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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watch?v=CtJkEWCQEbE
(핑갈의 동굴)
http://www.youtube.com/watch?v=Ds16rOf4JbQ
(스코틀랜드 교향곡)
서곡 [핑갈의 동굴]
‘핑갈의 동굴’은 스코틀랜드 북서쪽 연안의 헤브리디스 제도에 속한 스태퍼 섬에 있는 동굴로서, ‘핑갈 Fingal’이라는 명칭은 스코틀랜드의 전설에 등장하는 영웅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동굴의 내부는 크고 작은 육각형의 현무암 기둥들로 둘러싸인 거대한 홀의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거기에 파도가 들이치며 만들어내는 소리는 흡사 대성당에 메아리치는 파이프 오르간의 울림을 방불케 한다고 한다.
멘델스존은 스코틀랜드, 헤브리디스 제도를 여행하며 음악적 영감을 얻었다.
<출처 : James Warren Childe at en. Wikipedia.com>
1829년 4월, 멘델스존은 영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런던에서 그는 연이은 무도회와 연회 참석, 연극 및 오페라 관람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고, 한편으론 자신의 교향곡을 직접 지휘한 연주회로 대성공을 거두고 필하모니 소사이어티의 명예회원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약관의 천재 음악가는 영국인들의 환대에 크게 고무되었고, 이후 아홉 차례나 더 영국을 방문하며 헨델과 하이든에 비견되는 거장으로 대접받게 된다.
같은 해 7월 말, 멘델스존은 런던에서의 즐거웠던 추억을 뒤로 하고 내친 김에 스코틀랜드까지 돌아보기 위해 길을 떠났다. 스코틀랜드는 그를 한껏 고무시켰다. 깎아지른 바위 위의 ‘아서왕의 자리’에 올라가 에든버러의 지평선 너머로 펼쳐진 멋진 풍경을 자신의 스케치북에 담았고, 메리 스튜어트 여왕의 비운이 서려 있는 홀리루드의 폐허를 방문하여 [스코틀랜드 교향곡]의 도입부 악상을 떠올렸다.
여정은 계속해서 하일랜드 지방까지 이어졌고, 그는 때로는 마차나 짐마차를 타고, 때로는 걸어서 바위산과 폭포수, 황무지를 누비며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8월 7일, 헤브리디스 제도를 향하여 출항한다.
배는 거친 파도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넘실대는 파도 저편으로 차츰 헤브리디스의 군도들이 시야에 들어왔고, 멘델스존 일행은 뱃멀미와 폭풍우를 견뎌내며 스태퍼 섬에 도착했다. 마침내 들어선 핑갈의 동굴은 압도적인 인상으로 그들을 덮쳐왔다. 동행했던 친구 클링게만은 그 동굴을 “거대한 오르간의 내부처럼 어둡고 소리가 울리고, 아무렇게나 만들어져 있으며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어쩌면 멘델스존이 받은 감흥은 몇 년 전 역시 그곳을 다녀갔던 시인 키츠의 그것에 더 가까웠으리라. “바다가 끊임없이 그곳에서 부서지고 있다. … 장엄함과 웅대함, 그리고 광활함…. 그것은 가장 훌륭한 대성당을 능가한다.”
멘델스존은 그 자리에서 하나의 주제를 떠올려 스케치했고, 나중에 그 여행에 관하여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그 악보를 동봉했다. “헤브리디스가 내게 얼마나 엄청난 감동을 주었는지, 조금이나마 공유하기 위하여 그곳에서 떠오른 악상을 보냅니다.” 그리고 이 때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그는 한 편의 연주회용 서곡을 작곡한다. 그 서곡은 이듬해 로마에서 ‘외로운 섬’이라는 제목으로 일단 완성되었으나, 그 후 개정을 거쳐 ‘헤브리디스’라는 제목으로 런던에서 발표되었다. 이 곡이 바로 오늘날 [헤브리디스 서곡] 또는 [핑갈의 동굴 서곡]이라 불리는 작품이다.
멘델스존이 여행했던 스코틀랜드 북서쪽 헤브리디스 제도의 거친 파도와 섬들.
바다의 위험을 연주회장으로 옮겨놓다
서곡 [핑갈의 동굴]은 ‘음의 풍경화가’로 일컬어지는 멘델스존의 절묘한 작곡기법이 가장 잘 발휘되어 있는 작품이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변화무쌍한 바다의 모습을 담은 한 폭의 풍경화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넘실거리는 파도, 불어오는 바람, 외로이 떠있는 섬과 바위들, 푸른 바다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시커먼 동굴, 그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 떼 등등…. 이 모든 광경이 마치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음악은 은근한 일렁임으로 시작된다. 처음에 파곳, 비올라, 첼로로 제시되는 b단조의 중심주제는 파도를 연상시키는데, 이 주제는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며 곡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이 파도가 점차 진폭을 확장해 가는 동안 목관악기에서 흘러나오는 또 하나의 선율은 그 위에 떠있는 바위의 모습을 떠올리는 듯하다. 이제 바람이 점점 더 세차게 불어오고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모습이 묘사된다.
