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로 약칭함) 위원장 인선 문제를 논함에 있어 먼저 현재 현병철 위원장의 경우에 대하여 얘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병철 위원장이 임명되고 또 연임되는 과정에서 인권위원장 임명권은 대통령의 사유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1) 최초 임명
처음에 현병철 위원장이 지명되었을 때, 사람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법학교수들은 현병철 씨에 대하여 조금은 알고는 있었지만, 국가인권위원회와 연결시키기는 불가능하였습니다. 현병철 교수는 일반 민법 전공이었고, 인권관련 역할에 대하여는 들어 본 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명박 대통령은 어떻게 현병철 교수를 임명하였을까? 이명박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관계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현병철 교수를 지명한 이유는 “대학장·학회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보여준 균형감각과 합리적인 조직관리 능력은 인권위 현안을 해결하고 조직을 안정시켜 인권선진국으로의 위상을 제고하는 데” 기여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대통령의 지명 이유는 우리를 다시 놀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상식 밖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그 지명 이유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이하 인권위법으로 약칭함)을 배반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권위법 제5조는 인권위원의 자격에 관하여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학 및 학회의 학장을 역임한 것, 조직관리능력이 좋다는 엉뚱한 이유를 댄 것입니다. 인권위원장의 임명에서 법적 요건에 대한 소명이 최소한의 절차적 요청이라고 할 때, 그 임명행위는 위법 혹은 부당한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조직관리능력’과 ‘인권위 현안 해결’을 말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당시 인권위은 기로에 서있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그 취임 때부터 인권위에서 독립성을 제거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인권을 부담스러워하고, 인권위를 정권의 방해물로 인식하였는지 모릅니다. 대통령 직속기구화를 도모하려다 잘 되지 않자, 대신 인권위를 약체로 만들고 순치하는 공작에 들어갔습니다. 인권위 직제령이 대통령령으로 되어 있는 것을 기화로 인권위 조직을 대폭 감축하였습니다. 행정부의 완력으로 인권위를 독립적인 국가기구가 아니라 일개 행정위원회로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현병철 위원장 임명은 그 일련의 조치들 가운데 핵심 고리였던 것입니다.
나아가 이명박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를 인권위의 주요 의제로 제시하였습니다. 이는 양수겸장이었습니다. 인권위의 주력을 북한 인권에 돌리면 자연히 인권위의 국내 문제 비판기능은 축소됩니다. 게다가 ‘외형상’ 독립기구이며 인권 주무 기구인 인권위가 북한 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어 준다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현병철 위원장에게 북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을 주문하였습니다.
이후 현병철 위원장은 권력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었습니다. 현병철 위원장 개인의 소신과도 부합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현병철 위원장은 인권위의 독립성에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인권위가 행정부에 속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인권위 내부의 인사도 행안부의 압력에 따라 변경하였습니다. 국내의 중요하고도 민감한 인권사안은 회피하면서 소위 ‘생활밀착형 인권’의 개념을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인권위원회를 북한인권위원회로 변신시키는 데에 성공하였습니다.
현병철 위원장의 인권위는 북한인권 문제에 공력을 쏟았습니다. 인권위가 원래 북한인권문제를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2006년의 전원위원회의 결정은 북한 인권을 한반도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슬기롭게 다루고자 하였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침해상황과 납북자, 국군포로 등 우리 국민이 관련된 인권침해 상황을 구분하여 접근토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병철 위원장의 인권위는 북한 인권 문제에 공격적으로 임했습니다. 2011년 북한인권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위의 전원위원회 결정을 뒤집었습니다. 그리고 대북 인권 운동의 최전선에 섰습니다. 인권위는 북한인권침해상황을 바로 조사하고자 하였습니다. 북한인권기록관을 두어 장래 북한 과거청산을 위한 근거지를 자임하였습니다. 리비아 가다피 축출시에 원용되었던 ‘보호책임’을 거론하며 북한 정권교체도 언급하였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대북 삐라 살포를 표현의 자유라고 적극 옹호하였습니다.
2) 연임
이렇게 현병철 위원장이 권력의 의도에 충실하였으니, 위원장 연임은 당연한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현병철 위원장의 연임은 인권위의 입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첫 임기 3년은 잠시 일탈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시 3년 연장되면 자칫 인권위의 ‘유전형질’이 바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인권사회단체들이 다시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인권위원 자격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천명하고, 인권위원장 추천위원회 제도를 제안하였고, 국회 인사청문절차를 요구하였습니다. 마침내 국회의 호응이 있었습니다. 인권위법 및 국회법을 개정하여 인권위원장 인선에 인사청문 절차를 추가하였습니다.
