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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월간 우먼센스 2003년 1월호에 실린 글로서 영화 ‘데드 맨
워킹(Dead Man Walking)’의 실제 주인공이자 세계적인 사형 반대
투쟁가인 헬렌 프리진 수녀님께서 지난 11월 2일 명동 성당에서 하신
강연 내용입니다.
영화 ‘데드 맨 워킹(Dead Man Walking)’은 1993년 사형 제도의 비윤리성과 폭력성을 비난하며 사형 제도의 폐지를 주장했으며 여배우인 수잔 서랜든이 여우 주연상을 수상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10대 사형수 패트릭 소니어와의 만남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한국말을 못해 여러분께 강의를 직접 전달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하지만, 사랑과 양심은 인류 공통의 진리인 만큼 오늘 여러분과 함께 사형 제도의 문제점과 그 해결책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사형 제도 폐지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계기는 사형수인 패트릭 소니어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루이지애나 감옥에서 근무하시던 교정 사목께서 저에게 “수녀님, 사형을 언도받은 죄수가 있는데, 그가
죄를 뉘우치고 편안하게 죽음에 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하고 부탁했고, 제가 승낙을 하면서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소니어 형제는 데이비드와 로레타라는 10대 커플을 잔인하게 살해한 죄로 수감되었습니다. 그리고 혀 에디는 무기 징역, 동생 패트릭은 사형을 언도받았습니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형을 선고 받은 죄수들이었지만,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아주 예의 바르며 점잖기까지 한 평범한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그들의 죄를 알면서도 크게 의식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몇 달 후 그들의 범죄 자료를 받게 됐을 때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건 파일의 첫 장은 모범적인 10대가 잔인하게 살해되었다는 커다란 헤드라인이 박힌 신문 기사였습니다. 거기에는 피해자들이 얼마나 착한 젊은이들이었고, 소니어 형제가 얼마나 참혹하게 죽였는지에
대해 자세히 써 있었습니다.
피해자인 17세의 데이비드와 18세의 로레타는 양가 부모님에게도 인정 받은 연인 사이였습니다. 사건이 일어나던 밤,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그들에게 소니어 형제가 접근해왔습니다.
형제는 커플에게 사유지에 들어왔다고 협박을 하면서, 그것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로레타에게 성관계를 요구했습니다. 커플들은 놀라 도망치려 했고, 그 와중에도 로레타는 강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형제는
커플의 머리에 총을 쏘아 살해했고, 사체를 유기한 채 도망쳤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기사를 읽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공포를 느꼈습니다. 심지어 그런 악랄한 범죄를 저지른 형제들은 사형을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또한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과 상심, 악몽을 떠올리면서 깊은 연민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그들이 죄를 뉘우치고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영적 지도자의 역할을
수락했기에 그들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먼저 피해자의 가족들을 만나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들을 만나게 된
것은 공개적인 사형제 찬반 논의 직후였습니다. 로레타의 부모들은
저를 만나자마자 짐승만도 못한 사형수를 두둔한다면서 몹시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데이비드의 아버지인 르블랑 씨는 저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녀님, 수녀님은 왜 저희를 만나러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저
자신의 증오로 인해 살인자의 사형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저의 증오보다 더 강한 사회적인 여론에 의해서 그를 사형시키도록 하라는 압력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저 스스로의 감정과 사회에 짓눌려 괴로워하고 있을 때 수녀님은 도대체 어디 계셨습니까?”
그 때 전 피해자의 부모라고 해서 모두 사형을 원하는 건 아니라는 깨달음과 함께 사형 제도가 가해자나 그 가족들 뿐 아니라 피해자 가족들에게도 엄청난 압력을 주는 나쁜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르블랑 씨는 자신이 처음 아들의 살해 소식을 들었을 때의 느낌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데이비드가 들어오지 않았던 금요일 밤, 저는 밤새도록 불안에 떨었습니다. 다음 날 경찰이 찾아와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아무래도 제
아들 같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시체를 확인하러 갈 때까지 계속 기도를 중얼거렸죠. 그리고 아들의 싸늘한 시체를 봤을 때, 전 저도 모르게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라는 구절을 반복했습니다. 마음으로는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하는 구절을 빼놓고 싶었지만요.”
