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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0일 산행은 투표에의해 다득표한 부산장산입니다.
즐거운 산행들 하시고 하산길에 가까운 해변가에서 가을전어나 한접시 하면서
보고싶었던 친구들이랑 가을 이야기나 나누다 가세요~~
모임장소,시간 : 대천공원 앞 10시
찿아오시는길
구마고속도로로 오는길 : 서부산 I/C - 고가도로로 계속직진 - 톨게이트돈내고(600원) 조금 직진하다- (주의)황령산터널로 - 터널지나 계속직진 광안대교로 - 해운대쪽진입 - 톨게이트돈내고(1000) -직진 - 터널 두개지나 바로 우측으로 내리면 됩니다.
경부고속도로로 오는길 : 톨게이트 지나 조금 직진하다 우측(해운대,도시고속도로)으로 진입 - 터널지나 1~2차선으로 계속오다 - 우측으로내려 해운대방향으로 - 계속직진하다 벡스코 막지나 좌회전(송정방향) - 터널 두개 지나 우측으로 내리면 됩니다.
기차로 오는길 : 구포역에 내려 지하철 3호선타고 - 수영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 - 장산역(종착역)에 내려 택시타고 - 대천공원으로 오면 됩니다.
장산에 대해 ...(스크랩)
부산 장산(634m)
대마도를 가장 가깝게 볼 수 있는 해운대 뒷산
많은 사람들이 해운대는 잘 알아도 장산(634m)은 모른다. 해운대가 장산 자락에 있으므로 유명한 해운대해수욕장은 장산과 바다가 만나는 해변이다.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네는 장산의 이름이 길 장(長)으로 되어 있고, 어떤 사람들은 씩씩할 장(壯) 자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문헌 등의 기록으로 볼 때 양도(괭이밥과의 여러해살이 풀)라는 뜻의 장( )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삼국유사 권3 탑상4 영취사 난에 '재상 충원공이 장산국(동래현, 내산국이라고도 함)에서 온천 목욕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옛날 여기 장산과 동래 일대에 초기 형태의 국가 또는 부족국가가 있지 않았나 생각되는 기록이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 동래현 편에는 건치연혁에 '옛 장산국 혹은 내산국이라고도 한다. 신라가 이 땅을 취하여 거칠산국이라 했고, 경덕왕(신라 35대, 재위 742~765) 때 지금의 동래현으로 고쳤다'는 기록도 있다. 산천 란에는 장산을 상산(上山)으로 기록하고 '현의 동쪽 15리에 있으며 대마도를 바라보기에 가장 가깝다'고 써있다.
그밖에도 동하면 구몬서(조선조 동래부 동하면, 현 해운대구 육삼동-중동 우동 좌동)에도 장산 신당 찬조록과 장산 신당 제수금 식리록에도 모두 양도 장( ) 자를 쓰고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는 장산이나 내산에 관한 기록은 없고 거칠산국이란 기록만 있다. 신라는 탈해왕 때 거칠산국을 치고 신라의 영토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 거칠산은 부산시 남구의 황령산(428m)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결국 옛 부산 지역은 장산국, 내산국, 거칠산국이라 불렀으며, 신라 경덕왕 때 동래라는 이름으로 고친 것이다.
억새밭과 너덜, 그리고 바다 조망
장산은 그리 높지 않으나 우람하고 아름다운 산이다. 여기 저기 넓은 억새밭이 있어 가을에 하얀 새품이 넘실거리고, 그 새품이 햇빛을 받을 때는 눈이 부시고 깨끗하다. 장산은 도 여러 곳에 크고 작은 너덜이 있다. 특히 6부 능선길과 8부 능선길 사이의 큰 너덜은 500~600m대에서 폭 40~50m 규모로 형성돼 있어 장쾌하고 매우 특이한 광경을 제공하고 있다. 누구나 이 너덜의 놀라운 경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장산이 좋은 것은 바다의 조망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에 가슴이 후련하다. 오륙도가 보이고 멋있는 광안대교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 밝힌 바와 같이 장산은 일본 대마도를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이다. 대마도는 불과 50km 거리여서 흐린 날씨가 아니면 쉽게 조망할 수 있다.
