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함
22장은,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1) 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이 시는 시편 18편에도 수록이 되어있는데, 이점에서 유념해야 할 점은 다윗의 시편을 대할 때에 세 방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 첫째는 시를 기록한 다윗의 입장입니다. 다윗의 시는 다윗이 직면했던 어떤 역사적인 배경과 그가 처했던 상황에서 기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둘째는 다윗을 예표로 하여 그의 자손으로 오실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될 일들을 선지자적(행 2:30)으로 예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시편의 기록목적이 있는데 그러므로 시편에서 다윗만을 본다면 그림자만 볼뿐 실체(實體)는 보지 못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신령한 의미를 놓치지 않아야만 합니다.
㉢ 셋째는 다윗의 경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될 일들을 경험하게 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시키는 일입니다. 시편만큼 성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끼친 책도 달리는 없을 것입니다. 시편에 수록된 다양한 경험들이 신앙생활의 현장에서 성도들에게도 재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2장의 핵심은 결론적으로 진술한, “여호와께서 그의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하도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51)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름 부음 받은 왕”은 1차적으로 다윗을 가리키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지향하는 말씀입니다. 이점이 “다윗과 그의 후손에게로다” 라는 표현에 분명히 나타납니다. 이를 다섯 단원으로 나누어 상고하겠습니다.
첫째 단원(1-7)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여주신 하나님
둘째 단원(8-20) 엄위하신 하나님
셋째 단원(21-28) 상주시며 갚아주시는 하나님
넷째 단원(29-43) 대적을 발등상시키시는 하나님
다섯째 단원(44-51) 민족의 으뜸으로 삼으신 하나님
첫째 단원(1-20)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여주신 하나님
22장은,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1) 하고 시작이 되는데, 22장 전체의 주제는, “구원을 감사하는 노래”입니다. 첫 단원의 중심주제는 5번등장하는, “구원”인데, 그러면 무엇으로부터의 구원감사인가? “원수들에게서”(4) 라고 말합니다. 이 “원수”가 1차적으로는 “모든 원수와, 사울”일 수가 있습니다만, 성경이 말씀하는 궁극적인 원수는 사탄인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대적한 것도 자신의 본심이 아니라, “악신(惡神)이 그를 번뇌하게”(삼상 16:14) 했기 때문입니다.
① 첫째로 다윗은 찬양하기에 앞서서 우선적으로 구원하여주신 하나님을 어떠한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는가?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높은 망대시오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오,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
(1-3)
이는 다윗의 생애 중에 경험했던 다양한 하나님의 구원방도를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서 진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석이시오, 요새시오, 건지시는 자시오, 피할 바위시오, 구원의 뿔이시오, 높은 망대시오, 피란처시오” 한 묘사 속에는 숨겨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으시고 “임마누엘”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신명기는 모세의 유언과 같은 마지막 설교인데 32장에서 하나님을,
㉠ “너를 낳은 반석” (18)이라 말하고,
㉡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 (15)이라 말하면서,
㉢ 마치 어머니 같이,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13) 하셨다고 진술합니다.
㉣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15)고 하는데 이런 “반석” 이 누구를 가리키는 상징이겠습니까? 신약성경은,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전 10:4)고 해설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반석이시며 구원의 뿔”이란 이는 그리스도에 대한 명백한 상징인 것입니다. 시편 132편에서,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하지 아니하실 지라”고 메시아언약을 말씀하면서,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시 132:11, 17)고 말씀합니다. 세례 요한의 부친 사가랴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다”(눅 1:69)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다고 진술합니다. 다윗도 동일한 영으로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29절의 “나의 등불”이라는 묘사는 더욱 분명합니다.
② 둘째로, “반석, 구원의 뿔”이신 하나님께서 어떤 구원을 주셨다고 찬양하고 있는가?
사망의 물결이 나를 에우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5-6)
이는 다윗이 사울에게 쫓길 때 목숨이 위경에 처했던 일을 회상함일 것입니다. 그런데 “스올(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다”는 묘사는 다름 아닌 우리 주님이 죽임을 당하시고 무덤에 갇혀있던 상황인 것입니다. 주님은 삼일 동안, “음부의 줄과, 사망의 올무”에 매어있었던 것입니다. 이점을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행 2:24)고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임마누엘이,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는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를 놓아주려”(히 2:15) 이런 고난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둘째 단원(8-20) 엄위하신 하나님
둘째 단원은 우리의 “반석, 구원의 뿔”이신 하나님의 엄위를 진술하는 내용인데, 초림과 재림의 광경이 겹쳐져있습니다. 이 두 장면을 자연계시를 통해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위에서 손을 내미사 나를 붙드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강했기 때문이로다 그들이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17-20) 합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이루어진 “구원”을 나타내고 있는데 중심점은,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20)는 말씀입니다. “넓은 곳으로 인도하셨다”는 표현은 요나가 사흘동안 물고기 뱃속에 갇혀 있듯이, 그가 사망의 줄에 매여 지하 감방에 갇혀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을 압둘라 굴에서, 우리 주님을 무덤에서, 또한 사망에 매여 있던 우리들을, “넓은 곳으로 인도”, 즉 자유하게 하시고 우리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여주셨습니다. 이것이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여주신 하나님”이십니다.
넓은 곳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그런데 “이에 땅이 진동하고 떨며 하늘의 기초가 요동하고 흔들렸으니
그의 진노로 말미암음이로다 그의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그가 또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니
그의 발아래는 어두캄캄하였도다”(8-10) 하는 묘사는 심판 주로 오시는 재림의
광경인 것입니다. “빽빽한 구름(12), 광채로 말미암은 숯불”(13), 우뢰와 번개”(14-15) 등은 재림하시는 하나님의 엄위를 나타내는 묘사들입니다.
