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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생불멸(不生不滅)’에 관하여
2003-05-07
〈중론송〉귀경게에서 무슨 뜻으로 ‘존재’는 ‘생기는 것도 아니요(不生)’, ‘소멸하는 것도 아니요(不滅)’라고 할까요? 이 물음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으로 구체화할 수 있겠습니다.첫째, 존재의 세계는 무상하여 생성 소멸하기 마련인데 이를 ‘생기는 것도 아니고’ ‘소멸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면 ‘제행무상(諸行無常: 뭇 존재는 영원하지 않다)’에 어긋나지 않는가? 둘째, 게다가 ‘생기는 게 아니다(不生)’란 말은 인도철학에서 ‘생기지 않은 아뜨만’, ‘생기지 않은 브라흐만’과 같이, 본체에 관한 수식어로도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불생’이니 ‘불멸’은 본체론적 세계관에서 나온 말이 아닌가?어찌 보면 당연한 물음이지요? 그렇지만 이러한 질문을 통해서〈중론송〉귀경게에 등장하는 ‘불생(不生)’, ‘불멸(不滅)’의 의미가 좀더 명확해집니다.결론부터 말하면, 여기서 부정하고 있는 ‘생’이니 ‘멸’은, 본질주의자가 생각하는 ‘생성’ ‘소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중론송〉귀경게는 본질주의자가 상정하고 있는 생성과 소멸을 부정할 뿐. 존재 세계의 생성 소멸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본질주의자는 대체 어떠한 ‘생’을 말하기에 나가르주나는 이를 부정하는 걸까요? 생성을 부정하니 소멸도 부정…따라서 존재는 생기는 것도소멸하는 것도 아니다존재의 ‘생’이란 무엇입니까? 존재가 예전에는 없다가 지금 있는 것입니다. 존재의 ‘멸’이란 무엇입니까? 있다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생이란 뜬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멸이란 뜬 구름이 흩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존재 세계를 뜬 구름에 비유하고 있으니 존재 세계를 바라보는 허허로운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뜬 구름’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인연에 따라 생기고 소멸하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연에 따라, 공사상에 따르면 본체를 전제로 삼을 필요 없이, 생성 소멸하는 것입니다.그런데 본질주의자는 존재의 생성 소멸을 어떻게 이해할까요? 본질주의자는 현상의 배후에 상존하는 존재론적 본질, 존재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본체를 존재 세계의 성립기반으로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어찌 보면 자연스럽게, 존재가 생성 소멸할 때 본체는 존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주요한 관심거리로 떠오르기 마련이고, 본체가 생성의 직접적 원인으로서 자리 잡게 됩니다. 곧 자기동일성을 지닌 상존하는 본체에서 존재가 생긴다고 보는 것입니다.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세계에서 존재 생성의 으뜸가는 원인을 탐구하는 학문을 ‘제일철학’이라 불렀습니다. 이는 나중에 ‘형이상학’으로 불리게 됩니다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형이상학에서 제일원인으로서 신(神)을 상정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신(神)은 뭇 현상의 첫째가는 존재 원인입니다. 신은,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일체의 존재를 움직이는 자, 곧 ‘부동(不動)의 원동자(原動者)’라는 묘한 말로 표현됩니다. 어떻습니까? 부동의 원동자! 말은 그럴싸하지만 어딘지 본체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이렇게 보면 대사상가로 손꼽히는 아리스토텔레스도 한 편으로는 본체론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군요. 곧 공사상가와 대립되는 본질주의자의 측면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본질주의자와는 달리 공사상가는 본체를 부정합니다. 연기를 ‘존재의 인과관계’라 풀었을 때, 원인과 결과 양 항에는 존재 곧 연생법이 놓인다는 점을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원인 쪽에 본체가 오면 그 구도는 공사상가가 구상하는 구도와 ‘단순한 차이’를 넘어 ‘대립’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존재의 생성을 본체로부터 유출(流出)로 보는 생각, 또는 존재의 생성을 어떠한 본체가 있어 제어하면서 이끌어간다는 생각, 이 모두 본질주의자의 세계관입니다. 가령 인도의 상키야 철학 같으면 전자, 헤겔 철학 같으면 후자의 방향을 취하고 있습니다.공사상은 이와 같은 생성의 모습, 본질주의자의 생성에 관한 생각을 부정합니다. 생성을 부정하니 당연히 소멸도 부정하겠죠? 그래서 존재는 ‘생기는 것도 아니요(不生)’, ‘소멸하는 것도 아니(不滅)’라고, 나가르주나는 말하고 있습니다.한국정신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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