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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닷컴에 소개된 저자 권산이 책을 펴내면서 쓴 글을 옮겨왔습니다.
황골농장지기가 나중에 책을 쓸 때도 이렇게 긴 글을 쓸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카페에 재미있는 글을 써서 우리 님들과 함께 정다운 소식을 주고받는 재미로 사는데 만족하지만 혹여라도 이분처럼 책을 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 욕심이 들면 글들이 모두 돈이라는 생각에 꼭꼭 숨겨놓을지도 모르니까요 ㅋㅋ
재미있는 책 출판후기 읽어보시고 맘에 드시면 가까운 서점으로 달려가세요.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 권산지음 출판사 뿌리깊은나무 15,000원
책을 출간했다.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 - 지리산 자락에 정착한 어느 디자이너의 행복한 귀촌일기'
(주)북하우스 퍼블리셔스. 긍께 그냥 북하우스출판사.
2010년 9월 29일에 인쇄했고 10월 6일부터 서점에 배포될 것이다.
지난 토요일, 10월 2일 오후에 택배로 책을 받았다.
아마도 제본 끝난 다음 날 바로 보낸 모양이다.
진행하는 동안 pdf 파일로 자주 보았고, 본문을 출력해서 원고를 읽기도 했지만 완제품으로 도착한 책은 좀 낯설었다.
372쪽이다. 처음 생각보다는 두꺼운 책이 되었다.
지리산닷컴의 '큰산아래이야기' 메뉴에 올린 글 중에서 20꼭지를 담았다.
'마을'과 '생각'에 해당하는 글들 중에서만 수록했다.
그렇게 원고를 선정한 것은 전적으로 내 결정이었다.
여러가지 카테고리를 두고 싶지 않았다. '귀촌'에 이야기의 중심을 두고 싶었다.
원고량을 줄여야했고 20% 정도 내용을 수정하거나 다른 원고와 혼합하기도 했다.
완전히 새로 쓰거나 거의 새로 쓴 글은 프롤로그와 구례착륙기, 에필로그 정도이다.
머릿글은 길지 않지만 작성한 시간은 30분을 넘지 않았다. 나는 모든 책에서 머릿글을 읽고 그 책에 관한 인상을 결정짓는다.
여는 글 - 거처居處를 위하여
- 거기서 뭐하나?
지인들조차 가끔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나의 대답은 퉁명스럽다.
- 내가 여기서 뭐하겠나?
서울이었다면 겪지 않아도 되는 질문이다.
단지 시골에 산다는 이유로 겪어야 하는 질문이다.
따라서 서울이건 시골이건 무시해도 되는 질문이다.
세상에는 서울에 사는 디자이너도 있고 시골에서 사는 디자이너도 있다.
사는 곳이 바뀐다고 먹고 사는 방식을 바꿀 필요는 없다.
“거기서 뭐하나”라는 질문 속에는 “도대체 너의 생각은 뭐냐?”라는
밑장을 한 장 깔고 있다. 특별하게 생각이 바뀐 것도 없다.
그래서 역시 나의 대답은 또 퉁명스럽다.
“넌 특별한 생각 가지고 서울에서 사냐?” 조금 더 친절하자면,
그냥 살다보니 그렇게 된 것뿐이다. 특별할 것 없다.
나는 단지 거처를 옮겼을 뿐이다.
2006년 여름 초입에 서울에서 구례로 거처를 옮겼다.
시골에서 살아 본 적이 없었다.
시골에서 살아야겠다는 꿈을 품고 살지도 않았다.
어느 날, 불현듯 ‘내려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로부터 일 년 후 서울을 떠났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만큼 복잡한 일도 아니다.
꼭 어렵게 진행할 이유도 없는 일이다.
내 판단은 언젠가부터 아주 간단한 잣대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행복해야 한다.' 그것에 충실한 방향으로 행동한다.
행동으로 표현되지 않는 생각은 공상이거나 맥주를 위한 땅콩 몇 알과 다르지 않다.
보기에 따라 '저 사람 참 쉽게 산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나 역시 초행길이다.
