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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정안] '지대본위화폐' 시대를 상상한다⑨ㅡ보유세는 금리와 같은 일을 한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 AI 동료들
지난 회에서 원화가 이미 지가본위 화폐임을 짚었다. 통화량이 땅값의 함수이고, 그 회로가 스스로를 증폭시키며, 공급도 금리도 그것을 잡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잡는가. 이번 회는 처방이다. 그리고 그 처방은 뜻밖에도 우리가 오래 논쟁해온 것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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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율은 할인율에 더해진다
먼저 간단한 계산부터 해보자.
보유세가 부과되면 소유자가 손에 쥐는 것은 지대에서 세금을 뺀 나머지다. 이를 자본화 계산에 넣고 정리하면 놀랍도록 간명한 결과가 나온다.
땅값 = 지대 ÷ (할인율 + 보유세 실효세율)
보유세율이 할인율에 그대로 더해지는 항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로부터 다음 등식이 성립한다.
보유세 실효세율 1%포인트 인상 = 실질 할인율 1%포인트 인상
이는 비유가 아니라 항등식이다. 자산가격에 미치는 효과의 관점에서 보유세와 금리는 수학적으로 등가다.
오해를 막기 위해 밝혀둔다. 이 글은 보유세가 조세가 아니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보유세는 명백히 조세이며 조세법률주의와 지방재정의 틀 안에 있다. 다만 그것이 조세이면서 동시에 자산가격에 대한 거시 조절수단으로 작동한다는 것이 이 글의 주장이다. 부가가치세 인상이 물가에 미치는 효과를 논한다고 해서 부가가치세가 조세가 아니게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 보유세는 세수와 분배의 관점에서만 다뤄졌다. 통화적 효과의 관점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2. 얼마나 올려야 하는가
이 등식은 정책 목표를 숫자로 정할 수 있게 한다.
실질 할인율을 2%로 놓으면 땅값은 지대의 50배가 된다. 여기서 그 배율을 절반으로 낮추려면 보유세 실효세율을 실질 할인율과 같은 수준, 곧 2% 안팎까지 올려야 한다. 그러면 땅값은 절반이 되고, 같은 효과를 금리로 얻으려면 실질금리를 2%포인트 올려야 한다.
이는 현행 수준과 큰 차이가 있다.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지가 대비 낮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으며, 위 등식에 따르면 그 통화적 효과는 금리를 몇 분의 일 퍼센트포인트 올린 정도에 그친다.
"보유세가 통화적 효과를 갖는다"는 명제와 "현행 보유세가 유의미한 효과를 낸다"는 명제는 구별되어야 한다. 전자는 이론적으로 성립하나 후자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것이 세율 인상을 제안하는 근거이며, 동시에 그 목표 수준을 명시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3. 그러나 부작용의 범위는 전혀 다르다
등가성은 자산가격 효과에 한정된다. 미치는 범위는 완전히 다르다.
금리 인상은 토지뿐 아니라 기업의 설비투자, 실수요자의 원리금, 국채 이자, 자영업자의 운전자금에 모두 작용한다. 반면 보유세 인상은 토지의 자본화에만 작용한다.
노동과 자본에 대한 과세는 생산을 위축시키지만 토지에 대한 과세는 토지를 줄이지 않는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지대를 가장 적합한 세원으로 꼽은 논거가 이것이었고, 밀턴 프리드먼이 토지가치세를 "가장 덜 나쁜 세금"이라 평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 고전적 논거가 여기서 거시 조절수단의 층위로 확장된다.
같은 자산가격 효과를 훨씬 좁은 부작용으로 달성하는 수단 — 이것이 보유세의 통화적 효과에 주목해야 할 실천적 이유다.
