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우리나라의 절도범들이 일본의 대마도에 있는 관음사(觀音寺)에서 훔쳐 국내로 반입한 금동관음보살좌상의 소유권 분쟁이 10년을 넘게 끌어오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의 역사·문화계에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키더니 드디어 막을 내렸구만. 원래 이 불상은 충남 서산에 있는 부석사의 소유였으나 어떤 경로를 통해선지 국외로 반출되어 지금까지 대마도의 관음사에 봉안되어 왔다고 한다.
해서리 원고인 부석사측은 불상이 일본이 강압적으로 약탈해 간 것이므로 반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소송을 제기했는데...대법원은 2023년 10월 26일 최종 판결에서 당초 이 불상의 제작 및 소유권이 부석사에 있었음은 인정하나, 현재까지 피고인 관음사가 선의의 소유자로 긴 세월에 걸쳐 소유해 왔다는 사실에 터해 양국의 민법 규정에 따른 시효취득을 인정하여 불상은 피고측에 반환하는 게 맞다고 해석하였다(대법2023다215590).
문화재 약탈의 역사는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침략과 지배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고, 강대국들은 약탈한 약소국의 문화재를 보관·전시·연구하면서 자기 국가의 위대성과 문화적 우월성을 과시하고 있는데...우리나라의 경우도 외국의 침략을 끊임없이 당하면서 문화재의 파괴와 약탈로 인한 피해가 엄청났는데, 아직까지 해외에 남아있는 문화재가 대략 23만 여점에 이른다고 한다.
저자 김경임은 학부에서 미학과를 공부한 예술 전공자로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오랫동안 외교관으로 활약한 특이한 이력을 바탕으로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Ⅰ~Ⅱ』(김경임, 홍익, 2017)를 썼다고 한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근무하는 직업 외교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문화, 특히 약탈 문화재에 대한 깊은 관심과 학문적 연구의 결과로 이렇게 방대한 분량의 책을 저술했다는 게 놀랍다.
약탈 문화재를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내줘야 한다는 주장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연합을 중심으로 제기되면서 약탈의 주체인 선진국들 상당수가 이에 호응하는 추세가 된 게 사실이지만...하지만 자세히 그 내막을 들여다 보면 약탈의 규모에 비해 문화재 반환의 실적은 그저 생색내기 정도일 뿐임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리라.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 책에서 예시한 문화재 반환의 주체 국가로 독일, 이탈리아가 몇 군데 나오지만, 실제 이들 국가들은 해외 식민지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극히 적었던 데다 그것도 대부분 비교적 최근대사에 해당하는 제1~2차 세계대전 중 저지른 약탈이라고 할 것인 바, 따라서 여타 대국들에 견주어 볼 때 문화재 약탈의 규모나 정도가 미약했다고 할 것이다.
세계사를 돌아보면 문화재 반환의 진정한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열쇠는 영국,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일본 등의 대국들이 쥐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에 비해 독일이나 이탈리아는 공국(公國) 집합체로 해외 식민지를 거의 갖고 있지 않았고 기껏해야 세계 1~2차 대전으로 약탈한 문화재들 정도를 갖고 있었으니...사실 서구 제국들이 식민지에서 약탈한 문화재를 모두 원 소유국에 돌려준다면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 미국의 스미드소니언박물관은 쭉정이밖에 남아있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일 터인데, 문화재 반환은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한편 일본의 문화재 약탈의 주체는 대체로 개인 중심이었으며 따라서 약탈 문화재 소장 방법 역시 개인의 장농 속에 깊숙히 모셔진 게 많다고 하는데...책에서 자세하게 서술한 조선 전기 시대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의 소유권 이전의 역사는 가히 추리소설에서나 나옴직한 스릴 넘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이번 금동관음보살좌상에 대한 소유권 분쟁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우리나라에서 반출된 해외 문화재의 국내 전시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이는데...해외에 있는 문화재를 국내에 들여와 일정기간 전시하는 기획전을 통하여 학자들의 문화재 연구와 일반인들의 감상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만, 금동관음보살좌상의 사례맹키로 전시 문화재들은 우리들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강대국들이 약탈해 간 것이므로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우긴다면 어느 누가 기획 전시회에 응할까?
먼 데서 그런 사례를 찾아볼 필요 없이 당장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직지심체요절'은 많은 문화 애호가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소유자인 프랑스국립도서관은 자기네 나라에선 잘도 전시하면서도 우리나라로 반출하여 전시하는 걸 극구 반대하고 있다. '외규장각 의궤'는 선심 쓰듯 영구대여란 그럴싸한 명분으로 잘도 보내주면서도 말이다. 이제 대법원이 금동관음보살좌상의 소유권이 일본의 관음사에 있다고 판시하였으니 머지 않아 '직지심체요절' 원본도 우리나라에서 전시되는 걸 볼 날이 오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