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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로마민박프리하우스 원문보기 글쓴이: 니콜라스
조회 : 1607 스크랩 : 0 날짜 : 2005.08.15 00: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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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나의 유스호스텔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내 옆자리에는, 키가 1미터 90 은 될거같은 흑인이 하얀 도포같은 의상을 입고, 눈을 감은 채 누워있었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드러눕자 갑자기 눈을 뜨며, 할로 하면서 웃는다.
아프리카 코트뒤부아르 에서 왔다고 했다. 이름을 듣자마자... 왠지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침대 옆에 놓인 천 가방안에 악기 같은 것이 들어있었는데. 내가 보고있다고 느껴졌는지, 가방에서 북을 꺼내 보여줬다.
가젤가죽으로 만든 북이었다. 내가 퉁~장난스럽게 치니까 소리가 천장높은 유스호스텔의 방안에 크게 울려퍼졌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흑인은 이미 가버리고 없었고, 방안에는, 낯선 풀잎과 땀냄새가 뒤섞인 듯한, 그의 몸에서 나던 체취만이 공중을 떠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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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초 arezzo 로 가보기로 한다. 세 번째 주말마다, 전 이탈리아에서 최고로 크고 화려한 앤틱마켓이 열린다고 가이드 북에 써있었다.
혹시 누가 아냔 말야...아무도 모른 채 묻혀져 있던 벨리니나 티치아노의 걸작을 내가 발견해내서, 평생 여행만 다닐수 있는 엄청난 돈을 벌게 될지.... -.-
아레초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작은 역을 세바퀴를 돌아보아도 코인락커가 없었다. 역 앞에 i 가 있어서, 거기서 물어보니까 락커는 없다구..
그래서 락커비 3 유로 벌었다 치고, 배낭을 울러맨채 터벅터벅 걸어간다. 앤틱마켓이 어디있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바로 눈앞에 하얀천막의 장사진이 골목을 따라 펼쳐져 있었고, 사람들은 산책하듯이, 뒷짐을 진채 천천히 물건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전,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던 시대를 다룬 영화속 으로 들어온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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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에 그냥 아무렇게나 유화들이 버려진 것처럼 진열 되어있었고, 좌판에는 프랑스어 혹은 이탈리아어로 된 오래된 책들.. 전쟁때의 러시아 유물들, 투스카니의 오래된 가구들.. 을 구경하느라고 시간가는 줄 몰랐다.
고지도 old map 가 산처럼 쌓여있는 좌판도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포스터파는 것처럼, 투명 아크릴판에 끼워진 지도를 보고 있으려니까,
주인 아저씨가 웃으면서, 일본이 나온 지도만 추스려서 보라고... 빼 주는 것이다. 물론 일본 옆에는 한국이 있었고......
문제는, 스무장이 넘는 1700 년대의 고지도를 봤지만, 전부가 동해가 아니고, mare du Japon ( 일본해) 라고 적혀져 있는 것이었다. . . . 이럴수가~ 였다.
지도의 가격은, 80 유로 전후였는데...
동해라고 표시된 지도가 있다면, 점심을 굶어서라도.. 아니 이틀밤 정도 노숙을 하더라도 한장 사고 싶었다...
내 방 벽에 붙여 놓고, 여행가고 싶을 때마다 들여다 보면 멋질거 같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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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초를 뒤로 하고... 아시시를 향해 출발한다. 아시시행 로컬 기차는 텅텅 비어 있었고, 시칠리아에서 그러한 것처럼, 나는 창문을 연채 앉아서 아레초 역에서 산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리고 꾸벅꾸벅 졸았던 거 같다. 눈을 뜨니까, 갑자기 눈 앞에 바다가 보이는 것이다. 순간 당황...했다.
기차를 잘못탔구나... 움브리아의 초원을 달려야 하는 기차에 왠 바다가 보이는거지?
누군가 내가 가고있는 곳의 위치를 확인해 줄 사람을 찾았지만, 3량이 전부인 기차안에 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될대로 되라, 싶어서 다시 자리에 앉아 가이드 북의 맨앞장에 달린 이탈리아 전도를 펼쳐 보았다.
아무리 계산해 보아도, 이 시점에 바다가 보이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꼭 뭔가 여우에 홀린 듯한 기분이다.
이러는 동안, 기차가 속도를 줄이고, 나는 배낭을 후다닥 울러매고 일단 내리기 위해 기차의 난간에 기대어 섰는데....
눈앞에 페루지아 ...라고 쓰여진 팻말이 스쳐지나간다. 어..이게 뭐야. 기차 제대로 가고 있는거 맞자나... 싶어서 다시 자리로....back..
