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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개혁주의 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이지명
제 107문: 그런데 가르침을 받은 대로 우리가 아무 이웃도 살인하지 않은 것으로 만족합니까?
답: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시기, 증오, 분노를 정죄하시는 반면에 우리가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할 것과 그에게 친절과, 온유, 화평, 인내 그리고 자비를 나타내며 힘닿는 대로 이웃이 손해 당하는 것을 방지할 것을 요구하시며 최고 절정으로는 우리는 이런 정신으로 열심을 품어 원수들에게 주저하지 않고 선을 행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An vero id satis est, nos neminem eo? quo dictus est, modo, occidere?
-Non est satis: dum enim Deus iram, invidiam, odium damnet: postulat ut proximum ae que ac nos ipsos diligamus: et ut humanitate, lenitate, masuetudine, patiemtia erga eum utmur quoque; ei damno esse possit, quantum in nobis est, avertamus: Ad summam, ita animo affectifimus, ut ne inimicis qdem benefacere dubitem.
1. 제 6계명은 우리의 이웃을 우리 몸처럼 사랑해야 함을 가르치는 것이다
(마 7:12; 레 19:18)
살인하지 말하는 제 6계명은 소극적인 차원에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하는 것을 금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될 것을 가르친다.
2.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맺어라
결국 제 6계명은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를 맺어 밖으로 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골 3:12-13). “골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골 3:13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 3: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a) 인내: 인내란 이웃이 모욕을 줄 때 조용한 용기로 참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자기 극복한 사람에게 가능하다. 즉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탈피한 사람만이 인내할 수 있다.
b) 화평: 화평이란 자신의 권리와 유리한 점을 이웃과 조화롭게 살기 위해 양보하고 이런 평화를 진작시키는 것을 의미한다(롬 12:18; 마 7:40; 5:29). 이기주의적인 사람은 화평할 수 없다. 교회 내에 말썽이 많은 사람들, 항상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나 정당의 이익에만 몰두한 나머지 정쟁만 하는 사람들은 화평을 모르는 것이다.
c) 온유: 온유란 이웃이 불의한 일을 저질렀을 때 과격하고 모진 말이 아니라 부드러운 말로 타일러서 교정해 주는 성품을 뜻한다(마 5:5; 갈 6:1-2). 이것도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할 수 없는 성품이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은 이웃의 잘못을 보면 그를 심판하는 마음으로 정죄한다. 소위 정통신학하는 사람들이나 바리새적인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d) 긍휼(자비): 긍휼이란 이웃이 위기에 빠졌을 때 영육 간에 아울러 마음으로 동정하고 그가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우려는 성품을 의미한다(눅 6:36; 마 5:7).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신 것은 이런 긍휼하심 때문이다.
e) 친절(서로 용납): 이웃들과 교제를 나눌 때 말과 거동 그리고 행동으로 매우 환영하며 모든 좋은 일에 그를 돕되 도우면서 자기 유익을 추구하지 않는 성품을 의미한다(마 5:47).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살면 참된 평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 역시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탈피해야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주위에서 남을 돕는 척하면서 그를 이용하는 경우를 자주 경험한다.
3. 제 6계명은 이웃이 불이익이나 손상을 당할 때 막아주기 위해 조치를 취해야 함을 가르친다(잠 24:21; 사 58:7; 요 15:13). 억울한 누명을 쓴 살인자를 도와 누명을 벗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 자신도 도피성을 만드시고 불의의 사고로 살인한 자들을 보호하셨다.
4. 원수 사랑: 원수란 악한 생각과 악한 의미로 내게 악을 행한 자를 의미한다. 원수사랑이란 원수들에게 더 이상 악으로 갚지 않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심지어 원수들에게 선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원수사랑을 가르친다(출 23:4-5; 마 5:44-45)
원수를 사랑한 것의 대표적인 예는 십자가상에서 원수를 위해 기도하신 예수 그리스도(눅 22:49-51; 23:34)와 스데반이다(행 7:59).