앞일에 대해 가늠도 해보고 잘 안 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다만 귀촌이란 것을 인생을 건 도박에 비견할 만큼 심각한 승부수로
생각하지 않은 것뿐이다. 나는 판돈도 없었다.
조금 더 자유로워진 나를 발견한다.
자신이 정한 룰이 아닌, 시스템이 정한 룰에 따라 사는 것을
당연시할 필요는 없다. 내 생각으로 살자, 뭐 그런 것이다.
아, 물론 가능하면 사람들에게 해로운 방법으로 밥벌이하지 말자고 권하기는 한다.
나는 두 마을과 구체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사무실이 있는 오미동과 집이 있는 상사마을이다.
전반적으로 두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항상 받는다.
나 역시 그들을 존중한다. 현금이 아닌 것을 주고받는 것이 있다.
나는 어떤 장면에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내 기능을 제공한다.
마을 사람들이 나를 활용할 때와 내가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양쪽의 저울질을 세심하게 한다.
내가 더 많은 일을 맡아 저울의 추가 내 쪽으로 기울 수 있도록
'내 깐에는' 신경을 쓴다. 피해는 주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정도의 룰만 지켜도 존중받을 수 있다.
우리들의 삶이 많은 변화를 겪듯 우리가 사는 공간도 많은 변화를 감당한다.
수도 없이 거처를 옮겨왔고 생각해보면 그 변동의 대부분은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 나의 뜻대로 살고 싶었고 조금씩 그렇게 살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지금은 조금 더 온전하게 나의 뜻이 반영되는 거처를 생각한다.
거처居處. 자리를 잡고 사는 일이다.
2009년 8월 오미동 사무실에서.
책.
나의 책에 관한 생각은 고전적인 면이 강하다.
책은 텍스트다. 나에게 책은 이미지가 가득한 그 무엇이 아니다.
기억에 남는 책 중에서 이미지 때문에 남아 있는 책은 없다. 그래서 나에게 책은 텍스트의 집합이다.
나는 책을 읽지 않는다. 거의.
모태불독母胎不讀인가? 그렇지는 않다. 30세 무렵까지는 읽었다.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던 고등학교 시절에 하루 한 권의 책을 꼭 읽었다.
레이몽 라디게의 어느 글에서, 고향의 강가 조그만 배 안에서 하루 종일 누워 몇 권씩의 책을 읽었다는 구절을 읽고 모방한 혐의가 짙었다.
낮에는 학교에서 한 권의 소설을 읽고 밤이면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상.
입시생의 전형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해야 멋있는데
사실은 조금 후회스럽기도 하다.
대학에 와서는 필요에 의한 독서를 했던 듯 하다. 두 가지 전공에 관한 서적을 읽었다.
미술과 데모. 그 즈음부터 소설을 읽는 것이 힘들었다. 읽을 수 없었다.
문장에서 묘사와 장식을 견디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인문서나 자연과학 교양물, 미학 서적을 읽는 것이 오히려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책을 읽는 동안 계속 필자와 싸웠다.
동감하면서 읽어야 하는데 투덜거리면서, 필자를 욕하면서 읽는 일은 힘든 노릇이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나는 더 이상 책을 사지도 읽지도 않았다.
결국 나에게 책이란 중학교부터 대학 졸업하고 몇 년까지의 것에서 멈추어 있다.
전혀 읽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읽지 않는다고 보면 정확하다.
그런 내가 머리맡에 항상 두고 있는 책이 있는데 '뿌리깊은나무'의 몇몇 책들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책이란 이런 것이다.'는 교본과 같은 책들이다.
구례로 내려 온 다음, 거의 2/3 페이지는 읽는 책이 생겼는데 잡지 '전라도닷컴'이다.
전라도닷컴에서 뿌리깊은나무의 향기같은 것을 느낀다. 전라도닷컴에 실례되는 소리일까...
책 내고 할 소리는 아니지만 세상에는 너무 많은 책이 있고 그 책들의 대부분이 과연 세상에 필요한 것인지 나는 회의적이다. 나무를 원료로 종이를 만들고, 그 종이로
책을 만든다는 것은 나무를 베어야 한다는 소리다. 그 나무의 가치에 절반이라도 값하는 책이 제대로 된 책일 것이다.
