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
1546년 허준은 양반 허론의 서자로 태어났다.
서자인 탓에 온갖 설옴과 냉대를 받아야 했는데
신분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경상도 산음으로 가서
명의 유의태의 제자로 들어가 의술을 배웠다.
그리고 마침내 내의원 의관이 되어 많은 의학서를 편탄하였으며,
선조 임금으로부터 양평군 직위와 승록대부의 벼슬을 받았다.
하지만 천한 출신이라 하여 승록대부의 벼슬은 취소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허준이 이룬 큰 업적은 동의보간을 편찬했다는 데 있다.
더욱이 신분을 넘어서서 인술이라는 일컫는 의술을 택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않은 행동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점을 명심하여 읽어 주기 바란다.
동양의 명의 허준
허준은 조선 시대의 유명한 의학자이다.
선조 때의 내의원 의관으로서 병을 잘 고쳐 임금의 총애를 받았으며
동양 의학의 보배라고 하는 동의보감 을 편찬하였다.
의술은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어진 기술이라 하여 인술이라고도 하는데
올바른 의술을 펴기 위해서는 따뜻한 사랑을 지니고 불쌍한 것에 대해
연민의 정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 면에서 허준은 타고난 의사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왜냐 하면 그가 내의원 취재 시험을 제쳐 두고 병자들을 치료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허준은 양반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서자였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설움과 냉대를 받으면 살아야 했다.
남달리 총명하고 학문에 관심이 많았지만 과거 시험을 볼 수도 없는 신분이었다.
다행히 허준은 당시 의술로소 이름이 높았던 유의태의 제지로 의학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이욱고 의과 시험에 합격하여 내의원 의관이 되었으며
이후 임금과 왕실의 건강을 지키는 데 정성을 다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임금이 의주로 피난할 때는 어의로서 임금을 보필하였다.
그런 가운데도 허준은 의학서를 편찬하여 선조 임금으로부처
양평군 작위와 승록대부의 벼슬을 받았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천한 출신이라 하여
신하들의 반대로 승록 대부 의 벼슬이 취소된 일이다.
출신이 뭣이 그리 중하기에 훌륭한 일을 해낸 인물을 인정해 주지 못할까.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시대가 한스럽기만 했다.
오늘날 같으면 능력과 재주만으로 얼마든지 자신의 기량을 펼 수 있을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굴복할 허준이 아니었다,
언해구급방, 언해두창집요,언해태산집요 를 지어 불쌍한 백성들의 고통을 덜고자 했다.
허준의 가장 튼 위대함은 필생의사업으로 불후의 명저 동의보감을 편찬했다는 데 있다.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까지 전해져 칭송받고 있는 동의보감 에는
14년 걸친 허준의 피땀어린 정성과 집념이 담겨 있다.
천한 신분이라 하여 나라로부터 능력에 맞는 대우조차 받지 못했지만
오로지 백성을 사랑하는 일념으로 살아던 인물이었다.
작위 ~의식적으로 행하는 적극적인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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