이런 일을 자연인들이 과연 행할 수 있을까? 성경이나 우리의 경험은 그것이 불가능함을 가르친다. 요컨대 제 6계명을 이루려면 성령의 감동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제 108문: 제 7계명은 무엇을 요구합니까? 답: 하나님은 모든 더러운 음란을 저주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심으로 이것을 미워하고 멀리하는 반면에 결혼 생활이나 독신생활에서 규모 있고 아담하며 예절바른 삶을 영위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Que est sententia septimi praecepti? -Deum omnem turpitudunem execrari ideoque nos eam penitus odisse & detestari debere: contraque; temperater. modeste & caste, vel in sacro coniugio, vel in vita coelibe vivere oportere. - (해설) -문제제기: 하나님은 이 계명에서 금지할 내용을 말씀하시면서 순결과 결혼의 보존을 재가(裁可)하시는 것이다. 이로써 결혼 그 자체에 권한을 부여하시는 것이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는 이혼의 급증으로 인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마치 결혼이 어린이들의 장난처럼 쉽게 이루어지고 또 쉽게 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하루 평균 370쌍이 이혼하는데 OECD 국가 중에 3위이다. 1인당 출산아는 3분의 1로 우리 나라 여성들이 평생 낳는 출산아 수가 30년만에 3분의 1로 줄어들고 이혼율은 7배로 늘어났다.(조선일보 2002.07.05) 마치 하나님의 이 계명을 무시라도 하는 듯이 결혼제도를 짓밟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배우자를 잘못 선택한 결과일까? 놀랍게도 살아보고 결혼을 해도 그렇지 않는 경우보다 이혼율이 더욱 높다는 사실이다. 아래와 같은 보도 내용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의 젊은 커플들 사이에는 ‘선(先)동거, 후(後)결혼’이 이혼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AP통신이 24일 전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CDC)가 미국 여성 1만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24일 발표한 결혼․이혼 보고서에 따르면, 혼전(婚前) 동거 경험이 있는 부부의 이혼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5년 이상 동거한 커플의 70%는 결혼에 골인하지만 이들 중 40%는 10년 내에 이혼한다는 것. 반면 동거한 적이 없는 부부의 경우 31% 만이 이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Penn State Univ.) 캐서린 코핸(Cohan) 교수는 동거 커플들은 동거할 때부터 마음이 맞지 않으면 쉽게 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 법률적 약속(legal commitment)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다며 이 같은 성향이 실제 결혼에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CDC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여성 4명 중에 3명은 30세 이전에 결혼하고, 결혼한 커플 가운데 43%는 결혼 15년 내에 파경을 맞고 있다.”(朴玟宣기자 sunrise@chosun.com 조선일보 2002.07.25) 물론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이런 현상을 초래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그러나 그것만은 다가 아니다. 결혼 제도 자체를 과소평가(過小評價)해 버리는 현대 인본주의적인 사고방식 때문인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는 제 7계명을 다루면서 그 동안 인간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여러 가지 편법적인 시도한 결과가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더욱 불행을 부채질했음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울어야 할 것이다. 제 7계명은 성경이 말하는 결혼관을 전제한다. I. 거룩한 결혼 그러면 결혼이란 무엇인가? Ursinus는 다음과 같이 결혼을 정의했다: “결혼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합법적이고 영구불변의 결합으로서, 하나님께서 인류를 번식시키기 위해 세우신 것인데,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순결한 분으로 알게 하며 모든 정욕을 미워하게 하기 위하여, 또 하나님께서 합법적으로 번식된 인류 전체로부터 교회 곧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섬길 영원한 교회를 자기 자신에게로 모으시기 위해, 그리고 이 교회가 결혼 상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노동하고 수고하며 서로 돌보고 기도하는 사회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1.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 성경은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두 가지 제도를 말한다: 가정과 교회. 이 제도는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인간의 본성과 어울리는 제도인 것이다. “창 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말하자면 결혼은 인간이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님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정을 만드시기 위해 하와를 창조하신 것이다. “창 2: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 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 2: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예수께서도 이혼 문제를 말씀하시며 가정의 기원을 언급하실 때 창세기의 이 구절을 참고하셨다. “마 19: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마 19:5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마 19:6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또 예수께서는 가나혼인 자치에 참석하시며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시면서 결혼식을 축복하셨다. 말하자면 결혼을 매우 귀한 것으로 여기신 것이다. 