뿌리깊은나무의 책들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구술 '민중자서전' 시리즈는 '내가 책을 낸다면' 그런 책이고 싶다는 깊고 짙은 열등감의 표본이다.
무엇보다 이 책들의 힘은 디자인도(사실은 가장 멋진 디자인이지만) 광고도 아니다.
이 책들의 힘과 가치는 '텍스트 자체'이다. 책은 글을 모은 종이뭉치다. 그 종이뭉치 속에 있는 이야기들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만큼 팔리는 것이 정당하다.
그러나 더 이상 이런 고전적인 마케팅관으로 출판동네를 바라보는 것은 낭만주의자의 푸념일 것이다.
여튼 책은 점점 포장되고 광고하고 과도한 종이와 제작비용을 소비한다. 책은 자체로 소비다.
문제는 그 소비가 윤리적인 소비인가 하는 점이다.
2009년 12월 말, 서울가는 길에 북하우스와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결국 책을 만드는구나. 도장 찍고 든 생각이다.
책을 만들어보겠느냐는 제의는 1년에 두세 차례 있었다. 알만한 출판사인 경우도 있었고 책을 읽지 않는 나에겐 생소한 출판사도 있었다. 두어 번 진행에 들어간 일도 있는데 이상하게 책을 진행하면 담당편집자가 그만두거나 위치 이동을 하거나 해서 초반에 취소되곤 했다.
서울시절 개인사이트의 글들을 구례로 내려오기 전에 한 권으로 묶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어떤 마감같은 의식을 원했다. 그러나 그리하지 못했다. 시간이 좀 더 흘렀고 그것을 책으로 만들지 않기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이야기들이었다.
책을 만들자는 제의를 받으면, '저까지 나무 죽일 필요가 있습니까' 라는 말로 가볍게 사양했다.
꼭 책을 만들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지리산닷컴의 지금 모습으로도 글과 사진을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까지 제안받았던 출판사가 아닌 북하우스와 계약을 했다. 왜?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이번 책을 만들게 한 담당편집자가 1년 전 가을에 '선생님 책 내실...' 이라고 물어왔을 때, 역시 가볍게 사양했다. 그 편집자는 나의 대답에 대해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나 다시 전화가 온다. '선생님 혹시 책 내실 의향이...'. 마치 이전에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는 사람처럼 다시 물어온다. 다시 거절한다. 그러나 약간 마음이 움직인다.
다시 조금 시간이 지나 그 편집자는 메일 또는 전화를 해 온다. 처음 이야기하는 사람처럼.
"선생님 책 내실래요?"
"그래, 이뤈 젠장 만들자 만들어!"
그렇게 된 일이다.
원고는 2010년 2월 28일까지 넘기기로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었다.
출판사는 3월 31일이라고 만들어왔는데 내가 고쳤다. 오래 가면 내가 하지 못할 것이란 것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기 때문이다. 2개월 작업하면 시간은 넘친다는 생각이었다.
새로 쓸 글이 아니라 지리산닷컴의 '큰산아래이야기'에서 선택하고 재편집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계속 다른 일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그렇고 금년 12월까지 그럴 것이다. 예정된 일들이 그러하다. 결국 내 원고는 항상 가장 뒷전으로 밀렸다.
2월 3일. 약간의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원고를 늦게 주는 필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2월 1일이라는 새로운 달의 시작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날과 그 다음날까지 지나간 글들을 통독, 난독했다. 모니터로. 책에 소용될 글들을 발췌하는 일이었다.
망할놈에 글들이 너무 많았다. 2003년부터 2010년 1월까지의 글들을 모두 일별해야 했는데 백과사전 분량이었다. 그것을 모두 책으로 만들면 단행본 10권은 나올 듯 했다.
그래서 칼질을 했다.
- 과거지사는 사용하지 않는다.
- 지리산닷컴의 긴 글 중에서 '마을'과 '생각' 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한 글 중에서만 원고를 결정한다.
- 그러나 짧은 글 중에서도 사용할 만한 글들은 수집한다.
