켓츠는 1막에 12개, 2막에 9개의 Members가 나오는데 켓츠는 몰라도 메모리는 들으면 아 많이 들은 본 노래다. 고 할 것이다.
뮤지켈 '켓츠'는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불][미스사이공]과 더불어 세계4대 명작으로 칭송 받고 있다.
캐츠는 런던에서 6000회 이상 공연된 최장기 뮤지컬이며, 전세계적으로 공연돼 오고 있다. 뮤지컬 캐츠는 영국의 시인 T.S(토마스 스틴스). 엘리어트가 1939년에 출간한 시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 를 바탕으로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트레보 넌이 작품화한 뮤지컬이다.
불길하고 사탄적인 부정적 이미지가 근래 들어 귀엽고 신비함으로 변신
언제부터 고양이가 인간에게 길들여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집트의 사카라 지방에서 발견된 목걸이를 한 고양이상의 추정 연대는 기원전 2500년쯤이다. 이때를 전후로 고대 페르시아, 중국 화남지방 등에서도 ‘길든 고양이’의 흔적이 발견된다. 자발적으로 길들었든, 인간이 선택했든 인간이 그들과 더불어 살게 된 목적은 명확하다. 쥐와 같은 설치류로부터 곡식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집트인들의 고양이 사랑은 끔찍했는데, 풍요를 상징하는 여신 ‘바스트’는 고양이 얼굴을 하고 있다. 여러 번 임신이 가능한 고양이의 다산 능력으로부터 끄집어낸 상징이다. 페르시아는 이집트와 벌인 한 전쟁에서 방패 대신 고양이를 들고 포위,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받지 않고 승리하기도 했다.
서양 중세시대엔 이교도의 상징
인류와 더불어 살아온 고양이는 예술가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고야의 ‘변덕(Loscaprichos)’ 과 같이 불길함과 악령의 이미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Amo Schmidt Reference Library
그러나 서양의 중세시대에 들어서면서 ‘고양이’ 수난시대가 열렸다. 고양이는 이교도의 상징이자 사탄의 앞잡이가 되었다. 역사사회학자 로버트 단턴에 따르면 중세의 마녀사냥 문헌들은 “마녀들이 희생자들에게 주문을 걸기 위해 고양이로 변신했다”는 것을 증언한다.(‘고양이 대학살’) 고양이들은 마녀 축제(sabbath)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었는데, 거대한 수고양이 모습을 한 악마의 지휘에 따라 끔찍하게 울부짖으며 싸워대고 교미했다. 사람들은 고양이의 꼬리를 자르거나 귀를 자르는 것으로 고양이의 마녀집회 참석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마녀에 대한 공포가 휘몰아칠 때는 고양이들 역시 화형을 당하거나 교수형을 당하는 등 학살을 당했다. 단턴은 인쇄노동자가 프롤레타리아트로 조직되기 전, 부르주아인 주인과 그의 부인이 끔찍이 아끼던 고양이를 길고양이들을 포함해 모의재판을 거쳐 학살하는 ‘놀이’를 하며 저항했다고 적고 있다. 말하자면 근세의 초입기에 중세 마녀재판의 ‘흔적’은 “유예된 프롤레타리아 폭동이었다”는 것이다.
근래 대중문화 속에 등장하는 고양이의 이미지는 귀엽거나 친근한 존재로 사용되고 있다.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 <드림웍스 픽쳐스>
한편 고양이는 고대부터 인류에게 다양한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16세기 무렵 어릿광대들은 상자 안에 고양이 10여 마리를 집어넣은 뒤 뚫린 구멍으로 삐져나온 고양이 꼬리를 잡아당겨 ‘고양이 음악회’를 열었다. 높고 낮은 고양이의 ‘비명’은 많은 관중을 끌어들였고, 음악가들은 이 ‘고양이 음악회’에서 얻은 착상을 그들의 악보에 옮겼다. 로시니의 ‘익살스런 고양이 이중창’이나 모차르트의 ‘아, 사랑스런 여인’, 오펜바흐의 ‘여성으로 변신한 고양이’가 단적인 예다. 이탈리아에서 구전한 이야기를 종합 정리한 샤를 페로의 ‘장화 신은 고양이’는 중세의 부정적 이미지에서 고양이를 구출해낸다. 지혜와 능력을 겸비한 이 고양이는 가난한 젊은 주인에게 재산과 명예·행운을 가져다준다.
