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고흐] 마음에 눈 댄, / 아! 문수보살
▲ 반 고흐의 자화상들
‘성직자의 길을 열망했지만 성직자도 못되고,
반편이 화가가 되어 미쳐가다 결국 서른일곱 살에 자살로
삶을 마감한 ‘광인’(狂人·미친 넘) 그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67점의 그림이 서울 덕수궁 옆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나’를 알고. 전시회에 가기 전에도 고흐는 내겐 지인(知人)이다.
여러 개의 고흐 자화상을 통해. 그는 많은 자화상을 남겼다.
그 자화상에 담겨진 고흐는 다양하다.
회색 중절모를 쓰고 양복을 쓴 링컨 같은 모습의 고흐와
깊은 고뇌의 눈빛을 간직한 성직자 같은 고흐.
상대방을 예리하게 꿰뚫어보는 듯이 날카로운 고흐,
점점 강퍅해져가는 기운이 느껴지는 고흐,
밀짚 모자를 쓰고 파이프를 문 농부 같은 모습의 고흐,
자폐아처럼 마음의 문이 잠긴 듯한 고흐,
자신의 귀를 잘라버린 채 얼굴에 붕대를 감고 있는 고흐,
환각 상태에서 넋이 나간 듯한 고흐….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어느 순간에도 그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희망을 간직한 순간에도, 절망적인 순간에도,
미쳐가던 순간까지도. #‘너’를 알고. 서울시립미술관의
‘반 고흐’ 전시장에 들어서 고흐의 첫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고흐를 보았다. 그리고 이 하나의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충만했다.
그 그림에 어떤 빛이 있거나 충만감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 그림이 너무도 슬퍼서도 아니었다.
그 그림 속의 여인의 슬픔과 아픔을 ‘알아주는’
고흐의 그 마음이 너무도 ‘반가운’ 때문이었다.
발가벗은 여인이 팔속에 고개를 묻고 있는 그 그림의 제목은 ‘슬픔’이다.
그림 속 여인은 창녀 크리스틴이다.
젖가슴은 쳐져 있고, 배는 임신해 불룩하다.
몸을 파는 것만으로도 고뇌가 적지 않을 그는 임신까지 했다.
그러니 막다른 골목에서 몸 파는 일조차 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얼굴을 파묻고 있어 그 얼굴과 마음이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 그림에선 절망에 빠진 한 여인의 아픔이 느껴지고도 남음이 있다.
고흐는 그 그림을 그린 뒤 그녀와 동거했으며
생계도 잇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녀의 아이들을 잘 돌봤고,
잘 어울리며 모처럼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이어진 그림 속에서도 반가운 것은
고흐가 사람들의 ‘진짜 표정’을 담아냈다는 점이다.
화가도 사진가도 울음이나 웃음과 같은
극적인 표정만을 담아내려 애쓴다.
그래서 보통사람들도 통상적인 표정을 담는 것보다
“치즈~”, “김치~” 해가면서 연출된 표정을 담아내려 애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의 대부분은 덤덤한 표정이다.
더구나 호구지책이 급한 민초들에겐 웃을 여유도
울 짬조차 없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고흐는 ‘감자 먹는 사람들’과 ‘여인의 초상’ 등에서
그들의 삶과 애환 속에서 더욱 무표정해진
서민들의 진짜 모습을 담고 있다.
▲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그는 다른 사람의 겉모습만 아니라
그의 마음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었던 듯하다.
그러니 그는 ‘미친 넘’이기에 앞서 ‘지혜로운 이’가 아니였을까?
몇 년 전 티베트의 한 고대사원을 찾았을 때였다.
사원의 한 방에 가니 문수보살 상이 있었다.
문수보살이란 불교에서 ‘지혜’를 상징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보던 보살들의 불상과는 달랐다.
한쪽 귀에 손을 대고 약간 고개를 옆으로 젖혀
누군가의 말에 정성 들여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지혜란 경청할 줄 아는 것이다. 그 순간 고흐는 문수보살이었다.
경청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다.
특히 다른 사람의 가슴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고,
가슴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사람이.
#‘형상’ 너머를 보고.
▲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
몇 개의 자화상과 정물화들을 지나 나를 모처럼만에
‘환희의 세계’로 이끈 것은 꽃과 나무와 전경 그림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였다.
육안에만 갇혀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빛이 있는 그림이었다.
‘석양의 버드나무’와 ‘씨뿌리는 사람’, ‘뒤집어진 게가 있는 정물’,
‘아이리스’, ‘착한 사마리아인’,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에선
남다른 빛의 잔치가 펼쳐져있다.
특히 ‘생레미병원의 정원’에선 핵융합을 일으킨
고흐의 정신 에너지가 그대로 응결돼
강렬한 기운을 여전히 뿜어내고 있었다.
빛이란 시력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다.
지면을 꿰뚫어서 행간을 알아채는 안목도 좋지만,
‘틀’에서 해방돼 사물이 뿜어내는 고유의 빛을 보는
심안이란 얼마나 고귀한가. 전시장을 나오다보니
고흐 그림을 인쇄한 모조품을 80만원에 팔았다.
그러나 그것은 1푼의 값어치도 없다. 어떤 아우라도 없다.
그 강렬한 에너지는 고흐가 그린 진품에서만 느껴진다.
▲ 석양의 버드나무 #열애.
전시장의 그림은 평생 이 곳 저 곳을 떠돌았던 고흐가
머물던 장소와 시기별로 나눠 전시돼있다.
그런데 시대마다 그림이 다르다. 일관성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는 그 상황에 몰입했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의 상황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과 하나가 됐다는 것이다.
그림 한 점 팔지 못해 밥값을 동생 테오에게 의존해 살지 않으면
안 될 비참한 처지로 일관했으면서도.
그러나 고흐는 삶에 미쳤고, 그림에 미쳤다.
한 때 광산촌에서 전도사로서 빈민들과 평생 함께하는 삶을
꿈꿨던 고흐의 고민은 늘 인류에게 위로가 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한 몸도 주체 못하는 처지임에도.
조용필이 부르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가사처럼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라면서
사람들이 위안을 얻고 있으니 그는 인류에게 위로가 되고 있는 셈인가.
그것만은 아니다.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관습과 틀의 세계를
벗어나 몰입한 그의 광기야말로 무엇에도 미쳐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것은 아닌가.
무엇에도 미쳐본 적이 없는 사람들.
그들이 지금 미치고 싶어서 고흐의 그림으로 달려가고 있다.
고흐는 자신의 그림과 생명을 건 열애를 했다.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불꽃을 다 태울 연애를 할 것인가.
“딸아! 진실로 자기의 일을 누구에게도 기대거나 응석 떨지 않는
그 어른의 전 존재로서 먼저 연애를 하기를 바란다.
연애란 사람의 생명 속에 숨어 있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푸른 불꽃이 튀어나오는 강렬한 에너지를 말한다.
그 에너지의 힘을 만나 보지 못하고 체험해 보지 못하고
어떻게 학문에 심취할 것이며
어떻게 자기의 길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냐”
(문정희의 ‘딸아! 연애를 해라!’에서)
2007. 12. 24.
조현 한겨레 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