장산 바로 아래에 살고 있어 아침저녁으로 틈만 나면 이 산에 오른다는 한오름산악회 윤태재씨는 새벽 등산길에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해를 보는 것이 그렇게 아름답고 신비로울 수 없다고 한다. 특히 옥녀봉에서 맞이하는 해돋이는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있다 한다.
옥녀봉은 남쪽으로 절벽을 이루고 있어 동,남,서향이 확 트인다. 광안대교는 옥녀봉의 훌륭한 조망에 하나를 더하게 되어, 이 다리의 휘황한 조명을 보기 위해 밤에 오르는 사람들도 있다 한다.
장산은 억새와 너덜, 그리고 조망 외에도 숲이 울창하며 계곡과 폭포도 아름답다. 대천공원으로 흘러내리는 계곡은 경관이 아름답고, 폭포사 위 양운폭포(일명 장산폭포)는 어느 폭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암반을 타고 흘러내리는 하얀 물줄기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떨어지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리 높지도 않고 흙산으로 보이는 장산에 그처럼 물 많고 훌륭한 폭포가 있는 것은 뜻밖이다. 이 장산폭포는 해운8경의 제3경으로 되어 있다.
해운대 또한 장산의 일부로 우리나라에서 해수욕장과 온천으로 잘 알려진 명소다. 고운 최치원이 벼슬을 버리고 가야산에 들어가는 도중 해운대에 들러 그 절경에 홀려 머물며 동백섬 남벽에 자신의 자(字)를 따 '해운대'라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운대 이름은 이로부터 유래한다.
대한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해운대 달맞이 행사가 이 장산 자락의 동산에서 펼쳐지는가 하면, 온천도 좋아서 산행 뒤 온천욕으로 몸을 풀 수 있는 것도 이 산의 자랑거리다.
부산 시민들에게는 장산 들머리에 있는 대천공원이 있어더욱 즐겁다. 공원의 상징조형물이 멋있고, 야외무대, 놀이터, 저수지, 체육시설 등이 잘 갖추어져 있어 공원에 들렀다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또 산길이 사통오달이어서 산자락 어디서나 쉽게 자기의 의지와 체력, 그리고 시간에 맞게 산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부산 사람들은 유래가 깊고 아름다운 이 장산을 무척 자랑하면서 장산과 해운대가 풍수지리에 있어서도 명산임을 주장한다. 장산 줄기가 해운대로 뻗친 형국을 옥녀(선녀)가 북을 치는 옥녀격고형이라 한다. 동백섬은 북채에 해당되다고 한다. 또는 옥녀와 선인이 조화를 이룬 와우적초형이라 한다. 누워 있는 소 앞에 풀이 쌓여 있는 형국이라는 있다. 또 한편에서는 가뭄이 들지 않는 장군대좌형이라고도 한다. 장군이 앉을 큰 자리라는 것이다.
대천공원 원점회귀형 산행
장산 산행을 위해 우리는 부산 지하철 2호선 종점인 장산역 2번 출구 밖에서 만났다. 부산시산악연맹 부회장(회장 권한대행) 윤완석 전 교장과 사무국장 양학술씨, 그리고 한오름산악회 윤태재씨, 한국등산클럽 조윤미씨가 그 일행이다.
인원은 적으나 윤 회장과 양 사무국장, 매일 장산을 오르내려 손바닥처럼 훤히 알고 있는 윤태재씨, 각종 등산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 경력이 있는 조윤미씨 등 쟁쟁한 분들이어서 부산이 자랑하는 장산의 멋진 산행이 기대됐다.
