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글쓰기 역사
돌아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이었다.
초등학교 때 '일기쓰기'는 귀찮게 여겨질 때도 있었지만, 선생님의 손글씨로 적힌 피드백을 받는 재미가 있는 활동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써 온 일기장이 한권씩 채워질 때마다 엄마는 일기장 왼쪽 위를 송곳으로 뚫어 리본으로 묶어 보관해 주셨다. 그렇게 쌓인 초등학교 6년 동안의 일기장들은 지금도 우리 집 옷장 어느 한켠에 자리하고 있고, 가끔씩 그것들을 꺼내어 역사책 읽듯이 읽곤 한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4학년의 어느 날, 나는 학교에서 논설문 쓰기 대회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하교 후, 엄마에게 논설문이 무엇인지 여쭈어 보았더니, 엄마의 대답은 이러했다.
"엄마는 논설문이 뭔지 잘 모르니까 동네 서점에 가서 관련된 책을 사와 봐라."
그런 책이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서점을 찾았는데 정말로 초등학생 대상의 논설문 쓰기에 관한 책이 있었다. 나는 그 책을 사서 읽으며 논설문 쓰기의 기초를 배웠고, 책에서 배운 대로 학교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해 글을 썼다. 나름대로 '서론-본론-결론'의 형식을 갖추어 글을 쓴 나는 학교 대회에서 3년간 수상하고, 서울시서부교육청에 작품이 추천되어 두 차례 상을 받기도 했다. 그 당시 다른 친구들은 논술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어, 대부분 기초를 모르는 상태에서 글을 써서 그나마 기본 형식이라도 갖춘 나의 글이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우연찮게도 3년 내내 담임 선생님들의 담당 교과목이 모두 '국어'였다. 선생님들께서 글쓰기에 관심이 많으셔서 나의 글쓰기에 대해 계속해서 칭찬과 격려를 해주셨고, 그 영향으로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대학생이었던 2004년, 인터넷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네이버에 '블로그'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일기쓰기를 오프라인으로 할 것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전환해서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블로그를 시작한지도 어느덧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내 개인 블로그는 일기장 대용이었고, 관심사가 있을 때 정보를 수집해서 쟁여두는 온라인 창고 역할을 수행해 왔다. 소소한 기록들이지만 이것도 쌓이다 보니 나의 20년 역사를 저장하고 있어 나에게는 매우 애틋한 존재이다. 블로그에 기록을 이어가는 이유 중 하나는 먼 훗날 내 딸과 아들이 엄마의 블로그를 보면서 엄마를, 그리고 자신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이다.
나는 지금까지 나의 이런 글쓰기를 일명 '방구석 글쓰기'로 명명해 왔다.
○ 방구석에서 세상으로
꽤나 오랜 세월 개인적인 글쓰기를 해오다가, 작년부터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하고, 노워리 기자단에도 합류하면서 비로소 ‘나의 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글을 쓰면서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고, 비문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면 이제는 독자와 ‘나의 글’ 자체에 대해 의식하면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읽게 된 김정선 작가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유유출판사)는 나로 하여금 글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읽기 좋고 보기 좋은 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글 쓰는 것에 대해서 큰 거부감이 없었고, 오히려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글을 써 왔지만, 글을 쓸 때 ‘읽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처럼 당신은 쓰고 나는 읽습니다.”(전자책 270쪽)
비밀 일기장에 글을 쓰고는 자물쇠로 잠그고, 땅에 묻을 것이 아닌 이상, 내가 쓴 글을 누군가는 읽는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그동안 나는 간과해 왔다.
작가님이 책에서 예문으로 들어주신 많은 비문들과 그에 대비한 올바른 표현들을 보며, 나는 솔직히 맞는 문장을 쓸 자신이 없었다. 지금 그렇게 한 단어, 한 문장을 모두 신경 쓰면서 글을 쓰라고 하면, 아예 안 쓰는 쪽을 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해볼 만하겠다 싶은 것은, “한글문장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풀어내야 한다.”(전자책 272쪽)라는 부분이다. 영어문장도 아닌데 내가 쓰는 문장 중 많은 문장이 되감아서 읽어야 하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제부터는 보다 간략하면서, 읽기에 좋은 문장을 써보고 싶다.
○ '글쓰기'에 대한 나의 생각
나는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 글쓰기에 재능이 출중한 사람도 아니다. 단지, 한글을 익히게 된 순간부터 사소한 것이라도 끄적이며 글을 써온 사람으로, 인생전반의 글쓰기 분야에 상이 있다면 다출석상, 다작상 정도 받지 않을까 싶다.
