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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 수녀들이 노인요양원 할아버지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2~1226) 정신을 따르는 가족 수도회는 한둘이 아니다.
프란치스칸 제1회에 속하는 작은 형제회(O.F.M.),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O.F.M. Conv), 카푸친 작은 형제회(O.F.M. Cap)와 제2회로서 관상 수도회인 클라라 수도회 외에도 많은 사제ㆍ수녀들이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상과 모범을 따라 설립한 활동 수도회(제3회)가 여럿 있다.
제3회에 속하는 수도회 중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F.M.M.)와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F.M.S.A.)가 각각 1958년과 1980년 한국에 진출했다. 본토인 수도회 중에는 예수성심 수녀회, 거룩한 말씀의 수녀회,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녀회, 프란치스코 전교 봉사 수녀회 등이 있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는 그 이름에서부터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과 정신이 묻어나는 듯하다. 수녀회가 탄생한 곳 역시 모든 프란치스칸들의 영적 고향인 아시시여서 유독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월드컵경기장 인근에 있는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 한국관구를 찾은 날은 봄바람이 제법 쌀쌀한 날씨였다. 관구장 서계순(스텔라) 수녀 안내를 받아 들어간 수녀원 응접실도 쌀쌀한 바깥 날씨와 비슷했다. 청빈서원을 한 수도자들답게 추운 겨울에도 보일러를 거의 틀지 않고 최소한 난방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이미 여러 수도원을 다니면서 경험한 터라 오히려 익숙하다. 하물며 프란치스코 성인의 '거룩한 가난'을 영성으로 이어받은 수녀회는 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어떤 차를 드시겠어요?"하고 묻는 관구장 수녀에게 "가난한 이들은 음식을 가리지 않으니, 하느님이 주시는 음식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가리지 않고 먹습니다"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수녀회에 관해 미리 공부한 내용 중에서 설립자 요셉 안토니오 마르케셀리(1676~1742) 신부가 후대 회원들에게 구체적 지침으로 제시한 가르침이 문득 떠올라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다. 서 수녀도 웃으며 공감을 표했다.
"프란치스칸 영성을 추구하는 모든 수도회가 그러하듯 저희는 최대한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또 편한 것을 추구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욕심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불편하고 부족해도 기꺼이 감수하며 살려고 합니다."
언뜻 이해가 될 듯하면서도 쉽게 와 닿지 않는다. 서 수녀는 예를 들어가면서 설명했다.
"요즘 필수품처럼 돼버린 휴대전화만 해도 그래요. 수녀들도 사도직 활동을 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휴대전화가 필요하거든요. 길에서 공중전화를 찾기도 힘들고, 매번 옆 사람에게 빌려 쓸 수도 없잖아요. 하지만 '휴대전화가 꼭 필요한 경우가 일 년에 몇 번이나 될까'하고 성찰하면서 불편함을 끌어안으려고 합니다. 누가 승용차로 태워준다고 해도 조금 불편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또 신자들이 값비싼 음식을 대접하거나 과분한 선물을 하려고 할 때도 정중하게 사양하지요."
▲ 인도네시아에서 활동 중인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 수녀들. |
얘기를 들어보니 매일 매일이 극기와 절제의 삶이다. 금요일 밤샘기도와 토요 단식 등 일반 신자들이 사순시기에 잠시 실천하는 것들이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 회원들에게는 일상의 삶이나 다름없다.
서 수녀는 "물질적 가난 못지않게 정신적 가난도 매우 중요하기에 수도자로서 신자들에게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봉사하는 자세, 작음과 겸손함을 추구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작음'을 추구하는 수녀회 영성은 사도직에서도 잘 드러난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가 사도직 활동을 펼치는 시설 중에는 대형시설을 찾아볼 수 없다. 결손가정 자녀들을 위한 천사의 집(부산), 가출청소년 쉼터 안젤라의 집(서울), 장애인자활작업장 '원천 그룹홈'과 장애아동 주간보호시설 프란치스코의 집(수원), 무료 양로시설 글라라의 집(논산) 등 모두 소박한 그룹홈(공동생활가정) 형태를 지향한다. 본당 사도직도 도시 외곽이나 시골 자그마한 본당에서 펼치고 있다.
▲ '천사의 집'에서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고 있는 수녀들. |
수녀회는 고유한 사도직을 갖지 않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사는 것 자체로 '할 수 있는 한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 게으르지 말라'는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을 실현한다. 따라서 가난하고 낮은 이들이 있는 곳을 우선적 활동 터전으로 삼는다. 장애인ㆍ아동ㆍ청소년ㆍ노인복지부터 병원사목, 이주노동자사목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펼치고 있다. 이러한 사도직 활동에서도 수녀들은 관리자가 아닌 가족처럼 어려운 이들과 함께하는 것에 가장 큰 의미를 둔다.
"유치원을 운영하고 본당 사도직에 종사하면서도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온전히 하느님을 향해 있는 수도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하느님 사랑을 실어나르는 존재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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