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장. 사람들은 지름길을 좋아한다
사아개연유지(使我介然有知)면 행어대도(行於大道)하여 유시시외(惟施是畏)니라。대도(大道)는 심이(甚夷)하되 이민호경(而民好徑)이니라。조심제(朝甚除)나 전심무(田甚蕪)하고 창심허(倉甚虛)로되, 복문체(服文綵)하고, 대리검(帶利劍)하고, 염음식(厭飮食)하고, 재화유여(財貨有餘)를 시위도과(是謂盜夸)니 비도재(非道哉)라!
사(使)/하여금 사 개(介)/끼일 개, 껍질 개연(介然)/조금 유(惟)/생각할 유, 도모하다 유(唯)/오직 유 시(施)/베풀 시, 기울 이, 지름길 이 심(甚)/심할 심 이(夷)/오랑캐 이, 평평하다. 경(徑)/지름길 경 조(朝)/아침 조, 알현하다, 조정(朝廷) 제(除)/섬돌 제, 길, 뜰 무(蕪)/거칠어 질 무, 잡초가 우거지다. 창(倉)/곳집 창 복(服)/옷 복, 옷을 입다. 문(文)/무늬 문, 채색 채(彩)/무늬 채, 고운 빛깔 대(帶)/띠 대, 허리에 차다 리(利)/날카로울 리 염(厭)/싫을 염, 가득 차다. 음(飮)/마실 음, 주연 식(食)/밥 식, 먹다. 도(盜)/훔칠 도, 도둑질 과(夸)/자랑할 과, 사치하다. 재(哉)/어조사 재, 재난
내게 조금이라도 깨달음이 있다면 나로 하여금 큰길을 가되 다만 곁길로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도록 하겠다. 큰길은 매우 평탄한데도 사람들은 지름길을 좋아한다. 조정(朝廷)은 잘 정돈되어 있으나 밭은 황폐하고, 곳간은 비어 있다. 그런데도 호사스런 옷을 입고 날카로운 검을 차고 음식을 물리도록 먹고, 재물이 남아도는 것을 일컬어 도둑의 사치라 하니 이는 도가 아니니라.
제18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한나라당이 과반을 조금 넘기는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 졌다. 선거가 끝나고 뉴타운 공약 대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서울 지역의 경우 유력 정당의 일부 출마자들이 서울 시장의 내락을 받았다는 등 뉴타운 개발 공약을 내세워 당선되었다.
하지만 총선 이후 지난 4월14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겨레>와의 서면 인터뷰 등에서 “뉴타운 추가 지정은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고 1~3차 뉴타운 사업이 상당히 가시화하는 시점에 그 시기와 대상을 검토하겠다”며 “최근 강북 부동산 시장이 조금씩 들썩이고 있어 추가 지정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시장의 발언은 한나라당 지도부와 뉴타운 공약을 걸고 당선된 의원들을 자극하였고, 법을 고쳐서라도 뉴타운을 추진토록 하겠다는 발언이 나오기도 하였다. 지역구민들은 뉴타운 공약에 속았다며 들끓고 있다. 야당은 집값 상승을 미끼로 표를 매수한 것 아니냐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토지정의시민연대는 “뉴타운이 된 지역은 일단 부동산 가격이 무조건 올라가 땅이나 집이 있는 사람들은 좋지만, 세입자 등 집 없는 서민은 불이익을 받는다”며 “가격을 낮출 생각은 않고 강남이 올라갔으니 강북도 올라가야 한다는 당선인들의 생각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사실 뉴타운과 주택 재개발은 서울지역 주택가격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2002년 10월 지정된 은평 뉴타운은 공시지가 기준 1㎡당 186만원(2006년)으로 지정 전인 50만4천원보다 255% 올랐다. 2차 뉴타운인 한남뉴타운을 비롯해 35개 서울지역 뉴타운 대부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실제 주택공급 확대 효과도 미미하다. 최근 3년 동안 강북에서만 5만호 가량의 소형주택이 철거됐지만 신축된 소형주택은 1만4천여호에 불과했다. 결국 뉴타운으로 인해 서민들은 집을 잃고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어 더 살기 힘들어진 셈이다.