사실 인사청문제도는 진즉에 도입되었어야 하는 제도였습니다. 미국에서 인사청문회제도가 얼마나 광범하게 수행되고 있는지는 따로 말할 필요가 없고, 우리나라에서도 인사청문회제도가 도입된 이후 점차 활성화되어 인사청문의 대상이 되는 직위가 많이 늘었던 것입니다. 헌법상 국회의 동의를 요하는 대법원장 및 대법관, 감사원장 등은 물론이고 경찰청장, 공정거래위원장,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등도 이미 인사청문의 대상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준헌법적 독립기관인 인권위 위원장의 임명에 인사청문을 거치도록 한 것은 만시지탄이나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인사청문 절차가 도입되면서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이 현병철 위원장을 쉽게 연임시키기 어려울 것이며, 적정한 인권위원장 선임에 최소한의 절차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놀랍게도 이명박 대통령은 현병철 위원장을 재지명하였습니다. 재지명, 즉 인사청문 요청의 제1 근거는 역시 북한인권에 관한 ‘업적’입니다.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정파, 이념을 초월한 순수한 인도적 관점으로 접근하면 2011년 정부에 대해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중장기 국가정책 수립을 권고하였으며, 북한인권침해신고센터 및 북한인권기록관을 개소하여 북한인권침해에 관한 기록, 보존에 노력하였고, 그 결과 2012년에는 국가기관 최초로 북한인권침해사례집을 발간함. 또한 2010년 워싱턴 DC, 2011년 EU브뤼셀, 2012년 LA에서 국제 인권심포지엄을 개최하여 북한인권에 관한 국내외 협력체계를 구축하여 국제사회 여론형성을 주도함”이라고 밝혔던 것입니다.
청와대의 뜻에도 불구하고 현병철 위원장의 인사청문은 순조롭지 못하였습니다. 인권위 위원장으로의 자질은 차치하고라도, 부동산 투기 의혹, 논문 표절 등 여러 의혹이 쏟아졌습니다.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현병철 위원장의 연임에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습니다. 결국 인사청문 보고서는 채택되지 못하였습니다. 즉 국회에서는 낙제로 평가된 것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현병철위원장을 다시 임명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일부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고,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라도 업무수행에 큰 차질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현 위원장의 임명을 재가”하였다고 청와대 대변인은 밝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현병철 위원장 재임명은 폭탄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의 ‘멘탈’은 붕괴되었습니다. 행정공무원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권도 사유물일 수 없습니다. 하물며 독립기구에 대한 인사권은 더욱 조심스러워야만 할 것입니다. 그것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가 아니라 국가원수로서 국민주권에 따라 국민의 대표자를 선임하는 것입니다. 국회 인사청문은 바로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비록 국회의 동의권이 명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인권위 같은 독립기구의 인선에서 국회청문보고서 채택의 실패는 진지하게 수용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안중에는 국민주권, 헌법적 책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인권위원장의 자격은 오직 대통령의 구미에 맞는 것이며, 대통령의 구미에만 맞으면 다른 것은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식이었습니다.
이렇게 현병철 위원장이 재임명되면서 인권위의 품격은 완전히 해제되었습니다. 이전부터도 그런 경향이 있었지만, 다른 인권위원의 인선에 있어서도 인권위원으로 갖추어야 하는 도덕성, 책임감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 되었습니다. 인권위법상의 인권적 전문성과 경험은 고사하고 심지어 인습적 차별과 권력지향적 행태를 보여왔던 인사들이 줄줄이 선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인권위의 헌법상 위상, 인권의 문명적 가치는 공허한 메아리, 처량한 장식으로만 남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권력과 재물의 물신에 사로잡힌 지 오래되었으니 인권위가 이 모양으로 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인권위의 수준은 우리 인권의 수준이고, 우리 인권의 수준이 인권위의 수준일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인사권, 더욱이 행정부 소속이 아닌 독립기구의 인사권까지도 한낱 사유물로 여기며, 아무 부끄럼 없이 막 가고 있는 상황, 그것을 저지하지 못하는 민주주의의 현실에서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언제라도 무언가는 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II. 인권위원(장) 인선 절차 개선
이제 신임 인권위원장이 지명될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의 이력을 볼 때, 역시 친분에 의한 엽관(獵官) 인사의 범위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의 몰염치로부터 저렇게 해도 된다는 학습을 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권위는 충분히 수모를 당했습니다. 국제인권기구조정회의(ICC) 등급 심사에서 3회 연속 등급 보류라는 유례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국내적으로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가장 모범적인 인권위를 세운 나라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추락한 나라가 될지도 모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점을 의식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습니다.
