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인 역사로 밝혀지는 단군의 참 모습은?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 민족을 바로세우는 지름길이란 것을 알면서도 이제껏 제대로 찾을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국난에 빠졌을때는 우리의 근본을 세우고자 하는 역사정신이 다시 살아나곤 했지만 낭설(浪說낭설)만이 난무할뿐 한민족의 근본을 바르게 말하는 것을 제대로 배워본적이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에서는 과연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정확하게 말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며, 우리는 보통 역사반만년을 말하면서도 사실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기껏해야 기원전 1세기에 삼국 즉 신라, 고구려, 백제가 나타나서 삼국의 서로 싸워가면서 어느때는 고구려가 또는 백제가 결국에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고 하는 역사이야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나올뿐 그 이전의 우리가 어디서 나서 시작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적은 없었다.
가끔 위만 조선이라든지 고조선이 나오지만 그 고조선의 영토가 어디까지이고 고조선에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삼국유사에 우리민족의 시조는 단군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실체를 발견할 수 없어서 그냥 그러하겠지하는 생각으로 개천절 노래에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니.....이란 가사가 있고, 개천절마다 노래를 불렀지만 과연 단군이 누구신지 또 누구를 가르키는지부터 알지 못하면서 그렇게 불러왔다.
우리는 항상 우리 역사를 이야기할 때 반만년 역사위에라는 말을 되내곤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록은 B.C 57년이 그 한계로 신라의 박혁거세 임금이 서라벌의 첫번째 임금으로 등장함으로써 역사기술이 시작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 이전의 한민족의 역사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한다.
이 문제를 속시원히 해결할 수 있는 기록의 역사책은 아직까지 없으며, 오직 삼국사기보다 100여년 뒤에 나온 삼국유사에 고조선이 단군에 의해 중국 요임금과 같은 시기에 아사달에 도읍하여 조선이 열렸다고 기술하고 있다.
막연히 우리나라 학자들은 단군조선이 존재했는가 안했는가?오랫동안 시비해오다가 근래에는 압록강을 넘어서 요동반도 또는 요수를 건너서 요서에서부터 대동강까지 걸친 지역이 고조선이라고 하고 있는데, 아직 고조선에 대한 실체는 그냥 썰(說)로만 있을뿐 확실한 근거는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그것을 밝힐 수 있는 것은 문헌으로 밝힐 수 있는 것은 중국 최초의 인문지리서이자 역사서인 「산해경」과 신라인의 족보가 적혀 있는 「문무대왕비문」이며, 이 두 고전을 제대로 읽고 면밀히 살핀다면, 고조선이 한국과 중국과의 어떤 연관성을 가진 역사를 말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고, 또 고조선이 동방문명의 시초를 알리는 고대사회의 실체였다는 것을 약간이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되면 잃어버린 역사중 삼황오제본기는 고조선의 역사가 될 것이고 하, 은, 주, 진나라 역사속에서도 당연히 고조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결국 漢과 三國 즉, 고구려, 백제, 신라는 진나라가 망해서 분리된 것을 알게 될 것이며, 삼국사기에 나오는 秦之亡人(진지망인)이라는 말도 어떻게 나왔는지 명확하게 알 것이다.
"일본인은 조선인이 아니다라는 말은 한국인과 중국인도 역시 조선인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며, 적어도 역사가 일어나고 거의 진(秦)나라가 망하기 전까지의 2600여년간은 지금의 한, 중, 일은 같이 대륙에서 살았으며, 역사가 일어나는 역사초기에 공동의 조상으로 시작되었음을 전제하고 동양의 역사를 풀어나가야 고조선의 실마리를 풀어낼 수가 있다.
단군신화는 역사적 실제가 아닌 단순한 이야기일까?
우리가 단군신화에 보여진 것처럼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환웅과 곰인 웅녀사이에 난 곰자식이라는 것이 이치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말이다.
신화는 신화일 뿐이고, 신화는 할머니가 겨울밤에 화롯불에 앞에 앉아 할머니에게서 듣는 그냥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그 삼국유사에 나온 단군이야기를 마치 실제 우리처럼 이 땅에 살고간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하는 것도 좀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다.
삼국유사에는 좀 황당무계로 꾸며진 것 같아서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이야기로 우리 뿌리 역사를 찾아가는 것은 좀 무리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아니땐 굴뚝에 연기가나지않는다는 말처럼 단군이 과연 누구를 말하는지 또 그 단군이란 실체가 확인될 수 있다면, 그 시대는 몇 천년전 혹은 몇 만년전의 이야기인가 살펴볼 수가 있을 거야.
그것은 미리 섣불리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반만년역사라고 말하니까 대충 5000년전의 역사라고 정하고, 그 역사과정은 사람들이 꾸준히 지속적인 삶의 과정을 말하고 있는데, 단군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역사를 추정해본다 하더라도 夏하나라나 殷은나라는 명확히 전해지고 있는 사료는 없으니까 단군시대가 존재했다고 치더라도 주나라와 춘추전국시대때도 여전히 만주강역에 존재했었다면
그 문헌으로 전해지는 내용이나 유물, 유적이 있을텐데,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만 역사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관심이 있다면, 단군은 허구이고, 단군을 말하는 역사는 전부 거짓말이라고 단정할 수도 있을 수도 있을지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우리 고대사를 말하면서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은 정사인 삼국사기와 야사인 삼국유사를 들고 있는데, 고대역사를 말하는 역사책은 일제때 많은 역사책을 불살렀다는 뚜렷한 증거가 있고,
또 몽고 침입때 많은 사고(史庫) 즉 역사책을 보관하던 곳이 불에 타 우리 고대사를 볼 수 있는 것은 다 소멸되고, 불행중 다행스럽게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두 책만 우리에게 유일하게 고대사를 볼 수 있는 역사적 자료가 되고 있다.
