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영 묵상노트]
산상수훈(3) 마태복음 5장 3절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구모영 장로 / 법학박사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3절 내지 12절은 팔복을 가르치고 있는데, 3절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심령”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심령이라는 헬라어는 πνεύματι(pneumati)로, 영어로는 spirit가 됩니다. 이것은 영혼의 근본적 부분으로, 이와 같은 내적인 영혼 속에 “가난함”이 있는 사람을 심령이 가난한 자라 합니다. 그래서 헬라 성경의 본문에는 심령이라는 단어 앞에 τῷ(to)라는 것이 붙어 있어서, 정확히 표현하면 “심령 속에”(in the spirit/ τῷ πνεύματι), 즉 그의 ‘영혼의 내면’에 가난함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혼의 내면에 가난함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 말 속에는 영혼의 내면에 궁핍함이 있어 채우고 또 채우고 싶은 마음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자기 스스로는 이 영혼의 궁핍함을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기에, 누군가를 통하여 이 궁핍함을 채워주시기를 간절히 기대하는 그와 같은 가난한 마음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다윗의 시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을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 42:1)라고 고백하는 마음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영적인 가난함은 자기 충족으로는 불가능하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절망적임 존재자임을 뼛속깊이 인식하는 자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성경에서 찾아본다면, 위에서 언급한 시편 42편 이외에도 1) 자기가 할 수 없는 처지와 하나님 밖에 도울 자가 없음을 아는 자들(사 61:1; 시 69:29, 70:5, 74:21, 86:1-6; 습 3:12), 2) 하나님 앞에서 오만한 자들과 반대되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 오만한 자들의 박해를 받는 자들(시 37:14, 86:14), 3) 죄로 인하여 상심하며 회개하는 자입니다(사 66:2; 시 34:6, 18, 51:17). 따라서 이들은 바로 마음이 상한 자들이며, 영혼의 궁핍함을 아는 자들이며,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 자기에게는 의가 없고 오로지 하나님의 도우심과 사유하심만을 기대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과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3절 후반 절에는 이와 같은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복”(Μακάριοι, Makarioi)이란 흔히들 세상이 말하는 복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세상의 복은 재물과 명예와 권세를 누리를 것 자체를 복이라 합니다. 따라서 가난과 헐벗음과 궁핍함, 그리고 건강치 못한 병약함은 오히려 저주요 불행으로 이해합니다. 아니, 세상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이와 같은 복을 참된 복으로 알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말씀 수종자 역시 같은 생각을 가지고 독려(?) 하는 소위 기복주의(祈福主義)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접하고 있는가요! 물론 복을 구하는 것 자체를 나무랄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믿음(신앙)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복은 그런 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복은 행복의 최고급으로, 이 행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녕, 즉 평안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복은 세상이 추구하고 따라가는 곳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것이므로, 세상 사람들은 사실상 느낄 수 없는 평안이며 행복인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누리는 복,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천국”이란 세속국(世俗國), 세상과는 다른 것으로, 이는 바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를 말합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시작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천국이 내세에만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이라 보면 안 됩니다. 이미 천국은 시작 되었고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적인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 천국은 현세에서는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참교회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천국은 ‘이미’와 ‘아직’이라는 것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특히 세례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고 외침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의 오심과 그의 통치를 통하여 이미 시작되었고 그의 다시 오심을 통하여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천국이 신자들의 마음을 통치하는 하늘의 영적 통치에서 드러나지만(눅 17:21), 앞으로 언젠가는 문자적으로 이 땅의 왕국으로 설 것입니다(계 20:46).
심령이 가난한 자, 그에게는 세상이 말하는 복과는 다른 고차원의 행복, 즉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평안의 복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들에게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받는 천국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천국은 그들의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모두 평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