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조(李源祚, 1792-1871)의 탐진안씨 족보(耽津安氏族譜) 서문은 안명옥(安命玉, 1797~1849)의 족보 서문과 함께 간행연도 미상인 《탐진세고(耽津世稿)》와 1883년 간행 강진안씨세보에 실려 있다. 이원조의 서문은 간행 이력으로 보아 안명옥의 서문과 비슷한 시기에 쓴 것으로 판단된다.
이원조의 서문은 인터넷 상에는 한옥션의 1883년 강진안씨세보에 전반부, 옛날물건 사이트의 탐진세고에 후반부 이미지가 올라 있어 두 곳의 이미지를 조합하면 전문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신죽산안씨와 탐진안씨가 순흥안씨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의 후손 3형제에 비롯한다고 했지만 죽성군, 탐진군이나 안원형(安元衡)과 안원린(安元璘)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지는 않다. 같은 이원조가 1855년경 쓴 탐진 안석조(安碩朝, 1784~1852) 묘갈명에는 안원린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으므로 족보 서문은 이보다 먼저 쓴 것같다.
서문 첫머리에 나오는 「서명(西銘)」은 북송(北宋)시대 성리학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장재(張載, 1020~1077)가 그의 서재 서쪽 벽에 걸어놓은 좌우명이다. 여기에 "民吾同胞 物吾與也 (백성은 나의 동포요, 만물은 나와 함께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 장횡거(張橫渠)의 서명(西銘)
* 장재의 서명(西銘)
*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을 둘러싼 윤리적 실천의 문제
三棣聯芳 : 체(棣)는 산앵도나무 또는 산이스랏나무이며, 산앵도나무의 꽃(棣華)이 만발한 모습이 형제간의 두터운 우애를 뜻하는 것으로 쓰이게 된다. 삼체연방(三棣聯芳)은 3형제가 나란히 과거에 급제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순흥 안목(安牧)의 아들 3형제가 급제했다는 주장을 따른 말로 보인다.
傳本이 많지 않은 1883년 간행 목활자본 [강진안씨세보(康津安氏世譜)] 4卷 4冊 완질본 : 한옥션 경매
[이원조 서문의 전반부 이미지]
고목판본 안사룡(安思龍)안후곤(安厚坤) 탐진세고(耽津世稿) 磊谷逸稿 권3,4終 1책 > 고서적 : 옛날물건 (판매 사이트)
[이원조 서문의 후반부 이미지]
고목판본 안사룡(安思龍)안후곤(安厚坤) 탐진세고(耽津世稿)磊谷逸稿 권3,4終 1책 > 고서적 : 엣날물건 (판매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