시편 29편은 다윗이 천지를 진동시키면서 가데서 광야(8)를 휩쓸고 있는 폭풍우를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읊은 시인데,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4)고 진술합니다. 무슨 뜻인가? 다윗은 거역할 수 없는 태풍, 지진, 홍수 뇌성벽력 같은 천재지변 앞에서 무기력한 인간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29편의 극치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11하) 한 “폭풍과, 평강”의 대조에 있습니다.
지금 다윗은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 떨고 있는,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하시도다”(8) 하는 폭풍우 중에서도,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즉 폭풍우와 같은 시련이 닥쳐온다 하여도 능히 극복할 힘을 주시고, 마음에 “평강”을 주실 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지의 창조자시오,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임하시는 재림의 날이 어떠하겠습니까?
셋째 단원(21-28) 상주시며 갚아주시는 하나님
셋째 단원의 중심점은, “여호와께서 내 공의를 따라 상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갚으셨으니”(21) 한, “상주시며, 갚으셨도다” 하는, 보상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의 눈앞에서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25) 합니다. 이는 바울이 말씀한,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함이라”(고후 5:10) 한 것과 상통하는 말씀입니다.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이다(26-27)
“자비한 자, 완전한 자, 깨끗한 자”가 누구이며, 반면 “사악한 자”는 누구인가? 이에 대한 설명이,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28) 한 말씀에 나타나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불신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이다”, 즉 보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점을 야고보서는,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약 2:13) 말씀하고 사도 베드로는,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벧후 3:11) 합니다.
넷째 단원(29-43) 대적을 발등상시키시는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29-30) 합니다.
넷째 단원에는,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30),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35) 하는 전투적인 용어로 가득합니다.
“내가 내 원수를 뒤쫓아 멸하였사오며 그들을 무찌르기 전에는 돌이키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그들을 무찔러 전멸시켰더니 그들이 내 발 아래에 엎드러지고 능히 일어나지 못하였나이다”(38-39)고 회상합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대적 앞에서 패하게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언제나 승리만을 주셨습니다.
핵심은 “내가 그들을 무찔러 전멸시켰더니 그들이 내 발 아래에 엎드러지고 능히 일어나지 못하였나이다”(39) 한 “내 발 아래에 엎드러지고”에 있는데 이는 다름 아니 사탄을 발등상시키시고 최후 승리를 거두실 그리스도를 전망하게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내가 그들을 땅의 티끌 같이 부스러뜨리고 거리의 진흙 같이 밟아 헤쳤나이다”(43)는 묘사에서는,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시 2:9) 하신 메시아 예언을 연상하게 합니다. 실로 영적 다윗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무찌르기 전에는 돌이키지 아니하였나이다”, 즉 사탄을 발등상 시키시
기까지는 결코 돌이키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수 23:3)고 말씀하는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대적을 발등상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섯째 단원(44-51) 모든 민족의 으뜸으로 삼으신 하나님
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진술하는 22장은 결론부분에 이르러서 다윗이 그리스도의 예표임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그러므로 미래에 이루어질 예언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① “주께서 또 나를 내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나를 보전하사 모든 민족의 으뜸으로 삼으셨으니” 합니다. “내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는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 1:11) 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건지시고 보전해주신 것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으뜸으로 삼으셨다”는 뜻이 무엇인가? 이는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빌 2:9-10)하셨다는 말씀으로 인도해줍니다.
② “이방인들이 내게 굴복함이여 그들이 내 소문을 귀로 듣고 곧 내게 순복하리로다 이방인들이 쇠약하여 그들의 견고한 곳에서 떨며 나오리로다”(45-46)고 “이방인들”을 거듭 언급하고 있는데, 이방인들이 “내 소문”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주께로 돌아오게 (순복하리이다) 될 것을 나타냅니다.
이점이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44하)는 진술에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메시아 예언으로 유명한 이사야 선지자도,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사 55:4-5)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③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높일지로다”(47) 합니다. “나의 반석”이라는 상징적인 묘사는 구약성경에 풍부합니다. “나의 반석, 내 구원의 반석”이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이는 명백한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인(고전10:4)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구절을 이방인들이 구원에 초청될 예언으로 인용(롬 15:9)하고 있습니다.
④ 시편들의 구조(構造)를 보면 대부분이 서두에 명제(命題)와 같은 말씀이 나오고 마지막에 결론과 같은 말씀으로 되어 있는데, 22장의 중심점도 서두 1-3절과, 결론인 50-51절에 나타납니다. 먼저 서두에서,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13)고 진술합니다.
결론에 이르러서,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모든 민족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하도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50-51) 하고 마치고 있는데, 다시 상기시킵니다만 “왕과,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1차적으로는 다윗이라 하여도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라는 묘사에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있음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이나 암몬으로부터 얻은 승리는 완전한 구원도 승리도 아니요, 궁극적인 구원과 승리는 사탄을 발등상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22장은 다윗의 일생을 총 정리하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22장이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이 되는가? 우선적으로 “구원”을 얻고,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한 승리의 삶을 살아가며, “내 소문을 귀로 듣고 곧 내게 순복하리로다” 한 복음의 소문을 널리 전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기를, “영원하도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한대로 주님 오시는 날가지 한다면, “상주시며, 갚으셨으니”, 즉 보상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함”입니다.
나누어 봅시다
① 다윗이 고백하는 하나님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에 대해서,
② 다윗이 진술하는 “넓은 곳으로 인도하셨다”는 의미에 대해서,
③ 풍문을 듣고, 민족의 으뜸으로 삼으셨다는 의미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