1) 국가인권위원회 독립성에 대한 원론
모든 일이 그렇듯 인권위원장 인선도 개념 설정이 중요합니다. 이는 곧 인권위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인권위가 입법, 행정, 사법, 즉 기존의 국가권력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된 기구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는 인권위의 본질이자 생명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부분을 마땅치 않아 할 수도 있고, 또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인권위를 어떻게 위치지울 것인지는 인권위 출범 당시 가장 중요한 논점이었고, 또 가장 심각한 대립을 불러일으킨 문제였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대선공약으로 출발한 인권위 설치는 당시 박상천 법무부장관의 ‘소신’에 걸려 진전되지 않았습니다. 박상천 법무부장관은 국가기구이면서 독립된 기구는 있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인권위는 국가기구가 아니라 민간 독립법인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법제에서 그것은 결국 법무부의 감독을 받는 법인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독립된 국가기구라는 개념은 독특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법에 유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헌법상 기구로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법률상 기구로서 당시 방송위원회(현재는 방송통신위원회로 이름을 바꾸고 대통령 소속으로 변경되었음)가 그러하였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비록 한시 기구이지만, 여러 과거사 위원회들도 그러한 성격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독립된 국가기구, 혹은 반관반민(半官半民)의 국가기구는 곧 인권의 성격에서 유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인권은 체제내의 기본권으로 모두 흡수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인권이 완전히 구현되었다는 법제도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권은 다시 제도에 의하여 지지되고 옹호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인권을 부인하는 법제도를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렇듯 인권은 제도적 체제와 생활세계의 양 영역에 걸쳐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제도는 인권을 집행, 실현하면서, 동시에 인권에 의하여 성찰, 개선되어야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권위도 국가 체제 속에서 시민사회를 지향하고, 시민사회를 지향하면서 국가 체제에 근거를 두고자 합니다.
이와 같은 국가인권위의 ‘이원성’을 저는 국가권력과 시민사회의 견제와 균형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입법, 행정, 사법의 3권분립이라는 고정관념에 너무 얽매여 있는지 모릅니다. 3권분립은 선험적인 것도 아니고 필연적인 것도 아닙니다. 로크는 2권 분립을 얘기하였고, 중국 혁명의 아버지 손문은 5권 분립을 얘기하였습니다. 권력 분립의 개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견제와 균형 그리고 상호 역동적 상승과정일지 모릅니다. 그런 관점에서 국가권력과 시민사회의 견제와 균형은 오히려 자유주의 정치원리의 근본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인권위는 국가 체제 내에 있지만, 그 본질은 시민사회의 것으로, 체제에 경종을 울리게 하기 위해 들여놓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인권위원장의 임명은 시민사회의 대표자에게 국가 체제에 들어와 인권적 차원에 쓴 소리를 해달라는 권유라고 할 것입니다. 인권위의 위상을 이렇게 이해할 때, 인권위원장의 임명권은 국가권력, 즉 대통령의 사유물이거나 전유물일 수 없습니다.
여기서 인권위의 역할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상기됩니다. 이라크 파병 당시 인권위는 반대 의견을 낸 적이 있었습니다. ‘같은’ 국가기관들 사이에 불협화음이 생기면 어떻게 하냐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에 대하여 노무현 대통령은 인권위는 원래 그런 일을 하라고 만들어진 것이라고 답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인권위원장의 밀실인선은 불가합니다. 시민사회와 소통하여야 합니다. 시민사회의 대표성이 반영되어야 합니다. 인권위원장은 국가권력에 거리를 두면서 동시에 향도할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2) 인권위원(장) 인선절차의 국제적 기준
이러한 조건들을 이미 인권위원회 설립에 관한 국제적 규범인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파리원칙)’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국가인권기구의 구성과 독립성과 다원성의 보장>
1. 국가인권기구의 구성과 그 구성원의 임명이 선거의 방법에 의하든 혹은 다른 방법에 의하든 인권의 보호와 향상에 관련된 시민사회의 사회계층들의 다원적 대표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보장하여야 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대표자들과의 협력 및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확립된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a) 인권과 인종차별철폐를 담당하는 민간단체, 노동조합, 예컨대 변호사, 의사, 언론인 및 저명한 과학자 연합과 같은 사회 및 전문가 조직
(b) 철학과 종교 사상의 다양한 경향들
(c) 대학교 및 자격 있는 전문가들
(d) 의회
(e) 정부부처(정부 대표들이 포함되는 경우에는 자문 자격으로만 심의에 참여해야 한다)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회의의 일반 견해 1.7(ICC SCA General Observation 1.7)>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습니다.
