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2주 희망근로 현장 가보니 저소득층 일자리 사업이지만 중산층 '알바'로 변질되기도…
일부 지자체, 사람수 채우려고 소득 심사 등 대충했기 때문
추경예산, 엉뚱한 곳에 새나가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층(차상위 계층)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총 1조707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희
망근로 프로젝트'가 일부 중산층의 아르바이트로 변질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빈곤층 실
업자를 대상으로 지출하겠다던 막대한 세금(추경예산)이 사업 시행 2주 만에 현장에서 '눈먼 돈'으로 새나가고 있는 것
이다. 원래 희망근로프로젝트는 '소득이 최저생계비(4인 가구 월133만원)의 120% 이하이고 재산이 1억3500만원 이하
인 차상위 계층'을 참여 조건으로 하고 있다.
지난 12일 오전 10시 경기도 안양시의 한 주민센터(동사무소). 희망근로 프로젝트 근로자로 뽑힌 A씨(여·42)가 서류
정리를 하고 있었다. A씨는 남편이 중소기업 직원으로 안양 신도시에 5억~6억원짜리 106㎡(32평) 아파트를 갖고 있
다. A씨는 지난달 중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주민센터의 홍보전단지를 보고 희망근로 프로젝트에 지원했다. 며칠
후 시청으로부터 합격했다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아이들 사교육비가 워낙 비싸 교육비 걱정을 했는데
운 좋게 뽑혔다"고 했다. 이 주민센터에서 A씨와 함께 서류정리 일을 하고 있는 B(46) 주부 역시 남편이 중견 기업 부
장으로 일하고 있다. B씨도 4억~5억원대의 100㎡ 아파트를 갖고 있다. 남편이 중소기업 임원이고 대전시에서 126㎡
(38평)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홍모씨도 희망근로 프로젝트에 참여해 길거리 환경조화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처럼 당초 취지와 달리 중산층 이상 가구가 희망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자 저소득층 참여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오
고 있다.
- ▲ 지난 12일 경기도 안양에서‘희망근로 프로젝트’참여자들이 환경 정비작업을 하고 있다. 일할 능력 있는 저소득층 실업자에게 공공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이달 부터 시행된‘희망근로 프로젝트’가 중산층 주부 등의 아르바이트로 변질되고 있다./이태경 기자 escaro@chosun.com
지난 11일 오후 서울 강서구에서 만난 저소득층 참여자는 "(나와)함께 근무하고 있는 60대 여성은 '4층짜리 빌딩에 의
료보험료가 월 수십만원대이지만, 집에서 놀기 심심해 소일거리 삼아 지원했다'는 자랑을 했다"고 전했다.
안양시의 희망근로프로젝트에 참여중인 성모(여·61)씨도 "동사무소에서 부녀회와 통장 등을 동원해 신청을 독려했
다"며 "그러다보니 잘사는 주부들도 참여했다"고 말했다. 희망근로프로젝트가 중산층의 '용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는
이유는 정부와 지자체가 시행 일자(6월1일)에 맞춰 무리하게 사업을 시행하면서 평가와 감독을 허술히 했기 때문이다.
각 지자체가 근로자 배정 인원 수를 채우려다보니 지원자가 부족한 곳에선 가구 소득 등 자격요건을 철저히 따지지 않
고 합격시킨 것이다.
경기도 군포시청은 지난달 중순 1차 모집(1332명 정원) 때 지원자를 거의 합격시켰다. 군포시청 관계자는 "정원을 가
까스로 채우다보니 순위를 매기거나 심의 자체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1437명 배정 인원에 신청자가 900명에 그친
서울시 서초구청측도 "소득에 상관없이 다 신청을 받고 있다"고 했다. 대전시 중구청 관계자는 "희망근로 참여인원
1500여명 중 가구 소득이 월 300만원 이상인 사람도 약 100명 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희망근로프로젝트 참여자들에게 지급되는 월 80여만원의 급여 가운데 30%는 재래시장이나 영세상점에서 쓸 수 있는
쿠폰으로 지급된다. 지난 6일 경기도 안양시에서는 100여명이 상품권이 싫다는 이유로 희망근로를 그만뒀다. 쿠폰을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이 많지 않아 아파트 단지내 수퍼나 떡집, 약국 등에서 쿠폰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11일 현재 전국적으로 25만명의 희망근로 프로젝트 참여자 가운데 2만6773명(10.6%)이 중도 포기했으며, 이들 상당
수가 '적성에 안 맞는다' '쿠폰이 싫다' 등의 이유를 댔다.
행정안전부의 희망근로프로젝트 TF팀 관계자는 "중산층과 고소득층이 (희망근로 프로젝트에)지원한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며 "쿠폰 가맹점 수도 최대한 늘려가겠다"고 말했다.
희망근로프로젝트
정부가 지난 3월24일 발표한 경기부양용 추경예산의 핵심 사업으로 근로 능력이 있는 차상위계층(소득이 최저생계비
120% 이하이고 재산이 1억3500만원 이하인 가구) 실업자에게 6개월간 일자리를 제공하고 월 80여만원을 주는 사업.
이달부터 시행돼 40만 가구에게 총 1조707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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