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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1.23
캐즘
▲ /일러스트=박상훈
Q. 국내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이 '캐즘'에 빠졌다는 뉴스를 봤어요. 불황이 길어질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 캐즘은 무엇이고,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건가요?
A. 요즘 우리나라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가 줄어들면서 전기차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배터리 수요도 덩달아 감소할 거라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죠.
캐즘(chasm)은 첨단 기술이 도입되는 과정의 과도기를 뜻해요. 첨단 기술이 적용된 신제품이 나오더라도, 이 제품이 많은 사람이 널리 사용하는 '주류 시장'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캐즘은 한 제품이 대중화되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하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을 말해요. 원래 캐즘은 지각변동으로 지층 사이에 생긴 깊은 틈을 뜻하는 지질학 용어인데, 지금은 경영학과 마케팅 분야에서도 쓰이고 있어요.
캐즘은 왜 생기는 걸까요? 바로 얼리어답터(early adopter)와 일반 대중의 소비 성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얼리어답터는 새 제품을 남들보다 앞서 경험하려고 하는 소비자들이에요. 그래서 기술 완성도가 떨어지고 가격이 좀 비싸도 기꺼이 새로운 제품을 구매하죠. 반면 대다수 소비자는 제품이 실용적인지, 품질이 믿을 만한지, 가격은 적당한지 꼼꼼히 따져보고 사요. 그러니 얼리어답터들의 지갑을 여는 데는 성공하더라도, 대중적으로 많이 팔리진 않는 거예요.
전기차를 예로 들어볼게요. 최근 전기차 판매가 늘어나곤 있지만, 아직 내연기관차 자리를 위협할 만큼 주류로 올라서지는 못했죠. 전기차는 배터리를 한 번 충전했을 때 갈 수 있는 주행거리가 길지 않아요. 그런데 충전소는 아직 부족한 편이죠. 게다가 화재가 났을 때 내연기관차보다 위험하다는 인식도 퍼져 있어요. 그러니 아직 많은 소비자가 전기차 구매를 주저하고 있죠.
첨단 기술이 캐즘을 뛰어넘으려면 가격·품질·안전성 등 제품 자체 경쟁력은 물론 제품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인프라까지 마련돼야 해요. 아무리 혁신적인 제품이더라도 대중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면 점차 시장에서 사라지는 운명을 맞아요. 개인용 이동 수단으로 한때 주목받았던 '세그웨이'나 안경 형태 스마트 기기인 '구글 글라스'처럼 말이죠.
현재 널리 쓰이는 기술과 제품도 한때 캐즘을 경험했어요. 대표적인 사례가 이젠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 된 스마트폰인데요. 컴퓨터와 전화기를 결합한 모바일 기기를 만들려는 시도는 1990년대부터 있었어요. 하지만 비싼 가격, 작은 배터리 용량, 복잡한 사용 방법 탓에 한동안 외면받았죠. 스마트폰 대중화 시대는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으며 비로소 열렸어요. 캐즘 단계에 있는 전기차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어요.
연유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제이야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