그렇게 그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형제를 용서하고자 애를 썼지만, 주변에선 살인자에 대한 용서는 약한 행동이며 아들의 살인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때때로 용서하려는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저와 헤어질 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수녀님, 살인자들은 내 아들을 죽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나에게
준 증오로 나 자신마저 죽일 순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이건 경우와는 반대로 가해자의 사형을 열렬히 원하는 가족도
있습니다. 사형수 로버트 윌리의 피해자 가족이 그 예입니다. 로버트
윌리는 잔인하게 10대 소녀를 살해한 죄로 사형을 언도 받았습니다.
판결 후 피해자의 부모는 공공연히 언론에 등장해서 범인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떠들었고, 사형 집행일에는 수많은 미디어가 와서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루이지애나 주에서는 사형 집행을 할 때 피해자 가족이 맨 앞줄에 와서 보도록 허락합니다. 당연히 피해자 부모는
맨 앞자리에서 사형을 지켜봤습니다. 그 후 인터뷰에서 피해자의 아버지는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는 시늉과 함께 너무 빨리 형이 집행되어 불만이라면서 살인자가 영원히 지옥에서 불타길 빈다고 내뱉었습니다.
사형 제도는 관련된 모든 사람을 지독한 고통으로 떨어뜨린다
이 두 사건을 겪으면서 저는 피해자 가족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고, 그들이 겪은 지독한 고통
때문에 결국에는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져 외롭게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살인 피해자의 모임인 ‘서바이브(Survive)’를 만든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이 모임은 피해자 가족들이 서로를 보살펴주고, 나아가서 가해자들에게 보복보다는 진정한 화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취지로 삼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활동이
피해자 가족들에게 굴욕감을 준다는 이유로 반대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저는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단순히 가해자를 죽이는 것으로 피해자 가족의 마음이 치료가 될까요? 사회의 정의가 실현될까요?
저는 ‘서바이브’ 활동을 통해 미움을 사랑으로 승화시킨 예를 말하고자 합니다. 1995년 티모시 맥베이라는 테러분자로 인해 1백 68명이
숨지고 5백 명이 부상한 오클라호마 청사 폭발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 희생자 중 줄리라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있어 그녀는 딸인 동시에 다정한 친구였습니다. 그런 딸이 죽자 그는 너무나 큰
분노에 사로잡혀 폭음으로 세월을 보냈고, 그의 황량한 가슴엔 범인에 대한 증오심만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차 안의 라디오를 켜면서 문득 딸이 했던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라디오 방송에선 텍사스의 사형수가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는데
그 때 딸은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아버지, 정말 사형 제도가 옳은 제도일까요? 결국 살인자를 살인으로 응징하는 것뿐이잖아요? 전 사형 제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아버지는, 딸은 비록 자신을 죽인 범인이라 해도 사형을 원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후에 ‘서바이브’에 가입을 했고,
그 활동을 통해 살인자를 용서하고 다시 한번 세상을 살아나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번엔 가해자 가족들의 고통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피해자 가족들에 대해선 자주 이야기하지만, 가해자 가족들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하지만 가해자 가족들 역시, 사형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통해 가족 구성원이 살해되는 아픔을 겪는 피해자입니다. 로버트 윌리의 경우, 사형 집행 당일 그는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만남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볼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방을 뛰쳐나가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후에 그의 어머니는 저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수녀님, 제가 만약 그때 뛰쳐나가지 않고 아들의 어깨를 제 팔로 감쌌다면 세상 그 누구도 제 팔을 저의 아들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었을
겁니다.”