4. 앞선 이들이 멈춘 자리
토지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을 환수하자는 주장은 우리 사회에 오래 있어왔다. 헨리 조지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은 지공주의(地公主義, 지대공공환수주의) 논자들이 토지보유세 강화와 환수 재원의 공평한 분배를 꾸준히 제기해왔다. 최근에도 종합부동산세 정상화와 장기적인 국토보유세 도입, 공공택지의 민간 매각 중단, 지역 균형발전, 차입자에게만 위험을 떠넘기지 않는 부동산 금융 개혁, 그리고 헌법에 투기 방지와 쾌적한 주거생활 조항을 명시하자는 개헌론까지 묶은 처방이 제시된 바 있다.
진단에 관한 한 필자도 같은 자리에 서 있다. 토지 소유의 극심한 불평등, 노동소득을 압도하는 불로소득, 전세와 갭투자가 부추긴 투기, 그리고 그 끝에 놓인 청년의 결혼과 출산 포기까지.
다만 이 연재는 한 걸음을 더 딛으려 한다.
지금까지 지대 환수는 조세의 문제로 다뤄졌다. 그러나 지난 회에서 보았듯 이 나라에서 부동산은 자산시장의 한 부문이 아니라 화폐가 태어나는 주된 통로다. 주택담보대출이 실행되는 순간 원화가 그만큼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지대 환수는 세제 개편이 아니라 화폐제도의 문제로 다시 놓여야 한다.
이 차이는 말장난이 아니다. 조세의 언어 안에 머무는 한 그것은 늘 "내 재산에서 떼어가는 것"으로 읽히고, 그래서 세금폭탄 논쟁에 갇힌다. 종합부동산세가 겪은 일이 그러했고, 국토보유세가 문턱을 넘지 못한 것도 그래서였다. 옳은 진단이 30년 넘게 제기되고도 번번이 좌초한 데는 내용 못지않게 프레임의 문제가 있었다고 필자는 본다.
자리를 옮겨 놓으면 논쟁의 성격도 달라진다. 금리를 올릴 때 아무도 "내 돈을 빼앗아간다"고 하지 않는다. 통화량을 조절하는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지대 환수도 같은 반열에 놓일 수 있다면, 지금까지 이 개혁이 부딪혀온 벽의 상당 부분은 성격이 바뀐다.
5. 이름부터 바꾸자 — 기본지대
이상의 분석은 하나의 제안으로 수렴한다. 필자는 이를 기본지대(基本地代)라 부를 것을 제안한다.
명명은 부수적 문제가 아니다. '세(稅)'라는 글자가 붙는 순간 그것은 국가가 사유재산에서 떼어가는 것으로 인식되고 조세저항의 정치학에 갇힌다. 반면 지대는 빌린 자가 빌려준 자에게 치르는 값이다. 땅의 가치를 공동체가 만들었다면 보유자는 공동체로부터 사용권을 빌린 자이고, 기본지대는 그 사용료다. 징수가 아니라 정산이 되는 것이다.
'기본'이라는 말은 두 가지로 일한다. 기본소득·기본주택·기본금융으로 이어지는 정책 언어에 편입되는 효과가 하나이고, '기본'이 곧 바탕, 즉 본위(本位)의 어감을 품는다는 것이 다른 하나다. 지가본위에서 기본지대본위로의 전환이 이 제안의 본질이다.
기본지대는 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한다. 자본화를 억제해 투기의 토대를 허물고, 검증된 연간 유량으로서 화폐 발행의 준거가 되며, 걷힌 것이 토지배당으로 시민에게 돌아간다. 조세와 통화와 분배가 한 몸인 제도다.
6. 준칙으로 정하자
기본지대가 거시 조절수단이라면 그 요율은 단기적 정치 상황이 아니라 준칙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금리에 테일러 준칙이 있듯 기본지대에도 준칙이 필요하다. 자산시장이 과열되면 요율이 자동으로 오르고 침체하면 내리는 규칙이다.
관건은 과열의 판단 기준이다. 필자는 땅값을 지대로 나눈 배율이 장기 균형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를 기준으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문제는 지대가 시장에서 명시적으로 관측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산정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상업용 부동산의 자본환원율은 공표되고 있고, 주거용은 전월세 전환율과 실거래 임대료 통계로 근사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앞에 끊어야 할 고리가 있다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제도가 있다. 현행 임대료 산정 방식이다.
