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어느 날 부턴가 이름 모를 새한 마리가 나를 꼬셨다.
옥룡을 들를 때마다 그녀?는 나를 찾아와 요리조리 고개를 비비 꼬아가며 나를 훑어보거나
아니면 창고 안을 휘젓고 다니며 날개를 푸르덕거렸다. 일종의 꼬심 같았다.
내가 본 그녀는 어느 날부터 나에게 소중한 한 마리 휘앙새가 되어 있었다.
어디로부터 날아온 것 일까? 아니면 누군가로부터 버림을 받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어찌 어찌하다가 과거를 몽땅 잃어버린 뒤 자신을 사람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거나…
처음에는 내 눈에 띄지도 못한 채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져버리는 나 홀로 창고에 앉아 있다보면
휘~이~익 들바람처럼 왔다 가버리는 새 한 마리. 그런 모습이 내 열 네살 때였던가
내 가슴을 들불처럼 데워놓고 중학교를 졸업한 뒤 멀리 떠나 버린 풋사랑의 여자아이 같기도 하였다.
비록 떠나가버렸지만 내 가슴 안에서 오래토록 떠나보내지 못한 기다림이 되어주었던,
어젯밤은 갑자기 그녀가 어찌 지내는가 궁금해졌다. 중마동에서 밤 12시가 넘어 정량을 넘어선
술잔 덕분에 내 맘은 어느 정도 얼큰해질 준비가 이미 되어있었으니까. 중마동 시청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느라 서 있는데 부는 바람까지도 나를 살짝살짝 건드려보는 것 같은 끼임새를 눈치로
때렸으니까 하여간 기분은 좋았다. 누군가가 나를 건드린다는 것이, 바람도 사람을 알아보고
건드리나보다. 술배로 두둑해진 아랫도리를 툭툭 몇 번씩 쳐대면 무릎을 팍 꿇을까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경인년의 정월 초사흘날. 중마동의 밤 바람은 상당히 차가웠다. 서울은 이미 폭설로 난장판이 되어버렸다고
하니까. 그렇지만 나는 집으로 가야만 된다. 다급해진 마음에 순천 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연향동 원협 앞
동성 아파트까지 간다며 기사님에게 잘 일러주고는 등받이에다 지긋이 머리를 기대어본다. 머릿속으로
성황동을 지나고 사곡을 지나는데, 갑자기 오살하게 추운 이 밤을 그녀?는 홀로 어찌 지새우고 있을까?
하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이름모를 새, 아니 그녀?의 밤이 몹시도 궁금해졌다.
기사 아저씨! 옥룡으로 갑시다. 뜬금 없는 내 말에 예? 순천가자매요. 아! 그냥 옥룡으로 갑시다.
술 처 먹고 정신머리를 왔다 갔다하는 놈들을 한 두놈 본 것은 아닐테고 백미러로 비친 기사의 표정에서
벌써 나는 그런 취급을 당하고 있음을 알아챘으니까.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돈낼 놈이 가자고하는데
천하없어도 그 곳까지는 가 줘야만하나까 말이다. 기사양반 체념한 듯 그러면 그럽시다.
찝찝한 마음이 좀 가셨는지 능청맞게 기사 왈. 그 곳에 집 한채가 또 있나요? 벌써 눈빛은 숨겨둔 내연녀가
있는 것이 아닌지를 묻는 눈빛이었다. 핸들은 이미 사곡 방향으로 꺾여있었고 가야 할 방향의 좌표는 옥룡으로
이미 맞춰져 있었다. 택시는 기사의 눈길만 쭈우욱 따라가면 될 일인 것이다.
옥룡 어딘가요? 산남리 아세요? 잘~~#$^% 모르~!~ 아 그럼 여기다 내려주세요. 다리를 지나 한적해진
도로를 걸어 올라가는데 사방이 모두다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두해째를 드나들지만 아직은
옥룡땅에서는 이방인일 수 밖에 없는 나. 새벽 2시를 넘어 3시에 들어선 옥룡은 달도 숨어버린 깊은 밤을
아득히 잠 재우고 있었다.
