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하'- 무릎 아래 - '에서 노는 한새
혹시 "부모님 슬하를 떠나서"라고 할 때 쓰는,'슬하(膝下)' 라는 말의 뜻을 아십니까 ?
"무릎 슬' 아래 하", 그러니까 '무릎 아래'라는 뜻입니다.
추석 전날, 하루네 가족이 친정-물론 우리집입니다. ^^^- 에 들렀습니다.
결혼한 지 5년 조금 넘었는데, 두 식구가 지금은 네 식구로 늘어났습니다.
네 살인 한결이는 다 컸는지 '하비', '하미'한테 키스하기가 쑥스러운 눈치를 보이고,
돌이 가까운 한새는 '하비'인 내가 안자마자 낯을 가려 냅다 울기 시작합니다.
큰 놈 작은 놈 둘 다 눈치가 말짱한 게 대견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하여튼 기분은 '거시기'입니다.
어미인 하루는 밀린 잠을 잔다고 침대방으로 사라지고,
한결이는 제 아비와 권투를 하느라고 꺄륵거리고,
홀로 버림 받은 한새는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 옆에서 기어다니도 하고,
아내 다리를 잡고 일어서기도 하는데,
그 장면에서 '슬하'라고 하는 단어가 떠오른 것입니다.
* '슬하' 는 사랑입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태어나서는 부모님 무릎 아래서 기어다니다가,
다리를 잡고 무릎 위로 얼굴을 드는 성장 과정을 거친다는 당연한 사실이 가슴에 사무쳐 오는 것입니다.
부모의 보살핌이 없다면 누구도 제대로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추석 전날 친정을 찾은 딸네 식구들,
특히 아내의 무릎 아래에서 꼬물거리는 한새의 모습에서 진하게 느껴보는 것입니다.
지난 일요일에는 형님 가족과 어머니 산소를 찾아가 미리 성묘를 했습니다.
지난 봄, 한식날 갔을 때는 잡초를 뽑으면 흙까지 부스러져 잔디를 더 심어야 하나 걱정했었는데,
이 가을 다행히 잔디가 골고루 잘 살아 푸른 봉분이 마음을 기쁘게 했습니다.
형수님께 절을 권하며 조카들의 취직과 결혼이 잘 이루어지게 빌라는 형님의 말씀은,
바로 형님 자신의 부탁이라는 생각에 잠시 마음이 메어왔습니다.
저 세상에 계신 부모님의 은덕을 이 세상 자식이 빌고 있는 끈끈한 인연이,
지금 '슬하'라고 하는 두 글자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나 봅니다.
추석 날 아침에는 할아버지 산소를 찾아 갔습니다.
헌화를 하고 소주 한 잔 따라 올린 후 절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형님처럼 기원의 말이 솟아 나왔습니다.
"화목한 집안을 만들어 주시고, 건강도 지켜 주십시오."
두 아이의 할아버지인 내가, 저 세상에 계신 할아버지께 말씀을 건네자니,
진짜 할아버지인 나는 아직까지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라나는 어린 손자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칡덩굴을 베어내고, 잡초를 뽑고,
부석부석해진 산소의 흙을 삽으로 다져가면서도 마음은 할아버지께 계속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추석 다음날은 아차산에 올랐습니다.
대성암 아래 샛길을 지나 '내 자리'라고 이름 지은 바위에 앉아,
저 아래 온달샘 옆에 서 있는 석탑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나무에 가려 석탑 윗 부분만 보이지만 제단이 분명한 네모난 터에서,
두 손 모아 소원을 빌었을 옛날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을 쉽게 떠올려 보았습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나와 똑 같은 사람들,
- 영원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잠깐 이 곳에 머물렀고, 머무르며, 머무를 사람들. -
감상(感傷)에 젖다 보니 내 슬하에서 꼬무락거리는 손자들이 있는 산 아래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슬하'는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