우리의 적산법은 토지 가격에 기대이율을 곱해 임대료를 산정한다. 그런데 여기서 쓰이는 토지 가격은 시장에서 형성된 교환가치다. 즉 지대를 독립적으로 재는 것이 아니라 땅값에서 역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왜 치명적인가. 투기적 수요로 주변 땅값이 오르면 아무런 생산적 기여 없이 공공임대료까지 함께 오르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토지임대주택의 임대료 산정에 이 방식이 적용되는 것이 특히 그러하다.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구분하자는 이 연재의 전제가 현행 평가체계에서는 아예 성립하지 않는 셈이다.
거래사례 비교 중심의 평가방식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교환가치를 객관적 가치로 공인하고, 금융기관은 이를 근거로 대출 한도를 늘리며, 그것이 다시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 지난 회에서 담보와 대출과 지가의 되먹임을 이야기했는데, 그 회로 안에 평가제도라는 고리가 하나 더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대 계정을 만들려는 시도의 첫걸음은 통계 신설이 아니라 지대를 지가에서 역산하는 방식을 끊는 일이다. 임대료는 땅값이 아니라 그 땅이 실제로 제공하는 사용가치에서 산정되어야 한다.
당장 손댈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주택법 시행령의 임대료 산정 조항이다. 이 기괴한 순환을 끊는 데 필요한 것은 복잡한 입법이 아니라 행정적 결단이다. 그리고 이것은 세율도 화폐도 건드리지 않으므로 지금 당장 착수할 수 있다.
바로 여기가 국토 연구가 기여할 자리다. 지대 계정의 구축은 통화이론이 아니라 토지 평가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집행은 금융통화위원회에 대응하는 독립적 '기본지대위원회'를 상정한다. 다만 조세법률주의를 우회할 수 없으므로, 법률로 세율의 상·하한을 정하고 그 안의 조정만 위임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새로운 발명이 아니라 탄력세율 제도의 확장이다.
7. 이행의 설계가 성패를 가른다
정직하게 짚는다. 한국 가계는 자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으로 갖고 있고, 그것이 사실상 노후 대비 수단이다. 그러니 이 개혁은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노후 불안의 문제로 체감된다. 여기에 답하지 못하면 지난 실패를 되풀이할 뿐이다.
사후납부제
"세금은 옳은데 현금이 없다"는 반론에 대한 답은 사후납부제(Deferred Payment)다. 해마다 산정된 부담액을 현금으로 내는 대신 장부에 기록해두었다가, 매각이나 상속 시점에 일괄 정산한다. 현금으로 내는 쪽에는 할인 유인을 준다.
이것은 단순한 유예가 아니다. 쌓인 지대채무는 자산에 붙어 다니는 고정 부담이므로, 오래 들고 있을수록 나중에 갚을 몫이 늘어난다. 보유의 기회비용을 높여 금리 인상과 같은 방향의 효과를 내면서도 실수요자의 현재 이자 부담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확정채권으로 장기 재원을 확보하니 재정에도 불리하지 않다.
다만 정산 시점에 부담이 몰리면 새로운 유동성 압박이 생길 수 있다. 분할납부 허용, 채무 총액의 상한 설정 같은 완충장치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모두가 내고 모두가 받는다
지금 체제에서 화폐 발행이익은 국고가 아니라 토지 보유자와 은행에게 돌아간다. 새로 만들어진 돈이 먼저 닿는 곳이 땅을 담보로 내놓을 수 있는 쪽이기 때문이다.
기본지대는 이 귀속처를 되돌린다. 걷힌 지대를 인구 균등으로 배당하면, 토지를 평균보다 적게 쓰는 사람은 순수취자가 되고 많이 쓰는 사람은 순납부자가 된다. 모두가 내고 모두가 받는 구조다.