한편, 이번 뉴타운 공약과 관련하여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을 들려다보면 이 나라가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청소년연구소가 한국, 일본, 미국, 중국의 고교생을 대상으로 소비에 관한 의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국 고등학생들은 돈이 최고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반면 일본 고등학생들은 자신감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연구소가 지난 4월8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돈에 대한 의식'을 묻는 질문에 한국 학생 54%는 '돈으로 권력을 살 수 있다'고 응답했으나 일본과 중국, 미국은 30%대로 조사됐다. 특히 한국 고교생들은 대부분 '성공한 인생은 부자가 되는 것', '돈이 있으며 충분히 인생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고등학생 절반이 넘는 아이들이 인생의 가치를 돈에 건다는 것은 우리사회의 미래가 결코 밝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라 생각된다. 우리가 20년 전 일본인들을 ‘경제동물’이라 부르며 경멸했던 것이 떠오르는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말할 때 우선적으로 꼽게 되는 것이 ‘천민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남한의 자본주의는 일본의 지배와 미군정을 통해 강제적으로 만들어졌다. 미군정을 통해 일제하에서 호희호식 하던 친일 세력이 정치와 경제의 상층부를 다시 차지했다. 해방이후 우리 경제는 정부의 통제 아래 몇몇 재벌의 수출 주도형 정책에 의해 고속 성장을 하게 된다. 거대 자본의 형성과정은 짧은 시간에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땅값과 집값 상승은 부를 축적하는 주요 수단이 되었다. 개발 정책의 해택이 토지 소유자에게 고스란히 이전되었기 때문이다. 땅 때문에 졸부들이 많이 생겨나고 돈이면 모든 것이 다된다고 생각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가진자의 권리와 동시에 의무(노블리제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를 강조해온 서구와는 아주 다fms 모습의 자본주의가 형성된 것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정직하게 도를 지키며 사는 사람은 대접받기가 어렵다. 삼성문제가 크게 우리사회를 흔들어 놓았지만 특검을 통해 밝혀진 것은 별로 없다. 오히려 삼성의 지배구조만 더 굳혀주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동안 이건희 회장이 차명으로 관리해온 주식마저 자기 명의로 갖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우리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아개연유지(使我介然有知)면 행어대도(行於大道)하여 유시시외(惟施是畏)”라는 노자 할아버지의 말씀은 큰 경종을 울려준다. “내게 조금이라도 깨달음이 있다면 나로 하여금 큰길을 가되 다만 곁길로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도록 하겠다”는 다짐이 정말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노자 할아버지는 “큰길은 매우 평탄한데도 사람들은 지름길을 좋아한다(大道甚夷 而民好徑)”고 사회 현실을 개탄하신다. 오늘 우리가 사는 모습도 그 때와 꼭 닮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에 눈이 멀어 큰길을 두고 편법의 길을 택한다. 그 길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데 빠른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과정은 필요 없고 결과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편만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범법을 하고도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걸리면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재수 없어서 그렇게 되었노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상층부가 지난 세월 동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와 기득권 유지에 힘써온 당연한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무전유죄(無錢有罪) 유전무죄(有錢無罪)’란 말도 생겨났다.
친일․친미 세력, 독재 권력이 지배해온 지난 50년, 그리고 민의 힘으로 세워진 정부의 10년 세월을 잃어버린 세월이라고 외치며 또다시 권력을 장악한 저들이 과연 우리사회를 건전하게 발전시킬 수 있을 런지....
노자 할아버지는 그런 사회 현상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조심제(朝甚除)나 전심무(田甚蕪)하고 창심허(倉甚虛)란다. 조정(朝廷)은 잘 정돈되어 있으나 밭은 황폐하고, 곳간은 비어 있다는 것이다. 권력 체계는 일사분란하게 잘 정비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이 다스리는 나라의 모습은 그렇지 못하다. 백성들의 삶은 피폐하여 밭은 황폐하고 곳간이 텅텅 비어 있다. 오늘 우리 사회의 고용불안과 비정규직 문제로 중산층은 붕괴하고 빈민만 양산되는 모습과 비교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상위 1%를 위한 정책만 쏱아내고 있다.
백성들의 상황은 이러한데도 사회의 상층부나 정부의 관리들은 복문체(服文綵)하고, 대리검(帶利劍)하고, 염음식(厭飮食)하고, 재화유여(財貨有餘)한다. 즉, 호사스런 옷을 입고 날카로운 검을 차고 음식을 물리도록 먹고 마시는데도 재물은 늘 그들 주위에 남아돈단다. 백성들이야 어찌되건 자신들만 호사를 누리면 그만이다. 말을 듣지 않으면 날카로운 검을 휘두르겠다고 위협을 가한다. 먹어도먹어도, 써도써도 줄지 않는 재화를 가지고 있노라고 자랑이 대단하다. 시위도과(是謂盜夸)란다. 도득의 사치라는 것이다.
노자 할아버지는 이런 사회를 가리켜 도둑이 판치는 사회이며, 백성들의 고혈을 짜 호의호식는 자들을 가리켜 도둑의 영화를 누리는 자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이것은 도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부도(不道)면 조이(早已)라 했던가? 도가 아니면 일찍 끝난다고 하니 지금 이대로 간다면 우리 사회의 운명도 위태로울 수밖에... 일대 각성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