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아쉬가르 파르하디/이란/124분/2011)
여자친구와 함께간 국도에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를 찾아온 관객이 많았다. 이 영화 한 편을 위해서 울산에서 오신 분들도 있었다. 영화를 다양하게 선택할 관객의 권리가 없다는 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참 불편한 일이다. 영화제를 위해 거대한 건물을 짓는데 엄청난 돈을 퍼부울 재정으로 소규모 영화관에 장기적으로 지원해 주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언제나 든다. 부산영화제의 프로그램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영화의 도시라는 이름을 사용하기엔 쪽팔리는 부산의 상황이 아닐까.
차를 타고 양산으로 돌아오면서 주고 받은 여친과 나의 영화평은 서로 상반되었다. 여친의 평은 기대미만이고 너무 평이한 전개였다는 혹평이었다. 나는 그와 달리 별점 다섯개의 호평이었다. 영화는 초반부터 끝까지 밀도 있는 구성으로 이야기를 밀어부친다. 과연 그날의 진실은 무엇일까? 나는 그날의 진실 혹은 반전의 충격을 중요시 하지 않는다. 그 결말까지의 전개를 어떻게 밀고 나가느냐가 관건이다. 사건을 둘러싸고 여러사람의 입장이 팽팽이 맞써게 된다. 차도르와 종교로 상징되는 가부장적 구조가 한국의 모습과 유사해 보인다. 그래서 더 몰입해서 보았는지 모른다. 그러다 문득 나는 누구의 편에서서 이 사건을 보고 있는가 돌아다 보았다. 처음엔 간병인 라지에와 씨민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고 있었는데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나데르의 입장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조금 놀랐다. 같은 남편이라도 라지에의 남편 호얏은 다혈질에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면서 나와 다르다는 거리감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내안에도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이 분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인 문제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시각은 그들 각자의 시각에서 영화를 설명하다보니 점점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보고 있었다.
이 영화를 높게 치고 싶은 또 하나의 이유는 중산층인 나데르의 가부장적인 모습을 흐릿하게 묘사한 것이다. 호얏의 성질을 보면 누구나 그에대한 반감을 가질수 있지만 나데르의 상황을 보면 그의 행동이 그 상황에서 어쩔수 없는 행동이었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남녀평등이 이루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가부장적 구조는 더 교묘해 져서 우리들로 하여금 그 구조를 보지 못하게 하고 있다. <남성성과 젠더>라는 책에서 읽은 개념인데 이제는 남녀차별뿐만 아니라 남남사이에서도 여여사이에서도 계급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란 사회에서 중산층인 씨민은 나름 자유로워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떠난 자리를 또다른 여성하층계급인 라지에가 매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직장여성들이 아이들을 키우지 못하는 상황을 누구 매꾸어 주는가. 그들의 친정어머니 혹은 시어머니이다. 사회복지가 챙겨야 하는 부분을 또다른 여성계급이 채우고 있다. 많은 여성들이 높은 자리로 신분이동을 했지만 그녀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구성하는 비정규직의 대부분은 여성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왜 나데르의 입장에 감정이입을 했을까. 그의 삶도 쉽지는 않은 것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각자의 입장이다. 그러나 영화는 대부분 나데르와 호얏의 삶을 많이 묘사한다. 씨민과 라지에의 삶은 어디로 갔을까? 그날의 진실을 쥐고 있는 라지에라는 캐리터의 성격을 감안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두 여성의 사정과 고민을 두 남자의 시간만큼 할애하지 않는다. 이러한 면때문에 우리는 여러 입장과 구조의 문제가 더욱 교묘해졌으며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게 힘들게 한다. 답을 쉽게 던져주는 영화가 꼭 좋은 영화라고 생각지 않는다. 나도 이 네 사람이 처해있는 구조의 문제를 정확하게 읽지는 못했고 이란에서의 종교의 문제가 가부장제와 얼마나 충돌하고 있는지 그 나라의 사람이 아니라서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종교와 여성주의와 가부장제의 문제를 어떻게 분리해서 연결해서 해석할지도 영화를 본 관객의 몫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의 엔딩이 현명하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이민때문에 별거를 하려는 씨민과 나데르의 갈등은 여전히 남아있었으며 영화의 본 이야기가 그들의 갈등을 해결해주지 못하는데도 동의할 것이다. 너무나 현실적이 이야기. 이란영화를 보고마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조적 현실을 한 번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가 아닐까? 현실적인 이야기를 밀도있게 밀어붙인 그 힘에 나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건 이란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별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