우리는 대천공원을 거슬러 올라 삼림욕장 위쪽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폭포사'라 새긴 큰 돌이 선 입구를 지나자 바로 폭포사(선교종)가 자리잡고 있다. 절 바로 위에 아름다운 장산폭포(일명 양운폭포)가 있기 때문이겠지만, 절 이름으로는 매우 특이하다.
폭포 위아래의 개울이 아름답고, 길은 폭포 오른편으로 나 있으며, 길옆에는 아담한 팔각정도 있다. 조금 더 오르면 개울가 제법 넓은 공터에 각종 체육시설이 있고, 많은 시민들이 체력단련을 하고 있었다.
산길이라 하기에는 너무 넓은 길이 체육공원 위로 뻗쳐오르고 있다. 흙길이기는 하지만 돌이 많고 곳곳에 너덜이 보인다. 20분쯤 오르자 개울을 건너면서 길가에 허술하게 보이는 모정원이 있다. 독립유공자 고 강근호 의사의 집으로, 장산 마을을 개척한 분이다. 지금은 미망인 이정희 여사가 이 집을 지키고 있다. 알고보니 이제까지 우리가 걸어온 좋은 길은 산길이 아니라 오래 전 장산 개척민들이 자력으로 만든 길이었다.
한가지 놀라운 것은 길을 내기 위해 흙을 파며 드러난 길 위쪽의 나무 뿌리들을 돌을 쌓아 보호한 곳이 많아 옛 개척민들의 자연에 대한 배려가 잘 엿보였다. 장산 마을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기도원 입구를 지나 마을 갈림길을 지나고 띄엄띄엄 있는 농가 가운데를 지나 길은 큰 등성이(주능선)으로 올라섰다. 그 등성이 바로 오른편 언덕 위가 헬기장이다. 헬기장에 오르면 기장 방면(동쪽)의 산들이 보이고 남쪽 바다도 보인다.
헬기장에서 고스락까지 등성이에는 큰 길이 뻗쳐 있다. 장산 고스락은 국가시설이 있어 오를 수 없다. 그러나 이 등성이길의 바다쪽 길가는 넓은 억새밭이어서 누런 억새밭 위로 바다를 조망하는 멋이 좋다. 윤태재씨는 이 길에서 푸른 소나무 사이로 새벽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돋이를 보는 것이 무척 아름답다고 말했다.
헬기장에서 10분쯤 고스락쪽으로 오르면 왼편에 산을 깎아낸 작은 공터가 있고, 그 공터 옆에 또 다른 억새밭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등성이 큰길에서 키가 넘지 않는 잡풀과 나무 사이를 4~5분 지나면 또 넓은 억새밭이 나타난다. 아쉬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짓밟아 억새가 많이 망가져 있는 점이다. 사진을 찍거나 음식을 먹으려고 길 밖으로 나다니면 억새밭은 쉽게 망가진다.
이 억새밭에서 중요한 산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더 높은 길을 거치며 좋은 조망을 보려면 억새밭 옆에서 비탈을 가로질러 돌아가는 위쪽 8부 능선길에 들어서야 되고, 몇 개의 너덜을 구경하려면 아래쪽의 6부 능선길로 들어서야 한다.
우리는 너덜을 보기 위해 아래쪽 6부 능선길에 들어섰다. 6부 능선길은 비탈을 옆으로 돌며 숲도 지나고 언덕도 넘으며 차츰차츰 아래로 내려갔다.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바다가 계속 내려다보였다.
맨 처음의 너덜은 돌도 작고 규모도 작았다. 이어 나타난 너덜은 돌이 더 컸으며 규모도 더욱 컸다. 세번째 너덜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농짝 크기의 돌이 겹겹이 쌓인 크나큰 너덜이 위아래로 길게 펼쳐져 있다.
