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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후 둘도 없이 돈독한 자매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언니, 사춘기 시절부터 키워준 두 번째 엄마, 열여섯 살 터울의 남동생까지 모두가 멀리서 그녀의 투병소식에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그녀는 출장차 파리에 들렀던 형부로부터 ‘동생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면서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는 언니의 소식을 들었다. 엄마는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파리로 오지 못하게 하는 딸을 찾아가는 대신, 독일에서 방사선과 의사로 있는 자신의 사촌동생을 소개시켜줬다. 방학 기간 동안 누나를 보러 파리를 찾은 동생은 짧게 밀어버린 누나의 머리를 보고도 놀라지 않고, 매일같이 푸르스름하게 자라나고 있다고 응원해줬다.
이제껏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일기를 쓰듯 써내려간 글이 한 권의 책이 되어 나왔을 때야 그녀는 비로소 아버지에게 말을 할 용기가 생겼다. 띠 동갑이 훨씬 넘는 동생이 ‘딸을 가진 아빠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느낄 만큼 딸에 대한 마음이 지극한 아버지였다.
“그 이야기하려고 한국으로 넘어갈 수는 없어서 그냥 전화를 했어요. 안 받으시더라고요. 문자를 보낼까 하는 순간, 생방송을 마친 아버지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오더라고요. 당시 가슴에 이상이 좀 있는 것 정도로 아셨는데, 사실은 암이었고 깨끗하게 치료됐다는 것까지 말씀드렸어요. 생각보다는 많이 놀라지 않는 반응이었는데, 뒤늦게 다시 전화를 하시더라고요. ‘너 가발까지 썼다며?’는 아버지에게 ‘항암 치료하는 환자에게는 당연한 일’이라고 들려드렸죠.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상상이 안 가다 보니 처음에는 반응이 멍했던 거래요. 막상 책을 읽고 나서는 왜 그렇게 아픈 얘기만 많이 썼냐고 말씀하시던 걸요(웃음).”
아버지가 아파할 것을 염려한 딸의 배려라고 여겨지지만, 실상 본인을 위한 이기적인 마음에서였다. 타지에서 몸 가누기도 힘든 상황에서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까지 헤아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알게 된 아버지는 씩씩하게 병마를 이겨낸 딸이 덤덤하게 써내려간 글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딸을 보듬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타지에서 참 씩씩하게도 잘 이겨냈구나, 가족과 떨어진 곳에서 더 독립적으로 살아남으려고 노력했구나 싶었죠. 무엇보다 암이나 당뇨같이 만성적인 질환은 100% 국가보험으로 처리되는 프랑스의 의료시스템도 그렇고 가족처럼 아껴줬던 의사나 스태프들에게도 고맙더라고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픔은 가족이 기꺼이 떠안아야 할 것이고, 그럴 때일수록 가족애를 더 느끼는 법이죠. 아빠가 마음이 여리건 어쨌건 알리지 않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한 소리 했었죠.”
서른 살에 찾아온 뜻밖의 선물, 유방암
“며칠 전 문상 갈 일이 있어서 서울대병원에 갔어요. 제가 있었던 파리의 병원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환자들을 봤어요. 수없이 맞았던 링거바늘을 꽂고 있는 분을 보니 그때 느낌이 순간 올라오더라고요. 몇 년이나 흘렀고, 잊은 줄 알았는데 몸은 잊지 않았던 것이죠.”
2006년 1월, 만으로 세는 프랑스 나이로 서른이 되던 봄에 갑자기 찾아온 유방암. 가슴 한쪽에 탁구공 같은 멍울이 잡히는 것을 느꼈을 때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다. 나이도 어리고 가족력도 없기에 기껏해야 물혹 정도라서 가벼운 수술로 끝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세포를 추출하는 정밀검진 후 유방암 판정을 받게 됐다.
