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을 찾아가는 여정”
부산교구 가톨릭 문인협회; 청년 문학 수기 당선작
안락성당; 이혜경 (레지나)
가장 먼저, 제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주신 하느님과 부산가톨릭문인협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제 삶은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청년들처럼 많이 실패했고, 바람에 흔들렸고, 무수히 쓰러졌지만 주님께서는 언제나 저에게 용기를 주셨고 다시 나아가게 해주셨습니다. 흔히 청년은 도전하는 나이라고들 말합니다. 모든 게 새롭고 서툰 와중에 삶에서의 안정을 찾아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많이 도전하고, 더 많이 실패하면서 주님을 원망하기도 했고 냉담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항상 제 곁에서 저를 붙잡아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고 신앙 속에서 굳건히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오늘 제 글을 통해, 제 삶에서 용기를 주시고 저를 이끌어주셨던 주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또한 이 글이 저와 함께 많은 고통을 겪고 좌절에 빠진 청년들에게 큰 힘이 되고 신앙의 씨앗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가 가장 첫 번째로 은총을 경험했던 일은 부산 오륜대 성지에서였습니다. 당시 싱가포르로 유학을 앞두고 있었던 저는 첫 외국 생활을 앞두고 큰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특히나 소심한 성격 탓에 발표하는 것이 가장 어렵던 저에게, 모든 수업에서 토론을 하고 정장을 입고 나와 비즈니스 프레젠테이션을 한다는 싱가포르 유학은 두려움 그 자체였습니다. 유학을 가기 일 주일 전, 어머니께서 오륜대 성지에서 신부님께 안수를 받자고 하셨고 어머니와 함께 미사에 참례하고 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사가 끝나고 밖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던 도중, 참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평소 산이라면 죽도록 싫어하는 제가 갑자기 오륜대 성지의 뒷산 쪽으로 몸이 이끌리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누군가가 제 손을 잡고 이끌며 산길을 올라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신기한 이끌림에 홀린 듯 뒷산에 올랐고 제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순교 성인들의 무덤이었습니다. 무덤 앞 돌에는 ‘너 그 도를 버리지 못할까. 죽어도 버리지 못하겠다.’ 라는 말이 쓰여있었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고 한동안 우두커니 서있었습니다. 정말이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두려움 앞에 주님만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맞선 그 용기를 온 몸으로 느꼈기 때문입니다. 순교성인들이 맞선 두려움에 비하면 제가 마주한 두려움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묘소 앞에 꿇어앉아 기도하자 두렵고 긴장됐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주님과 순교성인이 저와 언제나 함께 하심을 느꼈고, 유학 생활에서도 오륜대 성지에서 느꼈던 큰 용기와 따스함을 기억하며 유학 생활을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경험은 취업 준비를 하며 겪은 일이었습니다. 저는 3년 6개월이 넘는, 남들보다 굉장히 오랜 기간 취준생으로 살아왔습니다. 하고자 하는 뜻이 있었지만 계속해서 실패했고 수많은 문을 두드렸지만 제 눈 앞에서 그 문은 매정하게 닫히기 일쑤였습니다. 그 기간 동안 너무나 많이 힘들었고 점점 냉담하게 되었습니다. 필기 공부를 해야 하니 미사에 가지 않겠다, 곧 자격증 시험이니 미사에 가지 않겠다, 변명거리는 항상 넘쳐났습니다. 필기에 합격해도 면접에 떨어지는 일이 다수였고 상처 입어 쓰러져 버린 저에게 어머니는 수녀님을 뵙고 기도를 하러 가자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수녀님께서는 수녀님의 삶 속에서 느끼셨던 수많은 은총에 대해 말씀해주시면서 하느님께서 저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시는 지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동안 신앙의 눈과 귀를 막고 혼자서 상처만 받고 있던 저에게 다시금 하느님의 사랑이 흘러들어왔던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다시 매주 미사에 참례했지만, 또 다시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스펙’도 전부 갖추고 함께 면접장에 들어갔던 다른 면접자에게서 “어떻게 그렇게 답변을 잘하세요?” 라는 말을 들을 만큼 잘 봤다고 생각했던 면접이었지만 또 탈락하게 되었고 좌절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밤을 새며 면접을 준비했던 일, 50 페이지가 넘는 면접 준비 자료를 들고 어머니와 함께 면접을 보러 가며 설렜던 일, 면접에서 준비한 질문만 나와 소름이 돋았던 일 등 다양한 일들이 스쳐 지나가며 절망감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참 못난 일이지만 자꾸 기도 속에 하느님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토록 바래왔던 꿈을 접고 현실과 타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욱 슬퍼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절망 속에서도 주님은 저를 또 한번 일으켜 주셨습니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필기 시험을 친 후 눈 수술을 받으러 갔고 눈을 뜨지 못하고 누워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여러 신부님과 수녀님의 유튜브 강론을 틀어주셨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귀를 기울여 소리를 듣게 되었고, 신부님과 수녀님의 강론을 매일 듣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매분 매초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 고해 성사의 힘, 성모님의 기적 등 정말 너무나 많은 삶 속에서의 은총을 귀로 듣고 가슴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절망 속에 빠져있던 저에게 수녀님과 신부님들이 삶에서 직접 느낀 신앙의 체험은 큰 감동과 전율로 다가왔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주님께서는, 눈이 안 보이던 저에게 신앙의 눈을 뜨게 해주신 것이었습니다. 그 수많은 강론들을 들으며 울고 웃고 가슴이 먹먹해져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토록 절망 속에 쓰러진 저도 주님께서 꼭 붙잡고 이끌어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던 중, 문자 메시지 하나를 받게 되었습니다.