고양이를 다룬 문학작품 중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은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다. 검은 고양이를 마녀의 동반자로 간주한 중세시대 이래의 미신과 더불어 ‘벽 속의 고양이’(중세 유럽의 일부 지방에서는 악령에게서 건물을 지키기 위해 벽에 고양이를 생매장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성을 떠올리게 하는 비유적 상징 등이다. 현대 추리문학과 공포영화들에서 포가 ‘검은 고양이’를 통해 구축한 이미지는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서양문화 속의 고양이 이미지가 불길함과 악령, 정욕, 여성 등을 담고 있는 반면, 동양문화에서 고양이 이미지는 ‘쥐로부터 곡식을 지켜주는’ 기능적 존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여성 혹은 관능미라는 은유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캣 우먼)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일본사회에서 대표적인 고양이 이미지는 ‘마네키 네코(招き猫)’다. 고양이가 한 발을 들고 “이리오세요~” 하고 흔드는 형상인데, 행운이나 돈을 상징한다고 하여 일본 가게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기원은 17세기 에도시대로 알려져 있다. 고양이를 신으로 모시는 경우는 있지만, 일본 전통문학에서 두려움이나 경외의 대상으로 고양이를 요괴화한 경우는 흔치 않다. 반면 이누가미(견신, 犬神)이라고 하여 사람들에게서 애정을 못 받는 애완견 등 개가 인간에게 해코지하는 이야기는 여러 가지 형태의 괴담으로 전승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대표적인 중국 괴담 모음집인 ‘요재지이’에도 일본과 같이 여우나 너구리의 변신이야기는 있지만 고양이의 예는 찾기 힘들다. 전래동화 ‘개와 고양이’와 같이 한국설화에서도 고양이는 불길한 존재로 묘사되지 않았다. ‘시체방에 고양이를 두면 관이 일어선다’와 같은 오싹한 속담도 제주 일부 지방에서 전해오지만,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와 같이 고양이의 생태나 성격, 인간사에 대한 비유가 전래 속담의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뮤지컬 ‘캣츠’ 전 세계인이 사랑
그런데 ‘가위’(안병기 감독, 2000)나, ‘월하의 공동묘지’(권철휘 감독, 1967)와 같은 한국 공포영화들은 고양이를 공포의 주요 오브제로 삼는다. 더 나아가 이용민 감독의 ‘살인마’(1965) 같은 영화는 아예 여주인의 피를 핥은 고양이가 복수에 나선다는 직설적 화법을 택하고 있다. ‘망령의 괴묘저택’(나카가와 노부오 감독, 1958)과 같은 일본영화들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봐야 할까. “사실 기존의 한국 공포영화나 문학은 그 전통적 맥락과 단절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공포영화나 문학에서도 고양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여성혐오주의와 같이 가는데 이것은 오히려 근대화와 함께 수입된 서양적 맥락에 가깝다.” 영화평론가 허지웅씨의 설명이다.
켓츠는 1막에 12개, 2막에 9개의 Members가 나오는데 켓츠는 몰라도 메모리는 들으면 아 많이 들은 본 노래다. 고 할 것이다.
뮤지켈 '켓츠'는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불][미스사이공]과 더불어 세계4대 명작으로 칭송 받고 있다.
캐츠는 런던에서 6000회 이상 공연된 최장기 뮤지컬이며, 전세계적으로 공연돼 오고 있다. 뮤지컬 캐츠는 영국의 시인 T.S(토마스 스틴스). 엘리어트가 1939년에 출간한 시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 를 바탕으로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트레보 넌이 작품화한 뮤지컬이다.
불길하고 사탄적인 부정적 이미지가 근래 들어 귀엽고 신비함으로 변신
언제부터 고양이가 인간에게 길들여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집트의 사카라 지방에서 발견된 목걸이를 한 고양이상의 추정 연대는 기원전 2500년쯤이다. 이때를 전후로 고대 페르시아, 중국 화남지방 등에서도 ‘길든 고양이’의 흔적이 발견된다. 자발적으로 길들었든, 인간이 선택했든 인간이 그들과 더불어 살게 된 목적은 명확하다. 쥐와 같은 설치류로부터 곡식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집트인들의 고양이 사랑은 끔찍했는데, 풍요를 상징하는 여신 ‘바스트’는 고양이 얼굴을 하고 있다. 여러 번 임신이 가능한 고양이의 다산 능력으로부터 끄집어낸 상징이다. 페르시아는 이집트와 벌인 한 전쟁에서 방패 대신 고양이를 들고 포위,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받지 않고 승리하기도 했다.
