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란? (교회와 세상 사이에 차이점 3)
교회는 복을 받는 곳이다. 하지만 그 받을 복을 무엇으로 알고 받는가에 따라, 기복신앙이 되거나 구원신앙이 된다. 현실은 기독교인들이나 목회자들이나 그 ‘복’이 무엇인지를 구별하거나 분별하여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복’하면, 주로 五福, 즉,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가리킨다. 이는 오래 사는 것, 넉넉한 재산, 심신이 건강하고 편안한 것, 선행을 베푸는 삶, 그리고 평안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명예나 인기를 얻는 것도 복으로 여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것을 ‘복’으로 알고, 그 복을 받기 위해 일하고 노력하고, 노력할 것이다.
기독교인들도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또한 이를 위해 기도할 것인데, 그들의 마음속에는, 아마도, 위의 복들이 자리 잡고 있을지 모른다. 내세에 지옥에 가지 않고, 현세에 이러한 복들을 누리는 것이 참된 복으로 알고 추구할지 모른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복’을 구분하여 개념 정리를 했다. 어거스틴은 고대 철학(특히 플라톤주의와 스토아주의)에서 말한 felicitas—즉 “지혜로운 삶, 덕의 삶이 주는 행복”—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세속적 행복이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에게는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참된 beatitudo는 하나님을 소유함(possidere Deum), 즉 하나님과의 영적 연합이라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세상적이고 일시적인 복을 felix로, 천상적이고 영구한 복을 beatitude로 구별했다. 자연적이고 세속적인 것은 felix로,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것은 beatitude로 구별했다.
칼빈은 구별하여 말하길(chatgpt에서), “세상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평안과 번영을 felicitas라 부르지만, 그 모든 것은 바람과 같이 덧없다.”— Institutes III.9.1 그리고 “참된 복(beatitudo)은 이 세상의 풍요로움이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하고 그 은혜 안에 거하는 데 있다.”— Commentary on Psalm 4:6. 이에 더하여 “모든 행복의 요약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Institutes I.2.1 이처럼 칼빈도 어거스틴의 전통을 따라 세상적인 복과 천상적인 복을 구별한다.
하나님은 은혜언약 가운데 “나는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오로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성취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우리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셨다. 칼빈을 시 16:2 주석에서 “다윗은 하나님 자신을 복(beatitudo)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하나님 외에는 우리를 복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마치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 외에 선하게 살기 위해 추구되는 모든 것은 헛되고 공허하다.’”
우리는 ‘복’을 받은 자요, 하나님을 소유한 자로 이 세상에 살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복’인 ‘하나님을 보는’ 날을 소망하며 산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복으로 받은 자들에게 무엇이 부족함이 있으랴! 하나님은 창조에서나 재창조에서나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주시고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기를 원하신다. 감사와 찬양의 제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