글을 써온 경험자로서 인생에서의 '글쓰기'는 효용가치를 떠나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활동이다. 글 자체의 완성도가 높아 좋은 평가를 받는 글을 써야만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행위 자체로 삶이 풍요로워진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제 한글을 익히고 있는 딸에게 제일 먼저 권한 활동도 '짧게라도 일기를 써볼 것'이었다. 7살 아이가 쓰는 일기이니 당연히 단순한 문장의 글들이지만 이를 시작으로 우리 아이들의 역사도 기록이 되기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켠이 뭉클하다. 엄마가 기록한 역사와 딸이 기록한 역사가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될 날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글쓴이와 읽는 이가 만날 수 있는 기적이 나의 손 끝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오늘도 나는 글쓰기를 멈출 수가 없다.
첫댓글 오, 브라보!
글도 한 편의 공연이라면 의자에서 일어나 박수치고 싶은 기분이에요!
제가 이 책의 핵심 가이드라인이라고 생각하는 “한글문장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풀어내야 한다."를 챙겨 주신 것도 좋고요. 수많은 규칙보다 이런 직관적인 개념을 갖고 있으면 좋은 문장으로 고칠 때 훨씬 편하실 거예요.
계속 풀어내는 그 규칙만이라도 지켜낼 수 있으면 훨씬 나은 글이 될 수 있겠어요! 이번에도 한수 배웠습니다^-^
저도 초딩시절 일기장 아직도 갖고 있어요!! 중간중간 제목 달아서 단락 나누는 거 아이디어 좋아요. (나도 해봐야징) 개인의 기록이 결국 역사다. 라는 생각 극공감합니다. 개인의, 국가의, 민족의 기록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노무현 대통령 생각이 급생각나네요. 조선 600여년의 실록을 가진 한국인이라서일까요흐흐흐흐, 우리의 소중한 기록 DNA를 계속 유지 발전 시켜보아요.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말씀을 하셨군요*-*
날이 갈수록 기록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함께 해요!!
"엄마가 기록한 역사와 딸이 기록한 역사가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될 날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이 부분 너무 감동적이에요 샘~
초등학교 일기장 아직 갖고 있는 1인 추가요..ㅋㅋ이사때마다 한번씩 보는 (전세살이라 주로 2년에 한번은 보는) 일기장을 애들이 그리 좋아하네요. 웃기다면서요^^
우와 저도 아이들한테 보여줘 봐야겠어요^-^
초등학교 때 일기가 이리도 중요하네요~
알고보니, 이 곳 초등일기 보유자 클럽인 듯요ㅋ
저도 갖고 있슴돠
우왕~♡
역시 뭔가 숨은 내공이 있어보이던 샘은 글쓰기를 어릴때부터 꾸준히 해 왔군요^^ 마지막 문단이 넘 감동입니다. 딸과의 교차점을 찾았네요. 딸도 샘닮아 야무질 것 같아요. '시간과 공간을 글쓴이와 읽는 이가 만나는 기적' 난 그냥 뭔가 얻어가려고 읽는데....저도 글쓰기에서 좀 더 의미를 찾아봐야겠어요.
딸이랑은 그게 될 것 같아요 아들은 모르겠습니다 허허허
마지막 결론이 아름답네요. 시공간을 뛰어넘어 글쓴이와 읽는 이가 만나는 기적이 내 손 끝에서 시작된다니... 선생님이 이렇게 문장으로 써주시니 글쓰기가 이토록 아름다운 행위라는 걸 새삼스럽게 떠올렸어요. 저도 부지런히 기록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다 쓴 일기장에 구멍을 내서 리본으로 묶어주시는 것만 봐도 샘 어머님께서 이미 문학적 소양과 감수성을 갖고 계실 거 같아요. 그 씨앗이 선생님께도 이어진 걸 테고요. 비단 논설문 형식대로 쓸 줄 알아서 교육청 상까지 받지는 않을 거 같아요. ㅎㅎㅎ
*방구석에서 세상으로
단락을 보면 각 문장마다 '생각해 보게 되었다.생각이 들기 시작했다.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등으로 끝나요. 특히, '나는' '내가'등의 주어를 자주 사용해서 글쓴이의 강한 자의식, 굳은 마음 같은 게 드러나서 힘있게 느껴지기도 해요. 한편 반복적 표현은 의미를 묻히게 만드니 최대한 다른 동사로 바꿔주고 '나는'도 가급적 줄이는 게 좋습니다. 저는 이렇게 바꿔 보았으니 한 번 읽어봐 주세요.
https://blog.naver.com/noworry21/223111737836
명희 샘은 '적의를 보이는 것들'이나 '있다고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는' 같은 이 책 목차만 기억하고 글을 퇴고하셔도 훨씬 더 간결하고 읽기 좋은 글을 쓰실 거예요. 이미 풍성한 경험과 생각을 갖고 계신데다, 글쓰기에 대한 사랑도 충분하시니까요. 온마음으로 응원합니다, 퐈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