승인소위는 파리 원칙에 명시된 바, 국가인권기구 구성원의 다원성 조건을 충족하는데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고 적시한 바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a) 파리원칙에 의거하여 의사결정기관의 구성원은 사회의 다양한 계층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의사결정기관의 구성원의 자격요건은 법으로 명시하고, 이를 공개하고 시민사회 등 모든 이해당사자와 협의해야 한다.
b) 국가인권기구 내 의사결정기관의 구성원을 임명하는 절차에 있어서의 다원성, 이를테면 다양한 사회단체들에 의한 후보 추천 또는 권고.
c) 다양한 사회단체와 효과적인 협력을 가능케 하는 절차를 통한 다원성, 이를테면 자문위원회, 네트워크, 협의 또는 공개포럼.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회의 일반견해 1.8((ICC SCA General Observation 1.8)>은 인권위원의 선임 절차를 보다 구체화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적절한 절차에 따라 국가인권기구 내 의사결정기관 구성원에 대한 투명하고 참여적인 선정 및 임명방식을 보장하기 위해 이 내용을 관련 법, 규정 또는 구속력이 있는 행정규칙 등에 명시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자격구비에 따른 선정방식(merit-based)을 증진하고 다원성을 보장할 수 있는 선정 및 임명방식은 국가인권기구의 지도급 인사들의 독립성 및 이들에 대한 대중적 신뢰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선정 및 임명방식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포함한다.
a) 공석에 대한 정보를 널리 홍보한다.
b) 다양한 범위의 사회계층으로부터 추천받을 수 있는 잠재적 후보의 수를 최대화한다.
c) 신청, 심사, 선정 및 임명 과정에서 광범위한 협의 및 참여를 증진하다.
d) 사전에 정해진 객관적이고 공개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지원자들을 심사한다.
e) 임명된 자들을 자신이 대표하는 기구의 대표자로서가 아닌, 개인의 자격으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한다.
우리 인권위가 ICC 평가에서 연속하여 등급보류의 판정을 받은 가장 큰 이유, 즉 우리 인권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위와 같은 인선절차의 미비, 인선의 공정성 및 대표성의 결여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앞서 보았듯이 현병철 위원장의 최초 임명과 연임의 과정에서 여실하게 입증되었던 것입니다.
3) 국내 법제도적 개선
인권사회단체들이 인권위원 인선에서 인사청문회 도입을 얘기하였을 때, 이는 인권위원 추천위원회를 대신하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인사청문회의 결과는 실망이었습니다. 물론 인권위원장 후보자의 검증에는 효과를 발휘한 면도 있지만, 그것이 실제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추천위원회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인권위원 추천위원회는 사실 2000년대 초 인권위 설립 초기부터 인권사회단체들이 요구해 왔던 것입니다. ‘올바른 국가인권기구 실현을 위한 민간단체 공동대책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법 최종수정안 (2000. 10. 16)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9인 인권위원 (위원장, 전원 상임)
-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 중에서 인권위원 선정위원회(이하 '선정위원회"라 한다)가 추천한 18명의 후보자 가운데 대통령이 임명
- 인권위원의 추천과 임명에는 인권문제의 다양성과 다원성을 반영해야 함
- 인권위원 중 3분의 1이상은 여성으로 추천·임명해야 함
- 선정위원회는 인권문제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들로서 다음과 같은 단체들이 추천한 사람들 가운데 대통령이 위촉 (정당법에 의하여 등록된 정당들이 추천한 사람들 중 2인, 교수, 교사 및 학술연구단체들이 추천한 사람들 중 1인, 언론인 및 언론관련 단체들이 추천한 사람들 중 1인, 보건 및 의료관련 단체들이 추천한 사람들 중 1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련 단체들이 추천한 사람들 중 1인, 농민단체 및 농업관련 단체들이 추천한 사람들 중 1인, 빈민단체들이 추천한 사람들 중 1인, 변호사, 법학자 및 법률관련 단체들이 추천한 사람들 중 2인, 여성단체들이 추천한 사람들 중 2인, 어린이 및 청소년의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 및 학부모단체들이 추천한 사람들 중 1인, 장애인 단체들이 추천한 사람들 중 1인, 시민단체들이 추천한 사람들 중 2인, 인권단체들이 추천한 사람들 중 4인)
2013년 장하나 의원 대표발의로 제안된 인권위법 개정안도 유사한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 인권위원의 인선절차가 없이 임명권 분할만 되어 있으므로 위원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임명하도록 함(안 제5조제2항)
제5조의2(위원후보추천위원회) ① 위원을 추천하기 위하여 위원후보추천위원회(이하 “추천위원회”라 한다)를 둔다.