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떠가며 확인한 문자는 ‘필기 합격’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기회를 주신 주님께 또 다시 감사 기도를 드리며 면접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눈 수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면접 준비를 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노트북으로 검색을 할 때도 글자가 번져 보이고, 큰 글자가 아니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면접까지의 기간도 짧아서 찬찬히 준비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저와 달랐던 점은, 진심으로 주님께 감사를 하게 되었고 온 마음으로 주님께서 저를 이끌어주심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면접을 준비할 시간이 없어도, 아무리 눈 뜨는 것이 힘들어도 선글라스를 끼고 모자를 쓰고 기어코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미사에서 복음말씀을 들으며 너무나 기뻤고 주님과 다시 만난 기쁨에 찬미 영광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짧은 면접 준비가 끝났고 서울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면접장에서도 기도를 했고 저와 함께 떨며 면접장에서 면접을 기다리던 수많은 취준생들을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던 주제가 PT면접 주제로 나왔지만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으며 최선을 다해 발표 자료를 구성해 떨리는 마음을 누르며 끝까지 발표를 완성시켰습니다. 집단 면접 등 나머지 면접의 과정들에서도 주님께 의지하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 또 다시 문자를 받게 되었습니다. ‘면접 전형 결과가 발표되었으니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십시오’. 문자를 보고 주님께 마지막으로 기도를 올렸습니다. ‘설사 불합격일지라도, 너무 좌절하지 않고 주님께서 이끌어주심을 믿으며 다시 굳건히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진정시키며 합격자 발표 사이트에 들어가서 처음 본 글자는 ‘축하합니다. 면접 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라는 두 문장이었습니다. 3년이 훨씬 넘는 그 기간 동안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래왔던 그 두 문장이었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기뻐하던 이모와, 엉엉 울며 기뻐하던 어머니와 할머니와 다르게 제 마음은 이상하게도 평온했습니다. 제가 취업하고자 했던 좋은 기업 중 하나에 합격했지만 겸손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은 제가 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한 것이니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어머니와 함께 앉아 묵주 기도를 바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고, 기쁜 저와는 다르게 또 다시 슬퍼하고 있을 불합격한 취준생들을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기도를 하며 하느님께서 왜 그렇게 오랜 시간 저를 단련시키셨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 내내, 하고자 했던 모든 프로그램 참가 및 장학금을 받으며 부모님을 기쁘게 하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바로 원하던 기업에 취업하였으면 분명 교만해졌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주님께서는 긴 시간 동안 저에게 고난을 주시고 쓰러진 저를 일으켜 세워주시면서 저를 단련시키셨습니다. 또한 저를 멈춰 세우시며 저와 함께 고통 받는 주변 사람들을 보게 하셨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오히려 남들보다 긴 시간 동안 혼자서 힘들어 봤기에, 다른 취준생들과 실패해서 힘들어하는 청년들의 마음을 깊게 공감하게 되었고 그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더욱 중요하게는 닫혀있던 제 신앙의 눈을 뜨게 하시어, 주님께서 항상 저와 함께 계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 점이 제 기나긴 취준 기간 중 가장 뜻 깊은 일임을 확신합니다. 앞으로의 삶에서 제가 몇 번을 쓰러지고 넘어지든, 주님의 손을 잡고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변하지 않는 용기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계획하고 계신다는 말처럼, 저는 주변을 볼 수 있는 마음과 함께 제 삶에서의 큰 힘이 되어줄 신앙의 눈을 뜬 후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지금도 힘들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을 제 또래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다시금 신앙을 되찾고 주님 안에서 용기를 얻으라고 말입니다. 제가 경험한 제 신앙의 체험은 절망도 있었고 무수한 고난과 실패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은 하느님의 사랑과 그 안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이제 많은 실패 속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또 다른 청년들을 위해 기도하며 제 이야기를 끝내고자 합니다.
‘주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도전해야 하지만 넘어져서 도전할 수 없는 많은 청년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항상 저희와 함께 계심을 알게 하소서. 주님께서 저희를 사랑하는 눈으로 지켜보고 저희를 이끌어주심을 알게 하소서. 세상의 수많은 파도와 폭풍보다도, 주님의 따뜻한 손길이 더욱 강하기에 주님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음을 알게 하소서. 나아가 주님의 따뜻한 품에 안겨 다시금 교회로 돌아와 교회의 풍성한 미래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첫댓글 오늘 백주간 주간모임, 세실님이 조카의 수기를 읽어주었다. 말씀을 공부하며 언니와 조카에게 살뜰했던 이모 마음에 함께 기도하며 합격을 기원했었다. 지난 봄 드디어 기쁜소식이 전해졌고, 오늘은 그간의 여정에 대한 감동의 사연을 눈시울 뜨거워하며 들었다. 하느님 앞에 겸손하게 신앙여정을 글로 고백하고 나누는 멋진 청년 혜경 레지나, 그녀를 잘 키워낸 어머니 아녜스, 이모 세시리아...모두 아름답고 훌륭한 주님의 사람들이다. 이 고백의 나눔을 들으며 우리 부모님들과 자녀들인 청년들이 자신의 인생과 신앙에 더 진지하고 열정을 갖기를. 아멘! 아직 갈 길을 찾고 있는 나의 장성한 조카들에게도 소리없는 응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