이런 가해자 가족의 고통을 보면서 진정한 위안을 얻는 피해자 가족들이 얼마나 될지 묻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그가 사형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형을 당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루이지애나는 수십 년 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패트릭을 만났을 때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는 그가 살인자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만나기 전까지 몹시 불안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를 봤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의 얼굴은 지금 바로 제 강연을 지켜보는 여러분들과 같은 선량한 사람,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저를 보자마자 아주 예의 바르게 자신을 찾아 와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감옥에서의 생활,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살인을 살인으로 갚는 사형 제도 폐지에 남은 평생도 쏟을 터
그렇게 저와 패트릭은 2년 6개월의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고 그 사이 저는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10대 커플을 잔인하게 죽인 사람은 패트릭이 아니라 바로 형 에디였던 것입니다. 적어도
패트릭은 살인죄에 있어선 완전히 결백했습니다. 하지만 1994년 4월
그는 자신이 전기 의자형을 통보 받았다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를 만난 패트릭은 예민한 그의 어머니가 자신의 죽음을 보고 너무
큰 충격을 받을까 봐 사형장에 오지 않도록 말려주길 원했습니다.
그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저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했습니다. 패트릭은 죽기 전날 밤까지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패트릭의 형 집행일이 가까워지면서 누구보다 갈등을 겪은 사람은 형
에디였습니다. 그는 주지사에게 살인을 저지른 것은 바로 자신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미 소용 없는 일이었습니다. 패트릭은 죽음이 다가오면서 자신의 신변을 하나하나 정리해 갔습니다.
사형 집행 1시간 전 그는 마지막 고해 성사를 하고 형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자신은 하느님의 곁으로 가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애정
어린 편지였습니다. 그 직후 교도관들이 들어와 그의 머리를 재고 하얀 옷을 입혔습니다. 형장으로 떠나기 직전, 그는 저에게 자신이 너무
떨지 않고 잘 걸어갈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절대 자신이 죽는 마지막 순간은 보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시 혼자 죽게 하지는 않겠어요. 당신이 볼 수 있는 마지막 얼굴이 바로 나의 얼굴이 될 것이고, 동시에 나의 얼굴에서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거예요” 라고 얘기했습니다. 마침내 사형장에 가기 위해 감방을 나왔을 때, 그는 제 손을 잡게 해달라고 교도관에게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교도관이 허락하지 않았기에 저는 패트릭의 어깨를
붙잡고 “걱정 마라, 내가 너와 함께 할지니” 라는 성경 구절을 계속해 읽어주며 함께 걸어갔습니다.
사형장에 도착했을 때, 방 한가운데는 전기 의자가 놓여져 있었고, 살이 타는 냄새를 맡지 못하도록 강한 환풍기가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전기 의자에 앉혀지고 저와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저는 그에게
손을 뻗었습니다. 비록 그 손은 그에게 직접 닿지는 못했지만 저는 마음으로나마 그가 제 손을 잡고 외로운 최후를 맞지 않기를 빌었습니다. 교도관은 마지막으로 패트릭에게 마스크를 씌운 뒤 형을 집행했습니다. 잠시 후 의사가 다가가 그가 죽었는지 확인을 하고, 확실히 죽었다는 오케이 사인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저는 패트릭과 이별을 했습니다. 차를 타고 돌아 오면서 갑작스런 구역질로 인해 차를 길가에 세우고 구토를 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후에도 전 패트릭이 분명히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것을 처벌하기 위해 꼭 그의 생명을 끊어야 했을까, 그의 생명과 실수가 맞바꿔질 정도로 그이 존엄성은 하찮은 것일까 하고 몇 번이나 되새겼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사형 집행이 합당하다 해도 그것을 용납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평생 사형 제도 폐지를 위해 싸울 것을 결심했습니다.
이제까지 저는 십자가의 이미지를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고통을 여러분께 말씀 드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를 다시 생각할
때가 온 것입니다. 하느님의 존재와 사랑과 정열을 생각할 때, 우리는
과연 이 사형 제도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저는 여러분께 강하게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사형 제도는 또 다른 살인입니다. 살인을 통해 또 하나의 살인이 잉태되는 비합리적인 제도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겐
누구나 존중 받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한 인간의 존엄성이 실현되기 위해선 반드시 사형 제도는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