“해외에 나가거나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자식에게 부모로서 가장 먼저 하는 말은 ‘너 몸은 어떠냐’일 거예요. 게다가 좀 안 좋다는 걸 들었으니, 언제나 통화할 때는 건강부터 물었죠. 늘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라고 말하는 우리를 보며 그런 새빨간 거짓말을 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책을 통해 그때의 상황들을 상세히 접하면서 그간 아빠로서 너무 무관심했던 것 같은 무거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정밀 조직검사, 부분 절제수술, 항암치료 4번과 방사선 치료 35번을 거치고 난 뒤 8개월간의 지긋지긋한 투병생활을 끝맺었다. 그야말로 ‘암과의 사투’를 벌인 셈이다. 그간의 과정을 나열하면 단 몇 자로 끝나버리지만 그 사이사이 일어났던 일들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처음에는 6센티미터인 탁구공만 잘라내면 되는 것인 줄 알았지만, 어딘가로 전이됐을 가능성까지 따져가다 보니 과정은 점차 복잡해졌다. 치료 과정에서 겪었던 메스꺼운 구토와 참을 수 없는 육체적 고통보다 기약 없는 기다림과 명확하지 않은 미래가 가장 두려웠다. 부분절제가 아닌 전절제술을 받을 뻔했을 때의 아찔함, 극도로 예민해진 신경으로 지옥과 천국을 오갔던 감정, 하다못해 그날 입었던 속옷 색깔까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건, 절대 잊을 수 없을 만큼 고되고도 특별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는 너무 힘든 과정이었지만, 사실 저보다 아픈 분들이 훨씬 많죠. 그리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책으로까지 써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뭔가 쏟아내고 싶은 마음에 덤덤히 쓰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유방암이 어떤 것이고,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주기적으로 자가 검진이라도 하는 계기가 된다면 의미 있을 것 같아요. 혹시나 멍울이 잡힌다고 해도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세상에는 왜 있는지 모를 물혹일 경우가 훨씬 많거든요. 다만 확실한 검증을 받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셨으면 좋겠어요.”
파리에서의 7년,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20대의 대부분, 그리고 30대로 넘어가는 시기는 모든 이에게 결정적인 순간이다. 그녀가 그 결정적인 시기를 보냈던 파리로 떠나게 된 건, 그저 새로운 곳을 찾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됐다.
전공인 아동학과는 전혀 상관없이 방송부에 푹 빠져 있던 대학생 시절, 학점관리 따위는 하지 않았던 그녀는 1년을 남겨둔 상태에서 덜컥 파리행을 결심했다. 영어권 나라 한 번 가보지 못하고도 웬만큼 영어를 하는 스스로를 믿고, 전혀 다른 언어인 프랑스어를 해보자는 단순한 마음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영향 탓인지 어릴 때부터 워낙 영화와 음악을 좋아해 예술의 고장에서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떠날 당시는 파리에서의 삶이 이토록 길어질지는 상상도 못했다.
영화학교에 다닐 당시 호텔 홍보실에서 일하던 언니를 통해 모 럭셔리 브랜드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초대받아 파리에 출장 오는 잡지사 편집장의 통역 건을 맡게 됐죠. 그 자리에서 우연히 브랜드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4대손의 인터뷰까지 따게 됐어요. 그때부터 파리통신원 생활을 시작하며 일종의 ‘기자’라는 삶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저에게 파리는 우연의 연속이었고 수많은 기회들을 준 곳인 것 같아요. 인연이 또 다른 인연을 낳으며 전혀 새로운 삶으로 이끄는 걸 보면 말이죠.”
이후 전공을 살려 프랑스 영화사 전략기획팀에서 근무하면서도 간간이 파리통신원으로 활동해왔다. 암 투병 후 건강을 생각해 새로운 일을 찾게 된 그녀는 현재 파리의 한 레스토랑에서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을 하고 있다. 본업이 바뀌었어도 한국과 파리의 끈을 이어주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간간이 패션 화보나 광고 촬영의 프로덕션을 담당하기도 하며, 여전히 몇몇 잡지에 파리 관련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돌아보니 어느덧 13년이란 세월을 파리에서 보냈더라고요. 이곳에서 다른 인종들과 함께 일을 하며 다양한 인연도 만나고, 찌릿한 사랑도 해보고, 암이라는 놀라운 경험도 하고…. 많이 웃고 울었던 것 같아요. 언제 또 어느 나라로 불쑥 떠날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직까지는 파리에 더 머물 생각이에요. 우선은 남은 30대를 더 멋지게 살아보고 싶어요.”
배한성에게는 이미 품 밖으로 나가 자신만의 인생을 개척한 딸이다. 지금에 와서 새삼스럽게 딸의 인생을 간섭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인생에서 쉽게 겪을 수 없는 경험을 한 딸에게 삶의 멋진 주인공이 되라고 말한다.
“살아온 날보다는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딸에게 더 큰 힘을 주기 위해 그런 일이 있었던 게 아닐까란 생각을 해요. 지난 8개월간의 시련은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떤 것보다 좋은 수업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그동안 수많은 작품에서 주로 주인공 역할을 맡았잖아요. 주인공은 외모건 성격이건 모든 걸 가졌죠. 그런 주인공처럼 진짜 멋지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언젠가 봤던 영화 <쿵푸 팬더>에서의 한 구절을 잊지 않고 있다. ‘세상에 그냥 우연이란 없다, 모든 것의 답은 내 안에 있다.’ 크고 작은 우여곡절을 겪고 난 그녀는 비로소 삶을 당당하게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낯선 우연을 오늘도 기다린다.
/ 여성조선
취재 박주선 기자 | 사진 오수진 | 장소협찬 오시정(02-512-6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