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오늘이 네가 태어난지 26년째 되는 날이구나,
내가 처음으로 엄마가 되던 날, 17 시간 동안 병원에서 진통 끝에 너와 만난 나는 진짜 엄마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았었어,
첫아들인 너를 안고 이 세상을 다시 얻은 듯 엄마 아빠는 무척이나 행복했었단다.
그리고 우량아로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고 똘똘하고 영특하기만 하였던 너에 대한 엄마 아빠의 기대 역시 너무나 컷었단다.
첫 아이였기에 시행착오도 많아서 마냥 너를 어른스럽게만 생각하고 대한 나의 잘못도 아빠의 후회도 이제는 모두가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지.
그리고 오늘, 나는 다시 너의 생일을 혼자 기억하면서 아침에 일어나 미역국과 밥을 해서 네가 평소에 앉았던 식탁의 자리에 차려놓고 기도를 하였단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번민과 갈등없이 편안하게 지내다가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는 날 평온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7년이 돼가는 네가 마지막까지 신었던 운동화가 이제는 까맣게 삭아가고 있단다.
많이도 낡았지만 메이커 신발이라면서 애착을 갖고 신었던 그 운동화가 지금은 내게 너를 안고 싶을 때마다 안아볼 수 있는 큰 위안이 되고 있구나.
네가 몹시도 보고픈 날에는 그 신발을 껴안고 입마춤도 하고, 너를 껴안듯 내 품에 안아본다.
오늘 아침에도 너를 안아보면서 너의 체취와 체온을 혼자서 느껴 보았지,
사랑하는 나의 베드로,
방금 영주가 그러드라.
"엄마, 오늘이 오빠 생일이지?"
영주는 그래도 철이 들어서인지 네 생일때마다 널 기억하고 있드라.
아빠에게는 표현을 않고 항상 혼자서 네 생일을 기억하면서 생일상을 차려주고 있지만, 그래도 영주, 영길, 영선에게 다시 아픈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아서 엄마 혼자 기억하고 지나려곤 했었거든.
오늘서 알았지만 2년 전 네 생일날, 영주가 편지를 써서 태워주었단다.
얼마나 이쁜 동생이니,
너에게 편지를 보내고 나서 그 다음날 꿈을 꾸었는데, 돌고래가 물을 뿜으면서 와서는 앞에서 춤을 신나게 추드란다.
해몽을 검색해보니 그 꿈이야말로 의식과 무의식의 소통이었다면서 큰 의미를 갖더구나.
너를 만난 것처럼...
그리고 작년도 2009 년도에도 네 생일에 꿈을 꾸었단다.
그래도 너는 영주에게 잠시 다가와서 네 마음을 전해주고 가는가보다.
네가 나에게 왔다 간지 참 오래 된 거 같은데..
사실 어젯밤엔 참 마음이 우울해지려고 했단다.
하지만 아빠가 모르고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내색을 못하고 지냈어.
사랑하는 아들 영호야,
보고싶다.
그냥 ....이렇게 보고 싶을땐 엄마는 하늘을 본단다.
하늘나라에는 내가 사랑하였던 사람들이 많이도 있구나.
엄마의 아버지도, 너도, 그리고...나를 정말 아껴주고 사랑해주던 지인들...
지금은 너를 볼 수도 만질수도 없지만,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너를 느끼면서 하루하루 충실하려고 한단다.
오늘 밤에는 너를 꿈 속에서 볼 수 있으려나?
사랑해 영호야.
엊그제서 알았구나. 네가 지금 흘러나오는 달팽이라는 노래를 즐겨 들었다는 것을...
엄마가 이 노래를 듣고 있었더니 얼마전에 영주가 그 노래 어디서 알았냐면서,
네가 마지막까지 아껴서 듣고 다니던 엠피쓰리 속에 이 노래가 들어있다고 말해주어서 알았어.
그제서야 가사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니,
그게 바로 너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고 정말 가슴이 너무나 아파서 펑펑 울고 싶드라.
이렇게 무지한 엄마를 용서해주렴.
정말 엄마는 너의 그 힘든 심정을 너무나 못 헤아리면서 정신없이 지냈던 그 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정말 어떻게 용서 받을 수 있겠니?
미안해, 영호야
저 넓은 바다로 나아가 자유롭고 싶었던 너의 영혼을 늘 구속하려고만 하였고, 그냥 공부해라, 공부해라..그러다 어느날 모든 걸 포기하고 네 스스로 인생을 잘 헤쳐나가기만을 바라다 너를 영영 보내고 말았구나.
그 넓은 하늘나라에서 자유롭게 잘 지내고 있으렴.
솔직히 살기 힘들고 고통스러울땐 나도 빨리 네 곁으로 가고 싶을 때가 많았단다.
그러나 지금은 내 곁에 있는 너의 동생들을 생각해서 빨리 너를 만나러 갈 수가 없구나.
엄마의 이 심정 알지?
2010. 3. 23. 화요일
달팽이
집에 오는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 더 지치곤 해
문을 열자마자 잠이 들었다가 깨면 아무도 없어
좁은 욕조속에 몸을 뉘었을때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줬어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거라고
아무도 못봤지만 기억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모두 어딘가로 차를 달리는 길
나는 모퉁이 가게에서
담배 한개비와 녹는 아이스크림 들고 길로 나섰어
해는 높이떠서 나를 찌르는데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어느새 다가와 내게 인사하고 노랠 흥얼거렸어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거라고
아무도 못봤지만 기억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내 모든걸 바쳤지만 이젠 모두
푸른 연기처럼 산산히 흩어지고
내게 남아있는 작은 힘을 다해 마지막 꿈 속에서
모두 잊게 모두 잊게 해 줄 바다를 건널거야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거라고
아무도 못봤지만 기억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