페루지아 역에서 , 수녀님들과 신부님들 일행이 타셨다. 말로만 듣던 성프란시스코회의 세개의 매듭으로 된 허리띠를 홀린듯이 보고 있었다.
내가 탄 이 기차가 아시시 가는거 맞구나... 그럼 도대체 아까 내가 본 바다는 무엇이었을까?
...
아시시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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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에서 아시시 마을까지 가는 버스를 타는데.. 로마에서 온 서울대 팀 8 명을 만났다.
간만에 뇌속 깊숙히 쑥쑥 들어오는 한국말 해보면서, 아~ 내가 그동안 얼마나 불명확한 언어의 흐름속에 있었던가 새삼 실감한다..
하지만, 그 불명확함이 지독하게 나빴냐 하면 전혀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불명확함으로 인해 진짜 한순간 한순간 내 자신과 내 주위에 충실하게 되는거 같았다.
눈빛만으로 얼마나 많은 의미가 전달가능한가? 이것을 깨달은 것으로도.. 여행은 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침묵속에, 사랑과 평화, 청빈..
성프란체스코 성당..에서, 조토의 프레스코화와, 치마부에의 그림을 보고 나왔다.
진짜 오래된 숙제를 푼 기분이었다.
거리에는 정말로 아름다운 가게들이 많았고..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발길내키는대로 약간 비탈진 길을 올라갔다.
비둘기들의 부조그림아래, 성모마리아의 프레스코화가 그려진, 팬케이크 집에 들어가서,, 팬케이크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이때, 설탕이 카메라 렌즈에 떨어져 엄청 당황했다. 당황하는 내 표정을 본 아주머니는 뭔일이 벌어진 줄 알고.. 황급히 내 쪽으로 와서... 는...뭐야~ 이거야 하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가게로 들어가서는, 안경닦는 천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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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에서 말바리아 라는 숙소를 소개받았다. 아시시에서 버스로 10 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고 했다.
어둠이 내린 아시시를 걸어다니다가.. 다시 버스를 타기위해 프란시스코 성당쪽으로 내려왔다.
성당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었고, 나는 홀린듯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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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리나로 가는 버스를 탄다.
10 분 정도 밖에 안떨어져 있는데..도 완전 여기는 시골이었다. 시냇물도 졸졸 흐르고..포장도 되어 있지 않는 길을 100 미터 정도 걸어가니까. B&B 가 나왔다.
샤워를 하고 눕자마자, 금새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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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셔서 새벽같이 일어났다. 공기는 약간 추웠다.
마당을 거닐었는데 어디선가 말이 우는소리가 들렸다. 하얀 색 말이었다.
문득, 어제 본, 죠토의 프레스코화 새에게 말을 거는 프란체스코....가 생각났다.
쿵후영화를 보고 나온 소년이 쿵후 흉내를 내는 것처럼.. 말에게 내 의미를 전달하고 싶어졌다.
세상은 참으로 많은 언어로 이야기를 한다. 의미가 통할 거같은 새벽의 예감이 나를 전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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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
p.s
여행기 읽어주신 분들..감사드립니다. 여행기 쓰다보면... 엄청나게 겪은 일이나 에피소드는 많은데.. 마땅히 올릴 사진은 없어서 여행기를 어느 선에서 끊어야하나... 난처할 때가 많습니다.
지난 번 여행기가 그랬습니다. 12시까지는 올리고, 친구랑 심야영화 보러가기로 했었는데.. 친구한테 전화는 죽어라~ 오는데.. 글은 갈피를 못잡겠고... 이걸 올려야하나 말아야하나.싶어서... 2시 넘어서까지 헤매었습니다. 영화도 못보구... -.- 글과 사진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하이퍼텍스트는 불가능한 것일까요?
웹문서의 특성상..영원한 것은 없는거 같습니다. 오래된 웹문서를 인터넷으로 볼때 마치 유행이 지난, 옷처럼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걸보면 어쩌면 조만간 web- 트렌드라는 분야가 생길지도 몰르겠습니다.
저번 여행기...물어오시는 분이 많으신데요. 제가 여행기 지운거 때메... 더 이상하게 되버린거 같아 괜히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여행기입니다.
그대로 두어도 어짜피..호스팅때메, 영원하게 음악이 흐를수도 없고,, 사진이 나올수도 없습니다. . . 그대로,, 여행기는 제 생명을 다한거 같습니다.
영화, 장미의 이름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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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진 사진과 글 잘 읽고 갑니다.
진짜 여행을 하셨네요. 덕분에 저도 마음이 들뜹니다. 멋진 경험을 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이 걷고 있는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