그렇게 이틀 동안 수집한 글을 읍내 한일인쇄에 나가서 양면인쇄로 출력한 것이 A4 400페이지였다.
마을에 사는 출판사 10년 편집자 출신 사무장댁에게 원고를 보여주고 물었다.
"이거 대략 감으로 봐서 단행본으로 하면 몇 페이지 나오겠어?"
"사진 들어가죠?"
"응."
"음... 800페이지 정도 되겠는데요. 사전 만드세요?"
내가 해야 할 일의 팔 할은 원고를 선택하고 죽이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지리산닷컴에 올린 긴글이 진짜 길었고 사진도 너무 많았다.
그래서 사진이 없어도 문장의 흐름이 이어지도록 만드는 일이 우선이었다.
20꼭지 정도로 선별하고 다시 산수에 돌입했다.
하루에 한 꼭지씩 탈고하면... 20일이면 되네. 사진은 며칠 더 늦게 주고... 시간 충분해!
두어 차례 더 원고를 출력했다. 선별한 것과 후보 선수들로 분리할 필요성을 느꼈고 뭔가 정리가 되어야 일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원고마감을 지켰는가? ㅎ
원고는 5월 초순에 편집자에게 넘겼다. 내 책 원고를 만드는 일에 3개월을 매달렸는가?
물론 아니다. 내 책은 계속 다른 일에 밀렸다. 자꾸 밀리니까 예상했던 그대로 점점 하기 싫어졌다. 마감의 압박은 점점 심해지고 그럴수록 점점 원고를 살펴보는 일은 드물어졌다.
지방자치선거와 관련한 작업을 끝내고 집으로 컴퓨터를 이동했다. 일단 사무실에 너무 많은 손님들이 찾아왔던 관계로 도망을 나와야 집중적으로 원고를 볼 것 같았다.
그때 집에서의 2주일이 이번 책의 80%를 담당했다.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면 편집자는 10월인 지금까지 나에게 원고독촉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캥기는 마음은 있었다. '이거 내 책을 이렇게만 시간 투여해도 되는 것일까?'
합리화인지 모르겠지만 늦게 준 원고였던터라 깔끔하게 정리해서 주었다.
나 역시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인지라 어떻게 넘기면 실무자들이 편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것이 제작 시간을 줄이는 방편이기도 했다. 여튼 홀가분했다. 내 일은 끝이 났으니까.
6월 말 즈음에 본문상태의 첫 pdf 파일을 받았을 것이다. 물론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다.
내 글은 내가 가장 많이 읽어보았기 때문에 더 읽는 것은 정말 고역이다.
전체적인 느낌만 보았다. 편집자와 디자이너에게 한 가지 요구를 했다.
'본문에서는 명조만 사용해 주세요.'
다른 서체는 나의 정서로는 정말 문제가 있었다. 나는 디자인 작업에서 한글은 명조, 영문은 Helvetica헬베티카만 거의 사용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 책은 모르겠지만 내 책의 본문에서 다른 서체를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 이외에는 특별히 강력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편집자가 보면 화가 나나?)
내 스스로 디자인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라 이외의 문제를 관여하기 시작하면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돌아버리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책을 만드는 문제에 있어 뿌리깊은나무의 텍스트 중심의 책이 진짜 책이란 생각을 가진 사람과 30대 전후반의 현업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생각이 일치할 수 없을 것이란 확신을 했다.
편집자도 나의 정서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본문에서 장식성을 제거했다.
나를 이해하는 편집자와 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필자는 원재료를 제공하는 사람이고 편집자는 2차 가공자라는 비교적 기특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ㅎ
편집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래서 '어떤 출판사' 보다 '어떤 편집자'가 작업에서 더 중요하다.
8월 출간을 예정했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출간은 늦어졌다. 아니 작업이 계속 되었다.
본문 조판 pdf 파일의 넘버 6번에서 정리되었을 것이다. 중간에 추가된 원고가 있었다.
나는 책의 분량이 많다는 생각이었고 편집자는 조금 더 보태자는 생각이었다.
나는 한 꼭지의 원고를 줄이기 싫었고 편집자는 꼭지 당 원고를 좀 줄이더라도 꼭지를 늘이고 싶어했다. 결국 편집자의 의견을 반영하기로 했다.
