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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인물설교]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
창세기 15:1~3
오늘 우리가 살펴볼 구약 성경의 인물은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입니다. 그는 성경에 자주 나온 인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신앙의 인물들 가운데 그 이름을 올리는 데 손색이 없습니다. 그가 이처럼 귀한 신앙의 사람으로 추천받을 만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1.아브라함에게 상속자로 인정받을 만큼 아브라함에게 신임을 받은 충성된 자였기 때문입니다.
엘리에셀은 다마섹 사람입니다. 다메섹은 지금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갈대아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약속의 땅을 향하여 출발하였다가 하란에서 아버지 데라가 돌아가실 때까지 머문 후에 다시 출발하는 중에 다메섹을 통과할 때에 만난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란이나 다메섹은 매우 출입이 빈번한 곳이기도 해서 장사치들이 많은 도시입니다. 아마도 이 엘리에셀 역시 매우 시세가 밝고 견문이 넓은 사람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떤 사연인지 밝혀 있지 않지만, 아브라함의 종이 되었습니다. 엘리에셀은 다메섹에서 아브라함을 만나 그와 더불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하여 주인과 더불어 산전수전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애굽에 함께 내려갔다가 큰 풍파를 겪기도 하고 다시 나와서 롯의 하인들과 아브라함의 하인들이 싸우는 것도 겪고, 롯이 소돔 성에 들어가 있다가 그돌라오멜 연합군에게 포로로 끌려가서 그들을 구출하려고 주인 아브라함과 함께 출병하여 칼과 창으로 싸워 승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주인 아브라함에게 큰 신임을 받았습니다. 충성스러운 일꾼으로서 아브라함이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쳐부수고 돌아온 어느 날 밤에 환상 중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나님께 불평 섞인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놀랍게도 이 종 엘리에셀은 아들이 당시 없던 아브라함이 자기 전 재산을 상속할 상속자로 거로될 정도로 아브라함에게 신임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엘리에셀이 아브라함에게 충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들 대신에 모든 것을 다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 혹시라도 자기가 죽었을 때 그 많은 재산과 종들과 남은 가족들의 안위를 다 부탁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엘리에셀을 인정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이름을 하나님 앞에 직접 아뢸 만큼 그는 주인의 마음 중심에 이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축복의 가문입니다. 메시야의 언약이 있는 가문입니다. 그 가문에 충성한 것은 곧 주님께 충성한 것입니다. 그 결과 이방인인 그가 하나님께 그 이름이 올려지는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잠언 17:2 말씀에,
“슬기로운 종은 부끄러운 짓을 하는 주인의 아들을 다스리겠고 또 그 형제들 중에서 유업을 나누어 얻으리라”
고 하였습니다.
종이었던 엘리에셀은 그의 충성된 헌신 덕분에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약속되었던 하늘 나라 천국에 구원의 은총을 입고 그 충성된 일에 대한 상급도 나눠 받게 된 줄 믿습니다. 우리도 엘리에셀처럼 충성된 자로서 부르심받은 주님의 교회와 부르심받은 직장에서 더욱 충성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약속의 씨앗을 이을 이삭의 아내를 얻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은 자였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씨앗을 얻는 일은 아브라함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상속할 그 후손들은 분명 여호와 신앙을 이어받을 거룩한 후손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하여 그가 말년에 낳은 이삭의 아내를 잘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족속의 딸들을 보니, 품행이 좋지 않고 우상 숭배에 깊이 물들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들 이삭의 아내로 합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를 얻는 이 중대한 일을 가장 신임하는 엘리에셀에게 맡겨야 하겠다고 아브라함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엘리에셀을 불러서 자기 허벅지 밑에 손을 넣으라고 말한 후에 자기 고향 자기 족속에게 가서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여 오라고 말했습니다. 허벅지 밑에 손을 넣는 행위는 생명의 근원을 두고서 맹세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매우 중대한 것이었습니다. 반드시 지키라는 뜻이요 그 일의 중대함을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 주인의 의중을 알고 하나 하나 물었습니다. 