바울도 결혼과 교회론을 연관시키면서 결혼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엡 5: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엡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 5: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정 제도를 세우신 목적은 무엇일까? 이미 방금 말한 정의 부분에 개괄적으로 언급했다. 1) 인류를 합법적으로 번식하는 수단으로 삼기 위해, 2) 교회를 모으시기 위해, 3)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연합을 예표하기 위해, 4) 호색적이고 방랑적인 정욕을 피하기 위해, 5) 결혼한 사람들이 함께 노동하고 기도하기 위해. 제 108 문은 이런 가정을 잘 보존하기 위해 몇 가지를 경고하는 것이다. -1) 저주받은 음란, -2) 미워하라, 멀리하라, -3) 규모 있는 결혼생활, 규모 있는 독신생활, -4) 예절바른 삶 2. 결혼에 임하는 태도 a) 아내를 맞이함 서양 속담에 “결혼은 하늘에서 맺어진다”라는 말이 있다.즉 한번 결혼하면 하늘에서도 유효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혼인을 맺을 때 돈, 명예, 미모 등과 같은 경박한 가치 기준에만 근거해서 맺어서는 안 된다. 단순히 외모나 외적인 조건으로 결혼한 사람 중에 결혼을 실패한 사람들이 많다. 외모가 매우 수려하나 그 생각이 매우 미련하다면, 행복한 가정생활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조건들은 기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미가 줄어든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송을 받게 된다. 잠언서는 결혼의 조건으로서 지혜를 가장 큰 덕으로 곱았다. “잠 31:10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 이런 여자는 남편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잠 31:11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 잠 31:12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 남자가 이렇게 지혜로운 아내를 얻는 일은 일생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아내가 없으면 자신의 존재의의가 실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편 모두 경건과 존경에 근거해서 결혼해야 한다. 특별히 두 사람이 합하여 동일한 비전을 향하여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 일치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결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사랑이다. 사랑이란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마음의 성향이다. 따라서 사랑하게 되면, 마음에 상대방에게 온전히 쏠리는 것이다. 상대방의 외적인 조건이 마무리 좋아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결코 결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자기 스승이 소개한 사람도,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님이 소개한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결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은 가장 바람직한 결혼이다(창 24:3-4, 12-14). 이삭은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40대의 노총각은 자기의 배우자를 위해 기도를 많이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 둘은 처음으로 만나자마자 사랑하게 되었다. 이 말은 배우자를 구하기 전에 많이 기도해야 된다는 말이다. “창 24:63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약대들이 오더라 창 24:64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약대에서 내려 창 24:65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뇨 종이 가로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면박을 취하여 스스로 가리우더라 창 24:66 종이 그 행한 일을 다 이삭에게 고하매 창 24:67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 야곱이 아내를 선택하는 문제와 더불어 생긴 불행에 대해 생각해 보자. b) 결혼 당사자의 자세와 임무 행복한 결혼 생활을 원할 때, 남편과 아내 양자가 지니고 있어야 할 마음의 요소는 사랑, 존경심, 신의이다. 결혼 생활은 이런 마음 요소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가 무엇인지 그 본질을 체험하는 생활인 것이다. -남편의 의무: 예수께서 자기 교회를 사랑하는 사랑을 체험해야 한다. 이 사랑은 이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놀라운 사랑이다. “엡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엡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남편이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려면 예수께서 자기 몸된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파악해야 된다는 말이다. 즉 그리스도의 심정을 모르고는 복된 결혼생활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바울의 말에 의하면 남편은 심지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아내를 사랑하고 보호하라는 말이다. 베드로의 말도 이와 일치한다. “벧전 3:7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엡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엡 5: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엡 5: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아내로부터 사랑을 받으려고 기대하지 말고 먼저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라는 말이다. -아내의 의무: 성경에 의하면 아내는 가정에서 남편과 자기 사이의 질서를 고려할 줄 알아야 한다. “엡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엡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엡 5:24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이것은 남녀 평등의 문제가 아니고 창조의 질서 문제이다. 