이 파동이 잠시 가라앉으면 이윽고 파곳과 첼로가 D장조의 칸타빌레 주제를 차분하게 꺼내놓는다. 느긋하게 노래되는 이 선율은 잔잔해진 바다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배의 모습, 또는 항해하는 나그네의 객수와 기대감을 드러내는 듯하다. 하지만 이내 바다는 다시 거칠어지고 코데타에 등장하는 새로운 주제는 마치 배를 뒤엎어 버리기라도 할 듯이 격렬한 기세로 휘몰아치는 폭풍우와도 같다
멘델스존에게 음악적 영감을 준 스테퍼 섬의 ‘핑갈의 동굴’.
전개부로 들어가면 갖가지 의성음이 들려오며 배가 섬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바닷새의 울음소리, 바다표범의 포효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부서지는 파도와 물보라 소리, 어디선가 홀연히 불어와 귓가를 스치는 한 줄기 바람의 감촉도. 이후 음악은 계속해서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변화무쌍한 바다의 모습과 그 항해 동안 멘델스존이 체험했던 긴박한 순간과 바다의 운치, 또 핑갈의 동굴에서 느꼈던 강렬한 감흥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바그너는 이 곡을 듣고서 멘델스존을 ‘일류의 풍경화가’라고 상찬했다. 물론 이 곡에 가장 열광했던 것은 영국인들이었는데, 그들은 이 위대한 작품이 자기네 나라의 자연환경을 그렸다는 사실을 뿌듯해했던 것이다. 특히 한 작가는 “이 곡은 바다의 위험을 곧장 연주회장으로 옮겨왔다.”라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트롬본 없이 고전적인 2관 편성 오케스트라를 위해서 작곡된 이 서곡은 소나타 형식의 구성원리를 따르는 등 형식면에서는 기존의 관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바다의 율동과 그 위의 갖가지 형상들을 세밀한 필치로 묘사했다는 점에서는 미래를 지향하고 있었다고 하겠다. 순수한 기악음악을 통해서 회화적⋅문학적⋅철학적 내용을 표현하는 표제음악은 낭만주의 시대에 가장 중요하게 대두된 장르 가운데 하나였고, 그 중에서도 [핑갈의 동굴]처럼 단악장으로 이루어진 ‘연주회용 서곡’은 1850년대 리스트가 창시하게 되는 ‘교향시’의 원형이었다.
황장원 |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 역임.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스테레오뮤직』『그라모폰』』『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
1829년에 처음으로 영국을 방문한 멘델스존은 이 점잖은 신사의 나라 영국을 그 어떤 나라보다 좋아했다. 런던 필하모닉을 지휘하며 그 자신의 [교향곡 1번]을 영국인들에게 선보인 그는 피아노 독주회와 자선음악회를 열며 영국 청중을 매료시켰다. 당시 멘델스존이 주도한 음악회에선 소프라노 마리아 말리브란과, 피아니스트 이그나츠 모셀레스, 플루티스트 루이스 드루에 등, 한 자리에 모으기도 힘든 스타 음악가들이 출연해 대성황을 이루었다.
몇 개월 간 영국에서 음악활동을 하던 멘델스존은 7월 중순에 카를 클린게만과 함께 스코틀랜드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계획했다. 멘델스존 일행은 글래스고와 에딘버러 등을 여행하며 스코틀랜드의 삶과 문화를 체험했다. 비록 멘델스존은 스코틀랜드의 백파이프 소리와 민속음악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8월 7일에 핑갈의 동굴을 방문했을 때는 깊은 영감을 받아 [핑갈의 동굴] 서곡의 도입부 악상을 떠올리기도 했다. 또 메리 여왕이 살던 궁전을 방문해 강한 인상을 받은 멘델스존은 1829년 7월 30일자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황혼 무렵에 우리는 메리 여왕이 살았던고 또 좋아했던 궁전에 갔습니다. 그 곳의 회전식 계단을 오르면 작은 방이 있는데, 그들은 이 계단을 올라가 그 방에서 리치오를 발견하고 그를 끌어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방 세 개쯤 지난 어두운 모퉁이에서 그를 죽였지요. 그 옆에 있는 예배당은 지금도 지붕이 없고 풀과 담쟁이가 무성하지만, 그 부서진 제단 앞에서 메리 여왕은 스코틀랜드의 여왕으로 즉위할 수 있었습니다. 그 주변은 모두 허물어지고 황폐해져서 하늘이 훤히 보이게 구멍이 나있습니다. 나는 오늘 그곳에서 [스코틀랜드 교향곡]의 도입부를 생각해냈습니다.”
