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믿음을 세우려고 나타난 예수
하나님께서는 아담가정에서 저끄러짐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간들이 여러 민족으로 화했으니, 그 수많은 민족을 대신하여 믿을 수 있는 하나의 이스라엘민족을 택하셨고, 또 그 민족 가운데서 모세를 택해 세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천륜의 법도는 세웠으나, 모세를 따랐던 그 민족은 하나님을 배신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가정적으로도 민족적으로도 뜻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다시금 이스라엘을 바로의 수중에서 빼앗아 가나안족과 싸우게 하는 싸움의 역사를 거쳐 4000년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을 보내셨는데, 그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당시 민족적으로 받들어야 할 모세를 배신한 인간들이 국가적으로 받들어야 할 예수를 과연 받들었던가. 오히려 그 이스라엘민족은 예수님을 가정적으로 배신했고, 사회적으로 배신했고, 국가적으로 배신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역대의 선지들, 혹은 역대의 선조들이 뜻 앞에 나타나 하늘의 사명을 감당하고 나서려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믿을 수 있는 그들이 되어지길 바랬습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조건을 세우려고 하늘의 사명을 맡았던 분들이 바로 노아요, 아브라함이요, 야곱이요, 모세였으며,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심정을 지니고 이땅에 나타나셨던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신해서 나타났고, 하나님의 역사적인 말씀을 대신하여 나타났으며, 하나님께서 찾으시려던 소망의 실체로 나타나셨던 분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무엇을 느끼셨던가.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타나 세상을 향해 외치실 때, 그 말씀은 역사적인 말씀인 동시에 오랜 역사과정을 통하여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나타내고자 하였던 말씀인 것을 느꼈습니다. 나아가 그 말씀은 또한 오랜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수많은 인간으로부터 배신당한 말씀인 것을 느꼈으며, 불신의 이 땅 위에 믿을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을 무한히 찾고 계시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심정을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모든 정력을 다 기울여 인간을 지어놓고, 갈라질래야 갈라질 수 없는 영원한 이상적인 사랑의 실체로 세우고자 하시던 그 사랑의 심정을 느꼈고, 배반한 아담 해와의 입장을 자신이 복귀하여 완결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오랜 역사과정을 통하여 수많은 인간들로부터 배척받고 유린받던 그 말씀을 내 자신의 것으로, 배척받고 유린받던 그 마음을 자신의 것으로, 성전으로서의 몸을 자신의 것으로 예수님은 붙안고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선 예수님께서 소망으로 찾고 요구하신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할진대 그것은 선의 한날을 위한 염려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는 소망의 한날을 세우기 위하여 싸웠고 또 돌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 말씀을 갖고 나타나게 될 때에, 역사적인 과정에서 배척받던 모든 말씀을 복귀하고 선조들이 그르쳐 놓은 배신의 죄악사를 탕감하여 아버지를 위로해야 할 책임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오, 아버지여! 아버지의 성전과 마음을 유린하고 짓밟던 선조들의 4000년 역사를 저를 보고 잊으시고 위로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마음을 갖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땅 위에서 어떤 무엇을 청산해야 할 사명을 느끼신 것입니다. 역사적인 모든 배신과 현실적인 모든 배신의 내용을 추방하여 다시금 배신의 역사를 후대에 남기지 않겠다는 마음에 사무쳐 사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각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명을 책임지고 하늘 대해 각오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르짓는 곳에 배신의 역사가 벌어질 것이요, 하나님의 마음을 지니고 나타나는 곳에 서러움과 원통함이 있을 것이요, 하나님의 몸이 나타나는 곳에 사탄의 화살이 있을 것을 알았으며, 또한 각오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현실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옹호해 주고 자신을 지켜주기를 원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불신하는 인간을 대하여 묵묵히 참으셨던 것입니다. 남 모르는 슬픔을 머금고 인류를 위해 겟세마네동산에서, 혹은 감람산에서 홀로 기도하시던 그 서글픔 사정을 오늘날 여러분들은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당시 땅 위에 있는 인간과 예수님을 비교해 볼 때에 예수님은 어느누구보다도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역사과정의 수많은 인간으로부터 배신받던 말씀을 가지고 그 말씀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여 땅 위에 나타나신 예수님 같이 그 말씀을 부등켜 안고 `오! 나의 주님이시여, 나의 신랑이시여, 나의 인도자이시여! 저희의 생명을 아버지 앞에 이끌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4000년 수고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배신으로 종결된 사실을 느끼신 예수님이었지만 그래도 배신한 그 인류를 위해 눈물을 흘리셨던 것입니다. 