우리가 교회를 바로 섬기려면 성경이 요구하는 아내의 의무를 바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현대 여성주의자들은 이런 문제(아내의 복종)를 매우 불쾌하게 여긴다. 이들의 사전에는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일은 없다. 그런데 이들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앞에서 가능한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자녀생산: 결혼 제도의 가장 큰 목적 중에 하나는 자녀를 생산하는 일이다. 인간은 아담을 시조로 하는 전 인류가 한 가족으로서 하나님 왕국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바로 이 자녀 생산은 시간 속에서 수행하는 일이다. 우리는 자녀 생산을 하면서 맡겨진 일을 수행하는 시간토막을 역사라고 부른다. 성경은 올바른 자녀를 양성하기 위해 올바른 결혼생할이 전제됨을 가르친다. c) 혼합 결혼 혼합 결혼이란 기독교인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 사이의 결혼을 말한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 사이의 결혼을 엄중하게 금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이 약화 내지 붕괴되기 때문이다. 모세 오경은 이런 사상을 생활속에서 가르치고 있다. “레 19:19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어떤 사람들은 불신자와 결혼해서 그들을 구원시킨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경우, 더러는 오히려 불신자의 배우자를 따라 신앙을 포기하거나 둘 사이의 영적인 긴장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영적인 긴장이 있을 때 가정은 불행해지는 것이다. 둘 다 믿는 사람들끼리 결혼하여 함께 불신자들을 전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II. 간음에 대하여 1. 간음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결혼한 남자가 아내 외의 다른 여자와 성관계를 가지거나 결혼한 여자가 남편 외의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가지는 것을 간음이라고 한다(헤롯과 헤로디아 막 6:17f.). 이로써 간음이란 결혼의 신뢰성을 파괴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성경은 간음을 모든 죄악 가운데 가장 쇼킹하고 더러운 악으로 여긴다. 성경은 이 세상의 패역을 언급할 때마다 세상의 특징으로서 간음을 언급한다. “시 50:18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호 4: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호 4:2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나아가 신의와 믿음이 전혀 없는 세상을 말할 때 간음이라는 말을 언급한다. 특별히 언약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길 때 간음한 것으로 표현한다. “대상 5:25 저희가 그 열조의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이 저희 앞에서 멸하신 그 땅 백성의 신들을 간음하듯 섬긴지라”. 대부분의 선지서들이 이런 표현을 하지만 그 중에도 이 사실을 그림으로 그리듯이 표현한 성경이 바로 호세아서이다. “사 57:3 무녀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씨 너희는 가까이 오라” “렘 3:8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쫓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렘 7:9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렘 13:27 내가 너의 간음과 사특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행한 네 음행의 비루하고 가증한 것을 보았노라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뇨” 성경은 간음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함을 가르친다(롬 1장). “레 20:10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유대인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예수께 데려와 시험한 것은 이 사실과 연관되는 것이다. 설령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아 붙잡혀 사회적인 심판을 받지 않는다 해도 눈에 보이지 않게 영적으로 그 영혼이 멸망당함을 가르친다. “잠 6:32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세상 사람들이 간음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영혼이 멸망당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은 사회가 타락하여 부패할 때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을 언급할 때도 이 문제를 언급한다. “렘 23:14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중에도 가증한 일이 있음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행악자의 손을 굳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 사람과 다름이 없고 그 거민은 고모라 사람과 다름이 없느니라” 잠언서는 간음하는 자를 자기의 생명을 해하는 매우 미련한 자로 표현한다. “잠 7:21 여러 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잠 7:22 소년이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 잠 7:23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니라” 요컨대 지혜가 없는 자들은 쉽게 간음한다는 말이다. 2. 간음을 피하기 위한 비결 제 108문은 저주스러운 간음을 피하기 위해, 한편으로 소극적으로 피해야 될 것과, 다른 한편으로 적극적으로 해야할 일을 가르친다. a) 소극적으로 피할 일: “우리가 중심으로 이것을 미워하고 멀리하는”. 이 죄를 범하지 않는 유일한 비결은 피하는 것이다. 요셉은 이에 대한 가장 좋은 표본이 된다.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유혹했을 때 그는 일단 그 분위기를 피해버렸다(창 39장). 이는 보암직한 시각적인 정욕이 인간을 범죄로 유도하기 때문이다. 이때 내적으로 또는 영적으로 자신과 싸우는 전투를 수행해야 한다. 오늘날 성인 영화 내지 음란 사이트가 광고하는 것을 보면, 매우 보암직하도록 만들고 시각적으로 유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소년들을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길은 음란사이트 등에 접촉되지 않게 하는 일이다. 