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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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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비즈니스스쿨은 스페인 마드리드의 중심 금융가에 인접해 있으며 전 세계 80여 개 국에서 온 학생들이 다양성을 기치로 혁신적인 가치를 창출하고자 하는 학풍이 강한 학교다. 2012년 12월 가 선정한 유럽 최고의 비즈니스스쿨이며, 주요 랭킹에서 상위를 유지하고 있다.
“왜 하필이면 위기의 한복판 스페인이냐?”
외국계 증권사에 재직하던 필자가 MBA에 가기 전 주위에 인사를 할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었다. 학교가 위치한 곳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도 부유한 지역이다. 하지만 스페인의 재정악화가 지속되면서 청년실업률이 50%를 넘어섰다. 좋은 카페나 레스토랑에는 장년층 이상만이 눈에 띈다. 어두운 경제상황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레알 마드리드 축구단은 2011/12년 시즌1)에 스포츠 구단으로는 세계 최초로 연간 수익 5억 유로를 넘기는 기록을 달성했다. 또 매년 발표되는 딜로이트의 ‘풋볼 머니 리그’에서 세계 1위 수익 구단이라는 지위를 8년째 유지하고 있다. 유럽 산업계 전반에 걸친 불황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지난 12년간 연평균 13%의 수익 성장률을 보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corporation)이 아니다. ‘소시오(Socios)’라 불리는 회원들에 의해 협회(association)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연차보고서 및 경영보고서를 전 세계인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게 해마다 홈페이지 첫 화면에 게재한다. 탄탄한 재무실적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잠재적 재무 가치는 경쟁구단인 영국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구단주의 차입매수(LBO·leveraged buyout) 방식의 인수로 인한 막대한 부채가 있고 수익이 전년도에 비해 하락한 3억2000만 파운드(약 4억 유로, 레알 마드리드의 77%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최근 뉴욕증시에서 시가총액이 30억 달러를 돌파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가치는 최소한 그 이상이라 볼 수 있다.
현지시간으로 1월30일 밤에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축구 경기인 ‘엘 클라시코(El Clásico)’가 치러졌다. 이 경기는 코파 델 레이(Copa del Rey, 스페인 국왕컵) 준결승전 1차전으로 스페인 1부 리그 경기인 라 리가(La Liga)나 유럽 상위권 클럽 대항전인 UEFA 챔피언스리그에 비해 팬들의 관심을 적게 받는다. 하지만 평균 140유로를 호가하는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8만5000여 명을 수용하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에 평일 저녁 빈자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필자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축구와 인연을 맺었고 기회가 될 때마다 유럽의 각종 더비(라이벌) 매치와 UEFA 챔피언스리그 및 독일 월드컵, 런던 올림픽 축구 등을 현장에서 관전했다. 그런 필자에게도 엘클라시코 이상의 치열한 경기는 떠오르지 않으며 레알 마드리드보다 더 웅장하고 팬들을 압도하는 세련된 이미지를 가진 스포츠 구단은 떠오르지 않는다. 레알 마드리드가 이렇게 탁월한 포지셔닝에 성공한 힘은 무엇일까? 또 몇 년째 계속되는 남유럽 경제위기 속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레알 마드리드 클럽 데 풋볼(Real Madrid Club de Fútbol)은 1902년 창설됐으며 통산 UEFA 챔피언스리그 9회 우승의 최다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FIFA 선정 20세기 최고의 축구클럽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21세기 들어 전 세계 축구 문화의 거대한 콘텐츠로 더욱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특히 2000년부터 회장직을 맡고 있는 플로렌티노 페레스(Florentino Pérez)의 경영법은 일반 기업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페레스 회장은 본래 엔지니어 출신으로 스페인 최대 건설사인 ACS그룹의 최고경영자도 맡고 있다. ACS는 지난 2010년 독일 최대 건설그룹이자 해외 수주액이 세계 건설사 중 1위인 호흐티프(Hochtief)의 최대주주가 되기도 했다. 공격적인 경영자인 페레스 회장은 레알 마드리드를 축구클럽 이상의 세계적인 문화상품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체적인 전략을 세웠다. 그는 회장 당선 후 루이스 피구, 지네딘 지단, 데이비드 베컴 등 당시 세계 축구를 지배하던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는 ‘갈락티코(Los Gálacticos, 은하수)’ 정책을 도입했다. 즉, 은하수처럼 빛나는 별들을 한곳에 모아 레알 마드리드의 하얀 유니폼을 입혀 하나의 캐릭터 상품처럼 문화의 아이콘으로 만든다는 전략이다.
