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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9일 친구들과 함께 경남 합천과 산청에 다녀왔다. 폭설이 내린 가운데 스키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접고, 합천에 간 이유는 '눈 오는 날 해인사 풍광이 너무 좋다'는 친구의 말에 절대적으로 감동을 받아서였다. 전국적으로 많은 눈이 내리는 가운데 서울에서 일찍 버스를 타고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합천에 닿으니 시간은 오전 11시를 넘기고 말았다. 점심을 먹기에 조금 이른 시간이라 해인사 입구에 있는 '대장경 테마파크'로 갔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해인사 '경판고'는 사진촬영도 금지되어 있고 내부를 살펴보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을 위해 합천군이 테마파크를 만들어 대장경의 역사 문화적인 의미를 알리고, 조판 이전부터 경전의 전래와 결집, 천년을 이어온 장경판전의 숨겨진 과학과 비밀을 홍보하고자 만든 전시공간이다. 이곳은 전체가 8개의 전시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1실은 대장경 전시실로 1층에서 2층까지 올라가는 원형전시대로 둥근 공간을 활용한 3D랩핑영상과 홀로큐브와 연동되는 한글대장경 검색공간을 통하여 대장경의 웅장함과 실체를 최신 영상기법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어 2실은 부처님의 탄생과 열반의 과정을 소개하는 전시실로 경전탄생의 의미와 대장경 집대성의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고 있다. 3실은 대장경 신비실로 각국의 경전을 모아 대장경을 만든 과정을 재현한 곳으로 판자켜기, 목판 다듬기, 경판 새기기 등 16년간의 제작과정을 파노라마로 펼쳐 두었다.
4실은 대장경보존의 과학성을 알리는 전시실로 건축물의 구조와 통풍과 습도조절 등 천년을 지켜온 경판고의 비밀을 알려주고 있다. 5실은 대장경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 박스와 함께 다양한 메시지를 들려주는 시민 참여형 전시공간이다. 6실은 기획전시실, 7실은 대장경 수장실, 8실은 포토존 및 체험존으로 되어있다. 나름 볼 것이 많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좋은 산벚나무를 도끼로 찍는 행위보다는 이후 대패로 3.5cm 두께로 일정하게 다듬은 기술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 글자 한 글자 목판에 세긴 장인의 정신도 경이를 표할 정도로 놀라웠다. 해인사에서 직접 보기 힘든 대장경 전부를 이곳에서 미리 보고 가는 것이 답사 준비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좋았다. 어린 학생이 있는 가족 여행이라면 공부를 위해 반드시 사전방문이 필요한 곳이라 하겠다. 대장경테마파크를 둘러 본 우리들은 점심을 먹기 위해 해인사 사하촌(寺下村)에 있는 '삼일식당'으로 이동하여 송이버섯국과 산채정식으로 맛난 식사를 했다. 지리산에서 나오는 산나물과 주인장이 송이 수매 일을 하는 관계로 진짜 좋은 송이로 정성을 다해 끓인 송이버섯국을 맛있게 먹었다.
시골의 작은 식당이었지만, 안주인의 솜씨가 대단한지 반찬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았다. 접시 바닥에 단풍잎을 깔고 반찬을 조금씩 나누어 올린 것이 모두를 감동시키고 남았다.
오랜 만에 정말 정갈한 음식으로 맛있게 점심을 했다. 식사를 마친 나는 미끄러운 눈길을 힘차게 박차면서 난생 처음 해인사로 향했다. 길이 무척 미끄러웠지만, 가을단풍이 멋지기로 유명한 눈 내리는 겨울 홍류동천을 바라보면서 뒤뚱거리며 올랐다.