그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체험케 한다든가, 자연을 탐사케 하는 일 등등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한 경험을 통해 즐거움을 맛보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청소년들은 물론 어른들도 성적인 감정을 유발시키는 분위기를 피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 청소년의 경우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버렸다. 이미 음란 사이트에 접속되어 자극적인 장면을 맛본 청소년들로 하여금 다시 건전한 방향으로 전향시킬 방안은 없을까? 우리는 더러운 영들이 이런 청소년들을 사로잡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이 문제는 이미 사회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차원에서 풀어야 할 문제라는 말이다. 이것은 적극적인 차원에서 처방을 요구하는 것이다. b) 적극적인 처방: 제 108문은 어른들이 간음을 피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해야할 일에 대해 말한다. “반면에 결혼 생활이나 독신생활에서 규모 있고 아담하며 예절바른 삶을 영위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즉 인간으로서 바른 삶이 무엇인지 찾아 사는 길이다. 인간으로서 바른 삶을 사는 것이 쉽다면 이 세상이 이렇게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바른 삶을 살기 위해 그의 영혼이 자신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성령의 도움으로 영적인 전쟁에서 매 순간 이겨야 하는 것이다. 기도생활을 통해 오는 마음의 평강과 기쁨을 체험시킴을 통해 음란한 것들을 극복한다는 말이다. 3. 이혼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이혼할 수 없는가? 성경은 이혼과 간음 사이를 매우 분명하게 규명하고 있다. 한편으로, 성경은 이혼이 허용되는 경우가 있음을 지적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이혼이 간음과 밀접한 관계에 있음도 지적한다. 전자의 경우 배우자가 하나님 섬기는 일을 반대한 나머지 갈라서자고 주장할 때, 그리고 상대방이 간음했을 경우에는 이혼이 허용된다. 후자의 경우 예수께서 이 문제를 분명하게 정리해 주셨다(마 5:31; 마 19:7; 막 10:4).“마 19: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지금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이혼 경우는 서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간음에 해당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제 109문: 하나님은 이 계명에서 간음과 그에 준한 부끄러운 일 그 이상은 금하지 않으셨습니까?
답: 우리의 몸과 영혼 이 둘은 성령의 전(殿)이므로 하나님은 이 둘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보존하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그 분은 모든 음란한 행동, 말, 생각, 정욕적인 남녀결합 그리고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것을 하도록 자극하는 모든 것을 금하십니다.
-Nihilne amplius prohibet Deus hoc praecepto, quam adulterium, et id genus turpitudines?
-Cum corpus & animus noster, teplasint Spiritus sancti: vult Deus ut utruque oure sancteq; possideamus. Ideoque facta, gestus, sermoes. cogitationes, cupiditates foedas, & quicquid hominem ad ista allicit, id universum prohibet.
1. 음란한 생각
모든 음란의 근원은 마음에서 나오는 육적인 생각이다. 예수께서는 타락인 인간의 마음은 음란의 원천임을 지적하셨다. “마 15: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그러면 왜 마음이 이렇게 왜곡되었을까? 로마서는 인간이 하나님과 믿음의 관계가 단절되자마자 그 마음의 생각이 음란하게 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이 비밀은 이 세상 어떤 종교나 철학도 알지 못한다.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롬 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롬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따라서 음란한 생각을 차단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이를테면 더러운 생각이 날 때는 빨리 의식적으로 생각을 밝은 것으로 바꾸어 버린다.
2. 음담패설
음란한 생각은 음란한 말을 하도록 만든다. 음란한 말을 가장 노골적으로 한 곳이 군대사회일 것이다. 음담패설은 결국 음란한 행동으로 나아가도록 자극한다. 따라서 성경은 그런 말을 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엡 5: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엡 5: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3. 음란한 옷차림이나 행동
음란한 노래를 부르고, 음란한 춤을 추는 행위, 현대 연예무대는 이런 것으로 가득하다. 특별히 성적으로 자극하는 옷차림으로 남성들을 유혹하는 경우가 많다. 성경에 의하면 옷은 수치를 가리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수치스러운 것을 보여줌을 통해 성적인 자극을 하려고 시도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단정한 옷차림을 해야 한다.
4. 정욕적인 남녀 결합
음란한 생각, 말, 행동은 결국 인간사회를 성적인 무질서로 인도한다. 러브호텔이 지나치게 많이 세워지는가 하면, 우리의 상상을 뒤엎는 일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역사의 가르침을 보면, 이런 사회 병리 현상은 결국 멸망으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5. 기타 이런 것을 하도록 자극하는 모든 것
외설적이고 음탕한 내용이 담긴 서적을 유포시키고, 음란한 도색비디오 유포시키는 일. 이런 일을 통해 돈버는 직업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직업을 택해서는 안 된다.
요컨대 제 7계명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속성을 지닐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다. Ursinus는 이 문제를 잘 정리해 주고 있다.
-1) 순결성
-2) 수치스러움을 인식함
-3) 절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