학·예술 작품으로는 이승하의 시 「고향으로 가는 길」과 남상규의 노래 「추풍령」이 있으며, 가곡으로는 「추풍령을 넘으며」가 있다. 영화로는 1965년에 개봉한 「추풍령」이 있다.
중앙대학교 교수이자 시인인 이승하의 「고향으로 가는 길」 전문은 다음과 같다. "그리 멀지도 않건만/ 고향으로 가는 길 가로막고 있는/ 추풍령 넘어가기가 참으로 힘들구나/ 허나, 세상의 모든 길은 저마다의 고향으로 나 있는 법// 그저 태어난 곳 자라난 곳/ 꿈을 키웠던 그 곳/ 사춘기 시절엔 줄곳 떠나고 싶던 곳이어서/ 그대 고향을 버리고 비로소 어른 되었지/ 연어도 때가 되면 모천으로 회귀하는데// 한가위로다/ 타향의 하늘에서도 이국의 하늘에서도/ 두둥실 떠 있는 원반형의 달/ 어머니 등에 업혀 쳐다보았던 달/ 사랑을 잃고 술에 취해서 쳐다보았던 달/ 오늘밤 저 달은 한껏 발그레해지리라// 인생행로 걸어도 달려도/ 어느 고개 할 것 없이 험하기만 했다/ 망망대해 달려도 멈추어도/ 어늘 뱃길 할 것 없이 무섭기만 했다/ 하지만 고향으로 나 있는 길에서는/ 지친 새도 날개 접을 수 있다/ 그대 탯줄이 거기 묻혀 있기에/ 그대만을 기다리는 노모가 있기에// 싸늘히 식은 가슴 지닌 이들이/ 고향에 돌아온 나은 왁자지껄하리라/ 따듯한 고봉밥, 넘치는 술잔/ 사투리가 갑자기 입에서 튀어나오고/ 잊어버린 친척 아이 이름을 묻는다/ 잃어버린 별명을 거기서 찾는다// 그대 인생의 남은 날들이여/ 이번 한가위만 같아라"
백영호가 작곡하고 전범성이 작사한 「추풍령」은 전국적으로 추풍령의 지명도를 높인 대표적인 대중가요이다. "구름도 자고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구비마다 한많은 사연/ 흘러간 그 세월을 뒤돌아보는/ 주름진 그 얼굴에 이슬이 맺혀/ 그 모습 흐렸구나 추풍령 고개// 기적도 숨이차서 목메어 울고가는/ 추풍령 구비마다 싸늘한 철길/ 떠나간 아쉬움이 뼈에 사무쳐/ 거치른 두뺨 위에 눈물이 어려/ 그 모습 어렸구나 추풍령 고개"
1965년에 개봉한 영화 「추풍령」은 가난한 가운데에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역경을 헤쳐 나가는 부자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이다. 전범성이 각본·감독을 맡고 김진규·이경희·최남현·석일우 등이 출연하였다. 3대째 추풍령의 철도국 선로수로 근무하면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이 그의 아들에게는 육체노동인 선로수 직업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않고 대학 교육을 시킨다. 아들은 한 학기는 학비를 벌고 한 학기는 학교에 등록하여 공부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여, 마침내 대학을 졸업하고 철도국의 간부직에 임명되어 추풍령 철도국에 부임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백두대간 금산 능선이 오른쪽으로 내리벋는다. 오른쪽의 추풍령특산물직판장 앞을 거쳐 왼쪽의 모텔 카리브 앞 금산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는 곳에서 백두대간 '큰재-추풍령' 구간 산행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