② 추천위원회는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추천업무를 공정하게 수행할 수 있는 사람 중에서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위원장과 협의하여 위촉한다.
1. 국회에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이 협의하여 추천하는 사람 중에서 5명
2. 보건 및 의료 관련 단체가 추천하는 사람 중에서 1명
3. 노동조합 및 노동 관련 단체가 추천하는 사람 중에서 1명
4. 농업인 단체 및 농업 관련 단체가 추천하는 사람 중에서 1명
5. 빈민 관련 단체가 추천하는 사람 중에서 1명
6. 변호사, 법학자 및 법률 관련 단체가 추천하는 사람 중에서 2명
7. 어린이 및 청소년 관련 단체가 추천하는 사람 중에서 1명
8. 여성단체가 추천하는 사람 중에서 2명
9. 장애인단체가 추천하는 사람 중에서 1명
10. 인권단체가 추천하는 사람 중에서 4명
③ 추천위원회의 위원장(이하 이 조에서 “추천위원장”이라 한다)은 추천위원회의 위원 중에서 호선한다.
④ 추천위원회는 추천위원장이 소집하고, 재적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
⑤ 추천위원회는 임명 예정 위원 수의 2배수 이상을 추천하여야 한다.
⑥ 그 밖에 추천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등에 필요한 사항은 위원회 규칙으로 정한다.
만약 이와 같은 추천위원회가 법적으로 보장되고, 임명권자, 예컨대 대통령은 추천위원회에서 추천된 인사들 중에서만 임명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가히 획기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실현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대통령, 국회, 대법원 즉 권력 기구의 권한들을 모두 회수해 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 공직자에 대하여 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치게 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법원조직법상의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들 수 있습니다.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제청하기 전에 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는 구조입니다. 대법원 구성에서 국민적 대표성과 사회의 다원성을 반영하고자 한 것이었고, 대통령과 대법원장으로 이어지는 획일적 권력구조 제한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취지는 좋았지만, 현재 대법관 추천위원회는 사실상 대법원장이 제시하는 후보자를 추인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추천위원회의 구성도 구성이지만, 대법원 규칙을 통하여 법원조직법을 왜곡시켰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장은 헌법이 자신에게 부여하였다고 생각하는 대법관후보제청권을 추천위원회에 온전히 양보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마찬가지로 인권위원 추천위원회가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의 선출 및 지명권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할 때, 애초에 인권위를 설립할 때 그런 구도로 가지 못한 상황에서, 그것을 개정법률에서 도입하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법률적 추천위원회가 아니라 자율적 추천위원회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시민단체에서, 가능하면 인권위와 함께, 자체적으로 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각계각층으로부터 후보자를 제안받고, 그 여러 후보자들을 모두 공개적인 과정을 통하여 여론의 검증을 받게 하고, 그들 가운데 적격인 인물을 선임권자들, 즉 대통령, 국회, 대법원에 공식적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추천위원회는 인권위가 뜻이 있다면, 인권위 내부 규정으로 입안하여 인권사회단체들과 협력 속에서 일을 진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인권위가 동참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인권사회단체 연석회의에서 임의적으로 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편 이는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의 안배에 의한 선임의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각 단위에서 시민사회의 참여 및 협의절차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어쩌면 ICC 승인소위가 우리 인권위에게 권고한 최소한의 요건일 수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ICC 승인소위의 권고에 따라 우리 인권위가 발표한 인권위원 인선을 위한 ‘가이드라인’에 유사한 내용이 들어 있다는 점입니다.