깊은 잠속에서도 나를 기다리며 온전하게 깨어있는 듯한 옥룡면 산남리. 어둠에서 더 빛나는 하얀 농롯길.
내 논으로 가는 농롯길을 들어서며 이 길이 전혀 낯설지 않다. 오래 전 내가 떠나온 고향집 앞 요천수.
요천수 주변으로 잘 다듬어진 상당히 큰 들판이 있었다. 동네에서 멀찍히 떨어져있는 "바람맞잘"
(요천수 가에 위치하고 있어 바람이 상당히 드세어 그리 불렀던 것 같다) 에 있는 새논(우리집 논) 가는
농롯길 같기도 하고, 멀리서도 나를 반기는 듯한 그늘막에 가려진 컴컴한 하우스가 눈에 들어왔다. 해를 넘겨
벌써 세 해 째. 이 길을 들어설 때마다 웬지 모르게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무슨 까닭이었을까?
논 주위를 빙 들러보는데 깊은 잠에 빠져있던 하우스 안의 나무들이 배시시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발자국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잠을 자면서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백운산의 어둠들이 그 안에
고스란히 들어차 있었다. 한 겨울의 깊은 밤. 농막 안에서 나혼자만이 가질 수 있는 온전한 자유. 내 살아온
과거를 뭉뚱그려 이제는 한 평생이라 말 할 수 있을 정도의 반백의 나이가 다 되어버린 나. 남들에게 당당히
내 살아온 전부를 삶이었다거나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이에 들어서면서 찾아오기 시작한 고독감. 고립된
장소에서 내 무언가를 한 없이 비워내고 싶은 충동이 솟구칠 때마다 그런 장소가 필요했다. 가끔씩 미칠듯이
고독해지고 싶은 때면 홀로 지내며 앙금처럼 자리잡을 사유의 움막을 가졌으면 할 때가 있었다.
아마 내가 이 밤을 밟고 찾아간 옥룡이라는 곳이 그런 궁극의 대상이 아닐까 싶다. 농막의 문을 열고 바닥에
자릴 펴고 그 위에다 전기담요를 한번 더 깔고서 두툼한 침낭을 뒤덮은 뒤 잠을 청해본다. 눈을 감자 사방이
고요해졌다.
순간 인기척을 느낀다. 푸드득 푸드륵.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옴을 알수 있었다. 아직은 육감이 기능을
하고 있다. 드디어 그녀?가 날 찾아왔다. 컴컴한 농막 안을 푸드덕거리며 날다가 멈추다가를 반복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런 기척을 무시한 채 깊은 잠에 들것이다. 잠들어 있는 동안 그녀?는 내
주위를 맴돌고 있을 것이다. 어둠 저편 어디선가 고독스레 지켜보고있는 곤줄박이와 나는 닮았다. 어둠으로
가린채로 무언속의 소통을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새벽부터 전화벨이 요란하다. 사라진 지아비를 찾는 벨소리였다. 휴대폰의 스피커를 통해
전해오는 집사람의 목소리는 외박을 한다고 뭐라한다. 그렇지만 하나도 억울하지 않다. 나는 그녀?와 함께
잤으니까… 그 날의 외박은 행복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싸락 눈발이 날리고 있다. 이름모를 새 한마리 그녀?가 만들어준 선물임을 난 알고 있었다.
늦 가을부터 부풀은 꽃대가 꼬시무라지기 시작한 농막 앞의 억새 덤풀이 하얗게 눈꽃을 피우며 이 겨울에
또 한번의 절정을 이뤄내고 있다.
뿌옇게 몰려오는 눈 바람에 백운산 억불봉이 내 코 앞까지 날라와있다. 수묵화 한 폭이 눈바람에
흩날린다. 오늘 아침만은 나도 절정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