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6장 1-14절
찬송가 446장 '주 음성 외에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주전 597년경에 이스라엘의 남유다에 2차 침공을 하여 많은 사람들을 바벨론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그 때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에스겔 선지자는 바벨론에 있으면서 선지자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 왜 이스라엘의 남유다가 바벨론을 통해 심판을 받고 무너지게 되는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예언한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인 6장 말씀의 중심내용은 1-7절까지는 우상숭배로 인한 심판에 대해, 8-10절까지는 살아남은 자들의 한탄함에 대해, 11-14절까지는 심판을 통해 자신을 알리시는 여호와로 볼 수 있습니다.
우상 숭배로 인한 심판(1-7절)
(3) 이르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께서 산과 언덕과 시내와 골짜기를 향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칼이 너희에게 임하게 하여 너희 산당을 멸하리니
사무엘 시대에는 산당이 부정적인 장소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왕국이 분열되고 북왕국 이스라엘을 세운 여로보암 왕(BC 930-909년)이 벧엘과 단에 제단을 세우고 산당을 지은 이후로 ‘산당’은 상당히 부정적인 이미지, 즉 우상 숭배의 장소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주로 높은 산꼭대기에 자리잡은 ‘산당’이라는 단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높은 곳’ 입니다. 우상 숭배를 하던 그들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높다고 스스로 교만했습니다. 높다고 스스로 자랑하던 자들이 이제는 하나님을 통해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철저하게 낮아지게 되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4) 너희 제단들이 황폐하고 분향제단들이 깨뜨려질 것이며 너희가 죽임을 당하여 너희 우상 앞에 엎드러지게 할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는 ‘너희 제단들’, ‘분향 제단들’, ‘너희 우상’이라는 표현을 통해 강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제단을 쌓고, 건물을 세우고 그곳에서 우상을 섬겼습니다. ‘분향 제단’ 이라는 단어는 ‘태양 기둥’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며, ‘제사를 드리는 건물’이나 ‘예배실’도 함께 포함 합니다. 즉 하나님은 우상과 관계된 것은 제단이든 건물이든 모두 다 철저하게 부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는 큰 잘못을 범했습니다. 그들은 제단 앞에서 제사를 드리며 자신들의 ‘호의호식’만을 빌었습니다. 우상 숭배를 극도로 싫어하시는 하나님은 우상 숭배자들을 이제 철저하게 벌하시고 그들이 ‘호의호식’을 빌었던 제단 주변에서 죽도록 하여 우상 앞에 엎드러진다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는 평안은 얼마나 허무하게 사라질 수 있는지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을 열심히 잘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하나님이 아닌 결코 영원하지 않은 다른 무언가에 우리들의 인생을 맡기고, ‘호의호식’만을 구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수 있어야 겠습니다. 하나님은 높아진 것을 얼마든지 낮추실 수 있으며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낮아질 때, 우리를 높여 주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만든 우상에 아무리 집착하고 열심히 빌어도 결코 영원한 평안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의 한탄(8-10절)
(8) 그러나 너희가 여러 나라에 흩어질 때에 내가 너희 중에서 칼을 피하여 이방인들 중에 살아 남은 자가 있게 할지라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중에도 긍횰을 잊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살아 남은 자가 있게 할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살아 남은 자들의 특징은 악에 대하여 이제는 한탄하며 회개하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9) 너희 중에서 살아 남은 자가 사로잡혀 이방인들 중에 있어서 나를 기억하되 그들이 음란한 마음으로 나를 떠나고 음란한 눈으로 우상을 섬겨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을 기억하고 스스로 한탄하리니 이는 그 모든 가증한 일로 악을 행하였음이라
살아남은 그들은 예언되었던 모든 재앙을 겪었기 때문에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고 스스로 한탄하게 됩니다. 남은 자들은 그제서야 하나님이 진정으로 어떤 분이신지 깨닫게 되고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끔찍한 징계를 당한 뒤에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볼 때 참 안타깝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처럼 이러한 우를 범하지 말고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분명히 깨달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심판을 통해 자신을 알리시는 여호와(11-14절)
(1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는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말할지어다 오호라 이스라엘 족속이 모든 가증한 악을 행하므로 마침내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망하되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말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탄식의 행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행한 ‘가증한 악’으로 인해 하나님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심판 하십니다.
11절의 ‘가증한 악’에서 ‘가증하다’는 단어는 ‘역겹다, 혐오스럽다’에서 왔습니다. 즉 ‘가증한 악’은 ‘역겨운 죄악들’ 입니다. 하나님이 극도로 싫어하시는 우상숭배가 얼마나 역겹고 끔찍한 것인지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12) 먼 데 있는 자는 전염병에 죽고 가까운 데 있는 자는 칼에 엎드러지고 남아 있어 에워싸인 자는 기근에 죽으리라 이같이 내 진노를 그들에게 이룬즉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대상은 참 광범위합니다. ‘먼 데 있는자, 가까운 데 있는 자, 남아 있어 에워싸인 자’ 모두가 심판의 대상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14) 내가 내 손을 그들의 위에 펴서 그가 사는 온 땅 곧 광야에서부터 디블라까지 황량하고 황폐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지역적으로는 ‘온 땅 곧 광야에서부터 디블라’까지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합니다. ‘디블라’는 열왕기하 23장 33절에 나오는 ‘리블라’로 추정되는 지역으로, ‘하맛에 있는 북쪽 지경의 도시’ 입니다. 그러므로 ‘광야에서부터 디블라까지’라는 표현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남과 북의 순서만 바뀐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모든 지역이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모든 지역, 모든 자에게 임할 것이고,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10) 그 때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이런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겠다 한 말이 헛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세상의 여러 상황 속에서 어려움을 겪어봐야 무엇이 옳은 길인지 깨닫게 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오늘 그들의 교만함과 우상숭배로 인해 심판을 받게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며 우리의 모습들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정말 몰랐던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애써 무시할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정도 쯤이야 하나님도 이해해주실거야!’, ‘이 정도 불순종 한다고 해서 바로 벌하는 하나님은 아니시지!’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이용 할 때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우리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계속해서 무시한다면, 오늘 말씀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결국 끔찍한 파국을 맞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삶의 목적과 이유 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경외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친밀하심 속에서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함께 지어져 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때로는 우리가 교만하여 내 마음 속 은밀한 곳에 나만의 산당을 세우고 하나님 보다 다른 것들을 더 의지하며 살아갈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때 늦은 후회와 한탄을 하지 않도록 역겨운 죄악들을 멀리하기를 원합니다. 더욱 하나님께 집중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들의 마음과 생각들을 끝까지 붙들어 주시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친밀하심 속에서 함께 지어져가도록 저희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