이것은 흥미롭게도 스포츠 업계가 아닌 월트 디즈니(The Walt Disney Company)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착안한 것이다. 디즈니의 테마파크가 입장료 자체보다 캐릭터 상품 판매 및 라이선스 사업에서 더 많은 수익을 올리듯 레알 마드리드 역시 경기 입장권 판매뿐 아니라 기념품, 선수 이미지, 경기 비디오 및 TV 라이선스, 사회적 책임 활동 등 각종 상업적 이익과 연결 지었다. 기존 축구 비즈니스를 넘어서서 선수들을 보다 화려한 존재로 부각시키기 위한 작업이다.
지금은 이러한 다양한 수익 창출 노력이 유럽의 주요 축구단에 보편화됐다. 심지어 크리스마스 상품이 출시됐음을 홍보하는 e메일까지 발송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페레스가 처음 이러한 전략을 도입할 당시에는 우려와 비난의 목소리가 많았다. 우선 축구 경기 자체의 전술적 고려 없이 세계적 스타들을 마구잡이로 영입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또한 높은 이적료를 지불함으로 구단의 재정이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갈락티코 전략은 마케팅과 재무적 측면에서 매우 성공적이었다. 아시아, 북미 등 축구의 불모지로 불리던 지역에까지 선수들의 유명세로 레알 마드리드 브랜드 가치가 높아졌고, 이는 상품 매출의 급상승 및 TV 중계권료를 구단이 직접 협상할 수 있는 위치로 연결됐다. 이후 현재까지도 입장권 판매는 축구단 전체 수입의 25%를 넘지 않고 나머지는 브랜드가치에서 파생되는 수익이다.
페레스 회장은 2006년부터 3년간 레알 마드리드를 떠났다가 2009년 복귀하면서 갈락티코 전술을 다시 가동했다. 1차 갈락티코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AC 밀란의 카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리옹의 카림 벤제마, 리버풀의 사비 알론소 등 실력뿐 아니라 강한 개성과 스타성을 지닌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이듬해에는 감독까지 교체했다. 축구 성적만으로 봤을 때는 별 문제가 없던 마누엘 펠레그리니 감독마저 내보내고 실력뿐 아니라 항상 여러 가지 화제를 몰고 다니는 스타 감독 주제 무리뉴를 영입했다.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 또한 팬 서비스에 최선을 다한다. 그들은 꾸준한 내부 교육 등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이 디즈니의 만화 캐릭터와도 같다는 것, 그리고 자신들의 막대한 연봉이 바로 거기서 나온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현재 세계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인 호날두는 경기장에서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팬들에게 틈날 때마다 손을 들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관중과 경기의 흐름을 공유한다. 경기가 조금 지체되는 시간이 있으면 갈고 닦은 묘기를 선보이며 관중들을 배려하기도 한다. SNS를 통한 팬들과의 소통에서도 선수들은 개인적인 감정과 생활을 여과 없이 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잘 계산된, 자연스럽게 보이는 공적인 메시지를 올린다. 구단 마케팅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번 음력 설을 맞이해서도 골키퍼 카시야스 등 주요 선수들이 직접 중국어로 말하는 신년 인사 영상이 제작됐다.
경기 시작 직전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에는 마드리드가 낳은 세계 3대 테너 중 한 병인 플라시도 도밍고가 부른 ‘네순 도르마(Nessun Dorma: 공주는 잠 못 이루고)’가 울려 퍼지고 전광판에는 역대 주요 선수들의 ‘아름다운 승리’2)와 환호하는 장면이 보여진다. 이 곡의 클라이맥스인 “빈체로, 빈체로(Vincero, vincero: 승리하리라)” 부분에 주위를 둘러보면 축구 경기장이라기보다는 마치 오페라 관람을 하는 듯한 경건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페레스 회장이 직접 고른 곡이다. 또한 늘 경기장에 본인이 추대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명예회장과 함께하며 구단의 전통을 일깨운다. 디 스테파노는 1950년대 레알 마드리드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만든 당대 최고의 선수였으며 레알 마드리드 감독도 지냈다. 그는 80대 후반의 고령임에도 회원들과 직접 소통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는 개인이 소유한 구단이 아니다. 이사회와 회장은 임기제이며 열성적인 평생회원들이 직접 선출한다. 최근에는 주로 해외 팬들을 대상으로 마드리디스타(Madridista)라는 보급형 회원제를 적극적으로 마케팅하고 있다. 유니폼 같은 각종 상품을 할인받고 인터넷 소식지를 받아볼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의 유료 가입자는 20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진짜 핵심은 소시오(Socios)라 불리는 구단회원들이며 이 중 간접투표권을 가진 회원은 7만 명 정도다. 이들 중 4년 임기로 선출된 2000명 미만의 대표회원들은 역시 4년 임기인 회장선거의 투표권을 가지며 클럽의 연간 예산 책정 등 의사결정에 관여한다.