3. 인권위원의 선출·지명의 절차에 관한 원칙
인권위원의 선출·지명은 다양한 사회계층이 참여하는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진행하여야 하며, 관련 절차는 규정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원칙을 따라야 한다.
가.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위원의 임기만료로 공석이 예정되는 경우에는 임기만료일로부터 3개월 전에, 기타 사유로 공석이 된 경우에는 지체 없이, 해당 선출·지명기관에 대하여 인권위원 선출·지명 절차를 개시할 것을 알려야 한다.
나. 국가인권위원회는 새로운 인권위원을 선출·지명할 기관에 대하여 현재 인권위원의 대표성 분포 및 직역 분포에 관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위원의 공석에 대한 정보 및 인권위원 선출·지명절차와 일정을 국가인권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인터넷 블로그,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등에 게시하거나, 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해 전자우편을 발송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여 널리 알려야 한다.
라. 선출·지명기관은 인권위원의 선출‧지명에 있어 다양한 참여를 보장하기 위하여 자문기구인 후보추천위원회를 둘 수 있다.
마. 선출·지명기관은 인권위원의 선출·지명에 관하여 공석에 대한 정보 및 진행한 절차와 예정된 절차를 적정한 방법으로 공개하여야 한다.
바. 선출·지명기관은 인권위원을 선출·지명하는 경우, 해당 인권위원의 경력, 자격 요건 등을 포함한 지명 이유 등을 공표하여야 한다. 다만, 국회에서 선출하는 인권위원의 경우에는 국회 본회의의 표결 이전에 이를 공표하여야 한다.
사. 선출·지명기관이 인권위원의 연임을 결정하는 경우에 국가인권위원회 구성의 다원성에 대한 검토를 하여야 하며, 연임된 인권위원의 재임기간의 활동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여 연임 이유를 공표하여야 한다.
나아가 인권위는 ICC 승인소위의 심사를 앞두고 위 내용의 법적 근거를 만들려는 ‘시도’를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금년 1월 12일 전원위원회 결의로 인권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안하였습니다.
법안 제5조 제4항
국회, 대통령, 대법원장은 위원을 선출 또는 지명하는 절차에서의 광범위한 협의 및 참여를 위하여 다양한 사회계층이 후보를 추천하거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고, 위원을 선출 또는 지명함에 있어 인권의 보호와 향상에 관련된 다양한 사회계층의 대표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다만, 위의 법안에서는 광범위한 협의와 참여를 얘기하는 데에 있어, 그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서 시민사회, 인권사회단체들과의 협력이 빠지고, 자칫 정부 내지 국가기관들 내에서의 협의와 참여로 둔갑할 우려가 있음을 주의하여야 할 것입니다.
III. 맺음말
한 국가를 대표하는 여러 얼굴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대통령이 제1의 얼굴이겠습니다. 그러나 인권위원장 또한 국민을 대표하는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위원장의 얼굴은 우리의 미래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은 미래에 대한 염원이고, 미래를 향한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위원장의 얼굴은 아이들이 닮고 싶어하는 얼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우리는 대통령의 염치없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대통령을 비난하면 국민을 비난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대통령이 염치를 모르면 국민이 부끄러워집니다.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몰염치할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대신 인권위원장처럼 우리의 미래를 전망케 하는 상징적 인물은 훌륭한 분으로 선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최소한의 보상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인권은 형제애의 발현입니다. 세계 인권선언 제1조도 서로를 ‘형제애’로 대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권력의 성채의 문을 열고 시민사회를 맞이할 것을 권유합니다. 원래 인권위는 그렇게 국가 체제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권위원장은 설사 국가기구의 장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시민사회의 공기 속에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한번 인권위원장이면 영원히 시민사회, 생활세계에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인권위원장을 하고 다시 정관계에 기웃거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칫 ‘매판 인권’이나 매한지가 될 것입니다. 반드시 지금까지 인권운동에 헌신해 온 사람만이 인권위원장이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권위원장의 공급처를 획일화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권위원장이 되면 그 후에는 오직 인권의 한 길로 가는 그런 사람이 인권위원장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