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장 김 종 필( 金 鍾 泌 ) 명(命)
전 국무총리(國務總理) - 공화당(共和 ) 총재(總裁)
1925년 을축(乙丑) 11월 22일 미시(未時)
癸 乙 己 乙
未 未 丑 丑
壬 癸 甲 乙 丙 丁 戊
午 未 申 酉 戌 亥 子
해설논증(解說論證)
한마디로 군사혁명(軍事革命)(516) 전(前)에는 모든 사람 누구도 알니없는 육군(陸軍)
중령(中領)이였든 것이였다. 그러나 1961년 5월 16일 당시(當時) 민주당(民主 ) 장면
(張勉) 정권(政權)의 허세(虛勢)와 더불어 군사혁명(軍事革命)이 일어나 성공(成功)되
므로서 주도(主導)인물(人物)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大統領)하면 제(第) 2인자로서
김종필(金鍾泌)이란 것이 국민(國民)속에 심겨저 왔으니 1961년은 신축(辛丑)년으로
서 불과(不過) 37세의 젊은 나이였다. 37세부터 시작(始作)하여 최고(最高)권력기관
(權力機關)의 권좌(權座)로 군림(君臨)하였으니 이 또한 대단(大端)치 않은 사주(四
柱)소관(所關)이겠는가
초대(初代) 중앙정보부(中央情報部)장 공화당(共和 ) 창당(創 ) 위원장(委員長) 중
앙(中央)의장(議長) 그리고 국무총리(國務總理), 국회의원(國會議員)은 선거(選擧)만
치루면 절대(絶對) 최고득표(最高得票)로서 당선(當選)되는 판 박어 놓은 거물급(巨物
級) 국회의원(國會議員)이다.
공화당(共和 ) 부총재(副總裁) 그리고 박정희(朴正熙) 서거(逝去)후에는 총재(總裁)
이렇게 막강(莫强)한 세력(勢力)을 가져왔다. 만 18년간 37세부터 56세 춘(春)까지
이다. 물론(勿論) 이 기간(期間) 중 애로(碍路)도 무수(無數) 했던 것 사실(事實)이
다. 자의(自意)반 타의(他意)반 외유(外遊)를 몇 차례(次例)했고 삼선(三選)개헌(改
憲)반대(反對)로 고충(苦 )은 있었다.
그러나 장(長) 18년간 권좌(權座)를 누려 온 것은 틀림없다. 1980년 봄까지만 해도 공
화당(共和 ) 총재(總裁)를 다음 대통령(大統領) 후보(候補)로 당연(當然)화 되었다.
그런데 뜻 아닌 권력형부정축재(勸力型不正蓄財)의 첫 케이스, 그 것도 최고(最高)인
수백(數百)억이 공개(公開)되고 모든 공직(公職)은 자퇴(自退)되도록 되고 마렀다.
56세 봄까지가 정치(政治)생명(生命)은 마무리 지여진 것이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