오랜 옛날 화산의 폭발로 솟아오른 장산에서 돌들이 오랜 세월 씻기고 조금식 흘러내리며 쌓여 이루어진 너덜. 이는 자연이 만든 경이 바로 그것이다. 이 너덜은 그 연륜에 비해 어리고 어린 나무들은 얼씬도 못하게 하고, 그 오랜 세월 서로 내려다보고 올려다보며 어울려 지내온 바다를 오늘도 바라보고 있다.
독특한 경관의 너덜이 신기해 바위와 바위 사이를 뛰고 타넘으며 즐기고 사진을 찍느라 시간이 꽤 늦어졌다. 너덜을 건넌 뒤 숲속을 지나기도 하고, 잔돌로 쌓은 탑과 작은 골자기의 약수터도 지나 잘록이에 올라섰다. 이 잘록이는 8부 능선길과도 만나는 중봉과 옥녀봉 사이 잘록이로 여기서 중봉을 거쳐 우2동 사무소로 내려갈 수 있다.
옥녀봉은 큼직한 바위들로 쌓인 뾰족한 봉우리다. 남~남서쪽으로 벼랑을 이루고 있어 바다 조망이 좋다. 특히 광안대교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야경도 좋다 한다. 옥녀봉에서 보는 해돋이와 달맞이도 무척 좋은 모양이다.
옥녀봉에서 대천공원으로 내려가는 비탈길은 꽤 가파르다. 하얀 밧줄이 매어져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 비탈이 차차 누그러지다 개울을 건너면 대천공원 맨 위 주차장이다. 산행시간은 5시간이었으나 도중에서 머무적거린 시간을 빼면 4시간이면 될 것 같다.
*산행길잡이
해운대구청에서 만든 등산로는 31가닥이나 소개되어 있다. 해운대구 송정동, 좌동, 우동, 재송동, 반여동에서 오르는 길과, 이 길들과 이어지는 또 다른 길들이 얼기설기 얽혀 복잡하다. 외지인들은 길을 잘 아는 사람의 안내를 받거나 오르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주 물으며 올라가야 한다. 고스락에는 중요 국가시설이 있어서 오를 수가 없고, 그 뒷길을 이용해야 한다. 주요 산길의 들머리를 중심으로 산길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대천공원 기점
*삼림욕장~폭포사~체육공원~모정원~장산 마을 갈림길~헬기장~주능선~억새밭 갈림길~고스락 뒷길(약 2시간 소요).
*공원~옥녀봉~잘록이(운촌경로당 및 6부 능선길과 연결)~중봉~8부 능선길~선바위~고스락 뒷길(약 1시간30분 소요).
운촌경로당 기점 운촌경로당~간비오산봉수대~유격장 끝~잘록이~중봉~고스락 뒷길(약 2시간 소요).
우2동사무소 기점
*동사무소~중봉~고스락 뒷길(약 1시간40분 소요).
*동사무소 또는 삼호아파트~성불사~촛대바위~선바위~고스락 뒷길(약 1시간30분 소요).
옥천사 기점 옥천사~재송2동 갈림길~선바위~고스락 뒷길(약 1시간 소요).
반여초등학교, 관음사, 반여3동, 체육공원, 장천암, 기장내동 등지에서 오르는 길도 있다. 억새밭에서 8부 능선길과 6부 능선길이 옥녀봉~중봉~고스락 뒷길과 연결되어 있다.
외지에서 장산을 오르려 할 때는 대천공원에서 시작해 대천공원에서 끝내는 것이 교통이나 주차 등 여러 면에서 이롭다. 너덜을 보려면 6부 능선길을 거치는 것이 좋다.
*교통
장산 산길의 모든 들머리가 해운대구에 있다. 열차, 고속버스, 관광버스, 승용차 어느 것을 이용하든 해운대로 가서 대천공원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쉽다.
지하철 2호선은 종착역인 장산역에서 2번 출구로 나가면 대천공원이 가깝다. 지하철 1호선은 서면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시내버스는 부산역에서 43번과 86번이 대천공원 근처까지 간다.