삼국사기는 신라, 고구려, 백제를 순서로 기술하고 있지만 삼국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으면서도
신라본기 제1 ‘시조 혁거세 거서간’ 편에 "예전에 중국사람이 진(秦)나라의 난(亂)에 시달려 동으로 온 자가 많았는데, 대개 마한의 동쪽 여러곳에 흩어져 살다가 이에 이르러" 라는 말뿐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명확한 이야기는 못해 주고 있다.
그리고 삼국유사에는 《후한서》에 말하기를, "진한(辰韓)의 노인들이 ‘진(秦)’나라의 망인(亡人)들이 한국(韓國)으로 가므로.. 마한이 동쪽땅을 떼어주자 서로 불러 무리를 이루었는데, 진나라 말과 유사하므로 진한(秦韓)이라고 한다는 말을 유추할 때 진(秦)나라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삼국유사에서는 첫머리 서두 기이(紀異) 제1편에서 중국의 시원의 역사에서 왕들이 신이(神異)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이한 가운데서 나온 것이 괴이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고 항변하면서 고조선의 시작을 곰과 호랑이 이야기로 곰은 인내심이 많아 100일동안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지만
호랑이는 참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고, 곰이 사람이 된 웅녀의 짝이 없어 환웅이 잠깐 사람으로 변신하여 웅녀와 혼인하고 아들을 낳으니, 단군왕검이라고 불렀다고 하면서, 단군왕검이 중국의 요임금과 같은때에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 불렀다고 했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도무지 곰과 천신인 환웅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는 이야기도 믿지 못할 것 같고, 그것을 상징성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어떤 역사적 근거를 토대로 말하는 것인지,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조선이라는 나라는 어디에 있었고, 조선의 서울인 과연 아사달은 어디에 있었는가를 확인할 도리가 없다.
그럼 우리는 우리가 보지 않았고, 기록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시원역사인 조선 즉, 고조선을 찾아가는 것이 그처럼 불가능한 일일까?
삼국사기와 그 삼국사기가 쓰여진 뒤 100년후에 지어진 삼국유사에서는 황당무계한 곰이야기이건 간에 거기서 고조선을 찾을 근거를 마련해 주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삼국유사에 단군은 조선이란 나라를 1500년동안 다스리고, 아사달에 돌아와 은거하여 산신이 되어서 1908세까지 살았다고 하는데, 도저히 사람이 1908살까지 살았다는 것도 1500년동안 다스리는 것이 도저히 납득이 되지않으니까 환단고기를 언급하며 단군은 지금 한 나라의 가장 높은 사람은 대통령이라고 하듯이 단군은 47대까지 이어진 왕의 직책명이었다는 말을 아 그렇구나!
하고 그러면 어디에 위치한 왕조였는가하는 물음에 바이칼에서부터라든가 만주대륙이었다는 말을 하는데, 그 흔적조차 없으니 그 또한 믿을 것이 못된다.
그러면 아예 단군이라는 말은 일연스님이 그냥 이야기식으로 풀어낸 옛날 이야기일뿐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너무 성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땅에서 단군의 모습을 보다.
많은 학자들이 단군을 올바로 찾아 우리 민족의 원류를 연구했지만 김재원박사는 1947년에 낸 그의 논문
"단군신화의 신연구" 에서 서문에서 「단군신화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관심은 지대한 바 있으나 학자들에 의한 이의 해석은 그 류가 천태만상이다.
김재원박사는 일찍이 중국 산동성에 있는 무씨사당의 화상석을 고고학적 견지에서 면밀히 분석 검토하고 그 결과가 단군신화의 내용과 8〜90%이나 부합된다는 결론하에 고대 북중국에서 전래되어 오던 설화와 단군신화와의 어떤 연관성을 찾아 보려하였다
라고 하면서 논문을 써 나갔는데 단지 심증(心證)만 내비칠뿐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단군을 말하고 있는 고증학적인 자료가 중국산동성에 있는 무씨사당의 화상석을 고고학적인 견지에서보면 여기에서 단군신화의 근거를 찾을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의 여지를 남기고 있기에, 그러면 단군을 만주나 바이칼호 지역이 아닌 중국의 산동지방 근방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김재원박사가 단군을 말하는 그 근거가 중국산동성에 있다는 근거를 제시할 당시 고금문을 보고 연구했더라면, 이 민족의 시원을 명확히 밝혔을는지도 모르나,
단군신화의 신연구란 논문이 나온 것이 1947년이었고, 그 당시에 고금문에 대한 연구가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기에 그냥 고고학적 유물의 추정정도밖에는 되지 않았으나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20세기들어 중국땅에서는 4500여년전의 문자가 새겨진 청동기가 출토되어 계속 발견되고 있고, 발굴된 4500여년전의 청동기에 문자가 새겨져 있고,
그 문자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전설시대로 알고 있는 중국 오제시대에 대한 기록이 나오고, 그 시대가 바로 고조선이고, 고조선 역대 왕들이 태어나고 장성하고 또 벼슬자리에 오를때 붙여지는 씨칭이 나오는 과정이 적혀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것이 문자창제의 시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