7월 20일. 의도적으로 길을 잃은 산행을 한 날 오후에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구례로 왔다.
책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고 밥만 먹었다. 내 사는 것 보는 것이 책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추가된 원고와 추가, 교체된 사진들을 보내고 하는 사이에 7월이 가고 있었다.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표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갔다. 나는 고민하지 않았다.
내가 원한 표지는 사진이 없는 '행복하십니까'라는 타이포만 있는 표지였다.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펄쩍 뛰었다. 마케터들이 분노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사진을 많이 주었으니 대략 한 장 깔고 제목 올리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막연한 자연거시기 책이 아니라, 귀농자의 책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고 했다.
결국 다시 표지용으로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기로 했다. 8월 중순에 사진을 찍었다.
지정댁과 대평댁 사이에 내가 앉아 있는거, 순영이형 손과 내 손을 대비시킨거 등등
몇가지 아이템을 촬영했다. 공무원 K형과 월인정원이 촬영해야 했다.
표지 시안이 10여 종 왔지만 나의 의사 이전에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북하우스 마케팅팀의 의견이 중요해지는 시기였다. 책 파는 사람들 판단에 맡기라는 말만 했다. 나는 표지디자인과 제목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목이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제목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했다. '행복하십니까' 무난하지 않나? 지리산닷컴이 아침마다
사람들에게 하는 소리고. 내용이 중요하지. ㅎ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하도 고민을 하길래 내가 표지 시안을 만들어봤다.
이번 기회에 엣지 있는 엉덩이를 전국 서점가에 알리는 것도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는데 편집자는 나의 엉덩이를 무시했다.
여러 사람의 사진으로 새로이 구성한 표지안에서는 상사마을 송정원 어르신이 가장 앞에 있었다.
그 무렵에 어르신이 돌아가셨다. 편집자에게 그 어르신이 돌아가셨다고 알렸다.
돌아가시기 전에 책 한 권 드리고 싶었는데.
여튼 그런저런 고민 끝에 전적으로 북하우스에서 제목과 표지를 결정했다.
나는 내 문제로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한가지 일이라도 끝나는 것이 나의 계속된 소원인 상황인지라 해주겠다고 약속한 일들 처리하기에도 벅찬 하루하루였다.
그렇게 시간이 갔고 예정보다 시간을 훌쩍 넘겨 10월이 되어서 책은 세상에 나왔다.
나라면 그렇게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본문 디자인 최종 7회, 표지시안 40회 정도.
나에게 누가 그런 정도 수정을 요구하면 얼굴에 마우스 확 집어 던져 버렸을 것이다.
나는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고 책 만드는 사람들이 스스로 그렇게 한 일이니 고맙고 미안하다.
마지막 갈등이 있었다. 최종 컨펌 순간에 편집장이 구례 이전의 이야기를 조금 언급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었다. 왜 시골로 갔냐는 것이지. 책 읽는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원한다고.
가장 우려했던 대목이 결국 발생했다. 과거지사를 뒤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하기 싫었다. 인쇄 앞두고, 6교에서 이 무슨... 전라도닷컴 남인희 선배에게 전화했다.
이러저러 쫑알쫑알... '선배 생각에도 그런 이야기가 필요해요?'
필요하단다. 가능하면 서울에서 엄청 잘 나갔는데 시골로 내려왔다는 느낌을 주면 좋다고 말하면서 하하 웃었다. 마케터들 입장에서는 그런 면이 있다고 했다.
'저 잘나간 적 없는데요. 아 씨 인간극장도 아니고 이게 뭔...'
별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작정한 하루를 더 투여해서 추가 원고를 작성했다.
원래 없었던 에필로그도 추가하고 목차 자체가 변경되었다.
추석 연휴에 확정표지 안을 부산에서 메일로 받아보았다. 그렇게 끝이 났다.
책 한 권 내는 일이 해보니 쉽지 않다.
왜 나무 죽이는 일을 했는가?
이 대목에서 나에게 좀 솔직해보자.
1. 가오 때문이다.