만일 그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않으면 아드님을 그 여자에게 데리고 갈까요 하고 묻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이 땅을 후손에게 주신다고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천사를 먼저 보내어 순조롭게 도와주실 것이라고 격려해주면서, 만일 여자가 따라오려고 하지 않으면 그만 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고 오직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가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참으로 이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주인의 고향 갈대아 우르 쪽으로 가는 길에 고향 친척의 집이 머물러 살던 밧단 아람 곧 하란 주변 지역에 도착하여 거기서 주인의 마음에 맞는 신부를 찾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한양 김서방 집을 찾는 것과 같고, 한강 백사장에서 바늘 찾는 것과 같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또한 찾는다 해도, 그 여자가 신랑감이 누구인지 얼굴도 보지 않고 따라나선다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에 많이 부담이 되는 임무였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임무를 맡은 엘리에셀은 그만큼 주인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았기에 그 일을 수행하려고 더욱 최선을 다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이삭의 아내, 아브라함의 며느리를 얻는 것은 오늘날 주님의 신부인 교회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엘리에셀은 보냄받은 종으로서 이 일이 힘들고 어려워도 매우 중대한 일이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맹세하고 출발해서 애를 썼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주님의 명을 받아 주님의 신부된 자들을 찾아 데려오는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순결하고 참된 주님의 신부가 어디 있는지, 찾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순종하며 나아갈 때에 앞서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시고 반드시 예비된 주님의 신부인 택한 영혼을 만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엘리에셀처럼 충성된 사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주인의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길을 떠나 기도함으로 은혜를 구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주인님이 말씀하셨던 밧단 아람 땅에 도착한 후에 나홀의 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나홀은 아브라함의 형제였습니다. 그러나 그 성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는 수많은 처녀들이 수백 수천 명이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중에 어느 규수가 자기의 주인님의 며느리가 될 사람일지 알 수 없어 난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때는 여인들이 저녁 짓느라 바쁜 시간이었습니다. 엘리에셀은 여인들이 물길러 오는 우물 곁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서 있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그는 아브라함을 섬긴 지 수십년이 지난 이 때 어느틈엔가 주인 아브라함처럼 기도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 소리도 들으시는 분임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조목 조목 자기가 주인의 아들 이삭의 아내감 될 징조를 말씀드린 것입니다. 주인 이삭의 아내가 될 사람의 조건으로 특별히 엘리에셀은 섬김과 사랑을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아무리 맵시가 좋고 아무리 배운 것이 많고 아무리 교양이 넘쳐도 하나님 나라에서 귀한 것은 사랑과 섬김의 자세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야 주인님 가문을 살리고 번창케 할 사람으로 합당하다고 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주님의 집인 교회에서 첫째로 치는 것이 사랑과 섬김이라는 점을 기억합시다. 성경 박사가 되는 것도 좋고, 열렬한 기도꾼이 되는 것도 좋고, 재주 있고 재능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자발적인 헌신과 사랑으로 교회를 기쁨으로 섬기는 손길이 참 귀한 것입니다. 이 충성스러운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제시한 아브라함의 집 안방 마님의 기준은 우리 모든 성도들이 주님의 신부로서 가져야 할 합당한 자세임을 기억합시다.
놀랍게 하나님은 이 종의 기도를 신속히 들어주시고 나홀의 손녀딸 리브가가 물길러 나와서 그 까다로운 조건을 다 만족시켰습니다. 할렐루야.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종의 기도를 하나님은 신속하게 들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신실하신 분입니다.
4.이 엘리에셀은 신부 집안에서 충성스럽게 맡겨진 일을 끝까지 감당하여 신부를 데리고 나옵니다.
