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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요한복음(56) /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증언하라.”
☞ 말 씀 : 요 한 복 음 15장 26절 - 27절 (신약성경 p.174)
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아멘!
법정에서 어떤 사건을 심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확실한 증거물입니다.
그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가 있다고 하더라도, 결정적인 증거물이 나오게 된다면,
판결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께서 과연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메시아인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가 어떻게 인류의 죄를 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직면해 있습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해답으로 결정적인 두 가지 증거를 알아보겠습니다. 다시 한 번 오늘 본문 말씀인 26절, 27절을 함께 봉독합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아멘! - 첫 번째 증언은 성령님께서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시는 것이고,
두 번째 증언은 사랑하는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는 것입니다. 또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곧 이웃에게 살아계신 예수님을 전하는 일입니다.
먼저 첫 번째 증언인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증언하시는 것에 대해 알아봅시다.
오늘 본문 26절 말씀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성령님에 대해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세상에 보내시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세상에 오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둘째는, 실제로 성령님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영입니다. 셋째는, 성령님은 곧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 이며 옆에서 도와주는 분이란 뜻입니다. 넷째로, 보혜사는 진리의 성령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진리의 성령이신 보혜사께서 세상에 오시는 이유에 대해,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에 관해 증거’ 하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성령님께서 세상에서 질병도 치유하시고, 방언도 하게 하시는 등, 능력과 기적을,
베푸시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곧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 말씀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성령님의 역사라는 사실입니다.
또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우리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5장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으면 놀라운 영적 세계를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님이 세상에 오시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온 인류를 구원하는 구세주라는 사실을 증언하시기 위함이라고 분명히 밝혀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으며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은,
일종의 공식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 질량불변의 원칙 등 세상의 많은,
공식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공식처럼 되었습니다.
인간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다는 공식대로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믿는다면 놀랍고 생동감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어떤 사람들은 그 공식만 받아들이고 제대로 된 결과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며 봉사 활동도 하지만, 생동감 있고,
기적이 있으며, 풍성한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인간적인 판단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으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성령님의 역사로 어느 날 갑자기 그분의 이름 앞에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동안 아무런 감정도 없이 찬송을 부르고 성경책을 읽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삶에서,
예수님께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웬 일인지 가슴이 뜨거워지고 미워했던 사람을,
용서하면서 사랑하게 됩니다. 기도가 터져 나오고 신령한 시, 찬송,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기도를 하게 되고, 기도하는 중에 방언이 터지고, 예언도 하며, 질병도 낫게 됩니다.
그리고 예전처럼 죄를 지으려고 하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영적 힘도 생겨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믿고 구원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그 이상의 영적 상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충만한 기름 부으심과,
다스림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가 있을 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시며, 구세주이심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체험을 한 사람은,
누군가 총을 들이대고 죽음으로 몰아가더라도,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언하시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언하시는 첫째는, 성경에서 증언하십니다.
성경은 약 2,000년에 걸쳐 40여 명의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다른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기록된 진리의 책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실제 저자는 사람이 아닌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께서 시대마다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감동을 주시고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40여 명의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 성경이지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주제는,
일관되게 흐르고 있습니다. 2,000년 동안 서로 전혀 다른 환경에 있었던 40여 명의,
사람들이 성경을 썼는데, 주제는 일맥상통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저자가 한 분,
즉 성령님이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 17절에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하게 하려 함이니라.”
또 베드로후서 1장 21절 말씀에서 보면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경을 기록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느낀 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기록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결론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느낀 대로 기록한 말씀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기록한 말씀이기에, 성경을 읽을 때,
성령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라야,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때로 성경은 잘 읽혀지지 않고 우리에게 수면제 역할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님을,
만나게 되면 성경 말씀을 잘 깨닫게 됩니다. 한마디로 성경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예수님에 대해서 더욱 깊이 알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읽은 사람이 예수님을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됩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성경 말씀을 읽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교도소에서 성경을 읽다가 성령 체험을 갖기도 합니다. 우리 인간은 절망,
고난 중에 있을 때, 성경 말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성령 체험을 하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시는 둘째 방법은, 사람의 ‘내적 증거’ 입니다.
사람의 ‘내적 증거’ 라는 말은, 종교 개혁자들이 많이 사용했던 단어입니다.
사람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성경을 읽을 때 영안이 열리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곧 성령님께서 우리 사람들의 내면에 들어오셔서 말씀하시고, 증언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친히 들어오셔서 말씀해 주십니다.
학교, 연구소, 직장, 사회 등에서 경험한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한 영적 진리를,
말씀해 주십니다. 이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어떤 이유로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무식한 사람이든 유식한 사람이든, 지혜로운 사람이든 미련한 사람이든, 성령님께서,
그 사람 안에 들어가시면, 모든 것들에 대해 직접 증언해 주시고 깨닫게 해 주십니다.