*모정원....독립군 강근호의 개척의지 서린 곳
대천공원에서 시작되는 장산 산길은 포장은 되지 않았으나 꽤 넓고 좋다. 더구나 이 길을 내며 뿌리가 드러난 나무를 살리기 위해 정성스럽게 돌을 쌓아 보호한 것이 눈에 띈다. 이 좋은 산길은 장산 중턱 이상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장산 마을 곳곳으로 이어져 있다.
오늘날 장산을 오르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이 산길은 사실은 30여 년 전(1975년 무렵) 장산개척단이 누구의 보조도 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삽과 괭이 등 빈약한 농기구로 만든 2.4km 마을길이다.
피땀이 배어있는 이 길가에 허름한 집 한 채가 있고, 들머리에 오석으로 된 비와 안내판이 서있다. 이곳이 현충시설인 모정원으로, 독립유공자 고 강근호 의사의 만년의 보금자리였다.
강 의사는 일제시대 만주벌판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싸운 북로군정서의 제3구대장으로, 유명한 청산리싸움에 참가했고, 시베리아의 자유전투에도 참가했던 지사다. 광복 뒤에도 국군에 입대해 한국전쟁에 참가했고, 육군 중령으로 예편한 뒤 1963년 여기 장산에 들어와 장산개척단을 조직, 해운대구 좌동 산 1번지 일대 100만여 평을 불하받아 개척에 나섰던 것이다. 이 땅을 불하받게 된 사연도 길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장산을 오르내리며 이용하는 이 길도 그 때 개척한 것이다. 근대화의 바람을 타고 땅값이 오르자 개척민들은 하나 둘 땅을 팔고 떠났지만, 강 의사의 미망인 이정희 여사는 의사가 작고한 뒤에도 손수 개척한 1만여 평의 이 땅을 지키며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모정원 들머리에는 강 의사가 지휘했던 53보병사단 장병들이 뜻을 모아 건립한 기념비가 있고, 강 의사의 약력과 미국에서 받은 동성훈장 등 공로를 소개한 안내판이 있다.
강 의사가 국군 장교로 복무하고 있던 시절 역시 간호장교로 복무하고 있던 이 여사와 결혼했다. 이 여사는 나라 없는 민족의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끼고 나라를 찾고자 몸을 바쳐 싸운 남편을 한없이 자랑스러워하며 추모하고 있다. 또한 현충시설로 지정된 추억이 서려있는 이 모정원과 여기 장산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자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장산으로 오르는 저 길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면서도 옛날 굶주리며 맨 몸으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개척단원들이 어렵게 만든 길이라는 것을 알고 고마워하거나 허물어진 길가에 돌 하나 채워 넣는 사람이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 여사는 옛날 헐벗었던 장산이 나무가 무성해진 것을 무척 고마워하고, 장산은 물이 솟아오르는 산이어서 물이 없는 곳이 없는 명산이라고 자랑한다.
글쓴이 김홍주 소산산행문화연구소 소장
첫댓글 가자!!!!! 부산으로...해운대로...장산으로...
많이들 오이라~!!!
수만아 고생많이 했다...연정아 닌도 가나...?????
간다!!!! 거제에서도 참석을 한다. 가을산행을 같이 함 해보자. 부산에서...
좆타 가을산행,가을은 남자의계절 ,여자들 다죽어서~~~~~~~~~~~~~~~~~
재호야 난 여자 아니고 친구지??....아니다 참 예비 사돈!!
재호는 명희랑 예비사돈인데....
너거끼리 다해라~~~나도 딸이 둘이나 있다!!
이번에 만나면 교통정리 좀 하자....
영재야 낄때끼야지 감히어딜~~~ 명희는 큰애사돈 정미는 작은애사돈.또 수만도 명희와정미가 사돈이라카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