가오(かお[顔]) : 허세, 있는 척을 지칭하는 속어. 그 어원은 일어인 카오(かお[顔])에서 나온 것이다.
- 네이버 어학사전에서 -
아니라고 해도, 숨기려고 해도 명백하게 그런 것이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의 그런 면이 싫어서 일단 책 만드는 일을 사양했었는데 그것 때문에 책을 만들었다.
스스로를 포장하는 일이다.
2. 돈 때문이다.
책이란 물품은 최근 세상에서 잘 팔리지 않는 물건이다. 그럼에도 책은 여전히 나온다.
이전에도 후배 편집자들에게 '내가 책을 낸다면' 돈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제 마흔여덟이다. 언제까지 디자이너로서 연명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든 나이다.
최근에는 이전에 제작한 사이트 리뉴얼 문제로 갑의 전화를 받으면서 이른바 앱APP이라 부르는 어플리케이션 제작을 문의받았다. 스마트폰용이다. 웹 환경이 모바일로 이미 옮겨가고 있는 상황에서 나에게도 드디어 변화된 환경에서의 대응을 요구받게 된 것이다.
'저 그런 기술력이 안됩니다. 이제 은퇴해야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지리산닷컴 사이트 자체도 정상화 되지 않은 상황이고 제로보드 기반의 보드만 사용해온 우리 부부가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고 변화된 세상에 대응하기 위해 책을 읽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낙후한 기술력을 가진 웹디자이너인 것이다. 그런 기술력으로 계속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것은 '나를 찾아 준 사람들'에 대한 사기에 해당한다. 물론 당분간 이 일을 지속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마음이 편하지 않다. 최근에 자주 월인정원에게 웹디자인계에서의 은퇴 문제를 이야기한다.
그러면 주요한 생계수단을 포기하는 것이 되는데 대안을 찾아야 한다.
한 방의 대안은 물론 없을 것이다. 지리산닷컴 K형에게
'늙은 부부가 자급자족할 땅은 몇 평이면 될까요?' 라고 물었다. 천 평 정도면 '연명'할 수는 있을 것이란 대답을 들었다. 텃밭하고 유실수 몇 그루와 가축 몇 마리 그리고 집. 민박을 한 채 정도 짓는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 모시는 일을 잘 할 수 있는 위인이 아닌데...
아마도 이런저런 일들을 해야 할 것이다. 나 역시 10%의 인세를 받는다. 책이란 것이 팔리지 않는 고전적인 물품이지만 초판 인세라도 받는다면 몇백만 원의 돈은 될 것이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 나무를 죽이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는데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생계형 책을 계속 낼 것이다. 북하우스로 결정한 요인 중 하나도 같다. 인문서적 중심이 아닌, 운동권 출신의 아는 사람이 대표가 아닌, 적당한 규모의 '책장사가 중심인 출판사'.
3. 나를 남긴다.
2003년에 중이 제 머리 깍는 일을 했는데 나의 개인사이트를 만들었다.
'나라는 허망함'을 강하게 느꼈던 가을이었다. 이전까지 다른 사람을 위한 것만 만들었다.
모든 작업에서 나는 없었다. 그러나 내가 한 일들이다. 그래서 일기장같은 내 사이트를 만들었었다.
지금 지리산닷컴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 중 2~3백명의 사람들은 그 시절부터 나를 지켜보던 사람들이다.
길게는 그 이전 어떤 커뮤니티 사이트 시절부터 보고 있는 사람도 있으니 서로 얼굴 한번 보지 않고 한 사람의 행보를 10년 정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나라는 상품'을 파는 일에 조금 더 적극적이어야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필자 권산이 아닌 '지리산닷컴 지음'으로 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나는 그리하지 않았다. 나를 팔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이 역시 연명의 수단이다.
가능하면 내 이름으로 글을 팔고 내 이름으로 사진을 팔 것이다. 아, 사진도 점점 돈이 되고 있다.
나는 사진작가가 아니라 그 많고 많은 디카족 중 한 명인데 그렇게 되었다.
나를 그렇게 바라본다면, 그렇게 접근한다면 그냥 낼름 받아먹기로 했다.