창세기 24장을 보면, 이 종은 리브가의 집에 와서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자세히 하나 하나 다시 설명합니다. 상당히 긴 내용을 다시 리브가의 집안에 와서 말로써 자세히 다 설명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자기가 여기까지 와서 그 집 딸 리브가를 만나 아브라함의 며느리로 삼고, 이삭의 아내로 삼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는 것을 설명하고자 한 것입니다. 우연히, 어쩌다가 이렇게 이 집 딸을 만나 결혼시키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된 것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리브가의 오빠 라반이나 그 아버지 브두엘은 대답하여 “이 일이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았으니 사람이 감히 가부를 말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순종합니다. 엘리에셀의 충정이 통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아브라함의 종이 곧장 땅에 엎드리어 하나님께 절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로 자기의 소임을 이루게 된 것을 감사해서 그렇게 경배한 것입니다. 그는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이 잘 되면 그것이 자기의 지혜, 자기의 능력, 자기의 언변, 자기의 출신이 남달라서 된 줄로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 엘리에셀처럼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줄로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로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날 이 종은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곧장 신부측에 주인에게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집은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하루 아침에 딸과 헤어지게 되었으니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고, 며칠 또는 열흘이라고 함께 머물게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종은 자기를 말리지 말라고 청하면서 하나님께서 형통한 길을 열어주었으니 미루지 말고 자기를 보내어 주인에게 돌아가게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할 수 없이 이들이 자기 딸에게 묻자고 말하여 리브가에게 물었더니, 리브가는 현명한 사람이요 하나님의 섭리에 깊이 감격한 신앙의 여인이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사랑하는 오빠, 그리고 친구들이 있는 자기 집, 자기 고향이지만, 기꺼이 곧장 떠나겠다고 결단합니다. 할 수 없어, 그날부로 친정집 모든 사람들은 리브가를 축복하여 떠나보냅니다.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
이 축복의 말씀은 리브가의 후손이 번성할 것과 승리를 얻을 것, 영적으로는 옛 아담 이래로 인류를 넘어뜨린 원수 마귀의 머리를 밟아버릴 메시야를 후손으로 얻는 축복을 얻게 해달라는 축복입니다.
이 과정에서 보았듯이, 엘리에셀은 멀리 여행왔던 수고로움을 좀 쉬고 귀한 친척집에서 온 분이라고 많은 대접을 받으면서 지낼 수 있는 여건이 있었으나, 그는 소식을 기달릴 자기 주인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의 이익과 기쁨을 위하여,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돌아가는 것을 택한 것입니다.
훗날 유다의 한 젊은 선지자는 벧엘의 제단에 화를 선포하고 곧장 돌아서 돌아오라는 말씀을 하나님께 받았는데, 도중에 늙은 선지자에게 속아서 돌아가서 식사 대접을 받다가 죽었습니다. 만약 모든 것이 잘 되었다고 칙사 대접을 받다가 사명의 엄중함을 잊고 자칫 일이 틀어지면 안되겠다고 이 충성스러운 종은 생각하고, 곧장 이렇게 되돌아가기를 서두른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머니 사라가 세상을 떠난 후에 날마다 슬픔 중에 있던 이삭은 아내 리브가를 얻고 그 마음에 위로를 얻고 마침내 믿음의 자손 야곱을 얻으니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 중에는 자신의 이익과 안일을 돌보지 않고 주인 아브라함의 이삭의 이익과 기쁨을 위하여 헌신한 종 엘리에셀의 열심과 충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5,이후 엘리에셀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후 아브라함이 175세까지 사는 동안 그 곁에서 함께 살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브라함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품에 돌아간 후에 엘리에셀도 그 주인 아브라함에 그리던 하늘나라 도성에 자기도 갈 것을 소원하며 기도하다가 때가 되어 곧 주인 곁으로 올라갔을 것입니다. 그는 평생에 아브라함의 충성된 종으로 살았으므로 천국에서도 아브라함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영광을 누릴 줄 믿습니다.
6. 엘리에셀의 삶과 관련되어 충성에 대하여 좀 더 생각해봅시다.
1)참으로 충성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잠언 20:6, 많은 사람이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충성은 우리의 본성과 맞지 않습니다. 자기 중심적으로 살고자 하는 타락한 본성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큼 충성은 그 만큼 더 귀한 것입니다.