'기본' 시리즈는 대개 시민이 받는 것이었으므로 기본지대는 자칫 "모두에게 지대를 준다"로 읽힐 수 있다. 필자는 이 오독을 정면으로 끌어안기를 권한다. 기본지대는 내는 제도이자 받는 제도이며, 내는 자와 받는 자가 같은 시민이다.
배당의 크기는 세율에 비례하므로, 앞서 역산한 목표 세율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수준이 된다. 현행 세율에서는 배당액이 미미하여 정치적 지지를 얻기 어렵다. 세율 인상 경로와 배당 규모는 하나의 시간표 위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거두는(징수하는) 이야기와 주는 이야기는 반드시 한 문장 안에 있어야 한다.
토지가 사유인 나라에서 가능한가
그런 일이 가능하겠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중국은 토지가 국유이니 임대조건만 바꾸면 되지 않느냐고.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용광로라 할 맨해튼의 배터리파크시티(Battery Park City)에서 이미 공유부형 지대시장제가 운영되고 있다. 토지를 개인에게 팔지 않고 임대하되 그 지대를 공공이 거두어 도시의 유지와 공공주택 재원으로 순환시키는 방식이다. 토지사유제 국가에서도 지대 공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 사례가 보여준다.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전세는 별도의 시간표가 필요하다. 지가가 내려가는 국면에서 가장 먼저 부서지는 고리가 전세이니, 순서를 잘못 잡으면 개혁이 아니라 사고가 된다.
그리고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호주의 수도 캔버라는 취득세를 연간 토지세로 옮기는 데 20년을 잡았고 아직 끝내지 못했다. 이론적 효과의 크기와 실행의 속도는 별개의 문제다. 이 일은 정권 하나로 끝낼 수 있는 개혁이 아니다.
8. 무엇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는가
이 연재의 국내편은 여러 단순화 위에 서 있다. 그 가정들을 밝혀둔다.
담보제약이 구속적이라는 가정.
"은행은 담보만이 아니라 상환능력도 본다"는 반론은 타당하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가 두 제약을 함께 묶고 있다는 점이 한 가지 답변이 되겠으나, 구속의 정도가 경기 국면에 따라 변한다는 문제는 남는다. 결국 지난 회에서 제시한 본위도의 크기와 그 시계열 안정성으로 판정될 문제다.
부동산과 무관한 통화의 독립성.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면 정부가 재정을 확대해 다른 통로로 통화가 공급되는 관계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이는 논지를 약화시키기보다 보완한다. 땅값이 떨어질 때 국가가 다른 통로로 통화를 메워야 한다는 것은, 이 경제가 부동산발 통화수축을 견디지 못한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되먹임 세기의 미지수.
대출이 땅값으로 전이되는 정도, 담보가 실제 신용으로 전환되는 비율 같은 계수들은 관측되지 않으며 시기와 지역에 따라 변한다. 이 연재는 되먹임이 존재하고 증폭적이라는 구조적 성질을 말할 뿐, 그 크기가 얼마라거나 언제 터진다는 예측을 하지 않는다.
전세라는 변수.
은행 밖에서 이루어지는 토지자산 담보 신용창조인 전세는 본위도 산정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나, 그 규모의 추정에는 별도 작업이 필요하다.
9. 다시, 어떤 본위를 둘 것인가
정리하자.
보유세는 자산가격에 대해 금리와 수학적으로 등가인 수단이다. 다만 부작용의 범위는 비교할 수 없이 좁다. 그러므로 그것은 조세이면서 동시에 거시 조절수단이며, 지금까지 그 성격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을 뿐이다.
기본지대는 그 재규정의 이름이다. 준칙형 세율과 사후납부제와 토지배당이 그 실행 설계이고, 지대 계정의 구축이 그 첫걸음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다음 회에서는 오늘의 세계 화폐질서를 쥐고 있는 나라로 간다. 그리고 뜻밖의 사실 하나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지대를 사회가 환수하자는 이 사상은 원래 그 나라에서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