음악적 영감을 던져준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
멘델스존은 스코틀랜드의 신비한 분위기를 음악 속에 심어놓았다. <출처: NGD>
스코틀랜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왕인 메리 여왕은 15세의 어린 나이에 프랑스 궁정으로 시집갔지만 병약한 국왕이 2년 만에 서거해 17개월간 프랑스 여왕직을 보유했던 인물이다. 이후 메리는 스코틀랜드로 돌아가 25년간 스코틀랜드 여왕으로 있었으나 나중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에게 처형되며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 멘델스존이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의 궁전에서 회상해낸 사건은 질투가 심한 메리 여왕의 남편 헨리 스튜어트가 메리 여왕의 신하 리치오와 메리 여왕과의 사이를 의심해 리치오를 죽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흔적을 담고 있는 메리 여왕의 성은 멘델스존에게 강한 충격으로 다가와 스코틀랜드 교향곡의 실마리를 던져주었다.
멘델스존이 [스코틀랜드 교향곡]을 완성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시기의 멘델스존은 다른 여러 작품들을 마무리해야 했을 뿐 아니라 완벽을 추구하는 그의 성품이 작용하면서 [스코틀랜드 교향곡]의 작곡은 한없이 늦춰졌던 것이다. 그 사이 멘델스존은 이 작품을 그대로 둔 채 [이탈리아 교향곡]에 손을 대기도 했지만 [스코틀랜드 교향곡]의 악보는 한동안 내버려 두었다. 마침내 [스코틀랜드 교향곡] 전곡의 완성을 본 것은 1842년 1월의 일이었다. 결국 이 교향곡은 멘델스존의 성숙기 교향곡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완성된 셈이다.
멘델스존이 [스코틀랜드 교향곡]을 완성하기까지 13년이란 긴 시간이 걸린 것은 그의 완벽주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이 작품을 특히 어렵게 생각했던 탓도 있다. 스코틀랜드의 이국적 풍경과 월터 스코트의 소설, 스코틀랜드의 민속음악 등이 멘델스존의 영감을 자극했다 할지라도 이 모든 요소들을 통일적인 음악 아이디어로 표현해내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멘델스존이 1831년에 남긴 메모를 보면 그 어려움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이 교향곡은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멀리 달아난다. 스코틀랜드의 안개에 싸인 것 같은 분위기를 표현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오랜 기간 고민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스코틀랜드 교향곡]은 그 뛰어난 작품성으로 인해 음악평론가들의 찬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멘델스존 음악의 주된 특징인 선율의 아름다움과 고전적 균형감, 유연한 흐름이 돋보일 뿐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안개에 싸인 분위기를 담은 여린 음량이 음악의 분위기를 주도 하고 있어 이 작품은 ‘피아니시모 교향곡’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안개 속 스코틀랜드 풍경과 같은 음악적 분위기
멘델스존의 [스코틀랜드 교향곡]은 모두 4개의 악장으로 되어있으나 베토벤 [교향곡 제9번]과 마찬가지로 2악장과 3악장의 순서가 바뀌어 2악장이 빠르고 3악장은 명상적이다. 전 악장은 각 악장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연주되어 통일성이 느껴진다. 각 악장 사이의 긴밀한 연속성과 민속적인 색채, 풍부한 오케스트라 음향은 이 교향곡의 진정한 매력이다. 그 때문에 이 교향곡엔 어린 시절의 멘델스존이 보여주었던 동화적이고 가벼운 음향보다는 신중하고 진지한 면이 더 강조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진지함이야말로 이 작품의 개성이다.
멘델스존에게 음악적 영감을 던져준 에딘버러에 위치한 메리 여왕의 성.
<출처: Oliver-Bonjoch at en.wikipedia>
[스코틀랜드 교향곡]에 사용된 주제 선율들은 전반적으로 아름답고 풍부하기 때문에 처음 들어도 친근감을 준다. 1악장 도입부의 멜로디는 신화적으로 숭고하며, 이어지는 빠른 음악은 밀도 높은 텍스추어를 보여주며 풍부한 음향을 뿜어낸다. 소박한 민요선율이 돋보이는 빠른 2악장에선 클라리넷의 재기발랄한 노래가 인상적이다. 멘델스존이 스코틀랜드 민속음악을 친근하고 맛깔스럽게 제시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작곡가 바그너도 크게 감탄한 바 있다. 2악장이 소박하고 친근한 반면, 명상적인 3악장은 브람스의 음악을 연상시킬 정도로 중후하다. 아마도 이 음악에서 멘델스존은 스코틀랜드의 흘러간 역사를 상기해냈는지도 모르겠다. 4악장에선 다시 활기찬 민속 춤곡 선율이 이어지며 듣는 이들을 한껏 고양시킨다. 리드미컬한 현악기의 주제는 생기발랄한 느낌을 전해주고 클라리넷과 오보에의 음색은 간혹 스코틀랜드의 백파이프 소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최은규 | 음악평론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및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 부천필,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