서양 중세시대엔 이교도의 상징
인류와 더불어 살아온 고양이는 예술가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고야의 ‘변덕(Loscaprichos)’ 과 같이 불길함과 악령의 이미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Amo Schmidt Reference Library
그러나 서양의 중세시대에 들어서면서 ‘고양이’ 수난시대가 열렸다. 고양이는 이교도의 상징이자 사탄의 앞잡이가 되었다. 역사사회학자 로버트 단턴에 따르면 중세의 마녀사냥 문헌들은 “마녀들이 희생자들에게 주문을 걸기 위해 고양이로 변신했다”는 것을 증언한다.(‘고양이 대학살’) 고양이들은 마녀 축제(sabbath)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었는데, 거대한 수고양이 모습을 한 악마의 지휘에 따라 끔찍하게 울부짖으며 싸워대고 교미했다. 사람들은 고양이의 꼬리를 자르거나 귀를 자르는 것으로 고양이의 마녀집회 참석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마녀에 대한 공포가 휘몰아칠 때는 고양이들 역시 화형을 당하거나 교수형을 당하는 등 학살을 당했다. 단턴은 인쇄노동자가 프롤레타리아트로 조직되기 전, 부르주아인 주인과 그의 부인이 끔찍이 아끼던 고양이를 길고양이들을 포함해 모의재판을 거쳐 학살하는 ‘놀이’를 하며 저항했다고 적고 있다. 말하자면 근세의 초입기에 중세 마녀재판의 ‘흔적’은 “유예된 프롤레타리아 폭동이었다”는 것이다.
근래 대중문화 속에 등장하는 고양이의 이미지는 귀엽거나 친근한 존재로 사용되고 있다.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 <드림웍스 픽쳐스>
한편 고양이는 고대부터 인류에게 다양한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16세기 무렵 어릿광대들은 상자 안에 고양이 10여 마리를 집어넣은 뒤 뚫린 구멍으로 삐져나온 고양이 꼬리를 잡아당겨 ‘고양이 음악회’를 열었다. 높고 낮은 고양이의 ‘비명’은 많은 관중을 끌어들였고, 음악가들은 이 ‘고양이 음악회’에서 얻은 착상을 그들의 악보에 옮겼다. 로시니의 ‘익살스런 고양이 이중창’이나 모차르트의 ‘아, 사랑스런 여인’, 오펜바흐의 ‘여성으로 변신한 고양이’가 단적인 예다. 이탈리아에서 구전한 이야기를 종합 정리한 샤를 페로의 ‘장화 신은 고양이’는 중세의 부정적 이미지에서 고양이를 구출해낸다. 지혜와 능력을 겸비한 이 고양이는 가난한 젊은 주인에게 재산과 명예·행운을 가져다준다.
고양이를 다룬 문학작품 중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은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다. 검은 고양이를 마녀의 동반자로 간주한 중세시대 이래의 미신과 더불어 ‘벽 속의 고양이’(중세 유럽의 일부 지방에서는 악령에게서 건물을 지키기 위해 벽에 고양이를 생매장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성을 떠올리게 하는 비유적 상징 등이다. 현대 추리문학과 공포영화들에서 포가 ‘검은 고양이’를 통해 구축한 이미지는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서양문화 속의 고양이 이미지가 불길함과 악령, 정욕, 여성 등을 담고 있는 반면, 동양문화에서 고양이 이미지는 ‘쥐로부터 곡식을 지켜주는’ 기능적 존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여성 혹은 관능미라는 은유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캣 우먼)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일본사회에서 대표적인 고양이 이미지는 ‘마네키 네코(招き猫)’다. 고양이가 한 발을 들고 “이리오세요~” 하고 흔드는 형상인데, 행운이나 돈을 상징한다고 하여 일본 가게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기원은 17세기 에도시대로 알려져 있다. 고양이를 신으로 모시는 경우는 있지만, 일본 전통문학에서 두려움이나 경외의 대상으로 고양이를 요괴화한 경우는 흔치 않다. 반면 이누가미(견신, 犬神)이라고 하여 사람들에게서 애정을 못 받는 애완견 등 개가 인간에게 해코지하는 이야기는 여러 가지 형태의 괴담으로 전승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대표적인 중국 괴담 모음집인 ‘요재지이’에도 일본과 같이 여우나 너구리의 변신이야기는 있지만 고양이의 예는 찾기 힘들다. 전래동화 ‘개와 고양이’와 같이 한국설화에서도 고양이는 불길한 존재로 묘사되지 않았다. ‘시체방에 고양이를 두면 관이 일어선다’와 같은 오싹한 속담도 제주 일부 지방에서 전해오지만,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와 같이 고양이의 생태나 성격, 인간사에 대한 비유가 전래 속담의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뮤지컬 ‘캣츠’ 전 세계인이 사랑
그런데 ‘가위’(안병기 감독, 2000)나, ‘월하의 공동묘지’(권철휘 감독, 1967)와 같은 한국 공포영화들은 고양이를 공포의 주요 오브제로 삼는다. 더 나아가 이용민 감독의 ‘살인마’(1965) 같은 영화는 아예 여주인의 피를 핥은 고양이가 복수에 나선다는 직설적 화법을 택하고 있다. ‘망령의 괴묘저택’(나카가와 노부오 감독, 1958)과 같은 일본영화들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봐야 할까. “사실 기존의 한국 공포영화나 문학은 그 전통적 맥락과 단절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공포영화나 문학에서도 고양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여성혐오주의와 같이 가는데 이것은 오히려 근대화와 함께 수입된 서양적 맥락에 가깝다.” 영화평론가 허지웅씨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