8만5000여 석에 달하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의 좌석 중 70% 정도인 6만 석가량은 연간시즌권으로 팔린다. 경기장 정면 좋은 자리의 시즌권 가격은 연간 1720유로(약 250만 원)다.3) 물론 이는 소시오를 위한 가격이고, 비회원이 시즌권을 구입하려면 금액은 훌쩍 올라간다. 지정좌석을 보유한 이들이 개인사정으로 보지 못하는 경기의 티켓을 구단의 시스템을 통해 재판매에 내놓지 않는 한 일반 팬이나 여행객이 좋은 좌석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근에는 구단 후원 기업 중 하나인 두바이의 에미리트(Emirates) 항공사의 기업고객용으로 동 측 1층 정중앙의 한 블록이 사용되고 있다. 이 자리는 개인 모니터와 음식료 서비스 등을 받을 수 있으며 비행기 비즈니스석과 흡사한 구조로 돼 있다. 이 밖에도 경기장에는 식사와 각종 엔터테인먼트가 함께 제공되는 다양한 관람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인기 있는 경기는 1인당 1000유로(약 150만 원)가 넘는 패키지로 판매되지만 일찌감치 매진된다.
유럽의 축구단들은 현재 수익창출이라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러시아와 아랍의 부호들이 경쟁적으로 축구단에 투자하면서 선수들의 몸값이 과열되는 양상이 생기자 유럽축구연맹(UEFA)에서 ‘구단의 지출이 자체 수입을 넘어서는 안 된다’라는 지침, 이른바 ‘파이낸셜 페어플레이(Financial Fair Play)’ 조항을 만든 것이다. 따라서 과거처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들어오던 석유재벌들의 돈에만 의존할 수 없다. 몸값이 비싼 좋은 선수를 데려오려면 그만큼 구단의 자체적인 수익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탁월한 사업가인 페레스 회장은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한다. 2012년에는 아랍에미리트의 7개 토후국 중 하나인 라스 알 카이마(Ras Al Khaimah)의 인공섬에 복합 스포츠 위락시설인 ‘레알 마드리드 리조트 아일랜드’를 착공해 업계를 놀래켰다. 스포테인먼트(sportainment) 개념의 이 프로젝트는 세계 최초로 바다와 통하는 경기장을 건립해 개장 첫해가 될 2015년에 백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1만 명을 수용할 경기장은 축구뿐 아니라 콘서트와 각종 이벤트의 장소로 활용할 계획이다. 약 10억 달러의 건립 금액은 중동 국부펀드의 투자로 충당한다. 이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 내다본 전략이기도 하다. 국토가 좁은 카타르의 특성상 특급 호텔, 해상 스포츠 등 월드컵의 부수효과가 아랍 주변 지역에도 미칠 것을 고려한 것이다.
페레스 회장은 또 2000년 부임 직후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 바로 근처에 있던 옛 훈련장을 매각해 부채를 대폭 줄이고 대신 공항 근처 도시 외곽지역에 새로 훈련장을 마련했다. 이곳에는 2004년부터 일종의 테마파크인 ‘레알 마드리드 도시(Ciudad Real Madrid)’를 만드는 공사가 단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디즈니랜드와 같은 수익성 위락시설도 들어서는데 스페인이 세계 2위의 관광수입국인 만큼 시너지 효과는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은 최신식으로 리모델링해 마드리드시의 상징물로 만들 예정이다. 또 이를 2020년 마드리드 올림픽 유치를 위한 홍보대사로서의 임무와도 연결시키고 있다.
페레스는 뚜렷한 전략과 차별화된 콘텐츠로 승부를 걸었다. 그는 다른 산업의 성공적인 사례를 참고해 ‘축구 비즈니스는 이윤이 남지 않는다’는 오랜 속설을 뒤집는 뛰어난 재무 성과를 만들어냈다.
유럽의 축구 시스템은 성적에 따라 중계권료, 상금의 배분이 확연히 달라진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는 우승컵을 들지 못한 해에도 구단 수익을 꾸준히 늘려왔다. 그 비결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흥분과 감동, 스타 선수에 대한 동경과 애착 등 온갖 상황을 포착해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발상이다.
1) 유럽 축구 구단의 회계연도는 축구 시즌에 맞추므로 대부분 6월 말 기준으로 결산한다.
2) 마드리디스모(Madridismo): 구단 안팎에서 통용되는 용어인데 그 의미는 ‘품위 있는 승리를 추구하는 신사 정신’이며 이는 레알 마드리드의 고유의 팬들의 정체성을 형성하였다.
3) 2012/13 시즌 기준 가격이며 해마다 일정금액 상승한다. 이는 회원들의 연례 총회에서 결정된다.
전경은 IE 비즈니스 스쿨 MBA Class of 2012, clarajun@gmail.com
필자는 HSBC증권 서울지점에서 M&A 자문 및 IB 부문 부장으로 재직한 후 스페인 마드리드의 IE비즈니스스쿨 MBA 과정을 12월에 마쳤다. 현재는 스페인에서 유럽축구 재무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에서는 언론통역요원으로 국제미디어센터(International Media Centre)에서 근무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