2)성경에 나오는 충성된 본보기를 잠깐 예를 들겠습니다.
.모세
민수기 12:6~8, (미리암과 아론에게)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맹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히브리서 3:5,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충성하였다)
.엘리아김(vs.셉나),
이사야 22:15~24,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가서 그 국고를 맡고 왕궁 맡은 자 셉나를 보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에 누가 있기에 여기서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 높은 곳에 자기를 위하여 묘실을 팠고 반석에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내었도다 나 여호와가 너를 단단히 결박하고 장사같이 세게 던지되 반드시 너를 모질게 감싸서 공같이 광막한 곳에 던질 것이라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 네가 그곳에서 죽겠고 네 영광의 수레도 거기에 있으리라 내가 너를 네 관직에서 쫓아내며 네 지위에서 낮추리니 그 날에 내가 힐기야의 아들 내 종 엘리아김을 불러 네 옷을 그에게 입히고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있게 하고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의 집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닷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같이 그를 견고하게 하리니 그가 그의 아버지의 집에 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요 그의 아버지 집의 모든 영광이 그 위에 걸리리니 그 후손과 족속 되는 각 작은 그릇 곧 종지로부터 모든 항아리까지니라”
.다니엘
단 6:4~10,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그들이 이르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하고...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과 전과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3)하나님의 집인 교회의 일꾼 된 우리들에 대한 충성하라는 권면이 많이 나옵니다.
집사의 기준 조건으로 충성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3:10~11,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우리를 향한 주님의 권면 중에 충성스러운 청지기적 삶에 대한 권면이 많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4:45~51,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기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누가복음 16:10~13.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여기서, 주님은 작은 것에 충성되어야 큰 것에도 충성되다고 하시면서, 작은 것의 예로 재물에 대한 태도를 들고 있습니다. 재물은 작은 것이고 불의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작고 불의한 재물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 앞에 진실하지 못하고 온전하지 못하다면 어찌 크고 더 복되고 본질적인 것을 맡길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십일조나 감사 헌금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인색하고 아까워하고 속인단 말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지극히 사소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물질 문제에서조차 기쁨과 자원함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드리지 못한다면, 어찌 더 크고 중대한 헌신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재물 문제에서 충성되지 못하면서,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 내게 더 큰 은사도 맡겨주시라고 청합니다. 병고치는 은사도 주시고, 예언의 은사도 주시고, 하나님과 영적 비밀을 나누는 깊은 은혜도 주시라고 청합니다. 영적인 권세와 명예도 주시고, 자녀들도 형통하여 세상에서 큰 인물이 되게 하시고, 더 많은 물질을 주시라고 청합니다.
그러나 작은 것에 충성되지 못하면 큰 것을 주어도 충성할 수 없습니다. 작은 것에 충성되게 관리할 때, 큰 것에도 충성되이 관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질과 명예와 세상 지위와 여러 가지 어떤 것들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여기고 하나님을 더 크게 여기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알고 섬겨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도 본래 주고자 한 것, 재물은 작은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더 크고 중한 것을 맡겨 다스리게 할 것입니다.
4)충성된 자에 대한 주님이 상이 있습니다.
세상 나라의 임금이나 주권자들은 충성해도 때로는 자기 이익을 위하여 충성한 자를 버리기도 합니다. ‘토사구팽’ 곧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처럼 헌신했던 한신 장군을 한나라의 시조 유방은 끝내 죽여서 후환을 없앱니다. 그러나 우리 구주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데, 그에게 충성된 자를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그 행한 모든 것을 다 기억하시고 잊지 아니하십니다. 갚아주십니다.
히브리서 6:10~12,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리라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7.결론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늙은 종 엘리에셀처럼 우리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브라함의 가문, 다윗 가문 곧 우리 구주 예수님의 집을 위하여 충성된 청지기로서 최선을 다합시다. 그리하여 장차 우리 주인님 앞에 서는 그 날에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하였도다.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고 칭찬 받는 복된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