성령님의 증언에 세 단계 중 첫째 단계는, 모든 것들에 대해 이해시켜 주십니다.
성경은 아는 것이 아니고 알아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대해 연구한 다음에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가르침으로 알아집니다. 부활, 기적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제가 한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머리로 생각하고 연구한 후에 알게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분명한 사실은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깨닫게 하셔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증언에 세 단계 중 둘째 단계는, 죄에 관해서 깨닫도록 해주십니다.
만약 성령님의 임재를 주장하면서도, 자신의 죄에 대해서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짜 잘못된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에서 필연적인 것은 죄에 대한 회개입니다.
여태까지 다른 사람들의 허물만 보고 있었지만, 이제 자신의 허물을 보기 시작합니다.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회개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바로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성령님의 증언에 세 단계 중 셋째 단계는, 우리 사람들에게 믿음을 갖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간들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게 되고,
따라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회개하면, 우리 모두 용서 받은 사실도 확신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성령님께서 저와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내적 증거입니다.
우리는 세 가지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산에 가서 도를 닦아야 예수님을 발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특별 계시를 받았고, 놀라운 환상을 보았다하더라도 성경 말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 신앙은 성경 말씀에서 시작해 성경 말씀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 받은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성경 말씀을 근거로 해서 대답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도, 성령을 받은 것도,
천국에 간다는 것도,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영생도, 모두 성경 말씀에 근거를 둬야 합니다.
우리들의 개인적인 어떤 느낌, 끌어오르는 감정, 어떤 체험에 우선해선 절대 안 됩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는 내적으로 성령님의 증언을 통해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의 증언과 성령님의 내적 증언이 합해져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세주이시며, 그분으로 인해 구원받은 사실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우리는 사랑하는 제자들의 증언을 통해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3년 반 동안 함께 지냈습니다. 처음에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불완전하고 인간적인 믿음으로 따라다녔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닌다고 모든 사람들이,
성령님을 체험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 중에 불완전한 믿음도 있고, 인간적인 믿음도 있습니다.
한 번 다니기 시작했으니, 교회에 오락가락하면서 인간의 의지로 믿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는 일은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성령님의 임재로 인한 믿음은,
처음에 불완전하고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되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선하게 나타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면서 조금씩 바뀌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약속하신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강림하시자, 제자들은 완전히 변하게 되었습니다.
성령님 체험 없이 집안 분위기로, 습관적으로, 종교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임재가 강력하게 임할 때, 변함없이 주님을 섬기고 따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 체험이 있고 난 후의 신앙생활에는 절대로 변질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사실에 대해 스스로도 놀라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지만,
성령님 체험을 하고 나면, 그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결코 주님을 떠나지 않게 됩니다.
성령님 체험하고 나면, 믿음의 경주에서 일탈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성숙하고,
온전해서가 아니라, 여전히 많은 실수가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실수를 별로 중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항상 인도해 주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래서 성령체험은 감동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님과 대화하는 영적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많은,
실수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항상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영적 체험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선 열두 제자들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 빌립, 스데반과 같은 사람들에게도,
영적 체험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스데반은 순교하고, 빌립은 전도자가 되며, 바울은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할 때, 많은 핍박과 환난이 따라온다는,
영적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6장 1절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 -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증언하게 될 때에,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때 우리로 하여금 모든 어려움을 다 이겨내고,
승리하도록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성령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아십시오.
저와 여러분에게 성령님의 임재와, 고난은 항상 같이 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말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님! 우리의 주님이 되심을 증언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하게 되면, 반드시 많은 핍박과 환난을 당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증언하는 사람들을 절대로 환영하지 않을뿐더러,
아예 소외시켜 버립니다. 소위 ‘왕따’ 를 시킵니다. 심지어 죽임을 당하게 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종교적 이유나 하나님을 핑계 삼아 예수님을 증언하는 사람들을 죽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는 한마디로 순교의 역사입니다. 현재까지도 순교의 역사는 계속 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크게 부흥한 것 같지만, 힘이 없는 것은 순교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증언하다가 쫓겨나고, 목숨까지 잃게 되는 것이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기독교는 순교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진정한 순교가,
없기 때문에 능력을 상실한 것입니다. 매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가 핍박과 환난을,
당했을 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성령 충만 뿐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받았다는,
사실을 좀 더 높은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님을 받은 후에 건강해지고,
모든 일들이 잘 풀렸다는 것에서 한걸음 나아가, 성령님의 능력으로 모든 핍박과 환난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어떤 고난, 좌절,
두려움도 뚫고 나아가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