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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이야기 (18)
목장은 그리움을 쌓는 곳입니다.
이미 다 큰 어른들이 때로는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서 그때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콧물 질질 흘리며, 때에 전 소맷자락으로 콧물을 훔치면서 놀던 시절, 해가 지는 줄 모른 채 노는데 정신이 팔려있던 우리에게 어둑어둑할 무렵이 되어서야 어무이(어머니)가 밥 먹으라고 부르시면 손바닥의 먼지를 털면서 그제야 집으로 뛰어가던 유년시절의 추억이 있으며 그때의 이야기로 재미있어하곤 합니다.
개인적으로 목사 안수를 받을 즈음의 첫 번째 목회지가 어린 시절의 추억만큼이나 아련한 그리움으로 떠오르곤 합니다. 그때의 성도들은 다 합쳐도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작은 시골교회였고, 그곳에서 모든 역할을 감당해야 했기에 늘 바쁘고 시간에 쫓겼습니다. 그래도 해마다 여름이면 열댓 명 되는 학생들과 청년들을 합쳐서 하기수련회라는 이름으로 바닷가나 계곡을 찾아 나서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교회 승합차 한 대에 우리가 비집고 앉으면 가고 싶은 곳은 어디나 달려갈 수 있어 좋았습니다. 어느 여름, 바닷가에 텐트 몇 개를 치고서 한 자리에 빙 둘러앉았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바닷가 모래밭에 누워서 밤하늘의 별을 이불 삼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의 꽃을 피웠던 시간이 있습니다.
그날 밤을 꼬박 세우면서 나눈 이야기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우리는 참 좋았다는 말을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에도 하곤 합니다. 그때의 남자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 직장생활을 하고, 그때의 여학생들은 시집을 가서 아이 엄마들이 되어 있는 안부를 듣곤 합니다. 요즘도 가끔은 그들과 함께 새벽송을 돌았던 추억의 이야기, 어린 중학생이면서도 초등부 교사를 했던 여름성경학교의 이야기는 마치 흑백사진처럼 떠오르곤 합니다. 그렇게 순수했던 낭만의 계절들은 지나고 보니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이었는지 감회가 새로워지고 오늘을 더 힘있게 만드는 에너지가 되곤 합니다.
생각해 보면 인생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지나온 날의 그리움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인 것 같습니다. 인생의 길을 여행하면서 ‘우리의 목장이 바로 그런 곳이구나’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그렇지요? 함께 교회를 섬기면서 목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만난 우리는 오늘도 울고 웃으면서 나의 아픔을 내놓고 미래를 인도하실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듭니다. 오늘, 우리의 이야기(기도)가 훗날에 아련한 그리움으로 되살아날 때 헛헛한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추억의 창고가 될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밤이 깊어지는 줄 모르고 나누면서, 서로의 손을 잡아 주면서 힘든 길을 함께 걷는 우리는 분명 그리움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난 어느 날엔가 우리는 오늘의 이야기를 아련한 그리움으로 말하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이야기 할 것입니다. 목장에 있었기에 나는 견디어 낼 수 있었고, 그 목장은 내 인생의 추억의 창고였노라고, 그리움을 말하고, 미소 지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목장은 그리움이 차곡차곡 쌓이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