어렵게 중심을 잡아가며 쓰러지지 않고 겨우 오르는데, 앞에 스님 한 분이 양손에 지팡이를 짚고는 대단히 잘 걷는 모습을 발견했다. 눈과 산, 계곡, 산사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스님의 뒷모습을 살짝 카메라에 담고는 급히 지나치는데, 아니 비구승에 지팡이 두 개에 신발엔 아이젠까지 차고 있는 모습이 대박이었다. 너무 익숙하게 잘 걷는 모습이 어쩐지! 아이젠의 힘? 살짝 웃음이 나왔다.
이어 바로 경내로 진입한다. 서기 802년(신라 애장왕 3년)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스님이 지은 화엄도량인 '해인사(海印寺)'는 2009년 사적 제504호로 지정된 법보(法寶)사찰이다. 초당에서 출발한 이 곳은 두 스님이 애장왕비의 등창을 낫게 해주자, 이에 감동한 왕이 창건을 도와 생겨난 도량이다. 이후 고려 태조가 주지 희랑이 후백제의 견훤을 뿌리치고 삼국 통일을 지원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고려의 국찰로 삼아 해동 제일의 대도량이 되었다.
그리고 1398년(조선 태조 7)에 강화도 선원사에 있던 고려팔만대장경판(高麗八萬大藏經板)을 지천사로 옮겼다가 이듬해 이곳으로 옮겨와 호국불교의 요람이 되었다. 그 후 세조 임금의 도움으로 장경각(藏經閣)을, 성종 때는 가람을 대대적으로 증축했다. 근세에 이르러서는 불교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아쉽게도 여러 번의 대화재를 만나 그때마다 중창되었는데, 현재의 건물들은 대부분 조선 말에 중건한 것들로 50여 동에 이른다. 창건 당시의 유물로는 대적광전(大寂光殿) 앞뜰의 3층 석탑과 석등 정도다.
해인사는 부처님의 힘으로 몽골군의 침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기원하며 만든 국보 제32호 대장경판과 제52호인 대장경판고 및 석조 여래입상(보물 264)이 무척 유명한 곳이다. 불가사의한 것은 몇 차례의 화재를 당하면서도 팔만대장경판과 장경각만은 화를 입지 않고 옛 모습 그대를 간직하고 있는 일이다. 여러 번의 화재에도 불구하고 부처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경판고를 끝까지 지켜내려는 스님들의 의지가 강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곳은 불보(佛寶)사찰인 통도사와 승보(僧寶)사찰인 송광사와 더불어 삼보(三寶)사찰 가운데 하나로 말사는 150여개에 달하고, 부속암자는 백련암, 홍제암, 약수암, 원당암 등 16개에 이른다. 각각의 암자는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특히 조계종 종정을 지냈으며 백련암에서 구도했던 성철스님이 대장경만큼이나 유명하다. 물론 해인사에 가장 유명한 것은 당연히 대장경판이다. 8만여 판에 8만 4000번뇌에 해당하는 법문이 실려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완벽한 불교대장경이다. 대장경은 지난 2007년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으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문화유산이 되었다.
나는 눈 오는 대적광전 앞에 서서 경내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너무 보기에 좋았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경관을 구경하는 기쁨이 너무 커서 친구들에게 몇 장의 사진을 송신했다. 다들 너무 부럽다는 소리뿐이다. 대학 동기인 형철이는 '전생이 나라를 구했구나'라며 감탄을 했다.
뜨거운 커피를 자판기에서 뽑아 한잔을 마시면서 경내를 천천히 둘러 본 다음, 언덕 위에 있는 경판고에 올랐다. 두 동의 건물이 통풍, 온도와 습도 조절을 위해 다양한 크기의 창과 문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특이했다. 내부를 둘러보지 못하는 점과 사진 촬영이 불허된 것이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외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기쁨 대만족이었다.
경내의 다양한 문창살, 불상, 닫집, 돌조각, 돌탑, 석등, 풍경, 나무, 돌계단 등을 일일이 살펴보고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산문을 나섰다. 눈이 무척 많이 오는 기분 좋은 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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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들풀의 인도꿈 원문보기 글쓴이: dlpul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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