잡가. 그거 그냥 하지 뭐.
믿거나 말거나 이번 책에서 내 스스로 검열을 했다. 편집자보다 내가 더 내용적인 검열을 했다.
사이트의 글과 사진은 '삭제'하면 되지만 인쇄된 책은 전혀 다른 문제다.
초상권, 내용에서의 논란성 등을 가급이면 제거했다. 나는 이곳 구례에서 계속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별 볼 일 없는 사람에 속하는지라 예견되는 시비는 가능하면 차단하고자 했다.
허구가 아닌 '리얼'이 기반인 지리산닷컴 긴글의 속성상, 무엇보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인 책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주를 설정해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책을 만들기 위해 쓰여진 글'이 아닌, '살다보니 쓰여진 글'들로
채울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은 있다. 앞으로도 가능하면 그렇게 책을 만들고 싶다.
나는 살아오면서 책을 참 많이 받았다. 주변 환경이 그랬다.
지금도 책과 관련한 밥을 먹는 사람이 내 주변에 가장 많은 듯 하다.
지리산닷컴 주민들 중에서도 파악되는 출판 관계자가 30명 정도는 된다.
한 필자로부터 적게는 한 권, 많게는 수십 권의 책을 받았다. 그들이 사인한 책을 받아서
대부분 읽지 않았다. 심지어 읽지 않는 내가 아닌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에게 주기도 했다.
나는 항상 책을 남에게 주거나 가치 없다고 생각되면 버린다. 이사할 때 짐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광주에서 '할 수 없이 전시에 참여'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했는데 작가몫이라고 학예사가 전시브로슈어를 잔뜩 챙겨주었다. 자연스럽게 얼굴이 구겨졌다.
어제 한 권만 남겨 두고 모두 버렸다. 낭비다. 비윤리적인 소비다.
책을 출간했으니 주변 지인들에게 내가 받았던 것처럼 책을 드려야 할 것이다.
그러면 내가 필요로 하는 책은 몇 권일까? 결론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쌩까기로 한 것이다. 특히 아주 가까운 사람들은 완전히 배제하기로 했다.
필자에게 20권이 온다. 추가로 30권을 더 구입했다.
책에 등장한 분들에게 우선적으로 드릴 것이다. 그리 결정했으니 오랜 지인들에게 송구스럽다.
다만 12월에 출간은 아니고 인쇄물 납품이지만 구례에 관한 260쪽 정도의 포토에세이집을 발행할 것이다. 내가 남길 수 이윤에서 200권 정도 더 추가로 제작해서 그 책을 드리는 것으로 작정했다. 또는 다음 책부터 조금씩 인사를 하기로 했다.
자 이제 노골적으로 책을 팔고 부탁도 드리겠다.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 - 지리산 자락에 정착한 어느 디자이너의 행복한 귀촌일기' 목차
여는 글 : 거처를 위하여
프롤로그 : 서울에서 우연히 먹고살기
1부. 신입 신고식
디자이너 부부의 구례 착륙기
살구나무와 이웃들 그리고 신입생
배추 모종이 김치가 되기까지
정해년 마을총회
밥이 하늘이다 - 오미동에서 볍씨가 밥이 되기까지를 바라만 보고 기록하다
설은 질어야 좋고 보름은 밝아야 좋다
2부.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
마을신문을 만들다
유기농 우리밀 프로젝트
우리밀 판매, 낙후한 곡물상의 에필로그
아 유 레디!
세번째 김장, 네번째 겨울
3부. 이웃과의 인터뷰
젊은 대장장이 박경종
24시 '인정수퍼'의 레드 우먼, 문덕순
농부 홍순영
연곡분교에서
귀촌 신입생 - 마을사무장 박용석과 사무장댁 윤은주
4부. 어떻게 살아야 할까?
場, 色, 살림
묵은지쌈 앞에서
소유와 소비에 관한 영화같은 생각
땅과 말씀의 아포리즘 - 지정댁과 대평댁 그리고 국밥집에서
에필로그 : 내일은 조금 더 행복해질 계획이다
출처 : 지리산 닷컴 http://www.jiri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