천지에 가득찬 하나님의 서글픔을 느끼면서도 배신하는 인간들을 찾아 나선 예수님에게 한이 있었다면 이것이 무한한 한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4000년 동안 배신을 당하시면서도 인간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될 때, 배신을 당하여도 서러워할 수 없고, 생활이 곤궁하다하여 낙망할 수 없는 입장에 계셨으며, 자신의 생명이 제물되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의 뜻을 거부할 수 없는 입장에 계셨던 것입니다. 4000년 동안 배신한 민족을 그래도 버리지 않고 사랑으로 대하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느끼신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그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아버지와 친히 모든 것을 의논할 수 있는 입장에 서셨던 것을 오늘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민족 앞에 배척받고, 국가 앞에 반역자로 몰리고, 나중에는 강도보다도 더 중한 죄인으로 몰림받게 되었는데, 그러한 입장에서도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게 해달라고 복을 빌던 그 마음은 어디서 나왔는가. 이는 역사상의 배신하는 민족을 대하여 수천년 동안 참아 나오셨던 아버지의 애달픈 심정을 느끼게 된 데서 나온 것입니다.
몰리고 배척받으면서 하나님을 찾아나가는 길
예수님께서 이러한 역사적인 길을 거쳐갔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그 말씀을 붙들고 나갈 때는 반드시 형제로부터, 혹은 교단으로부터, 혹은 민족으로부터 배척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와 같이 배척받는 환경에서도 배신하는 자들을 위해 복을 빌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말씀, 믿고 있는 신앙, 세우고 있는 종교이념은 어떠한 상태에 처해 있는가. 2000년 전 예수님께서 개인으로부터 가정·교회·이스라엘민족·국가로부터 배신받는 입장을 거치었으니, 이것이 오늘날 민족·국가를 넘어 세계에 이르기까지 배척받는 단계에 머물러 있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에덴동산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가 악이 선을 치는 역사였다는 것은 안다 할진대는 하늘을 향하여 나아가는 데 있어서 배척하는 자가 참이 아니요 배척받는 자가 참인 것이며, 나아가 그들이 하늘의 역사를 이루어 나오고 있다는 것을 또한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어느 민족이 세계를 대신하여 모든 면에서 배척받는 입장에 처해 있는가. 하늘의 뜻을 찾아세워 하늘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하늘에 가까운 이런 민족이 있다 할진댄, 그 민족은 그 민족이 가진 모든 것에 걸쳐 배척당하는 이런 역사적인 운명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민족은 무엇으로부터 배신을 받겠는가. 아담 해와가 타락하게 될 때에 천사장과의 사이에서 벌어진 그 모든 조건을 통하여 배신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는 말씀을 중심삼은 배신을 받게 됩니다. 동산 가운데의 모든 열매는 따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따먹지 말라 하던 약속의 말씀이 배신당하는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
즉 천사장이 나타나 따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그 말을 통하여 하나의 나라, 하나의 이념권내에 딴 나라의 이념적인 것이 나타나게 된 것과 같은 그러한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이념, 하나의 목적, 하나의 중심을 향해야 될 마음이 제2의 마음의 형태로 나타나 새로운 목적을 소개하는 듯하였지만 결국 배신의 기원을 만들어내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배신의 기원은 무엇을 통하여 벌어졌던가. 말을 통하여 벌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끝날에 있어서도 하늘 앞에 세워져야 할 어떠한 민족이 있다 할진대 그 민족은 어느 한때, 언어에서까지도 배신당하는 입장에 설 것이요, 그 나라의 말을 대신하는 글이 있다 할진대는 그 글까지도 배신당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 나라의 역사 그 나라의 민족성까지도 유린되는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세기말적인 종말의 한때를 두고 볼 때에, 그러한 나라가 어디냐 하면 바로 이 한국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은 역사상에 수많은 민족의 침범을 받아왔고 많은 배신자들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일제의 압정하에서 우리의 언어도 다 잃다시피했었습니다. 우리의 글자도 우리의 민족성도 우리의 자랑도 우리의 이념도 다 말살당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날에는 같은 민족끼리 서로 배신하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서로 배신하는 동시에 형제들끼리 배신하고, 부모 친척이 배신하고, 부자간에 배신하고, 부부간에 배신하는 이러한 배신의 한 고비를 거쳐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민족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민족은 하나님의 인류 앞에 배신당하고 그 서러움의 심정을 어느 한때 한 순간에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이 민족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배신하는 민족을 대하여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 민족도 배신하는 세계를 위하여 하늘을 향해 기도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이 민족의 살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민족은 배신하는 세계를 극복해야 되겠습니다. 오히려 그 배신을 통하여, 배신받던 예수님의 말씀을 내 말씀으로, 배신받던 하나님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배신받던 선조들의 몸을 나의 몸으로 여기어 하늘 앞에 엎드려 호소해야 할 것입니다.
말을 분별할 줄 아는 인격완성자
하늘이 무심하여 이스라엘이 망할 줄 알았지만 이스라엘 가운데 예수님이 나셨듯이, 이 나라가 망하는 것 같지만 이 나라에 하나님의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민족이 해야 할 것은 6000년 동안 배신 받던 아버지의 말씀을 내 말씀과 내 몸, 마음으로 여기고 6000년 아버지의 서러움을 나의 심정으로 체휼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누구를 의지하지 마십시오. 누구의 말을 믿지 마십시오. 누구를 평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본래 누구를 의지할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를 믿어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또 누구를 평해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본래의 사람이 못 되었기 때문에 남에게 의지하고 남의 말을 믿고 남의 행위를 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래의 목표를 향해 나가야 할 여러분은 믿을 수 있는 믿음의 자체가 되어야겠고, 의지할 수 있는 자체가 되어야 하겠고, 평할 수 있는 자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즉 자체를 의지하고 자체를 믿고 자체를 평할 수 있어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 대하여 묵묵히 참아 내려오신 것 같이 여러분도 어느누구보다도 잘 참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묵묵히 내 스스로 의지할 줄 알고 내 스스로 믿을 줄 알고 내 스스로 평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자체를 세워 `아버지여! 나를 보시고 위로받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어, 아버지가 나를 믿어 주고 내가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가 나요 내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관계가 맺어지게 될 때에 하늘의 서러움은 여러분 자체에서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 자체에서는 하나님의 싸움이 끝나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제 옛날 아담 해와가 옆으로 들려오는 말을 분별하지 못하여 타락했음을 깨닫고,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인격의 완성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아담 해와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에 의하여 천사장의 말을 분별할 수 있었던 그들은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도 그 마음이 영원한 이념을 통하고 영원한 천륜을 대신하여 부동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완전성을 갖추었다면, 그 마음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타락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수천년 역사를 통하여 배신받은 가운데 변명하려면 얼마든지 변명할 수 있었지만 한날 한 시간도 변명하지 않으신 아버지와, 또한 2000년 동안 변명하려면 무한히 변명할 수 있었으나 변명하지 않고 땅을 위해 염려하고 계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로서, 묵묵히 참고 견디며 변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되어야겠으며, 나아가 자신이 제2의 천사장 입장이라는 것을 폭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살고 싶은 대로 산 사람은 후세에 반역자가 되고 배신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배신당하는 입장에서도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살고 싶은 대로 다살지 못한 분이 바로 예수님이요, 또 우리의 선조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도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생활권내에서 불변의 자체로서 자신을 억제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느때, 어느 시기에 하늘을 배신하는 자리에 설는지 모른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배신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여러분은 어떠한 조건에 걸리는 줄 아닙니까? 여러분이 6000년 동안 배신의 서러움을 참고 나오신 그 아버지를 배신하게 될 때, 여러분은 끝날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여러분을 대하여 6000년의 서러움을 일시에 탕감시키고자 하는 대심판의 날을 여러분은 넘어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들은 세상의 제물이 되어 말없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대신하는 마음을 갖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나가는 데는 일년이 아닙니다. 십년이 아니고 삼십년이 아닙니다. 일생을 거쳐 여러분 후대에까지 계승시킬 만한 믿음을 갖고 나아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오늘의 나를 찾아 나를 개척하고 나라를 밝혀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나와 하늘과 맺어진 인연이 이 모든 사악한 세상을 초월하고 우주적인 종말권까지 넘어설 수 있음을 깨닫고, 자신의 생활권내에서 아버지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승리적 조건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은 천륜과 뜻을 배신하지 않은 영원한 승리의 아들딸로 설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늘 수고가 많으십니다.